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골목의 너무 많은 모퉁이 1 / 강연호
모퉁이를 돌았으나 여전히 골목인 골목에
한때 이 골목의 존재 증명이 있었다
어쩌면 바로 이 모퉁이만 돌아서면
사통팔달의 신작로를 만났을 수도 있던 직전에
다들 고개 흔들며 돌아섰던 것인지도 모르지만
가령 자주정신이 강해 자주 집을 뛰쳐나왔던 아이도
이 골목의 너무 많은 모퉁이에 지치곤 했었다
말하자면 이 골목의 너무 많은 모퉁이는
가출의 정점이자 한계였다
어느 날 이 골목의 너무 많은 모퉁이를 돌아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철거통지서와 입주권과 어깨들이
이 골목의 너무 많은 모퉁이마다 건들거렸다
역세권 개발이라고 골목을 열자
골목은 홀연히 사라졌다, 골목이 사라지자
이 골목의 너무 많은 모퉁이도 문득 사라졌다
시계포도 전당포도 염색소도 이발소도
부부싸움도 악다구니도 그릇 깨지는 소리도
신흥종교처럼 한바탕 몰아쳤다가 사라졌다
골목은 막상 갈 곳이 없어서
마지막으로 모퉁이를 돌면서 오래 머뭇거렸는지 모른다
갈 곳 없어지면 결국 불량해지는 법이지
이 골목의 너무 많은 모퉁이마다
주름이 깊어졌는지 모른다, 주름을 당겼다 놓으며
모퉁이를 돌아나간 아코디언풍의 바람을 기억하는지
빈집과 불 꺼진 방을 감춘 골목은
세상에서 가장 깊은 표정을 지었겠지
골목에서의 소변은 어째서 금지되는가
모퉁이를 돌면 왜 늘 막다른가
밑도끝도없는 질문을 기억하는지
이윽고 이 골목의 뼈마디를 뚝뚝 분지르며
너무 많은 모퉁이쯤이야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불쑥, 포크레인이 나타났을 것이다
이 골목의 너무 많은 모퉁이 2 / 강연호
이 골목의 너무 많은 모퉁이는
복면을 쓴 자객들 같았다 불쑥 튀어나와
포경을 권하거나 수술 않고 먹는
중절약을 들이밀곤 했지
이왕에 인생을 들어 비유하는 촌티를 무릅쓴다면
이 골목의 너무 많은 모퉁이는
입에서 항문까지의 구절양장이나
연탄불에 뒤엉킨 오징어 다리가 자연스러웠다
이 골목의 너무 많은 모퉁이를 돌 때마다
자주 발이 삐었지, 마음보다
몸이 먼저 빠져나가고 싶었던 거지
담벼락의 낙서는 어떻게 비애를 결집하는가
오징어 빨판은 힘이 세다, 과연!
상처 깊을수록 더 깊숙이 웅크렸던 사람들
물정 모르고 몇 마디 건넬라치면
즉각 되받아칠 자세, 먹물이라도 뿜을 표정
이불 뒤집어쓰고 라디오를 듣거나
한밤의 음악엽서를 방송국에 보내기도 했겠지만
불 꺼진 외등 아래 발로 쓸어대던 기억, 옛일이다
가난했으나 인정 넘쳤다던 수사, 옛말이다
회고담은 늘 제풀에 겨워 퉁퉁 붓는 법이다
그나마 낙서의 힘으로 여태 버텼던 거다
골목의 형식은
언제나 지칠 때쯤 아예 막다르다는 것
그래도 이 골목의 너무 많은 모퉁이를 빗대어
이렇게는 말하지 말자
인생 뭐 있어? 돌고 도는 거지,
라고 먼저 나서서 종 치지는 말자
삼류가 되지는 말자
멀리서 타워크레인이 빌딩의 멱살을 잡아채
아령처럼 들었다 놓았다 시위하며
이 골목까지 진군해 오더라도 말이다
[출처] 이 골목의 너무 많은 모퉁이 1, 2 / 강연호|작성자 동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