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의 꽃이 피었습니다. / 김지명
최태수는 도시 변두리 고등학교 3학년 담임으로 학생들에게 인기가 좋다. 오래된 학교라서 교실도 낡아 책상이며 의자가 파손되어도 수리할 경비가 없어 그대로 사용하는 변두리 고등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친다. 학생에게 공부에 대한 이론을 가르치기 위해 교실에 들어설 때 문이 약간 내려앉아 잘 열리지 않았다. 힘들게 밀어야 겨우 열리면서 삐거덕 하는 소리가 학생들에게 선생님이 온다는 신호를 알린다. 낡은 교실만큼 도시 변두리 고등학교 학생들의 교복도 때가 묻어 지저분하다. 태수 선생은 낡은 교실에서 학생과 친하게 지내려고 웃으면서 친동생처럼 가까이 대하며 가르친다. 수업을 지루하지 않게 하려고 유머러스한 말을 섞어가면서 질문에 답하는 학생 곁에서 어깨를 다독여 칭찬하며 가르치는 3학년 담임교사다. 학생을 가르칠 때 충분히 알아듣도록 이해 과정을 넓히려고 다방면으로 예를 들어 가르치며 가족처럼 가까이 대하려고 노력하는 담임선생이다.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에 들어가면 덩치는 작아도 얼굴이 동안이고 눈초리가 아래로 쳐져 순하게 생긴 덕분에 교무실에서 여선생들에게 인기가 좋다. 여선생은 모두 다섯 명이므로 남선생보다 많다.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친근감을 주면서 근무하는 태수가 여선생 앞에서는 웃음을 멈추지 않는다. 서미숙 여선생은 퇴근 시간에 여유가 있으면 최태수와 잠시라도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어쩌다 태수와 조용한 시간이 갖고 싶어서 만나고 싶다는 심정을 전했으나 그를 때마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태수는 퇴근 시간에 누구라도 만남을 요구하면 이유도 없이 무조건 칼로 두부 자르듯이 냉정하게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퇴근 시간 이후에는 누가 어떤 만남을 요구해도 각설하고 집으로 가는 집념이 아주 대단한 총각 선생이다. 미숙 선생은 태수를 너무나 짝사랑하였기에 둘만의 시간이 갖고 싶어서 여러 번 접근을 시도했으나 한 번도 승낙하지 않았다. 미숙은 궁금함을 참지 못해 2010년 10월 25일 월요일 날씨가 아주 맑아 태수를 미행하기로 결심하고 행동에 옮겼다. 퇴근 시간에 화장실에서 아무도 몰라보게 늙은이로 위장하여 태수의 그림자를 밟으려고 기획한 대로 태연히 연출했다. 아무도 모르게 일찍 학교를 빠져나와 마을에서 버스가 오는 시각에 맞춰 학교 앞 버스정류장으로 나갔다. 버스 정류장에서 태수 오른쪽 곁에 서 있어도 몰라보고 좌측에서 다가오는 차에만 눈길이 갔다. 27번 노선버스 이마에는 자갈치 간다는 현수막을 두르고 달려와서 정류장에 멈추자 태수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차 안으로 올랐다. 버스는 용호동 골목시장 앞 정류장에서 태수를 태우고 달려가면서 몇 군데 정류소에 멈춰 섰지만, 태수가 내리지 않아 미숙도 버스 안에서 움직이지 않고 태연하게 서 있었다. 미숙은 태수의 그림자를 밟으며 같은 버스에 탑승하여 복도에 서 있었다. 도시 변두리로 달려가던 버스가 마을 앞 정류장에 도착하자 태수가 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보고 미숙은 그림자를 놓치지 않고 따라붙었다. 미숙은 13m쯤 떨어져 할머니처럼 살금살금 걸어가면서 태수를 놓치지 않으려고 좀 더 가까이 따라붙었다. 마을에 들어서더니 우측 골목으로 돌아 다시 좌로 몸을 돌려 대나무가 우거진 집 뒤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바짝 따라붙었다. 사립문이 기울어져 사용하지 않는 초가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발걸음 속도를 늦추었다. 미숙은 태수가 거주하는 시골집 앞까지 따라붙어 먼발치에서 은밀하게 살폈다. 태수가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방문 앞에는 아동의 신발 여러 개가 흩어진 모습이 보였다. 미숙은 태수의 그림자를 놓치지 않고 따라붙어 살그머니 집 마당으로 들러 초가집 모퉁이로 돌아가서 뒤쪽 봉창 앞에 섰다. 어둠은 세상에 카턴을 치려고 좁은 마당 구석진 자리에 퍼지고 앉아 점점 그 범위를 넓혀간다.
