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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회화
우리 나라 회화의 시작은 보통 청동기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는 암각화(岩刻畵)에서 그 최초의 모습을 찾는다. 그러나 그토록 오랜 역사를 가진 회화가 종이, 붓, 먹을 이용하여 본격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한 때는 삼국시대부터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때부터 회화는 사대부와 승려, 직업화가들에 의해 실용적인 목적으로 또는 감상하기 위해 그려졌다.
이들 회화들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필묵의 운용(運用)과 같은 회화기법의 발전을 가져왔으며, 또한 시대정신이 반영된 표현주제도 다양하게 발전하였다. 그러나 현대를 사는 우리들이 전통시대의 회화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각각의 한국화는 서로 비슷비슷하고 현대 서양화처럼 작품의 개성이 한눈에 쉽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에 서양화는 학교 교육을 통하여 그 기초지식을 배웠기 때문에 훨씬 알기 쉽게 느껴진다. 따라서 한국화의 다양한 주제 및 그림이 담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 등을 조사하여 보았다.
1. 산수화
산과 강 등 자연을 소재로 한 한국화의 대표적인 화목(畵目)이다. 동양에서 산수화란 자연의 표현인 동시에 인간이 자연에 대해 지니고 있는 노장사상(老莊思想)에 바탕을 둔 자연관은 토대로 하여 발전된 것이다. 자연과 인간의 이러한 밀접한 관계 때문에 중국과 한국에서 일찍부터 산수화가 그려지기 시작하여 10세기경부터는 회화사의 주류를 이루었다.
(1) 조선시대 이전의 산수화
우리나라에서 회화다운 회화가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4세기경 삼국시대부터인데 이때까지의 소재는 인물의 표현이 중심이었다. 산수화가 그려진 것은 인물화나 타분야에 비하여 좀 늦은 약 5세기 초라고 여겨진다. 이 시대의 회화에 관한 자료는 고구려 고분벽화가 거의 대부분으로, 산수화의 초기 양식도 고분벽화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솔거의 노송도(老松圖) 일화처럼 회화에 얽힌 고사가 전해지기도 하지만 실제로 확인이 가능한 것은 순흥의 고분벽화나 전돌에 표현된 공예적인 산수문양뿐이다. 그러나 다양한 종류의 회화가 발달했던 고려시대에는 산수화가 본격적으로 유행하였고 중국과의 교섭에 의해 북송과 원나라의 화풍도 수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2) 조선시대의 산수화
조선시대가 되면 고려의 전통을 이어가면서 중국에서 받아들인 다양한 화풍을 반영한 산수화들이 발달하게 된다. 산수화의 주제로 자주 다루어졌던 것으로는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 사시팔경도(四時八景圖), 적벽도(赤壁圖) 등이 대표적이다.
조선 초기의 산수화(1392~약 1550)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화풍은 고려시대에 전해졌을 것으로 여겨지는 이곽파 화풍과 남송원체 화풍, 미법산수 화풍이며, 선비화가들은 당시에 새롭게 유행하던 명나라의 원체 화풍과 절파 화풍 등을 부분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조선 중기의 산수화(약 1550~1700)는 초기의 안견 화풍을 계승하면서도 절파 화풍이 크게 유행하였다. 또한 명대의 미법산수화풍을 포함한 남종화풍을 수용하기 시작한 점도 주목된다.
조선 후기의 산수화(약 1700~1850)는 중기에 유행했던 절파 화풍이 쇠퇴하고 남종화풍이 유행하였으며, 남종화풍을 토대로 한국적인 산수화풍인 진경산수화가 크게 발달하였다. 또한 중국으로부터 서양화법이 소개되기도 했다.
조선 말기의 산수화(약 1850~1910)는 남종화가 화단의 압도적인 주류를 차지했던 시기이다. 김정희가 중심이 되어 조희룡, 허련, 전기 등이 활약했으며, 이색적인 구도로 참신한 화풍을 구사했던 김수철과 복고적인 경향의 장승업도 있다.
