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꽃도 아름답더라
우리 절에는 오래된 모과나무 몇 그루가 있다. 산신각 옆에서 자라고 있는 모과나무는 구석진 곳에 있어서 관심을 끌지 못하지만
요사채 앞뜰의 모과나무는 좋은 자리를 잡았다. 그동안 꽃잎을 몇 장만 피워서 무심코 지나쳤는데 이번 봄에는 시샘하듯 화사하게 꽃을 피웠다. 그 덕분에 올해는 그 꽃 아래에서 한참이나 서 있었다.
흔히 사람들은 모과나무를 보고 세 번 놀란다고 한다. 우선 못생긴 과일이어서 놀라고, 향기가 너무 좋아서 놀라고, 그리고 맛이 너무 형편없는 것에 놀란다. 그런데 이번 봄에는 꽃이 너무 아름답다는 사실에 한 번 더 놀라고 말았다. 울긋불긋한 다섯 장의 연분홍 꽃잎은 새색시의 볼처럼 붉고 수줍다.
이른 아침에 바라보는 꽃잎은 방금 물감을 입힌 듯 화려하고 선명하다. 모과향이 진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 꽃이 이토록 은밀하다는 사실은 모과나무를 심어 보지 않으면 잘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못난 과일이라고 생각하는 모과, 그러나 모과를 만드는 그 꽃은 너무 매혹적인 자태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눈에 뜨일 듯 말 듯 피어서 천천히 살피지 않으면 모과꽃의 매력을 알아차리기 힘들다.
이러한 모과꽃 사연을 가까이하면서 지금껏 지니고 있던 모과에 대한 오해나 편견이 사라졌다. 예쁘지 않은 생김새도 그렇지만
맛 또한 형편없어서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 부족했던 과일 아니었던가.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 모과나무의 꽃은 아주 단정하고 곱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모과의 반전 매력을 새삼 발견할 수 있었다. 만약 모과가 다른 과일처럼 달콤하고 예쁘기만 했다면 향이 그토록 진할 수 있었을까? 다시 말해 볼품없는 것은 단점이지만 상큼한 향은 오히려 장점인 것이다. 그래서 진한 모과 향은 저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인고의 시간을 견뎌 낸 값진 결과다.
비록 그 모양 때문에 사람의 관심을 단숨에 끌지는 못하지만 모과는 오히려 그 단점을 향기로 전환하여 장점으로 승화시켰다. 그 나름의 생존 전략인 것이다. 이는 은행나무 열매가 구린내 나는 단점을 활용하여 스스로를 보호하는 이치와 같다. 은행 열매가 향기로웠다면 익기도 전에 사람 손을 타고 말았을 터이므로.
어쩌면 세상의 꽃과 나무들이 서로의 개성을 드러내는 것은 우열이 아니라 조화를 이루는 능력일 것이다.
사람도 이런 이치를 배워야 한다. 단점이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보완하고 대신해 줄 다른 장점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예를 들자면 키가 작은 사람은 키 큰 사람에 견주어 민첩성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불리한 조건을 가졌다면 그 단점을 극복하는 유리한 부분을 발견해야 지혜롭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크고 작은 사람은 있어도 잘나고 못난 사람은 근복적으로 없다는 뜻이다.
나도 가끔 모과를 닮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어디 하나 내세울 만한 인물도 아니거니와 누구와 키를 견줄 만한 체격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들보다 뛰어난 특별한 매력이 없다고 믿었는데 모과나무를 통해 이러한 생각이 점차 바뀌게 되었다. 나에게 준수한 인물과 완벽한 체격이 주어졌다면 그 유리한 조건 때문에 숨은 성품을 발견하려 애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늘은 이름 없는 꽃을 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이는 누구나 세상에 꼭 필요한 재주와 역할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뜻도 된다.
그러므로 현재 자신의 조건이나 소임에 대해 열등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 또한 삶은 단순한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누구나 판에 박힌 듯 똑같은 능력이라면 각자의 개성과 매력은 매몰되고 만다. 그러므로 개개인이 지닌 장점과 인격을 바라보는 자세가 중요할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단점 한 가지는 있을 것이고, 아무리 모자란 사람이라 할지라도 장점 하나는 반드시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열 가지 단점보다 한 가지 장점을 볼 수 있다면 그 대상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은 감소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개성은 서로 다른 조화를 말하는 것일 뿐 단조로운 독선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봄날 아침 모과나무 아래에서 사람과 사물을 바라보는 포인트를 새삼 배울 수 있었다. 모과꽃처럼 누구나 신비한 매력 하나는 지니고 있으며, 모과 향기처럼 누구나 재주 하나는 숨기고 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 사실을 가슴에 새겨야 행복한 인생이 될 수 있다.
출처 ; 현진 스님 / 행복은 지금 여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