초가집 뒤 봉창 앞에선 미숙은 손가락에 침을 발라 한지로 가려진 봉창에 한참을 문질러서 소리 없이 작은 구멍을 내고 방 안으로 들여다보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몇몇 학생을 가르치며 과외수업 하는 모습이 보였다. 태수가 왜 만남을 거절하고 집으로 가는지 현장을 목격하고 나서야 그 이유를 충분히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태수가 저런 가정환경에서 어떻게 대학까지 공부했는지 의아하여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토록 가난하게 살면서 대학까지 공부시킨 부모를 고맙게 생각하고 그 은혜에 보답하려고 과외공부를 시키는 태수가 부모의 효심이 대단한 청년으로 보였다. 결혼할 나이가 늦었으나 부모를 생각하여 자신에게 공부시켜준 그 은혜를 갚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누구라도 본받을 만하였다. 미숙은 즐거운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효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모습에 눈시울이 뜨거웠다. 부모의 은혜에 대한 보답과 노후 대책을 걱정하면서 늘 돈벌이에 쉴 여유도 없어 피로도 잊은 채 정성껏 학생을 가르치는 노력에 열정을 쏟는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태수의 부지런한 모습을 본 서미숙은 견문에 의해 깨달음이 이런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가난하게 살면서도 당당하게 행동하는 모습에 놀란 미숙은 태수의 깊은 심정을 늦게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미숙이 돌아서 나와 골목으로 오는데 노부부가 태수가 사는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무심코 바라보았다. 태수는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지만, 칠순에 가까운 노부모가 노동자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태수는 고생하는 부모에게 보답하기 위해 학교와 집을 오가면서 오로지 시계추처럼 생활하는 버릇이 몸에 뱄다. 부전자전이라는 말처럼 태수는 효심이 지극하여 부모에게 그 보답으로 결혼할 생각도 미루고 오로지 돈벌이에 혼신을 바쳤다. 미숙이 짝사랑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만나자는 부탁을 받아도 냉정하게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교직원들은 회식 모임에 함께 가자고 잡아보지만, 태수는 집안에 우안이 있다고 거짓말까지 하면서 집으로 가는 모습을 본 미숙은 가슴이 아파 눈시울이 뜨거웠다.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회식 모임도 아랑곳하지 않고 곧장 집으로 가는 태수는 오로지 돈벌이만 신경을 써는 느낌이었다. 부모가 근로자로 허드렛일을 하면서 살림을 꾸려가는 모습이 안쓰러워 집으로 간 태수는 학생들을 동생처럼 친절하고 자상하게 가르치며 과제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시켰다. 열정적으로 가르치는 스승과 악착같이 배우려는 학생들의 호흡이 잘 맞았기에 서로는 웃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공부하는 학생들은 성적이 쑥쑥 올라가니 잘 가르친다는 입소문이 다른 학교 학부모의 귀에까지 날아들었다. 학부모들은 귀엽게만 생각하던 자녀의 성적이 올라가자 주변에 친구들에게 아들의 성적을 자랑삼아 이야기했다. 과외수업을 받으려는 학생은 점점 늘어나 공부방이 부족하여 작은 방에서 더는 앉을 자리가 없었다. 배우는 학생 중 한 명이 이처럼 딱한 사정을 부모에게 말했다. 강사의 딱한 심정을 확인한 학부모가 태수를 찾아와 강의실을 옮겨보자고 의논했다. 전포동에 있는 상가건물 5층에 강의실이니 그곳에서 수업하면 좋겠다며 사용료는 받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최태수는 호의를 베푸는 학생의 아버지 말에 기꺼이 승낙하고 사용합의서에 서명하면서 고마움을 참지 못하여 눈물을 훔쳤다. 사설 공부방이 소문나자 장소가 좁아 학부형의 도움에 학원으로 장소를 옮겼다. 주변의 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속속 들어왔으나 앉을 자리가 없어 다 받아주지 못했다. 몇몇 학부모들이 상의하여 수업료를 배로 올려놓았으나 학생이 늘어나 강의실이 모자랐다. 배우고 싶은 학생이 몰려들어도 앉을 자리가 없어 더는 받지 않겠다고 했다. 소문을 듣고 상가주인은 학원으로 찾아와 더 넓은 강의실로 옮기자며 강당사용료를 절반 값에 제공하겠다고 권했다. 태수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몇 명 더 받아서 임대료 공제하면 적자라 생각하고 여기가 좋겠다며 단호히 거절했다. 학생을 받아달라는 애절한 부탁도 있었으나 더는 받지 않는다고 고개 숙여 거절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태수는 학교와 집으로 오가면서 학생을 가르쳤고 휴일에는 부모를 모시고 공원으로 나들이하면서 건강도 확인했다. 노부모는 손자가 보고 싶다며 어서 장가가라고 간절한 부탁도 마다치 않았다. 담임선생은 학생들에게 과제를 충분히 이해시키므로 잘 가르친다는 소문이 학부형의 입으로 멀리까지 퍼졌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학부모가 가정교사를 맡아달라며 보상은 학원에서 생기는 수입을 고려해서 지급하겠다고 부탁했지만, 많은 학생을 고려해서 완고히 거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학원에서 배우려는 학생에게 과정을 충분히 이해시켜 잘 알아듣도록 상세하게 가르쳤다. 배우는 학생들의 성적이 숙숙 올라가자 자녀를 둔 학부모가 친구들의 모임에서 학교 선생이 학원 강사를 곁들여 강의를 잘한다고 자랑처럼 말하고 다녔다. 