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날개를 달았나
아내가 역마살이 꼈거나 아니면 날개를 달았나 보다. 웬만해서는 나들이를 꺼려하는 성격인데 이번 달에 들어서 태도가 돌변했다. 하기야 잡다한 일이나 뜬금없이 닥친 병고가 몰고 온 심적 스트레스를 극복하려는 절절한 심정에서 택한 결정이지 싶어 묵묵히 지켜보며 응원할 뿐이다. 한편 잔뜩 위축된 심신의 건강을 되찾고픈 단호한 결기를 웅변하는 다짐이고 자신감을 표출하는 가상한 행동으로 여겨져 흐뭇하기도 하다.
아내가 쉰여덟일 때부터였을 게다.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손주가 생후 47일 되던 날부터 기르기 시작해 이제까지 돌보며 함께 살고 있다. 뜻하지 않은 손주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내가 돕지 않으면 단 한 발짝의 외출이나 나들이는 거의 불가능했던 경우가 허다했었다. 때문에 심적인 갈등을 숱하게 겪는 인고의 세월을 보냈을 것으로 유추된다. 이런 어려움이 원인이었던가 아니면 타고난 운명일까. 젊은 시절은 멀쩡했는데 중년 이후 아내의 건강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그래서 병원 출입을 자주하며 때로는 수술이 불가피한 역경을 넘고 또 넘고 있다.
지난봄에도 건강검진 과정에서 이상 징후가 보여 상급병원의 정밀검사 결과 수술이 불가피해 벼락 치듯이 수술을 받았다. 한편 후속 조치로 매일 연속적으로 방사선치료(19회)를 받으며 심적으로 잔뜩 움츠러든 기색이 완연했다. 얼마나 충격이 심했으면 30여 년 동안 줄곧 해오던 수영을 할 계제가 아니라며 야멸치게 접었다. 그 대신 매일 마산만 바닷가에 개설된 3.15해양누리공원을 1시간 남짓 걸으며 잃어버린 건강을 되찾으려 악전고투하고 있다.
아내는 서울에서 자라며 학교를 다니고 직장 생활을 했기 때문에 추풍령 아래에는 죽마고우나 지란지교라고 이를 학창 시절의 친구가 하나도 없다. 지난봄 수술 후에 친구들과 만나고 싶다고 하면서도 거리가 멀어 엄두가 나지 않는지 서울에 갈 용기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수술 후 반년 이상 지나면서 심신의 건강에 어느 정도 자신이 생겼는지 아니면 이겨내려는 굳은 결기의 피력인지 생각의 결이 판이하게 달라졌다.
불과 열흘 전(11월 7일)에는 서울에서 대학동창 몇을 만나 점심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다가 돌아오는 당일치기 외출을 했었다. 어찌 보면 단순히 점심식사 함께하고 몇 시간 얘기 나눈 뒤에 곧바로 마산으로 돌아오는데 자그마치 18시간을 허비했다. 그래도 아깝지 않고 되레 즐거웠다며 오그랑장사를 하지 않았다는 얘기에 덩달아 나까지 기분이 좋았다. 그러고 나서 겨우 열흘 정도 지난 오늘 아침이다. 서울에 사는 여고동창 둘을 부산에서 만나 2박3일 보내고 돌아오겠다며 아침 일찍 괴나리봇짐을 싸들고 호기롭게 집을 나섰다. 이런 돌발 행동은 지금까지 아내에게서 볼 수 없어 낯 설기도 했다.
아내의 이번 나들이에 대한 웃픈 에피소드(episode)이다. 친구 하나가 서울과 부산을 왕복하는 SRT 열차표를 예매(8일)했다며 사진을 찍어 카톡으로 보냈어도 무심히 지나쳤단다. 그런데 부산에서 만나기로 약속된 하루 전날(15일) 친구들이 부산역에 몇 시에 도착하는지 정확하게 확인하려다가 깜작 놀랐단다. 왜냐하면 2박3일 일정으로 부산에 내려오는 표는 정상(16일)인데 돌아가는 귀경표(歸京票)는 바로 그 다음날(17일)로 되어 있어 아귀가 맞지 않더란다. 제대로 된 귀경표라면 당연히 이틀 뒤(18일)이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래서 열차표를 예매했던 친구에게 “부산에서 서울로 귀경할 열차표를 잘못 예매한 것 아니냐”고 물었단다. 그제야 잘못됨을 깨닫고 화들짝 놀라서 곧바로 역으로 달려가 다시 예매했던가 보다.