근대에 이르면 조선 말기부터 크게 유행하던 남종문인화가 계속해서 화단의 주류를 차지하는 상황이 조석진, 안중식 등의 화가에 의해서 이어졌다. 그러나 서양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자유사상에 영향을 받으면서 전통화단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소재면에서는 이전의 상상의 세계를 그리던 것에 비해 생활 주변의 일상적인 장면을 소재로 한 사경산수화(寫景山水畵)가 발달하게 되었다. 표현하는 방법도 단일한 시점에 의한 원근의 처리와 수묵보다는 채색을 즐겨 사용하는 등 다양하고 개성적인 화풍이 많이 생겨났다.
(3) 산수화의 화풍(畵風)
동서양을 막론하고 각 시대나 한 개인 또는 특정한 집단을 대표하는 양식이 있기 마련인데 이를 통칭 화풍이라고 부른다. 그 속에는 당시의 시대정신과 독특한 구도와 필묵법들이 구사되기 마련이다.
각각의 화풍은 나름대로의 독특한 소재와 구도, 바위와 나뭇가지 등에 사용한 준법( 法), 필묵의 운용 등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면서 시ㄷ마다 조금씩 변화를 보였다.
1) 이곽파(李郭派) 화풍: 중국 북송 때의 이성과 곽희에 의하여 성립된 화풍으로 곽희파라고도 한다. 이 화풍은 뭉게구름처럼 보이는 침식된 토산이 화면의 중심부에 위압적으로 배치되며 그 좌우에는 작은 산들이 연이어 용트림하듯이 위치한다. 바위는 아래로부터 빛을 받은 듯한 부자연스런 조명효과를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깉이에 따라 점차 밝게 묘사하여 깊이감을 강조하였고, 공기중의 습기나 시간 및 계절의 변화까지도 포착하여 표현해내는 공기원근법(空氣遠近法)을 완성하였다.
2) 원체(院體) 화풍: 중국의 궁중 화원(畵員)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화풍으로 산수화와 화조화 부문에서 독특한 양식이 생겨났다. 주로 작은 화첩이나 부채 등의 화면에 화려한 채색과 장인적인 기교를 추구한 장식성이 강조된 그림을 그렸다. 형상에 대한 심상의 표현이 적고 대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경향이 강했으며, 한쪽으로 치우친 구도에 산과 바위는 도끼로 자른 듯한 거친 필치로 묘사하였다.
3) 마하파(馬夏派) 화풍: 중국 남송 때의 화원인 마원과 하규에 의해 형성된 화풍이다. 이당의 남송원체 화풍을 근거로 더욱 새로운 화풍을 이룩하여 명나라 초기 절파 화풍의 기초가 되었다. 구도는 화면을 대각선으로 나누었을 때 아랫부분에 치우치며, 그 나머지 부분은 공간을 이루어 여백을 강조하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중국 강남지방의 안개 낀 부드러운 풍경과 이를 감상하는 인물표현이 두드러지고, 준법은 부벽준을 주로 사용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초기에서 중기에 유행하였다.
4) 절파(浙派) 화풍: 중국 명나라 초기의 화가인 대진이 창시하여 오위, 장로 등 주로 화원화가들이 구사하였던 화풍이다. 절파라는 명칭은 이 화풍의 주요 작가들이 대부분 절강성 출신이었던 것에서 유래되었다. 마하파의 화풍을 기초로 하여 중경을 삽입시킨 복잡한 구도와 거칠고 호바한 필치를 사용함으로써 강한 시각적인 효과를 추구하였다.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에 이르면 감각적인 특징을 더욱 대담하게 사용했기 때문에 광태사학(狂態邪學)이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초기에 강희안이 도입하여 중기에 주로 유행했다.
5) 미법(米法)산수 화풍: 중국 북송 때의 문인화가인 미불, 미우인 부자가 창시한 화풍이다. 점을 여러번 겹쳐 찍어서 형태를 표현하는 미점준(米點 )을 사용하여 부드러운 곡선의 흙산이나 멀리 보이는 나무 등을 그린다. 특히 비온 뒤나 짙은 안개ㅏ 낀 습윤한 자연경관을 그릴 때 즐겨 사용하였다.