이것 뿐만은 아니었다. 태수가 연애할 시간이 없어 총각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세월에 끌려가고 있다는 소문도 함께 퍼뜨렸다. 단상에서 가르치는 천재적인 재능은 월등하게 뛰어났다고 알려졌으나 연애하는 취미는 생각에서 빠져있었다. 노총각 신세를 면하려고 노력했으나 아무도 결혼에 대한 상대를 중매하지 않았다. 잘 가르친다는 소문은 날개를 달듯 멀리까지 퍼졌으나 중매하는 학부모가 없어 노총각으로 나이만 쌓였다. 여선생들은 순하게 생긴 총각 선생을 매력적으로 바라보았으나 태수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너무나 가난하다는 소문이 앞섰기 때문에 여선생이 태수와 데이트하려고 생각하지 않았다. 태수는 오로지 가르치는 데만 열정을 쏟았으므로 학생이 강의실에 넘치도록 몰려들었다. 한 학생이 자기의 수준에 적합하게 잘 가르친다고 좋아하면서 집에서 선생님을 모시고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제의했다. 학생이 여러 번 가정방문을 제의하자 태수는 거역하지 못하고 기꺼이 승낙했다. 그날은 집에서 가르치는 과외수업은 쉬기로 하고 퇴근할 때 그 학생과 동행하기로 했다. 태수는 퇴근 시간에 맞춰 교무실에서 태연하게 복도로 나올 때 문이 낡아 비뚤어져 열 때마다 삐거덕 소리가 났다. 학생은 교무실 언저리에서 담임선생이 퇴근하는 모습만 지켜보다가 문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 돌렸다. 담임선생이 퇴근하자 학생이 곁으로 다가와서 함께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걸었다. 노선버스는 자주 오지만, 학생이 사는 마을로 가는 버스는 한참을 기다리고 나서야 나타났다. 학생이 사는 마을로 가는 버스가 정류장에 멈추자 선생님께 타자고 하면서 먼저 차에 오르자 태수도 뒤따라 올랐다. 차창밖에 보이는 가을풍경은 활동사진처럼 스쳐갈 때 학생은 담임선생에게 마을에 도착했다고 버스에서 내리자는 말을 전했다. 학생이 버스에서 내리자 태수는 뒤따라가려고 오른발을 먼저 내려놓고 오른손으로 버스의 문을 잡고 왼발을 내려놓았다. 버스에서 내린 태수는 학생과 함께 사담을 나누면서 마을 회관 언저리로 돌아 골목으로 나란히 걸었다. 학생은 부잣집 대문 앞에 서더니 여기가 우리 집이라고 했다. 남대문 같이 큰 대문을 열고 함께 안으로 들렀다. 태수가 학생을 따라 집 안으로 들렀을 때 마당에는 잔디가 누렇게 물들었고 담벼락에는 담쟁이가 붉은 색깔로 집안의 풍경에 운치를 더했다. 가을의 운치가 절정을 이루는 집안의 경치가 너무나 좋아 마당에 서서 한참 동안 두루두루 바라보았다. 태수는 그림 같은 부잣집에 처음 들러보았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학생은 거실 안으로 들어가자고 했으나 풍경에 도취하여 넋을 잃고 마당에 서서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학생집의 거실에 가족들은 밖에서 사람 소리가 들리더니 현관문을 열고 학생의 누나가 나타났다. 아가씨가 태수를 보고 반갑다며 인사하자 태수는 불러주시어 고맙다며 허리를 구십 도로 굽혀 화답했다. 학생의 안내로 거실에 들어갔을 때 가족들은 환한 웃음으로 맞아주었다. 가난하게 사는 태수가 부잣집 아가씨의 화려한 모습을 보고 천사 같은 느낌에 마취되듯 혼을 잃고 멍하니 서 있었다. 학생은 안으로 들자고 선생님 곁에서 거실로 안내했다. 태수가 현관문을 획 열고 거실에 들렀을 때 가족들은 소파에 둘러앉아 텔레비전에 뉴스를 보고 있었다. 태수가 나타나자 학생의 부모는 반갑다며 친절히 맞아주었다. 거실 전면에 설치한 75인지 대형 텔레비전을 볼 때 영화관에 앉은 느낌이 들었다. 태수는 학생의 아버지에게 엎드려 큰절하면서 담임선생이라고 인사했다. 학생의 어머니도 긴 소파 중앙에 앉아 반갑게 반겨주자 태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구십 도로 굽혀 인사했다. 학생의 아버지가 찾아와 주어 고맙다며 소파에 앉으라고 했다. 학생 곁에 태수가 나란히 앉았다. 학생의 아버지는 두 자녀가 남매라고 소개했다. 딸은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인사하고 태수와 마주 앉았다. 학생은 아버지가 대성기업 사장이라고 소개했다. 태수는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서서 양발을 모아 허리를 굽혀 양손을 먼저 땅에 손바닥을 짚으면서 무릎 꿇고 앉으면서 고개 숙여 절했다. 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태수와 많은 시간에 이야기로 서로의 정보를 주고받았다. 태수가 총각이라는 사실을 알고 딸을 자랑하면서 사윗감으로 인정하고 싶다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태수는 선택의 방향은 본인 이외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면서 자녀의 흐름을 막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곁에서 권하는 사람은 자신의 눈높이에 맞춰 말하기 때문에 대리만족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사장은 깜짝 놀라면서 태수가 철학적인 대화로 이어갈 때 사장은 말을 멈추고 상대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태수가 사람은 각자 생각의 차이일 뿐이라고 공손히 말하면서 세상에 부부의 화합은 정해져있음으로 굳이 맞추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쉽게 이루어진다고 했다. 억지로 맞추려는 행동은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태수의 의견을 조심스럽게 전했다. 사장은 자녀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기에 좋은 선생이라고 판단하고 사윗감이 될 수 있는지 테스트했다고 허심탄회하게 사실을 알렸다. 태수는 학교 다닐 때 심리학에 관하여 공부하였기에 인연이 될 수 있는지 안다고 했다.
