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취 자생지로
달포 전 내가 사는 생활권에서 거리가 먼 거제 국사봉에 올라 곰취를 뜯어왔다. 극심한 가뭄 속에 적은 양이나마 비가 내려준 이후 어느 날이었다. 퇴직 이후 근교 산행을 다니면서 산나물을 채집해 일용할 찬거리로 삼고 지기들과 나누기도 한다. 퇴직 이전에도 봄철 주말이면 산나물 채집이 일상으로 내 여가 생활이나 마찬가지인데 국사봉까지 가게 된 데는 그만한 연유가 있다.
올해 이월 말 퇴직까지 교직 말년 삼 년을 거제에서 보냈다. 통근이 되지 않아 학교 근처에 원룸을 정해 주중에 머물다 금요일 오후에 돌아와 일요일 거가대교를 건너갔다. 주중 공휴일이 끼었다거나 어떤 주말에는 창원으로 복귀하지 않고 거제 해안 트레킹을 하기도 했다. 낚시에 취미가 있었다면 거제는 여가를 보내기 좋았겠지만 나는 나대로 산자락과 해안선을 누비며 소일했다.
내가 거제에서 지낼 때 앵산이나 국사봉으로 올라 두릅을 따 와실에서 데쳐 먹기는 양이 많아 급식소로 보내 동료들과 봄 향기를 나누어 맡은 적도 있었다. 코로나가 극성을 부려 대중교통을 이용해 주말에 창원 집으로 오가기가 께름칙해 와실에 머물면서 산행으로 얻은 수확물이었다. 나는 두릅만이 아닌 현지인들도 자생지를 잘 모르는 곰취를 따 곡차 안주와 반찬으로 삼아 먹었다.
정년을 맞아 창원으로 돌아왔음에도 그 곰취가 생각이 나 지난 사월 하순 거제로 건너가 곰취를 제법 따와 냉장고에 보관해 두고 한동안 잘 먹었다. 이제 여름에 접어들어 창원 근교 야산에서도 산나물 채집 시즌이 종료되었다. 그래서 자연에서 구할 찬거리는 산나물이라 할 수 없는 죽순 정도다. 일주일 전 대산 들녘을 지난 낙동강 유등 강가에서 죽순을 꺾어와 찬거리로 삼는다.
곰취는 두릅과 함께 고급 산나물에 속하는데 두릅과 다른 점은 여름에도 채집이 가능했다. 숲은 훼손이 되면 본래대로 되돌아가려는 복원력이 있다. 수풀의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산나물의 경우는 금세 회복하였다. 뜯긴 산나물에서는 새잎 새순이 새로 돋으면서 곧바로 쇠어 찬거리로 삼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곰취는 부드러움이 오래 유지되어 다시 뜯어 먹을 수 있다.
오랜 가뭄 해갈에 도움이 된 단비가 지나간 유월 중순 목요일이다. 이른 아침밥을 해결하고 다섯 시 반에 창원실내수영장 앞으로 나가 진해 용원으로 가는 757번 좌석버스를 탔다. 시내를 관통해 안민터널을 지나 웅천을 거쳐 용원에 닿았다.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 앞으로 가서 부산 하단과 거제 연초로 오가는 2000번 버스를 타고 거가대교를 건너 내가 근무했던 연초에서 내렸다.
연초삼거리에서 김밥을 마련해 야부마을에서 국사봉으로 가는 등산로를 따라 걸었다. 연사 와실에 머물 때 몇 차례 올랐던 길이며 지난 사월에도 다녀갔더랬다. 녹음이 우거진 숲을 지나 와야봉으로 가는 갈림길 쉼터에서 김밥을 비웠다. 이후 국사봉 산허리로 걸쳐진 임도를 따라 걸으면서 유월에 빨갛게 익어가는 길섶의 산딸기를 주섬주섬 따 먹으면서 작은 국사봉으로 향해 걸었다,
주작골에서 작은 국사봉으로 오르는 등산로에 이르기 못 미쳐서 개척 산행으로 북사면 숲속으로 들었다. 한동안 비탈을 올라 곰취 자생지를 찾으니 숲이 우거져 쉬 발견되지 않았다. 돌부리를 피하고 가시덤불을 헤쳐가면서 애써 찾은 보람은 있어 하트 모양으로 잎을 펼친 곰취를 찾아내 몇 줌 뜯어 모았다. 잎사귀는 보드라웠으나 지난 사월에 뜯었던 곰취보다 양이 적은 편이었다.
국사봉은 자주 갈 여건이 아니라 숲속을 더 누벼보다가 초피나무 가시에 바짓단이 걸려 찢어지고 무릎이 긁혔다. 야생에 절로 자라 향이 좋은 곰취를 맛보기 위해선 그 정도는 기회비용이라고 자위했다. 곰취를 채집한 봉지를 배낭에 채워 수양마을로 내려가 보리밥집에서 요기를 때우고 맑은샘병원 앞에서 출발하는 2000번 버스를 탔더니 차창 밖으로 내가 근무했던 학교가 보였다. 22.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