6) 남종화(南宗畵): 문인화가들을 중심으로 발달하였기 때문에 남종문인화라고도 하며, 약칭하여 남화라고도 부른다. 인격이 높고 학문이 깊은 문인들이 여기(餘技)로 수묵과 엷은 채색을 써서 내면의 세계를 표출한 그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중기에 유입되어 후기의 심사정, 강세황, 이인상을 거쳐 말기의 김정희파에 의해 더욱 큰 세력을 누리면서 근대 화단으로 계승되었다.
7) 안견파 화풍: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화가인 안견의 화풍을 따랐던 화가들의 초칭이다. 이 화풍은 이곽파 화풍을 토대로 형서오디었는데 구도적으로는 경물들이 흩어져 있으면서도 서로 조화를 이루며, 넓은 공간개념 및 단선점준과 같은 필법등에서 한국적인 특징을 보인다. 안견파 화풍은 조선 초기와 중기의 궁중행사나 사대부들의 계회등을 그린 기록적 성격의 그림들이 이 화풍을 따르고 있는 등 지속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8) 진경산수(眞景山水) 화풍: 대체로 17,18세기에 등장한 실학사상과 때를 같이하여 나타난 경향으로 재래의 화보를 본받아 그리던 산수에서 벗어나 직접 사생(寫生)을 통하여 실경을 그린 실경산수의 일종이다. 정선의 작품들은 '동국진경'이라 하여 높이 평가를 받는데, 그것은 종래에 중국화가들이 그린 작품들을 무조건 베낀다거나 관념적으로 산수를 그리던 풍조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4) 산수화의 주요 주제
현존하는 회화작품은 조선시대의 것이 대부분이고 그것도 15세기 이후의 것들이다. 조선시대에는 다양한 장르의 일반회화가 발달되었으며 다루어진 주제도 중국적인 것, 한국적인 것으로 다양하다. 특히 산수화는 중국과 중국화의 영향을 받은 일본의 경우도 그렇지만 오랜 세월을 두고 동일한 주제의 그림이 반복되어 제작되었던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이것이 옛 회화를 대할 때 느끼는 특이한 점으로 서로 다른 작가가 동일한 주제를 시대와 각자의 개성에 따라 어떻게 그려냈는지도 흥미롭다.
1)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
중국의 소강과 상강이 만나는 동정호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여덟 장면으로 그린 것이다. 조선 전기의 작품으로는 안견이 제작한 것으로 전하는 소상팔경도가 있으며, 조선 후기에는 백자청화의 공예적 문양으로도 많이 그려진 주제이다.
2) 사시팔경도(四時八景圖)
사계절의 변화를 초봄, 늦봄, 초여름, 늦여름, 초가을, 늦가을, 초겨울, 늦겨울의 여덟 장면으로 묘사한 그림이다. 각 그림은 구도상으로 볼 때 한쪽으로 무게가 치우치는 일각구도 또는 변각구도이기 때문에 초봄과 늦봄 등 각 게절마다 한쌍씩 마주보게 세트화되는 특징이 있다.
3) 적벽도(赤壁圖)
북송의 소동파가 호북성의 명승지인 적벽강을 유람하고 지은 <적벽부>를 소재로 그린 것이다. 폭포수가 있는 산의 정경이 보이고, 그 앞에는 배 위에서 벗과 함께 이 절경을 감상하고 있는 소동파가 등장한다.
2. 인물화
산수화와 더불어 동양회화의 주요한 분야로 유교적인 현실주의와 교화주의를 바탕으로 전개되었다. 주제에 따라 고사의 인물, 도교나 불교 주제의 인물, 풍속화, 초상화 등으로 나뉘어진다. 화풍은 대체로 필선의 변화 없이 유려하게 다루는 고개지(顧愷之) 양식과 필선의 굵고 가는 차이를 주는 오도자(吳道子)양식으로 크게 나뉘어 변천하였다. 고구려 시대의 고분벽화를 중심으로 발달하기 시작하여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한국적인 화풍을 형성하는 데 기여한 바 있다. 특히 초상화의 발전은 괄목할 만하다.