사장은 태수에게 판단력이 탁월하고 생각하는 능력이 월등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사장은 예의 바른 태수에게 딸이 마음에 드는지 직접 물어보려고 했으나 먼저 거절하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태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아가씨의 눈동자만 바라보았다. 사장은 사람이 아까워 억지로라도 맺어보려는 생각에서 참다못해 딸에게 태수와 대화를 나누어보라고 권했다. 태수는 아가씨의 성격과 행동을 자상하게 말하며 앞으로의 진로를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듣던 딸은 나중에 데이트하면서 질문하겠다고 다음으로 미루었다. 사장은 보기 어려운 인재라고 생각하여 회사 일을 맡기고 싶다고 넌지시 마음을 떠보았다. 사장은 사람이 탐나서 잡고 싶은 심정에서 경영하는 방법을 배워보지 않겠는지 넌지시 물었다. 태수는 사장의 호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냉정하게 거절했다. 사장은 태수가 덩치는 별로라도 순하게 생긴 모습에서 참으로 아까운 인재라고 안타까워했다. 아가씨는 태수와 마주 앉아서 아빠와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총각의 매력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태수는 누가 뭐래도 자기 생각대로 가는 길이 가장 현명한 판단이고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아가씨에게 자신 있게 말했다. 사장의 질문에 태수는 아가씨에게 다른 총각을 선택해 보라고 하고 눈길을 돌렸다. 사장은 놀라워하면서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태수에게 이유를 물었다. 태수는 서로 맏이라서 이루어지지 않으니 선보자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사장은 젊은 사람이 철학적으로 말할 때 깜짝 놀라워하면서 더더욱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사장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아가씨가 마음에 안 들어요." "체질은 몰라도 인연이 아닌 것 같아요." "왜 그런지 알고 싶다." "인연은 음인과 양인이 만나야 하는데 서로 양인이라서 안돼요." "사장은 어리둥절하여 만나지도 않고 체질을 어떻게 아는가?" "맏이와 맏이는 혼례가 되지 않아요." "왜 그런가?" "맏이는 무조건 양인이라 같은 체질은 절대로 부부로 이루어질 수 없어요." 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총각을 병아리 같다고 생각했는데 고목이 된 사장보다 학식이 높다고 과찬을 아끼지 않았다. 생각하는 범위가 아주 넓다고 판단하고 더는 묻지 않았다. 태수는 학식이 풍부하고 선남선녀라도 같은 체질은 부부로 맺어지지 않는다고 철학적인 이야기로 사장을 설득시켰다. 처녀와 총각은 결혼을 위해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려고 만나는데 태수는 어려운 생활에 쫓기다 보니 데이트할 시간이 없다고 진솔함을 그대로 전했다. 부부는 음인과 양인이 만나야 하는데 아가씨와 태수는 같은 맏이라서 성격이 다혈질이고 이해심이 부족하며 이기적인 성향이 짙다고 했다. 게다가 욕심쟁이 성향이 짙어 절대로 부부가 될 수 없다고 아가씨가 충분히 알아듣도록 말했다. 인연은 스스로 이루어져야 미래에 행복이 보이지만, 억지로 만들어보려면 절대로 행해지지 않고 오히려 우안만 일어날 거라고 덧붙였다. 태수의 말을 유심히 듣던 사장은 자녀와 인연이 아니라고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선생을 아주 높이 평가했다. 태수를 놓치기 싫은 사장은 아까운 총각이라 생각하니 한순간 조카 생각이 떠올랐다. 확실한 총각을 놓치지 않으려고 딸에게 너의 사촌 맹자를 부르라고 했다. 아가씨는 아버지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살며시 자리는 떠나 사촌 동생 맹자에게 전화했다. 맹자가 반갑게 전화를 받을 때 아가씨는 좋은 일이 있으니 당장 집으로 와야 할 일이 생겼다. 이유를 묻지 말고 무조건 집으로 오라고 당부했다.
잠시 후 학생의 사촌 누나 맹자가 택시에서 내려 숨을 몰아쉬면서 거실에 들어왔다. 모두가 소파에 둘러앉아 아주 평화로운 자세로 차를 마시고 있는 모습을 살피면서 언니를 바라보았다. 태수는 급하게 찾아오는 아가씨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맹자가 멋모르고 거실에 들었을 때 낫은 총각이 있으니 무슨 일인지 의아했다. 태수는 아가씨의 행동을 유심히 바라보다 서로 얼굴을 맞닥뜨리자 아가씨와 시선이 부딪쳤다. 서로 마주 보는 순간 눈빛이 마주칠 때 스파크가 일어나는 느낌에서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맹자는 큰아버지에게 오랜만에 뵙는다고 공손히 인사하고 언니에게 무슨 좋은 일이 있는가 하고 물었다. 학생의 누나는 질투심에서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는가 하면서 억지로 미소를 보였다. 맹자는 어리벙벙하여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자리에 앉았다. 사장은 즉석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맹자에게 사귀는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맹자는 갑작스러운 삼촌의 질문에 놀랐으나 앞에 앉은 총각을 소개하려는 속마음을 읽었다. 애인이 아닌 친구는 있었으나 사귀는 사람은 없다고 대답했다. 태수는 연락받고 달려온 맹자 아가씨가 생각 이상으로 눈에 들었다. 사장의 언행에 충분히 눈치를 알아차렸다. 자인 어른이 되고 싶어도 이루어지지 않으니 처삼촌이라도 되려고 노력하는 모습에서 너무나 고맙다는 느낌을 받았다. 참으로 인자한 분이라고 생각하고 맹자를 유심히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맹자를 한참 바라보니 얼굴이 갑자기 홍당무처럼 붉게 변하는 모습에서 순박함을 알렸다.
