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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blog.naver.com/PostList.nhn?blogId=wonh55&from=postList&categoryNo=43
<개마고원 편> 개마고원의 잠재력, 수력발전에서 ‘장진호 평화공원’까지
백두산 아래 개마고원
개마고원은 백두산 아래 펼쳐진 고원이다. 고원의 높이는 700~2,000m이고, 면적은 자그마치 4만㎢나 된다. 북한 기준으로는 14,300㎢인데, 이는 개마고원을 백두고원(개마고원), 자강고원, 백무고원으로 나눴기 때문이다.
만약 북한 땅을 통해 백두산에 오른다면 으레 개마고원을 지나야 한다. 개마고원을 지나 백두산에 오를 수도 있고, 백두산 천지를 먼저 본 뒤, 개마고원으로 하산할 수도 있다. 개마고원은 변화무쌍한 풍광으로 인해 산악 트레킹에도 최적이라고 한다.
“내가 오래전부터 이루지 못한 꿈이 있는데 바로 백두산과 개마고원을 트레킹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말이다. 지난 2018년 4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당시, 문대통령이 건배사로 했던 말이다. . 지난 2018년 4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당시, 문대통령이 건배사로 했던 말이다.
<개마고원 관련 연대기>
1926 조선수전주식회사 설립
1929 부전강수력발전소 준공
1932 장진강수력(1~4호기) 준공
1937 길주-혜산선 개통(임산철도)
1939 단풍선 개통(단천-풍산)
1940 허천강발전소 준공
1941 수풍발전소(압록강) 준공
1950 장진호전투(->흥남철수)
장진강수력 파손(6.25전쟁)
1954 양강도 신설
1958 장진강수력(1~4) 복구
1962 장진강 5호기 준공
2000~ 월드비전 농업개발 협력 착수
(백무고원 대흥단 씨감자 등)
2018 남북정상회담(판문점)
2019 삼지연시 1차 준공
관광 측면에서 본 개마고원은, 백두산 관광 상품에 끼워 파는 코스쯤 될까 싶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우선 단적인 예로 개마고원의 수자원 개발 측면이다. 일제강점기 개마고원의 수자원을 이용하여 유역변경식 수력발전소들이 건설되었고, 이들 발전소들은 지금도 북한의 주요 에너지원이 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인프라 측면에서 개마고원의 과거와 미래를 조명하고자 한다.
개마고원 개요
삼수갑산(三水甲山) 내 왜 왔노 삼수갑산이 어디뇨 / 오고나니 기험(奇險)타 아하 물도 많고 산첩첩(山疊疊)이라 아하하
- 김소월의 詩, ‘삼수갑산’ 중에서
삼수갑산은 조선시대 유배지이다. 그만큼 산간오지로 통한다. 삼수(三水)는 세 강이 합류하는 곳이고, 갑산(甲山)은 ‘산들이 겹겹이 갑옷을 입은 듯’한 지역이다. ‘물도 많고 산첩첩’이 곧 ‘삼수갑산’을 이른 말이다. 삼수와 갑산이 북녘의 산간오지인줄은 알지만, 개마고원에 속해 있는 줄은 잘 모른다.
개마고원은 평균 해발 1200m의 고원지대이다. 한겨울이면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혹한지역이기도 하다. 이 지역에는 산도 많지만 물도 많다. 압록강의 상류이자 지류인 부전강, 장진강, 허천강 등 강이 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였던 1920년대 후반, 개마고원의 수자원에 일찍이 눈독을 들인 사람들이 있었다. 일제는 부전강, 장진강, 허천강의 풍부한 수자원을 이용하여 유역변경식 수력발전소를 개발했고, 여기서 나온 전력으로 흥남공업단지를 조성하였다. 이리하여 세 강은 인공호수로 변했다. 또한 천연 호수로 낭림호, 풍서호, 황수원저수지, 내중저수지 등이 있다. 여름에는 호수에 비친 산 그림자로 인해, 또 겨울이면 얼음호수를 덮는 백설로 인해 개마고원의 풍광은 더욱 풍부하게 된다.
개마고원의 다양한 얼굴
개마고원은 ‘한반도의 지붕’이다. 이 말이 상식의 전부인 독자도 있겠다. 하지만 개마고원은 수자원 개발 측면과 역사적인 측면을 들 수 있다.