하지만 주말이라서 모든 표가 매진 돼 입석(立席)을 예매했다고. 그러므로 귀경길엔 꼼짝없이 세 시간 가까이 서서 가야하는 곤혹을 감수해야 할 맹랑한 구석으로 몰렸다는 웃픈 얘기였다. 절친들과 여행한다는 사실에 얼마나 달뜨고 설렜으면 열차표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았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웃음이 절로 난다. 분명 치매에 걸리거나 정신이 오락가락하지 않고 멀쩡한데 그런 실수를 범했다니 믿겨지지 않았다. 하기야 늙어가면서 내남없이 뜻하지 않은 자잘한 실수를 자주 겪게 됨은 어쩔 수 없나보다.
세 친구가 만나 동행했던 여행길은 세 번째로서 처음엔 강화도(江華島), 두 번째는 이번과 같은 부산이었던 것 같다. 어제 부산역에서 미시(未時 : 오후 1~3시) 무렵에 만나 점심식사를 하고 예약한 호텔에 체크인(check-in) 했단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비가 내려 밖에 나가지 못해 방안에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재미가 쏠쏠했다면서 지금 저녁식사를 하러 가려한다는 메시지가 날아 왔다. 내일은 뭘 할까. 아마도 해운대 바닷가를 기웃거리지 않을까. 모쪼록 즐거운 여정이 되길 기원할 따름이다. 고희의 중반을 넘긴 할머니 셋이서 만나 주고받는 대화는 어떤 내용일까 꽤나 궁금하다. 남자들 같으면 의례적으로 소주잔이라도 곁들이며 허세라도 한껏 부리며 분위기를 띄울 터인데. 술을 즐기지 않는 아내가 낀 자리의 분위기는 아무리 상상해도 멋없고 밋밋한 무채색이라서 별로 일 것 같다.
며칠씩 집을 비울 경우 빠지지 않는 아내의 버릇이 있다. 국을 한 냄비 잔뜩 끓이거나 잡다한 반찬을 냉장고에 가득히 만들어 놓아도 거들떠보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이런 헛수고를 되풀이 하지 말라는 뜻에서 연거푸 몇 차례 당부했다. 하지만 끼니때마다 손주에게 차려줄 반찬이 마땅찮아 편편치 않다. 이의 대응 방안으로 짜낸 고육지책이다. 손주가 학원을 비롯해 다른 일로 외출을 할 때 식사 때가 겹치면 슬며시 돈을 쥐어주며 밖에서 제 입맛에 따라 매식(買食)하도록 은근슬쩍 유도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집에서의 식사를 최대한 줄임으로써 끼니를 챙겨 줘야하는 부담을 덜고, 제 입맛이 당기는 외식을 즐길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득이 되는 윈윈전략(win-win game)이 아닐까 싶다.
의기소침해진 아내가 심신의 건강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된다면 열 번 아니 스무 번 연이어 나들이를 해도 상관하지 않을 참이다. 이제 멀고 먼 외국 여행은 체력적으로 불가능하다. 그 때문에 국내를 오가는 나들이라면 ‘생쥐 풀 방구리 드나들 듯’ 자주 되풀이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지난 75년 동짓달 초여드렛날 부부의 연을 맺고 거의 쉰 해 가까이 슬기롭게 가정을 꾸려왔던 고마움을 이렇게라도 보상할 수 있다면 이 또한 행복이렷다.
수필과 비평, 2024년 2월호(통권 268호), 2024년 2월 1일
(2023년 11월 16일 목요일)
첫댓글 교수님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