태수의 제자가 양처럼 순하고 너그러운 선생님이 누나의 동생을 가르친다고 했다. 맹자는 응 그러나! 선생님이 오셨네 하더니 반가움을 표한다. 선생님이 하도 순하고 착하게 보여 내 눈에는 총각처럼 보였다고 진심을 털어놓았다. 태수는 웃으면서 잘 봐주시어 고맙다며 고개 숙여 화답했다. 맹자는 다시 선생에게 물었다. 사귀는 아가씨가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사장은 웃으면서 눈이 높은 맹자가 총각이 얼마나 마음에 들었으면 어려운 질문도 부담 없이 하는가 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띄웠다. 태수는 웃으면서 아가씨가 모델인지 되물었다. 맹자도 웃으면서 모델은 아니지만, 가끔 그렇게 보는 사람들이 있더라고 했다. 언니는 동생을 불러놓고 아무런 말이 없는지 사촌언니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맹자야 너 사귀는 남자친구 있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맹자는 단번에 눈치를 채고 없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앞에 앉은 그 총각은 어떠한가 하고 직설적으로 물었다. 맹자는 순하게 생긴 얼굴이라면서 얼버무리자 언니는 대화를 나누어보라 하면서 두 사람을 소개했다. 태수가 좋아서 빙그레 미소를 보이니까 마주 앉은 맹자도 보조개를 가미하더니 입초리가 양 귀에 걸리듯 치솟았다. 웃고 웃으며 즐거운 대화는 태수와 맹자의 연결고리를 굳게 만들었다. 밤이 깊어지자 태수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무심코 맹자의 손을 잡았다. 맹자는 승낙했다는 느낌으로 받아들여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아 얼른 일어났다. 태수는 집으로 가겠다며 사장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맹자도 가겠다고 인사했지만, 사촌 언니가 손을 잡으면서 오랜만에 왔으니 좀 더 놀다 가라고 부탁했다. 맹자는 언니의 권유로 그곳에 남았지만, 태수는 학생의 가족들에게 인사하고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먼저 나왔다. 학생이 선생이 가는데 대문까지 바라다 주었다. 학생의 아버지는 잠시 후 조카가 떠나자 맹자 아버지인 동생에게 전화하여 참으로 지성인다운 총각을 보았다며 맹자에게 그 사람을 놓치지 말라고 당부하라고 권했다. 기업을 경영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거라고 덧붙였다. 동생은 형님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동감이라고 언약했다.
집으로 돌아온 태수는 싱글거리며 부모 앞에 행운을 잡았다며 좋아했다. 부모들은 왜 이토록 늦었는지 걱정했다며 이유를 물었다. 태수는 부모 앞에서 살다 보면 좋은 날이 반드시 있다더니 오늘이 내겐 그런 날이라고 싱글거렸다. 엄마는 아들이 싱글벙글 웃을 때 어젯밤에 꿈속에서 신부를 만나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런 일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어머니가 그런 꿈을 꾸었다니 하면서 태수가 놀라워했다. 좋은 일은 꿈에서 예언한단다. 하면서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태수는 세상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하면서 맞다 바로 아내가 될 인연을 만났다고 이야기를 틀어놓았다.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살다 보면 인연은 반드시 나타나고 부부로 맺어지면 자녀는 남자의 팔자대로 낳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태수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어머니에게 물었다.
“내 팔자에 아이가 몇이래요?” “아들 셋 딸 둘이란다.” “뭐 오 남매라고?” “그렇다고 하더라.” “요즘 젊은이들이 그토록 많이 낳나요.” “두고 보아라 더 놓고 싶어도 안 된다.” “미신 같은 말은 듣고 싶지 않아요.” “믿던 말든 살다 보면 세상일이 생각대로 안 된다.” “어머니 알겠습니다.” “생각은 몸을 움직이게 하지만, 영혼은 생각을 조절한다.”
태수는 어머니의 말에 무조건 굴복하면서 좋게 받아드렸다. 낙엽이 소슬바람에 뒹굴며 이리저리 날아다니던 11월 2일 수업을 마치고 교실에서 나올 때 그 학생이 달려와 쪽지를 전하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태수 곁에서 멀어져 갔다. 태수는 학생이 전해준 쪽지가 궁금하여 얼른 펼쳐 내용을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맹자가 정성스럽게 적은 글자에는 또랑또랑한 숫자는 핸드백 전화기의 이름이었다. 쪽지는 몹시 반가웠으나 학생의 모습이 영 마음에 걸렸다. 누나를 사랑하지 않고 사촌 누나와 눈이 맞아 마음에 없는 심부름이 귀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수는 맹자의 핸드백 전화기 이름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맹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문자를 보는 즉시 음성을 날렸다. 태수는 전화를 받는 즉시 맹자가 일하는 시간에 방해가 되었다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아니라고 하면서 대화는 가을의 열매처럼 익어갔다.
두 사람은 날아가는 화살처럼 빠른 세월에 자주 음성이 오가더니 만남도 잦았다. 태수는 맹자와 연애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 맹자는 국내 십 대그룹 중의 한 기업을 경영하는 사업가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결과가 맺어질 수 있을까 망설였으나 맹자가 기어이 좋다고 매달려 연애하는 기간도 짧았다. 맹자가 학식이 풍부한 멋쟁이 총각을 놓칠까 얼른 혼례를 하자며 태수를 졸랐다. 태수는 맹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장녀 같은데 아닌가 하고 물었다. 맹자는 가슴이 아프다며 언니의 사고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어렵게 물으니 눈물이 난다고 한다. 한참을 망설이고 있더니 언니가 동생이 보는 앞에서 어릴 때 교통사고로 운명했다며 눈물을 훔친다. 태수는 그러한 줄도 전혀 모르고 질문하여 미안하다고 했다. 이렇게 순한 맹자의 모습에서 맏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아주 좋아했다. 두 사람은 잦은 데이트로 서로를 충분히 알았으나 가난 때문에 문제가 생길까 노심초사했다. 맹자 아버지는 그 총각이 마음에 드는지 딸에게 물었다. 맹자는 미루면 놓칠까 걱정된다며 당장이라도 둥지를 꾸미고 싶다고 했다. 그 정도라면 집도 가르쳐주고 저녁에 집에서 보자고 했다. 맹자는 생글거리며 아버지에게 아양을 떨더니 저녁에 집으로 모시겠다고 웃음을 보였다. 퇴근 시간이 되어 맹자는 흥겨운 마음으로 태수를 불렀다. 무슨 일인데 그토록 좋아서 흥얼거리는가 하고 태수가 맹자에게 물었다. 오늘 저녁은 우리들의 과정을 결재하는 날이라 웃음이 멈춰지지 않는다고 아주 좋아했다. 결재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하고 태수가 의아해했다. 맹자는 아빠가 집으로 모시라는 명령이었다고 환한 웃음을 감추지 못한다. 아! 그렇다면 이발도 하고 멋지게 꾸며야 하겠는데 시간이 좀 걸리겠다. 맹자만 좋아하면 되지 다른 사람에게 보일 이유도 없잖아 하면서 통화가 끝나기도 전에 태수가 탄 택시가 눈앞에 나타나자 맹자는 양팔을 높이 들었다. 택시가 멈추자 맹자가 얼른 조수석 문을 열고 반갑다며 인사하고 천천히 내리라고 했다. 맹자가 싱글거리며 태수의 팔짱을 끼고 집으로 걸었다. 태수는 무슨 일인데 그토록 좋아서 싱글거리는가 하고 물었다. 지금까지 살아도 오늘처럼 기분 좋은 날은 없었다고 중얼거렸다.
