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지도’는 중국의 만리장성을 북한의 황해도 수안(遂安)까지로 그려 놨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황해도 수안에 ‘갈석산’과 ‘만리장성의 유적’이 있어야 한다.
국회 동북아 역사왜곡특위에서 만리장성을 황해도 수안까지로 말한 사료적 근거를 요구하자
동북아역사재단은 이병도의 ‘한국고대사연구’(148쪽)를 1차 사료라고 제공했다. 이런 내용이다.
“(낙랑군)수성현…자세하지 아니하나 지금 황해도 북단에 있는 수안에 비정하고 싶다.
수안에는 승람 산천조에 요동산(遼東山)이란 산명이 보이고, 관방조(關防條)에 후대 소축(所築)의 성이지만 방원진(防垣鎭)의 동서행성의 석성(石城)이 있고 … 그릇된 기사에도 어떠한 꼬투리가 있는 까닭이다(이병도, ‘낙랑군고’, ‘한국고대사연구’ 148쪽).”
이병도는 ‘승람’, 즉 조선에서 편찬한 ‘동국여지승람’의 황해도 수안군 조에 ‘요동산’이 나오는데 이것이 ‘갈석산’이고, 방원진 석성이 나오는데 이것이 만리장성이라는 것이다.
‘자세하지 아니하나’, 수안에 ‘비정하고 싶다’면서 만리장성이 황해도까지로 해서 북한을 중국에 넘긴 것을 ‘동북아역사지도’ 제작진이 그대로 추종했고, 중국은 ‘이게 웬 떡이냐’면서 날름 삼켰다.
그런데 이병도 수안설은 조선총독부의 이나바 이와기치가 쓴 ‘진 장성 동쪽 끝 및 왕험성에 관한 논고’(秦長城東端及王險城考·1910년)를 표절한 것이다.
이나바 이와기치가 “진 장성의 동쪽 끝이 지금의 조선 황해도 수안의 강역에서 시작하는 것은 … ‘한서’ ‘지리지’(漢志)에 의해서 의심할 바 없다”고 주장했다.
이나바 이와기치는 ‘한서’ ‘지리지’를 근거로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 황해도 수안이라는 사실이 ‘의심할 바 없다’고 했지만, ‘한서’ ‘지리지’에는 황해도 수안은커녕 한반도에 대한 서술 자체가 단 한 자도 없다. 모두 거짓말이다.
이런 거짓말이 지금까지 통하는 희한한 집단이 한·중·일 역사학계다.
중국과 일본 역사학자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그런다고 치더라도 한국 역사학자들, 특히 국고로 운영되는 동북아역사재단은 누구를 위해서 이런 지도를 만들었던 것인가?
동북아역사재단에서 60여명의 역사학자들에게 47억여원의 국민들의 혈세를 주어서 한·중·일의 역사지도를 만들게 한 사업이다.
그런데 이 지도가 공개되자 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았다.
이유는 ‘중국인이나 일본인들이 만들었다면 이해가 되는 지도였기 때문이다.
한사군을 북한쪽에 그려넣어 북한을 중국에 넘겨주었고, 조조가 세운 위(魏)나라가 경기도까지 지배했다고 그려 놓았다.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을 추종해 서기 4세기에도 ‘신라·백제·가야’는 없었다는 것이다.
시진핑이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한것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우리 내부에서 논리를 제공한 것이다. 그래서 국회의 동북아역사왜곡 특위에서 그 문제점을 인지하고 지적하고 나섰다.
결국 사업은 중단되고 10억원의 환수 조치가 내려졌다. 그런데 새 정권이 임명한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이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이 ‘유사역사학자’들에게 휘둘려 중단됐다면서 사업 재개를 선언했다.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이 언론 간담회에서 ‘유사역사학’이란 용어를 사용했던 ‘유사’란 용어의 출처는 어디일까?
바로 조선총독부이다.
조선총독부는 1925년 ‘조선의 유사종교’(朝鮮の類似宗敎)라는 책을 발간해 항일 민족종교는 ‘유사종교’로 낙인찍어 독립운동가를 탄압하던 총독부 경무국에서 쓰던 용어이다.
만리장성의 동쪽 끝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중국 사료는 서진(西晉·265~316)의 무제(武帝) 사마염(司馬炎)이 태강(太康·280~289년) 연간에 만든 ‘태강지리지’(太康地理志)다.
서진 무제는 서기 280년 오(吳)나라를 꺾고 중원을 통일한 기념으로 연호를 태강으로 개정하고 ‘태강지리지’를 편찬했다.
‘사기’ ‘후한서’ ‘삼국지’ 등 중국의 여러 정사에 주석 형태로 내용이 전해진다. 그중 ‘사기’의 ‘하(夏) 본기’ 주석에 “‘태강지리지’에서 ‘낙랑군 수성현에는 갈석산이 있고 만리장성의 기점이다’(樂浪遂城縣有碣石山 長城所起)라고 했다”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여기 나오는 ‘①수성현 ②갈석산 ③만리장성의 기점(동쪽 끝)’이라는 세 조건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곳이 곧 낙랑군 지역이다.
‘동북아역사지도’는 낙랑군 수성현을 황해도 수안(遂安)으로 그려 놨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황해도 수안에 ‘갈석산’과 ‘만리장성의 유적’이 있어야 한다.
국회 동북아 역사왜곡특위에서 황해도 수안으로 말한 사료적 근거를 요구하자 동북아역사재단은 이병도의 ‘한국고대사연구’(148쪽)를 1차 사료라고 제공했다. 출처: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