기자 vs 기자 / Reporter vs journalist
Reporter 와 jounalist. 우리말로는 모두 기자로 번역되는 두 단어가 영어의 의미에서는 많은 차이를 지니고 있다. 전자인 리포터는 말 그대로 사실을 성실히 전달하는 보도의 측면이 강하고 후자인 저널리스트는 사실 이면의 진실을 보도하는 측면이 강하다.
미국 땅에 오니 저널리스트였는가 리포터였는가. 묻는 사람들이 종종있다. 사실 미국을 보니 우리보다 더 심하다. 막말로 개나 소나 전부 저널리스트다. 우리 어학원에 풀타임으로 일하는 원어민 강사조차 본인도 일주일에 한 두번 잡지에 음악관련 기고를 하기 때문에 뮤직 저널리스트란다.
누군가 저널리스트였는가 물어보면 나는 종종 리포터였다고 대답한다. 무엇보다 저널리스트라는 성질의 단어가 내게는 무겁다. 돌아보면 얼마안되는 신문인생에서 보도자료나 짜집기 나부랭이 기사나 몇장 썼을 뿐 내 자신이 저널리스트라고 내세울만한 기사는 전혀없다. 어쩌면 결사체 민주주의가 횡행하는 이 미국땅은 아주 포괄적인 개념에서 너도나도 모두가 저널리스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널리스트라는 단어가 내게 주는 의미는 엄격하다. 정작 본인이 저널리스트가 되고자 한다면 기본적으로 리포터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리포터가 내포하는 사실보도 측면에서 벗어나 사실 속 이면을 탐구해 진실을 발굴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진실 역시 오판의 가능성을 최대한 스스로 검증해 나가며 자신만의 객관화된 시각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즉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통찰력을 통해 사회 통념에 어긋나지 않는 고유의 주관성을 가져야 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양대 사회과학이론이나 각종 경제이론, 각 국가의 정치시스템에 대한 깊은 이해없이는 창출해내기 힘든 능력이다.
예컨데 최근 국제뉴스로 전달되는 우크라이나 반정부 사태에 대해 짚어보자. 대부분 뉴스에서는 우크라이나의 부패대통령 축출 이후 새 정부가 들어섰고 이에 반하는 친러시아 반정부 시위대를 지원하기위해 러시아군이 크림반도로 이동중이다. 또 이에 맞서 미국 및 서방 정부는 러시아 군의 우크라이나 영내 진입을 강력히 경고하고 나섰다. 이를 간추려보면 러시아의 군사력 투사 움직임이 크림반도의 긴장을 조성해 서방세계와 마찰이 빗어지고 있다는 식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정작 어디에서도 크림반도가 러시아에게 갖는 함의나 역사적인 사건들, 소비예트 해체 이후에 우크라이나 정치환경,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보도하는 기사는 거의 없다. 열악한 한국 언론사의 취재환경 때문이지만 이렇다할 논리없이 주요 외신에서 말하는 기사를 그대로 앵무새로 번역해 송고하는대 급급할 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영자체로 작성된 기사들은 대부분 친서방의 시각의 기사들이요. 결론은 러시아의 군의 크림반도 이동때문에 우크라이나 사태에 파국을 맞고 있다고 일반인들에게 읽혀지는 것이다. 그 어디에도 러시아의 시각이나 크림반도 주민들의 시각 혹은 주변 CIS 국가의 시각은 타이틀로 선정되지 못한다. 정보가 없으니 진실도 알 수 없다.
특히 가장 중요한 점은 단어의 선택이다. 일단 시작에서 부터 반정부와 시위대로 낙인찍어 버리니 마음속에는 그들이 이미 불순분자가 되어 있는 것이다. 단어는 의미를 만들고 의미는 사람들의 생각을 제한하는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
서방기자들이 쓴 영단어를 그대로 생각없이 번역하다보니 이 같은 우를 항상 범한다. 대표적인 예로 태국 반정부 시위 기사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서방 주요외신들이 쓴 시위, 반정부라는 단어를 그대로 쓰다보니 우리에게도 언제나 태국은 반정부 사태고 시위중이며 태국은 정치적으로 항상 불안하다는 선입견이 만들어 졌다.
하지만 막상 태국의 방콕을 방문한 관광객이나 교민들은 알수있듯이 태국의 반정부 시위라는 것이 일부 과격 집회가 있을 수 있으나 대체적으로 평화롭고 우리의 촛불집회와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단어가 보여주는 힘이며 저널리스트가 자신만의 고유의 시각을 가지고 단어와 싸워야 하는 이유다.
외신보도 앵무새, 한국언론의 시각
사실상 척박한 국내 언론환경에서 많은 기대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최소한 국제뉴스에서 3대뉴스 통신사(AP,AFP,로이터) 및 CNN, 뉴욕타임즈 등 주요 언론에만 의존한다면 우리가 세상을 보는 시각은 서방이 안내해주는 친절한 금자씨와 다름 아니다.
최소한 이해 관계가 존재하는 각 개별국가의 뉴스 또한 필수적으로 기사화해야 하며 나아가 양대 국제정치 이론을 바탕으로 개별국가간의 고유한 역사와 특성을 살펴본다면 특파원없이도 어느 주요외신에 버금가는 훌룡한 독자적인 기사를 생산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다시 서두로 돌아가 내 자신이 진정한 저널리스트가 되고자 한다면 내 자신의 축적된 지식을 모두 삼켜 스스로의 고유한 시각을 창출해야만 한다.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민주주의 시각에서는 우크라이나 및 태국 뉴스가 반정부, 시위대가 될수도 있지만 저널리스트 입장에서는 오히려 반대의 언어를 쓸수도 있다.
저널리스트는 민주주의자가 아니며 필수 요건도 아니다. 사실과 정보에 근거해 전혀 새로운 차원의 단어나 반대의 어휘를 선택할 수도 있는 힘을 움켜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언제나 어렵고 뛰어넘기 힘든 장벽이다. 민족,국가 이념 모든 제약을 뛰어넘어 새로운 시각을 만들어내고 반문에 반문을 거듭한다는 것은 저널리스트로써 자신의 편견과 끊임없이 도전해야 하는 숙명적인 고통을 수반한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아직 내 인생의 좌표조차 그리지 못하는 한심한 내가. 이 같은 저널리스트 의미를 곱씹으며 "나는 저널리스트가 아니라 리포터였으며 앞으로도 저널리스트는 되기 힘들 것이다"고 미국땅 한편에서 스스로에게 고백해본다.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내 자신이 진정한 저널리스트가 되고자 한다면 내 자신의 축적된 지식을 모두 삼켜 스스로의 고유한 시각을 창출해야만 한다.
가슴에 와당네요. 구로나 지식이 없는게 함정...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하네요
보통 미국에선 방송기자를 Reporter, 신문기자를 Journalist라고 통칭하죠. 요즘 미국은 방송조차 정론화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이제 경계는 허물어지고 있지만.. 좋은 글이네요
요즘 자질 떨어지는 소위 기자들 보면 저널리즘에 대한 개념이리도 갖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긴 해요
헐. 좋은 글은 개뿔;; 우크라이나 관련 심층보도는 국내언론에서도 나올대로 나왔구만. 신문 안 읽는 거 티내는 것도 아니고;;; 태국 시위가 촛불시위같이 평화롭다니 쇠몽둥이 나오고 사람이 죽어나가는 판국에;; 기자 지망생이가지는 의식의 안이함이 유치한 글쓰기 수준이 이정도 일수밖에는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