▶개마고원의 수자원과 흥남
개마고원의 모양은 산맥에 갇힌 거대한 세숫대야와 같다(사진 2참조). 양쪽의 산맥인 낭림산맥과 마천령산맥이 대야의 양쪽 가장자리이고, 대야 바닥은 부전령산맥인 셈이다. 이것이 북쪽으로 완만하게 기울어진 형태이다. 하지만 남쪽(동해)으로는 부전령산맥으로 인해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개마고원에 내린 비는 모조리 압록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개마고원에 내리는 비는 크게 세 줄기 강을 이룬다. 좌로부터 장진강, 부전강, 허천강이다. 이 세 강물을 제각기 막은 뒤, 물길을 낙차가 큰 남쪽으로 돌려 수력발전소를 건설했는데, 유역변경식 발전방식을 사용하였다. (유역변경식 발전에 관해서는 2020년 4월호 청천강 편 참조).
흥남공업지대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아래 인용한 글을 살펴보자.
흥남 공업지대가 탄생하도록 만든 원천은 흥남 북방 약 100km에 있는 개마고원의 수(水) 자원이었다. 백두산 남서쪽의 함경도와 평안도 일대에 자리 잡은 개마고원은 무려 4만 평방 킬로미터나 되는 광활한 고원이다.
이 고원에 내리는 강우량은 압록강 지류인 부전강 (赴戰江), 장진강(長津江), 허천강(虛川江)에 흘러들어간 후 완만하게 북류 (北流)하다가 압록강과 합류하여 서해(황해)로 빠진다.
그런데 이 북류하는 강물을 댐으로 막아 해발 1,000미터 이상이나 되는 개마고원 에 큰 저수지를 만들고 그 물을 남류 시켜 1,000 미터 이상이나 되는 절벽으로 낙수(落水) 시켜 전력을 생산하자는 아이디어를 낸 일본인이 있었는데 바로 모리타(森田一雄, 동경제대 전기과 졸업)씨이다. 그는 5만분의 1 지도를 펼쳐놓고 개마고원의 특수한 지형에서 수력 발전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는 서해로 흘러가는 물을 동해로 흘러가게 하면서 전기를 생산할 방안을 최초로 창안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부전강 유역만으로도 22만 킬로와트의 전력을 생산 할 수 있다고 추산 했다.
그리고 그 막대한 전력을 소비 할 사람을 찾던 중 그의 동경제대 동급생인 노구치 쥰(野口遵)과 상의했다. 당시 노구치는 이미 일본 질소비료주식회사(日本窒素肥料會社)의 사장으로 회사를 경영하고 있었다. 일본의 신흥 재벌인 노구치는 모리타의 아이디어를 받아 들여 홍남에 질소 비료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1926년에 노구치와 모리타는 부전강 수계발전사업을 위해 조선수전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신동삼, 『함흥시와 흥남시 도시계획』, 177~178쪽
일제하 발전소 남북한 비교
1929년 부전강수력발전소가 성공적으로 준공되었다. 이후 유사한 형식의 발전소들이 속속 건설된다. <사진 3-1>은 일제강점기 건설된 발전소들을 보여주고 있다. 발전소는 북한지역에 집중 건설된 사실을 알 수 있다. 소위 ‘북공남농(北工南農) 정책’, 북한은 중화학공업 기지로, 남한은 쌀 생산기지였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표 1> 의 붉은 선은 북한 지역 발전소들이다. 부전강, 장진강, 허천강 등이 수력발전소들이 1~4호기로 되어있다. 이는 같은 강줄기에 계단식으로 발전기를 설치했다는 뜻이다.
▶역사적 의미 – 장진호전투
60대 이상 병역을 필한 사람들은 대체로 장진호전투를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장진호’가 개마고원에 있는 인공호수(1932년 준공 수력발전용 댐)인 줄은 모른다. 장진호는 장진강을 막아 그 물로 수력발전을 위해 막은 인공호수(댐)이다. 장진호전투는 바로 이 지역에서 1950년 혹한기에 벌어졌던 전투로(1950년 11월 26일~12월 13일), 17일 동안 최악의 인명 피해를 기록했다. 장진호전투의 마지막이 흥남철수로 이어졌고, 그 과정은 영화 ‘국제시장’으로 재현된 바 있다.
책 『장진호전투와 흥남철수작전』(스탠리 웨인트라웁, 송승종 옮김, 북코리아. 2015)에는 혹한 속에서 미군들이 사상자 후송을 위해 설원에서 야전비행장을 건설하는 이야기가 나온다(190쪽). 그 비행장은 2020년 4월 현재, 장진공항으로 북한이 군사비행장으로 전용되고 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 산악관광지로서의 가능성
개마고원은 산악 관광 측면에서는 어떤 가능성이 있을까? 과연 미래의 트레킹 명소가 될까?
