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궁체 공부
2019.6.27.
석야 신웅순
“여보세요”
“신웅순 선생님이세요?”
“예, 그런데요”
모르는 여자분께서 전화가 왔다. 한글 궁체 공부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한글 궁체 공부는 가뭄에 콩나듯한다. 반가웠다. 대부분 한문 아니면 캘리이다. 그들 말로는 한글 궁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시조도 그렇다. 시조는 한문(?) 같은 것, 시조창, 고시조를 떠올린다. 사람들은 시는 잘 알아도 시조는 잘 모른다. 시조 쓰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시조는 7,800년이나 된 우리 고유의 대표적인 시가 문학인데도 사람들은 시조를 특히 현대시조를 잘 모른다.
나는 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애초에는 시를 전공했다. 물론 먹고 살기 위해서였다. 현대 시조를 전공해서는 교수가 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교수가 되고 나서 나는 시조 음악과 관련해 시조 문학을 연구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시조를 전공한 줄로만 안다. 수십년간 시조를 연구해왔으니 그럴만도 하다.
서예를 시작한지는 벌써 반세기가 되어간다. 한문이라도 했으면 용돈쯤 챙길만도 했을 텐데 한글 궁체만을 써왔으니 한 잔의 술값만이라도 언감생심이다. 그렇게 나는 시조, 한글서예 같은 돈도 되지 않고 인기도 없는 것들을 공부하고 연구해왔다. 우리 것들이기 때문에 뿌리가 깊어야하고 튼튼해야한다는 나름대로의 약속과 사명감 때문이었다.
그녀는 한글 궁체를 공부하고 싶어 스스로 나를 찾아온 사람이다. 한글 서예에 관한 한, 내가 아는 한은 모든 것을 줄 생각이다. 그 옛날 나는 책을 스승삼아 궁체를 독학으로 공부했다. 그것이 나에게 오히려 잘못된 습관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이를 제대로 치유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좋은 스승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나는 내 바르지 못한 습관으로 그 이상을 넘기에는 힘들었을 것이다. 물론 창작과는 차원이 좀 다른 문제이기 하다. 모든 것은 내가 아는 만큼 보인다는 사실을 그 때는 잘 몰랐다.
시조도 궁체도 우리는 한문권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우리는 천여년을 우리말을 한자 문자로 써왔다. 이제는 세상이 많이도 변했다. 더러는 시인들이나 한자 서예가들이 아직도 시조나 한글 서예를 폄하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 때마다 한 나라의 전통과 자존심, 국격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많이도 아팠다.
오늘 성○경 그 친구가 공부하러 왔다. 공부한 지 벌써 몇 달이 지났다. 나의 국전 졸업 작품 ‘겨울비’를 숙제로 내주었다. 전번에 써온 것을 보니 감각이 꽤 있는 것 같았다. 미래 한글 궁체의 인재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그 때의 궁체를 바라보았다. 물론 내 수필을 내 정자 궁체 글씨로 쓴 것이다. 참 열심히 정직하게 짓고 썼던 것 같다. 초심을 잃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녀에게 당시의 내 초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몇 년 후에라야 시조와 서예에 올인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직은 내가 해왔던 미진한 시조 학문의 일단을 마무리 해야하기 때문이다. 남들은 나보고 퇴임했으니 좀 한가하겠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더 바쁘다. 나는 내게 주어진 지금의 시간을 한순간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다. 시간은 한번 가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정 소유할 수 있는 단 한가지는 하루하루의 시간이다.’ 도미니크 로로의 말이다. 어제의 잘잘못을 따져서 뭣하겠는가. 그것은 쓸데 없고 부질없는 일이다. 언제나 현재에 집중하면서 충실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수상록 오래 전에 썼던, 성○경의 숙제 ‘겨울비’의 일부이다.
꽃에게, 녹음에게, 낙엽에게 다 주어 더 이상 줄 곳도 없는 나그네. 겨울비는 빈자의 모습으로 겨울 늦게 낯선 동네로 돌아온다. 산동네 불빛도 둘러보고 좁은 언덕의 골목 도 마다하지 않고 오른다.
산천은 가진 것이 없는가. 참으로 눈부시다. 산허리 저 물안개는 누가 풀어놓고간 붓 질이며 앙상한 겨울 나무는 누가 울고 간 노래인가. 저 마른 산녘의 강물은 누가 쓰고 간 서체이며, 저 하늘 비워둔 세월은 누가 보내준 편지인가.
빈자가 아니면 어찌 순백의 화선지에 저런 절구를 훔쳐낼 수 있단 말인가. 감나무, 밤나무 낙엽진, 산꿩이 울고간, 내 고향 고추밭 어디쯤일 것이다. 거기에서 겨울비는 적막하게 온다.
신웅순의 수상 ‘겨울비’의 일부 글·글씨
- 석야 신웅순의 서재, 매월헌.
첫댓글 궁체를
쓰노라면
마음이한결 가라앉지요ᆢ다른생각이
들어올수없는ᆢ
교수님귀한작품즐감합니다
역시 전문가는 다르시군요. 멋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