맹자는 태수의 팔짱을 끼고 잔디가 깎인 마당을 밟으며 집 안으로 들렀다. 맹자가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러 아빠 손님이 오셨어요. 하면서 태수를 안내했다. 태수가 안으로 들자 맹자의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주 반갑게 맞아준다. 태수는 사장님 절 받으세요. 하면서 엎드려 큰절했다. 사장은 무슨 절까지 하는가 하면서 만나서 반갑다며 테이블 앞에 마주 앉았다. 사장은 첫인상과 외모가 별로라서 좋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장은 두 사람의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두 시간에 걸쳐 아주 다양하게 질문했다. 한 마디 실수도 없이 또박또박 질서를 지키며 대답하는 언행은 사장을 놀라게 했다. 태수는 자세하나 흩트리지 않고 긴 시간에 석불처럼 곧은 자세로 앉아 묻는 말에 또박또박 대답했다. 사장은 총각이 예의가 바르고 곧은 마음으로 장래가 촉망되는 지성인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태수가 보잘것없는 민초에게 과찬해 주셔서 대단히 고맙다고 했다. 사장은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 심도 있게 다루었으나 태수는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여유롭게 대답하는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사장은 냉정하게 점검하였으나 어디에도 흠잡을 만한 말을 들을 수 없었다. 그토록 까다로운 형님이 좋다고 말하더니 참으로 빈틈없는 청년이라고 구시렁거렸다. 맹자 아버지는 생각 이상으로 곧은 정신력과 행동이 아주 마음에 든다고 하면서 미소 보였다. 회사에서 수십 명의 간부를 상대해도 이처럼 안정된 언행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얼마나 뼈대가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았기에 긴장하거나 어색한 행동은 물론 흐트러진 자세하나 보이지 않고 원칙대로 움직이는 젊은이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처럼 잘 길어준 부모가 보고 싶다고 했다. 태수는 부끄럽다며 보잘것없는 부모님은 가난하게 살면서 저를 억지로 대학을 시켰다고 고마워했다. 게다가 아직도 건설 현장에서 중노동으로 일하며 살아간다고 숨김없이 말했다. 가족 관계를 물었을 때 부모는 건강하다고 했다. 공과 대학을 가라고 지인들이 권했으나 기어이 교육학을 전공하여 임용고시에 합격하여 고등학교에 발령받았다고 덧붙였다.
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딸을 불러 이처럼 멋진 총각을 어떻게 알았는지 물었다. 맹자는 지난번에 큰아버지가 불러 갔더니 너에게 맞는 총각이라며 소개해 주더라고 했다. 아마도 언니를 만나게 했다가 인연이 닫지 않았는지 내가 차지하게 되었다고 아주 만족스러웠다고 했다. 사장은 딸과 예비 사위를 앞에 앉혀놓고 여러 가지 질문을 늘어놓았다. 혼례는 양가의 생활이 비슷해야 한다고 하는 둥 사장의 기분대로 말하는 태도가 검안하게 들렸다. 듣고 있던 태수가 그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맹자가 일어나더니 태수의 팔을 잡고 앉으라고 권한다. 아빠가 말을 심하게 했다면 대신하여 사과할 테니 한 번만 참고 아빠의 말씀을 더 들어보자고 했다. 태수는 맹자의 말에 동의하고 자리에 다시 앉았다. 맹자는 아빠에게 조용히 말을 이어가라고 권했다. 아빠 딸이 이처럼 좋은 사람 멀리하면 다시는 이런 기회가 오지 않는다고 나와 함께 하도록 선처를 베풀어 달라고 했다. 태수는 가정환경이 극과 극이라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아 앞으로 미련을 버리겠다고 했다. 맹자는 곁에서 절대로 그를 수는 없다며 아빠가 고집하면 집을 나가서라도 놓치지 않겠다고 강조한다. 사장은 총각의 근면성이나 인품은 아주 좋으나 가정환경이 밑바닥이라 딸의 체면을 살려 거절도 못 하고 입을 다물었다. 태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가겠다고 했다. 사장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맹자는 좀 더 있고 싶어도 가시방석이라 안 되겠다고 판단하고 함께 밖으로 나왔다. 태수는 맹자의 어깨를 다독이며 부디 건강히 지내라고 강조하면서 아쉬움을 남기고 대로가 있는 쪽으로 걸었다. 태수가 떠나자 맹자는 아빠에게 꼬치꼬치 따지고 물었다. "아빠 총각이 영 마음에 안 들어요?" "사람은 어디에 비교해도 나무 날 때가 없더라." "그럼 왜 그래요." "가정환경이 너무나 달라서" "마음에 드는 남자는 처음입니다." "미련을 버리고 다시 찾아보아라." "그 사람이 인연인 것 같아요." "인연을 바꾸어보아라." "아빠답지 않게 말하세요." 맹자는 알겠다며 입을 닫았다. 엄마는 맹자를 달래보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렀다. 사장은 맹자의 마음을 되돌릴만한 사건이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밖에 남지 않은 딸과 생각의 차이에서 금이 갈 것 같았다. 맹자는 틀림없는 인연 같은데 속이 상해 혼자서 책상에 엎드려 울고 있었다. 어머니가 딸을 달래도 조금의 반응도 보이지 않고 안하무인이었다. 