필자의 판단으로는 이미 그 가능성은 증명되었다고 본다. 지난 2013년 뉴질랜드 산악인 로저 세퍼드가 남북한 백두대간을 종주하면서 개마고원을 사진으로 소개한 적이 있다.
세계의 산들이 모두 자기 이야기를 갖고 있겠지만 백두대간처럼 스토리가 이어지는 산맥은 없을 겁니다. 무엇보다 백두대간이 한국 사람들에게 주는 의미가 제겐 경이로웠습니다. 한국인이라면 백두대간 종주를 죽기 전에 해야 할 ‘버킷리스트’에 올려놔야 한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뉴질랜드 산악인 로저 세퍼드(Roger Shepherd) 씨의 말이다. 그가 지난 2011년 8월, 남북의 백두대간을 누빈 코스가 <사진 5>에 나타나 있다. 당시 그는 보름 간 북한 쪽 백두대간을 거점 산별로 나누어 종주했다고 한다.
남북한을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항상 남북한과 한국인에 대한 애착이 있었고, 남북으로 분할된 이 민족을 보며 그 정치적 멍청함을 개탄해 왔었다. (중략)
무엇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때나 존재했던 그런 노망난 발상이 아직도 한반도를 분단국가로 남겨두고 있는 것인가? 베를린 장벽도 20년 전(1989)에 허물어지지 않았던가? 이제 세계가 이 분단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할 때가 왔다.
‘함흥까지는 200㎞가 남았다. (개마)고원에서 해안가를 향해 아래로 내려갈수록 온도는 급상승했다. 우리는 감자밭을 뒤로 하고, 다시 끊임없이 계속되는 옥수수 밭과 논으로 돌아왔다. 옥수수와 감자는 북한 사람들의 주식이다.
그곳에서는 옥수수의 수확이 진행되고 있었고, 노랗게 물든 논을 볼 때 쌀 수확도 멀지 않은 듯했다. 모든 밭이나 논의 가장자리에는 귀중한 작물의 건강과 안녕을 볼 있는 높은 단이 있었다.’
- 위의 책 . 16~17쪽, 159쪽
▶산악관광지 개발사례 1 : 일본 다테야마
개마고원을 산악관광지로 개발할 수 있을까? 개마고원의 빼어난 자연 환경과 역사라면 충분하다. 개마고원과 흡사한 자연환경으로 이미 국제적인 명성을 누리는 선진지를 소개한다.
다테야마(立山)는 ‘일본의 지붕’, ’일본알프스’라 불린다.다테야마 구로베 알펜 루트는 일본이 자랑하는 산악관광루트이다. 이곳의 관광요소들은 실로 다양해서, 트레킹 코스, 케이블카, 로프웨이, 산정호수 구로베댐의 유람선, 겨울철 스키, 경비행기 등이 있다. 이곳 관광요소들을 개마고원에 고스란히 적용해도 좋겠다. 백두산이 있고, 삼지연시가 있고, 삼지연공항과 장진공항, 또한 장진호와 부전호 등이 있어 다테야마의 관광 콘텐츠보다 훨씬 더 다이내믹하겠다.
▶개발사례 2: 스위스 융프라우요흐
융프라우요흐는 알프스 산맥 중 하나이다. 유럽의 정상(Top of Europe), 아름다운 설경으로 유명하다. ‘융프라우우요흐’는 ‘아가씨의 어깨’라는 뜻이다. 융프라우 아래에는 산 중턱의 마을들, 인터라켄, 그린델발트, 벵엔 등이 있다. 이들 산악 마을에는 사계절 여행객들로 붐빈다. 산악철도를 타고 융프라우를 향해 오를 때, 풍광도 좋았지만 진짜 감동은 따로 있었다. 육중한 쇳덩이 기차가 급한 경사를 오르게 하는 장치, 바로 레일과 레일 사이에 톱니바퀴(gear)가 있다는 사실이다(사진 8-2). 만약 이 톱니바퀴가 없다면 산악열차는 결코 가파른 경사를 오를 수 없다. 대안으로는 스위치백(switch back) 방식, 즉 선로를 지그재그(Z) 방식으로 하는데, 이 경우 선로 부설 구간이 늘어날 뿐 아니라 환경 파괴도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이 산악열차가 개통한 시점은 1912년으로, 무려 1세기 이전이다. 스위스는 이 열차를 개통함으로써 전 세계의 관광객들을 끊임없이 불러 모으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개마고원에 산악열차와 로프웨이를 부설한다면 어떤 반응이 올까? 아마도 환경단체에서 머리띠 두르고 총궐기하지나 않을까, 심히 우려되는 바다.
