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는 사람들 / 이성미
싸운 사람들의 이름이 포스터에 나란히 적혀 있다
이러면 싫을 텐데
5년 동안 잎이 피었고 잎이 졌다
꾸준히 자라는 삼나무 아래에서
용서하면 안 되는 사람을 너무 일찍 용서했고
용서해도 될 사람을 계속 미워했다 (헷갈리고)
도시에서 더 먼 도시로
이사를 갈 때마다 무거운 돌을 가져가는 사람처럼
용서를 내일로 운반한다
뭐가 들어 있는지 잊어서
버릴 수 없게 된 상자처럼
왜 그런 사람을 믿었을까
왜 사람을 믿었을까
흰 베개 옆에 축축한 질문을 두고 누웠다가
아침 토스트 옆에서 검은 커피와 질문을 저으며
버리려면
이런 질문을 버려야 하지
5년 동안 잎이 피었고 잎이 졌다
싸운 사람들의 이름은 연관검색어처럼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붙어 다니다가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고
덩어리가 된 싸운 사람들에게
그만 화해해
삼나무가 오늘도 자라는 것처럼
내일도 삼나무가 자란다지만
용서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말은
이제 무엇을 용서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인지도
무거운 것을 들고 다닌다
잎이 또 피고 잎이 또 진다
느닷없이 마주쳐 악수를 하려고 손을 내밀다가
발등으로 돌이 떨어진다
[출처] 용서하는 사람들 / 이성미|작성자 동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