사장은 딸의 방으로 들어가 얼마나 자주 만났다고 그토록 마음에 병이 들었나 하고 물었다. 맹자는 아빠와 한참 동안 대화하고 있을 때 태수의 전화가 걸려왔다. 맹자는 반갑게 받아 정말 미안하다고 하면서 다시 만나는 날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맹자는 아빠가 들으라고 스피커폰으로 눌려놓았다. 태수는 맹자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말을 던진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처녀를 만났지만, 맹자처럼 마음에 드는 여자가 없었다. 아마도 인연이라는 느낌이 확실한 것 같아서 죽어도 맹자 곁은 떠날 수 없을 것 같다는 말을 남기고 통화를 끝냈다. 맹자는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다 전화를 걸었다. 아무리 연락을 취해보려고 노력해도 전화를 받아주지 않았다. 하루 이틀이 지나도록 수천 번을 전화했지만, 단 한 번도 받아주지 않았다. 맹자는 하는 수 없이 태수가 근무하는 학교로 찾아갔다. 교무실 앞 복도에서 최태수 씨를 찾는다고 지나는 선생에게 부탁했다. 교직원이 교무실에 들리자 태수에게 귀한 손님이 찾아왔다고 전했다. 태수가 교무실 밖으로 나가자 맹자가 달려와 무작정 품에 안긴다. 자존심을 버리고 어깨에 얼굴을 대고 떨어질 줄 모른다. 삼한사온이라 날씨가 차가워서 복도로 불어오는 칼바람에 귀가 에일 정도로 차가웠다. 태수는 맹자의 등을 다독이며 수업이 끝났으니 밖으로 나가 다방에 함께 가자고 했다. 학교 앞 카페로 걸어갈 때 맹자는 고개를 들고 팔짱을 끼고 발을 맞추었다.
태수는 학교 언저리에 분위기가 좋은 카페에 들러 구석진 자리로 가서 나란히 앉았다. 맹자는 오른쪽으로 고개 돌려서 시종일관 태수의 얼굴만 쳐다보면서 말을 하지 않았다. 태수도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맹자에게 할 이야기가 없어 서로 얼굴만 바라보다가 한쪽 눈으로 윙크했다. 맹자의 오른손으로 태수의 왼손을 꼭 잡고 얼굴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보였다. 두 사람은 미래를 약속한다는 무언의 약속이었다. 커피 잔이 비워져도 떠나지 않고 밖으로 데이트할 생각은 더더욱 하지 않았다. 아주 오랜 시간에 곁에 앉아있어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태수는 일어나면서 오른손으로 맹자의 어깨를 살짝 눌러 꼼작하지 말고 있으라는 신호를 보내고 화장실 가는 척하면서 카페 밖으로 나와 학교로 돌아갔다. 학교에서 맹자의 가방 전화기로 서류를 정리하고 퇴근할 테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맹자의 가방 전화기에서 신호음이 들리자 얼른 가방을 열어 전화기를 꺼내어 액정을 들려다 보았다. 태수의 애절한 부탁이 담긴 사연이었다. 속으로 웃음이 나왔지만, 묵묵히 자리 지키며 태수가 올 때까지 망상에 젖었다. 이토록 마음에 더는 사내와 함께 살아갈 행로를 생각하면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몇 번의 데이트에서 머리가 아주 영리하다는 사실을 알았으므로 경영학을 배워서 회사를 맡아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맹자가 태수를 기다리는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태수가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많이 기다렸지, 하면서 미안하다고 정중히 사과했다. 맹자는 한참을 기다린 끝에 태수를 만날 수 있어 긴장이 풀렸다. 아니 함께 있으니 너무나 행복하여 시간을 잡아놓은 기분이라며 아양을 떤다. 태수가 맹자의 손을 잡고 가자며 일으켜 세웠다. 맹자는 가벼운 몸놀림으로 태수 곁에서 팔짱을 끼고 함께 움직였다. 카페에서 나와 주차장으로 갈 때 맹자는 짧은 거리인데도 태수의 팔짱을 끼고 발을 맞춘다. 카페에서 벗어나 택시를 타고 시 외곽도로로 달려가고 있을 때 하늘에는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었다. 그 아래로 배달부가 겨울 소식 전하려고 끼룩거리며 줄지어 날아오는 철새는 기러기의 무리였다. 어렸을 땐 하루가 한순간이라고 하지만, 나이가 들면 한 달 아니 일 년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느낌이라고 맹자는 투덜거린다. 태수는 지난번처럼 무언의 데이트가 아니길 바란다고 했다. 맹자는 웃으면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따랐을 뿐이었는데 하면서 말끝을 머뭇거렸다. 언젠가 말했듯이 인연은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인연이라는 사실을 태수는 느낌으로 알았다며 맹자의 기분을 돋웠다. 맹자는 태수를 자기라고 부르면서 목숨 걸고 언약한다면서 죽을 때까지 당신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그래 맞아 우리가 인연이기 때문에 그런 말이 쉽게 나올 수 있다고 태수는 여유로운 생각을 보여준다. 태수가 께름칙하게 생각하는 것은 돈에 끌려 여자를 선택했다는 소문이 날까 가장 걱정이라고 했다. 태수 주위의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모르니까 아무도 말 못 하지만, 당신 곁에서는 당연히 그렇게 말할 수도 있으리라 믿어진다. 