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교 이광사 유감
2019.6.23.
석야 신웅순
몇 년 전부터 취미삼아 손댄 것이 미술· 글씨 이야기였다. 연재만도 130여회를 넘었다. 어디 창작의 인고에 비견하겠냐만 하다보니 구슬 꿰는 작업도 녹록치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이야기를 쓰다보면 으례이 빈칸이 생긴다. 상상의 땜질을 할 수 밖에 없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매어야 보배이다. 땜질이 자연스러워야는데 이것이 쉽지가 않다. 사실과 사실을 이어주는 작업은 누군가가 해야할 일이다. 그러다 보니 화가, 서예가, 학자, 시인, 선비 할 것 없이 당시의 많은 고인들을 만나게 된다. 재수가 좋으면 어떤 고인은 내게 쓸 거리를 제공해주기도 하고 어떤 고인은 잘 못 쓴 것을 지적해주기도 한다. 어떤 때는 고인들과 몇 시간을 수다 떨기도 한다.
힘들 때도 있지만 재미 있을 때도 있다.
뭐니뭐니해도 유적지를 가보는 것만큼 더 좋은 것은 없다.
나를 보고 제자가 그러더라.
“선생님, 소설 한 번 써보시지요?”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있는 것도 꿰기 힘든 판에 소설이라니 그것은 소설가를 모독하는 것이다. 일언지하에 제자의 말을 끊어버렸다. 행간들을 문학적으로 포장하는 일 외에는 이렇다할 것이 없는 거기까지가 내 능력의 한계이다.
얼마 전 금강 시조 동인에서 신지도로 문학 기행을 떠났다. 신지도는 원교 이광사의 유배지이다.
이광사는 조선 후기의 학자이며 서예가이다. 정제두에게 양명학을 배웠고, 윤순의 문하에서 필법을 익혔다. 시·서·화에 모두 능했으며 특히 글씨에서 독특한 서체인 원교체를 완성해 후대 서예사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유배가 만들어준 서체였다.
그는 50세 되던 해인 1755년(영조 31) 나주벽서사건에 연좌되어 부령에 유배되었다. 학문을 배우려는 사람이 많이 모여들었다는 이유로 다시 신지도로 이배되어 23년간의 긴 유배생활 끝에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아내는 나주 벽서 사건 때 자결했고 어미 잃은 여덟살 난 어린 딸은 며느리에게 맡겨졌다. 돌보고 싶어도 돌볼 수 없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아비였다. 어미 없이 사는 딸아이가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만 신지도의 파도 소리만이 부정을 달래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신한평이 그린 것으로 보이는 유배지에서 그린 만년의 이광사 초상화가 있다.
신한평의 원교 이광사 초상화
탕건 차림에 가지런히 두 손을 모은 자세로 눈빛은 형형하나 어딘지 모르게 수심에 차있다. 유배지에서의 처지와 심경이 만년의 초상화에 그대로 배어있지 않나 싶다.
이광사가 살던 집을 찾았다. 기울어져가는 오래된 흙담집이었다. 주인은 유적지로 지정되었다며 올해 안에 이사가야한다고 한다.
비바람이 몰아쳤던 불혹 초반이었다. 박사 논문을 쓰기 위해 나는 교직을 버렸다. 친지들은 날 보고 미친 사람이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무모한 짓을 한 것 같았다. 아내만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철딱서니 없는 나를 따라 주었다. 그 때가 내 인생에서 긴 유배생활이었다.
교수가 되지 않았다면 나는 무엇을 하며 먹고 살았을까.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무사히 소임을 다하고 지금은 마음대로 공부할 수 있으니 나는 정말 행운아이다.
원교 이광사를 신지도에서 만났다. 어찌 나와 비교나 할 수 있으랴만 님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이광사가 끝까지 삶을 이어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어쩌면 만날 수 없었던 어미 없는 딸아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유배가 아니었으면 또한 원교체를 완성이나 했을까. 지금의 나를 스스로 채찍질 해본다.
어쩌면 인생 자체가 유배 생활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인생이란 섬에서 우리를 스스로 가두어 놓고 살아가지 않는가.
원교목
신지도에는 이광사가 유배 시절 심었다는 소나무 한 그루, 원교목이 전해오고 있다. 하늘을 향해 쭉 뻗은 청정한 모습이 원교 이광사를 보는 듯했다. 나는 무슨 나무를 심어야할까. 나에겐 나무 심을 땅 한 평도 없다.
땅 한 평 없는 철없는 나를 철없다는 것을 알면서 따라와준 아내가 새삼 고맙다. 아내는 나라는 사람의 나무를 심지 않았는가. 그래 맞다. 부지런히 사람의 나무를 심어야겠다. 사람의 나무를 심는 것보다 더 행복한 것은 없을 것 같다.
석야신웅순의 시서
불혹의 가슴에선 바람이 지나가고
이순의 가슴에선 달빛이 들어온다
만추의 그 많은 빈칸
누가 다 지웠을까
- 신웅순의「아내 27」
석야 신웅순의 서재, 매월헌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교수님 ^^*
고맙습니다.잘 계시지요?
가슴이 싸아해집니다...
멋진작품 즐감합니다...교수님
늘 잘 계시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