(1) 고사인물화
옛이야기 속의 인물을 주제로 하여 그 인물처럼 되고자 하는 소망을 표현한 그림이다. 가장 많이 알려진 화제로는 행락도(行樂圖), 탁족도(濯足圖), 관폭도(觀瀑圖) 등 다양하다.
1) 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 중국 당나라 때 안록산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분양왕에 봉해지고 평생 벼슬에서나 가정생활에서 한번의 액운도 없었으며 늙어서는 자손들을 많이 얻어 부를 누렸다는 곽자의의 생활을 묘사한 것이다. 화려한 집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노니는 자손들을 즐겁게 지켜보는 노부부를 화려한 채색으로 그렸다. 우리나라에서는 부귀영화와 오복을 누린 표본으로 조선 후기에 많이 그려졌다.
2) 탁족도(濯足圖): 산간계속의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도사를 그린 것으로 단오날 임금이 이 그림을 그려넣은 부채를 만들어 신하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더욱이 이 그림은 <맹자> 이루(離婁)편의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닦는다'는 구절과 관련되어, 모든 일은 자기가 처신하기에 달렸으므로 각기 수신에 힘써야 한다는 내용을 형상화한 것이다.
3) 관폭도(觀瀑圖): 폭포를 바라보는 인물을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의 주제는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중국 강서성 여산에 있는 폭포를 바라보고 지은 <망여산폭포수>라는 시에서 왔다. 여산은 그 경치가 뛰어나서 여산진면목(廬山眞面目)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인데 특히 폭포경치가 빼어나다고 한다.
4) 송하인물도(松下人物圖): 소나무 아래 비스듬히 누워있거나 앉아서 솔바람 소리를 듣는다든지 술을 거르는 인물을 그린 그림이다. 여러 가지 고사가 있지만 가장 유명한 인물은 속세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와서 유유자적한 도연명으로, 그를 흠모하여 그가 남긴 <귀거래사>의 내용을 형상화한 것이다.
(2) 도석인물화
도교적인 주제의 인물화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신선도이며, 불교적인 주제으 ㅣ인물화는 선종화나 조사도, 나한도 및 산신도 등이 포함된다. 신선도에서는 신선마다 가지고 있는 물건들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그 도상(圖像)을 살펴보면 그림 속에 등장한 신선을 알 수 있다.
(3) 풍속화
일상적이고 평범한 생활의 정경을 소재로 그린 그림이다. 풍속화의 주인공도 인물이지만 초상화처럼 특정한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풍속화의 주제는 자연과 사회를 배경으로 이루어지는 다양한 인간사를 표현한 것과 일상적인 모습을 그린 것의 두 가지로 대별된다. 먼저 넓은 의미의 풍속화는 인간의 여러 가지 행사나 일상생활을 표현한 그림이다. 즉 왕실이나 조정의 각종 행사를 비롯하여 다양한 계층의 관혼상제와 세시풍속 같은 것들을 묘사한 그림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와 달리 좁은 의미의 풍속화는 서민들의 잡다한 생활모습, 양반들의 유한(遊閑), 농사풍경 따위를 다룬 것이다.
1) 조선 이전의 풍속화: 조선 이전의 풍속화로 가장 대표적인 것은 고구려 고분벽화로, 50여 기의 고분 중에서 4세기에서 6세기에 제작된 초기와 중기의 것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 시기의 고분들은 다실묘(多室墓)였기 때문에 벽화를 그릴 공간이 충분했고 다양한 내용을 담을 수 있었다. 이들 벽화의 내용에는 행렬도, 수렵도, 무용도와 같은 각종 행사를 그린 그림들과 부엌, 방앗간, 푸줏간, 마굿간 등 당시 생활과 직결된 내용들이 묘사되어 있다.
2) 조선시대의 풍속화: 조선시대에는 초기부터 여러 기록화들에 풍속적인 요소가 많이 그려졌다. 한국적인 풍속화가 절정을 이룬 시기는 조선 후기로 당시 실학사상이 발달하면서 민족의 자의식을 고취하였기 때문이다. 즉 산수화 분야에서 한국적인 산수화라고 할 수 있는 진경산수가 발달하였듯이 인물화 분야에서는 풍속화가 대단히 유행하였다. 무엇보다 이 시대 풍속화의 백미는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묘사한 그림들이라 할 수 있다. 김홍도는 주로 서민을 대상으로 하여 원형이나 X자형 구도를 이용한 짜임새있는 포치와 강하고 생명력있는 필치로 인물을 묘사하였고 신윤복은 주로 한량(閑良)과 기생들의 로맨스를 소재로 하였으며 산수를 배경으로 부드러운 필선과 세련된 색채를 구사하여 에로틱한 장면을 표현하였다.