그렇지 않다며 믿어보라는 맹자가 23년을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을 접했으나 한 번도 마음이 끌려본 적이 없었다. 당신을 보는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이 흔들거리기 시작했고 본의 아니게 끌려들더라고 실토했다. 태수는 그게 인연으로 이루어지는 행동일 거라고 하고는 맹자와 함께 웃었다. 학교생활은 학생들과 어울려 웃으면서 지내는 것이 좋아서 선택했다. 맹자는 아빠의 사업을 물려받으라는 이유로 경영학을 권하여 지금까지 공부했기 때문에 충분한 상식을 알았으나 실습으로 부족한 점을 보충한다고 했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택시를 타고 달려갈 때 숲속의 높은 건물에서 풍차가 돌아가고 있었다. 피 끓는 청춘 남녀는 조용한 분위기에서 젊음을 불태우고 싶지만, 한순간의 생각일 뿐이었다. 아빠의 사업은 주로 공장을 건설할 때 새로운 기기를 맞춰준다고 했다. 첨단 기기를 수출하는 공장이라고 하면서 세계 경제의 흐름을 완전히 파악하여야 하며 어떤 불황에도 흔들거리지 않아야 한다며 경영자답게 말한다. 맹자는 경영학을 전공하여 충분히 활용하고 있으나 태수는 군대에서 삼 년이란 세월을 보내고 학생들과 어울려 소풍도 가고 여행하는 재미도 있지만, 방학이면 배낭여행도 다닐 수 있다는 즐거움이 있어 좋다고 자랑하듯 말한다. 맹자는 웃으면서 내가 돈 벌어 줄 테니 얼마든지 배낭여행 다니라고 권한다. 그래 맞아 당신이 그런 말을 할 때 나는 영업사원으로 세계무대로 열심히 뛰겠다고 했다. 맹자는 역시 우리는 하나라며 오른손을 높이 들 때 태수도 마주 보면서 같은 손을 높이 들고 부딪치면서 파이팅을 외쳤다. 태수는 맹자에게 아우라지에서 서로 만난 물처럼 하나가 되기 위해 힘쓰자고 했다. 집 앞에 도착한 맹자는 차에서 내리기 전에 태수의 볼에 입술 도장을 찍으며 절대로 변하지 말자고 굳게 맹세하고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맹자는 집으로 들러 아빠의 모습을 바라보고 너무나 놀랐다. 거실에 혼자 앉아서 술에 취할 정도로 많이 마셨다. 엄마에게 달려가 아빠가 술 마시는 행동을 말려야지 했는데 지금까지 말려도 안 되더라고 했다. 엄마는 말리다 지쳐 방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맹자는 아빠가 왜 이토록 술을 많이 마시는지 이유를 물었다. 아빠는 몰라서 묻는 거야! 바로 너 때문이라며 언성이 높아지자 맹자는 화내는 모습을 처음 보면서 상당히 놀랐다. 맹자는 잘 못 했다고 말하고 아빠 술은 그만 마시고 방으로 들어가자고 온갖 아양을 떨면서 엄마와 함께 부축하여 겨우 방으로 모셨다. 며칠 동안 고민하던 아빠가 딸의 모습을 보고 태수를 불러 달라고 부탁했다. 맹자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모셔 오겠다고 했다. 맹자가 태수에게 연락하여 조금 일찍 퇴근하여 회사 정문에서 만나자고 했다. 맹자는 회사를 인수하려고 실습을 위해 아빠 곁에서 경영학을 복습하고 있었다. 맹자는 태수에게 다시 전화하여 택시를 타고 오라고 했다. 약속 시각보다 먼저 왔다고 맹자에게 문자메시지를 넣었다. 맹자는 아빠에게 태수 씨가 퇴근하여 회사 앞에 있다고 하니 제가 먼저 나가 함께 기다리겠다고 했다. 아빠는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나가 보라고 딸의 모습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맹자가 밖으로 나가고 사장은 다시 많은 생각에 젖었다. 어떻게 하면 두 사람의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을까 하고 태산 같은 걱정을 했지만, 딸이 워낙 달라붙으니 기꺼이 승낙하기 생각을 바꾸었다. 회사직원들은 모두 퇴근하고 사장은 기사에게 연락하여 가자고 했다. 기사는 승용차를 운전하여 회사 현관 앞에 정차하고 사장을 기다렸다. 사장은 밝은 표정으로 다가와 승용차에 앉았다. 승용차가 회사 밖으로 나가자 사장은 기사에게 딸이 여기 있을 거라며 살펴보라고 했다. 기사가 승용차를 세워놓고 차에서 내려 두리번거리며 찾고 있을 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뒷문을 열고 맹자는 사장 곁에 자리를 잡았다. 태수는 앞쪽으로 가서 조수석에 앉았다. 사장은 기사에게 청사포로 가자고 위치를 알렸다.
검정 색깔의 재내시스 고급승용차는 광안대교를 지나 청사포로 시원하게 달렸다. 잠시 후 청사포에 도착한 승용차는 동서 호텔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모두 내렸다. 동서 호텔 75층 식당에서 뷔페식당 테이블에 둘러앉아 세 사람은 미래에 대한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태수는 딱 잘라 말하지 못하고 네 나중에 환경에 적응하면 그때 시작해도 늦지 않겠다고 했다. 어떻게 하겠다는 뜻인지 구체적으로 말해보라고 했다. 당장이라도 혼례식만 올린다면 곧 시작하겠다고 했다. 사장은 역시 빈틈없는 사내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는 뜻으로 미루지 말고 곧 혼례식을 준비하라고 딸에게 명한다. 태수와 맹자는 혼례식이 끝나자 비행기에 몸을 싣고 알래스카로 가기 위해 구름위로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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