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 [가톨릭 신학] 국가와 교회
나라가 안팎으로 어지럽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교회의 입장에 귀추가 주목되곤 합니다. 간혹, 교회가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한 불편한 시선도 있습니다. 이 시선은 이렇게 질문합니다. “왜 교회가 정치 이야기를 합니까?”, “예수님께서,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마르12,17)라고 말씀하셨는데 왜 교회가 국가에 간섭합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가톨릭 사회교리는, 일단 교권(교회의 권한)과 공권(국가의 권한)이 확실히 구분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교권이 공권보다 앞설 경우, 교회는 정치와 결탁해 세속적 가치를 추구할 위험이 있으며 다른 종교인들과 갈등의 위험이 있고 세속화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공권이 교권보다 앞서게 되면, 종교의 독립성이 방해받게 되고 올바른 윤리적 판단이 결여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국가는 종교와 조화롭고 균형 있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교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이를 존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는 이렇게 자신의 규범에 따라 국가의 개입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가운데 활동하고 교회를 다스릴 권한도 지니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종교가 ‘공동선, 공공질서를 해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결국 우리 가톨릭교회는 현세 질서에 대해 아무런 정치권력을 소유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종교는 오히려 자유를 누리게 되고 정의에 헌신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질문이 제기됩니다. 1987년 6월 항쟁 때 김수환 추기경님은 명동성당에서 농성하는 학생들을 진압하려는 경찰 앞에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경찰들이 학생들을 체포하려면 제일 먼저 나를 밟고, 그다음 신부들을 밟고, 그다음에 수녀들을 밟고 넘어가야 합니다.” 추기경님께서는 왜 이런 말씀을 하신 걸까요? 그 이유는, 교회는 정치 영역에는 관할권이 없지만 적어도 윤리 분야에 있어서는 특별한 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절대적으로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직무’를 가지고 있으며, 이 직무는 정치 생활에 관한 윤리법들에도 해당됩니다. 그러므로 사목헌장 76항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교회가, “인간의 기본권과 영혼들의 구원이 요구할 때에는 정치 질서에 관한 일에 대하여도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정당하다.” 이에 교회는 전쟁과 환경에 대해 그리고 여러 가지 법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으며 정치에 대해서도 윤리적 주제라면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합당합니다. 이는 정치에 대한 관여가 아닌, 세상 안에서 실현되어야 할 하느님의 질서에서 오는 책무입니다. 단, 교구장님께서 올해 성탄절 메시지를 통해 말씀하셨듯, 이것이 분열과 대립을 조장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화해와 일치를 통해 하느님의 질서를 이루고자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지혜와 겸손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바로 여기에 존재합니다.
[2025년 1월 12일(다해) 주님 세례 축일 서울주보 5면,
방종우 야고보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윤리신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