‘장진호 평화공원’ 구상 너머
장진호전투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혹한에서 벌어진 가장 처절했던 전투였다. 또한 이 전투의 막바지에 있었던 감동 드라마가 ‘흥남철수작전’이었다. 만약 장진호 주변에 장진호전투를 재현한 전쟁기념관(평화공원)을 조성한다면 어떨까?
첫째, 평화공원을 만든다면 국제관광의 최대 고객은 6.26전쟁 참전국 국민들이 될 것이다. 미국군을 비롯한 UN군과 중공군들의 격전지로써 엄청난 희생을 치렀고, 당시 참전 군인들의 후손들이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일본 다테야마 코스나 스위스 융프라우 못지않은 다양한 코스를 개발하여 평화공원과 관광 상품으로 연계할 수 있다. 산악 트레킹은 기본이고, 장진호, 부전호 등 인공호수의 유람선 운항과 작년 말(2019년 12월)에 1차 준공한 삼지연시도 있다. 또한 삼지연공항과 1950년 장진호전투 당시 미군들이 건설한 장진공항도 있다. 따라서 그랜드캐년처럼 경비행기 관광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셋째, 일제강점기에 개발된 수력발전소와 조선왕조의 산실 함흥본궁과 흥남공업단지도 엮어서 관광 상품으로 개발할 수 있다. 이 코스는 일본인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여행이 될 수 있다. 섣불리 수탈의 역사라고 치부할 필요가 없다. 어두운 역사라도 당당히 드러낼 때만이 미래도 당당해지는 법이다. 2020년 4월 말 현재, 코로나19 사태가 진정 국면에 들고 있지만 그 후폭풍이 심하다. 설상가상 남북 관계는 김정은 위원장의 유고설로 인해 초긴장 국면이다. 이 와중에도 정부는 지난 4월27일자로 남북철도 동해북부선 강릉~제진 간(110.9㎞) 철도 연결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지렛대로 남북경협 재개로 나아간다면 오죽 좋을까 싶다. 설령 북한 당국에 급변사태가 발생하더라도 개마고원의 개발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가까운 미래에 개마고원이 산악관광의 명소로 떠오를 날을 기대해 본다. ▴
[김영찬] “갑자기 닫혀버린 세상에서” (칼럼 제506호) |
출처: http://www.kolofo.org/?c=user&mcd=sub03_01&me=bbs_detail&idx=3334&cur_page=1&sParam=
KOLOFO칼럼 제506호
“갑자기 닫혀버린 세상에서”
김영찬 국제지역학박사
전 한국은행 프랑크푸르트 사무소장
Sudden Stop: 느닷없이 닫혀버린 세상
지난 1월, 젊어서부터 가장 꿈꾸어왔던 먼 곳을 다녀왔다. 운이 좋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해외여행이 사실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두 해 전 오랜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스스로 시간을 조절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여기는 나중에’라고 남겨두었던 곳들을 찾아다녔다. 이런저런 일들이 있긴 했어도 조직에 매이지 않은 만큼 가고 싶은 곳에, 가고 싶은 때에 가서, 머물고 싶은 만큼 지내는 자유를 누려보았다. 왜 그렇게 열심히 다니느냐고 묻는 말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It’s now or never‘,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라고 대답하곤 했는데 이렇게 느닷없이 현실화할 줄은 몰랐다.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선방하고 있는 가운데 선진국으로 불리는 미국과 유럽의 여러 나라는 도시봉쇄, 자택격리와 같은 낮선 조치들을 취하면서 일상과 경제활동이 얼어붙었다. 유럽에서 가장 대응이 잘 된 나라로 평가받는 독일의 메르켈총리는 3월 중순, 여행·이동의 자유(특히 동독인들로서는 힘겹게 얻은)를 제한해야 하는 것의 불가피성과, 가까운 이들과 거리를 두는 것이 그들을 배려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내용을 담은 연설을 했다. 재임 15년 중 대국민 연설이 신년사 이외에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는데 그만큼 사안이 심각했다는 이야기다.