(4) 기록화
어떤 역사적인 사건이나 특정한 인물들을 사실에 충실하게 그리는 기념적인 그림이다. 조선 초기부터 각종 궁중행사를 그린 진찬도(進饌圖), 반차도(班次圖), 연회도(宴會圖), 능행도(陵幸圖) 등의 의궤도를 비롯하여, 사대부들 사이의 기사계, 독서당계, 하관계, 연정계 등과 같은 계모임(契會)을 기념하는 계회도, 그밖에 임진홰란과 같은 국가적인 사건을 주제로 하여 그린 동래부순절도와 같은 그림들이 이에 해당된다. 기록화처럼 사건이나 행사를 그릴 때에는 가장 극적인 장면을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며 정확하게 사실을 묘사하기 때문에 당시의 풍속이나 풍물을 잘 알게 해준다.
1) 의궤도(儀軌圖): 궁중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의식행사의 내용을 기록한 의궤를 소재로 그린 그림이다. 궁주행사의 의식과 늘어선 관원들을 정확히 배치하며, 그림의 앞과 뒤에는 행사의 내력과 좌목(座目), 참가인원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서 고증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부감법을 사용하여 행사 전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처리하였고, 세필과 진채로 정성껏 그렸으며 건물은 계화법(궁궐이나 누각등의 건축물을 자로 대고 정밀하게 그리는 기법)으로 처리하였다.
2) 계회도(契會圖): 사대부들의 계회를 기념하여 그렸던 그림이다. 풍류를 즐기고 친목을 도모하는 데에 목적을 두었던 계회는 만 70세 이상의 문인사대부를 대상으로 한 기로회와 관아의 동료나 과거를 함께 본 동년 또는 그 밖의 친구들끼리의 모임인 일반 계회가 있다. 계회도는 모임을 기념하고 기록하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참가자 수만큼 여러 장 그린 후 나누어가졌다. 따라서 계회도를 자세히 살펴보면 똑같이 여러장을 그리기 위해 붉은 줄을 사용하여 화면을 귀획한 흔적을 흔히 볼 수 있다.
(5) 초상화
나름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특정인물을 그린 그림이다. 옛날부터 초상화는 터럭 한 올이라도 닮지 않으면 안된다는 취지 아래 대상인물을 똑같이 그리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에 못지 않게 인물묘사를 통하여 그 속에 숨겨져 있는 정신을 그려야 한다는 의미의 '전신사조(傳神寫照)', 즉 전신이 강조되었다. 이는 인물의 외적인 생김새를 본따서 그리는 사형은 언제나 변할 수 있는 피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외적인 특질을 뛰어넘어 그 사람만이 지니고 있는 불변의 본질을 나타내야 함을 뜻한다.
1) 조선이전의 초상화: 이미 고구려시대의 고분벽화를 통하여 삼국시대부터 초상화가 그려졌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현재 남아있는 유물은 극히 빈약한 상태이다. 고려시대에 들어오면 왕과 왕비의 초상화를 봉안했다는 기록이 여러 차례 보이며, 아울러 공신 및 일반 사대부들의 초상화 등도 제작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역시 남아있는 작품은 소수에 불과하다.
2) 조선 전기의 초상화: 우선 조선 전기에는 어진을 비롯하여 많은 공신상이 제작되었다. 이때는 얼굴을 옅은 황토빛의 살색으로 칠한 후 이목구비를 얼굴색보다 조금 짙은 살색선으로 그려나가는 특징을 보이며, 옷의 윤곽선 및 주름을 상징적인 몇 개의 선으로 그리고 있다. 따라서 선이 중심이 된 표현을 하기 때문에 간결한 느낌을 준다.