사람 간의 접촉 자체가 금기시되면서 자신이 사는 도시, 자국 내에서의 이동이 까다로워진 마당에 나라 간의 이동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일반여권으로도 세계 120여 개국을 비자 없이 방문할 수 있었던 우리나라 사람들의 활동반경은 급격히 위축되었다. 쉥겐조약*으로 인해 거의 형식적으로만 존재하던 유럽 여러나라 간의 국경에서는 통제가 되살아났다. 쉥겐조약은 룩셈부르크의 작은 마을 쉥겐(Schengen)에서 맺어진 유럽통합을 상징하는 조약이다. 이 조약에 가입한 26개 주민들은 이웃나라를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다. 우리가 유럽에 갈 때 파리 공항에 내려 독일과 이탈리아를 여권검사 없이 여행할 수 있는 것도 이 조약 덕분이다.
우리가 잊고 살던 ’막혀 있음‘
개인적으로도 지금의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큰 딸네를 포함해 가족과 친척 여럿이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는데 언제 만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안 만나는 것과 못 만나는 것은 천양지차이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이산가족들의 아픔과 우리의 현실을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평양에서 월남하신, 평소 말씀이 없으시던 아버님은 돌아가시기 얼마 전, 혹 북녘 땅에 갈 수 있게 된다면 조상들의 고향인 평안북도 철산에 한번 들러 봐 달라고 부탁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몇 십 년의 한이 어린 말씀이었다. 왜 우리는, 겨우 몇 달 하늘길이 막힌 것을 그리도 답답해하면서, 북녘 땅이 몇 십 년째 갈 수 없는 곳이 되어 있다는 사실은 당연하게 여기며 살았을까. 유럽을 여행할 때 버스나 기차로 이 나라 저 나라를 자유로이 넘나들면서, 육로로 갈 수 있는 북녘 땅은 왜 짐짓 외면하고 있었을까. 그나마 연결되어 있다 끊긴 금강산과 개성공단에 대한 아쉬움은 얼마나 느끼고 있을까?
우리와 여건이 다르기는 했지만 분단 시절, 동서독 간에는 많은 인적교류가 있었고 그를 유지하고 확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이어졌다. 서독인들이 동독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동독의 여행허가서를 받아야 하고, 방문 목적이나 체류 일정의 제약, 환전의무 등이 있기는 했지만 방문 자체에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동독주민들의 경우 상당한 제약이 있었지만 연금생활자가 되면 비교적 자유롭게 서독을 방문할 수 있었다. 동서독간에는 육로, 철로가 열려 있었고 연합국 항공기를 통해 프랑크푸르트에서 동독 하늘을 가로질러 서베를린에 갈 수가 있었다. 통독 직전 서독의 연간 동독 방문객은 거의 7백만명, 동독주민의 서독 방문은 200만명에 달했다. 서독 주민들은 동독의 친지들에게 서독의 물건과 돈을 선물했다. 이는 동독주민들이 서독을 동경하게 만들었고 결국은 통일의 동력으로 이어졌다. 코로나 사태로 국경 통제가 재개되었다고는 해도 독일과 프랑스, 스위스, 룩셈부르크를 오가며 일하는 사람들은 통근이 가능했고 화물운송도 지속되었다. 최근 들어 통제도 서서히 완화되고 있고 이탈리아가 6월 초부터 관광객을 받아들인다고 하는데 우선적으로 쉥겐지역 주민이 될 것이다. 이어져서 살 수밖에 없는 제도와 상황을 만드는 것, 그리고 육로의 연결이 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낀다.
다시 길이 열릴 때
결국 하늘 길은 다시 열릴 것이다. 사람들의 돌아다니고 싶은 욕망, 거기에 생계가 달린 수많은 사람들 때문에라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공항과 관광지들이 시장터처럼 북적이던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이번에 깨달았다. 그 깨달음과 더불어 땅으로 연결된 곳을 가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부자연스러운 일인지, 육로가 연결될 때 우리의 행동과 사고반경은 얼마나 커질 수 있을지를 상기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버킷리스트 윗자리에 북한의 도시들, 개마고원, 북한 쪽에서 본 백두산 천지가 자리하고 북한의 모습을 외국인이 찍은 영상이 아닌 우리 눈으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개인적으로는 멀지 않은 장래에 아버님의 부탁을 들어드릴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끝
첫댓글 아버님에 부탁 들어드리고
민족에 소망도 이루는날 오기를.
저도 개마고원 트래킹을 꼭 해보고 싶네요~
통일대박! 한민족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