3) 조선 중기의 초상화: 조선 중기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과 같은 전쟁 및 반정과 같은 각종 정치적인 사건으로 인해 혼란스러웠던 시기로 공신상이 많이 제작되었다. 얼굴을 옅은 담홍색의 살빛을 주로 칠하고, 전기의 선을 위주로 하던 화법을 계속 이어가면서 그 위에 새로운 기법을 시도하였다. 즉 얼굴의 높고 낮은 형태를 표현하고자 하였는데 이것은 동양 전래의 오악사상에 근본을 두고 있어 주목된다.
4) 조선 후기의 초상화: 조선 후기에 공신상은 거의 제작되지 않고 어진과 일반 사대부상이 활발하게 제작되었다. 이 시기에는 이전과는 달리 아주 새로운 기법이 사용되었는데, 훈염법의 사용이 그것이다. 훈염법은 중국 명나라 말기에 중경이라는 화가에 의해 시도된 것으로 얼굴을 하나의 커다란 마당으로 보고 얼굴을 움푹한 부분에 붓질을 거듭함으로써 어두운 느낌을 주고, 도드라진 부분은 붓질을 덜하여 밝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
3. 영모,화조화
새와 짐승, 꽃 등을 소재로 하여 그린 그림이다. 영은 새의 날개 깃털을 의미하며 모는 짐승의 털을 의미하지만, 일반적으로 영모라 할 때는 새그림만을 칭하다가 근세로 내려오면서 새와 짐승의 그림을 모두 영모화라고 일컫게 되었다. 화조화 역시 꽃과 새를 소재로 하여 그린 것이며 초충도, 화훼도 드도 크게는 이 범주에 넣을 수 있다 .이들 그림의 소재가 되는 여러 가지 꼬과 새는 대부분 동양문화의 오랜 전통에서 생겨났기 때문에 각각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즉 모란꽃은 부귀를, 원앙새는 부부애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예이다.
(1) 영모화조화의 분류
1) 영모화: 새와 짐승인 금수를 그리는 것으로, 본래는 새그림만을 지칭하였으나 점차 새와 짐승의 그림까지를 통칭하는 넓은 의미의 영모화가 생겨났다. 중국에서는 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사실적인 묘사능력이 뛰어난 화원들이 주로 그렸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사대부화가와 화원 모두에게 애호되었다. 또한 영모화를 그린 화가들은 섬세하고 치밀한 필치에서 활달한 필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구사하여 한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겨나는 그림을 그렸다.
2) 화조화: 중국 오대의 황전과 서희 이후 본격적으로 그려지다가 북송대의 궁중 화원들에 의하여 더욱 발달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공민왕의 작품으로 알려진 화조화를 비롯하여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많은 화조화 작품이 전해내려오며 기법도 구륵법과 몰골법이 고루 사용되었다.
3) 초충도: 풀과 벌레를 주제로 한 그림이다. 풀 초라는 글자는 여러 가지 꽃과 과일등을 포함하는 말로 초충도에는 실제로 다양한 식물과 곤충들이 다루어진다. 일반적으로 초충도는 세필을 요하는 그림이어서 사실적인 묘사기법에 익숙한 화원들이 많이 그렸다.
4) 화훼도: 꽃과 풀 또는 꽃피는 식물을 그린 그림이다. 문인화의 발달에 따라 많이 제작되었는데, 매란국죽의 사군자 수묵화도 엄격히 말하면 이 범주에 속한다.
(2) 소재와 상징적 의미
한국화의 화가는 나타내고자 하는 글의 뜻을 미리 정하고 이것을 회화의 소재로 바꾼 다음 화면에 알맞게 배치하였다. 따라서 선택한 두 소재가 계절이 달라 이치에 맞지 않는 점이 있더라도 그 의미에 충실하기 위하여 함께 그렸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오랫동안 그림 속에 상징적인 의미를 담아서 반복적으로 그렸으므로 거의 비슷한 주제의 그림이 많다.
1) 노안(老安): 갈대의 노(盧)와 기러기의 안(雁)을 결합하여 그린 것이 노안도이며, 이 그림이 크게 유행한 이유는 '늙어서 편안하게 지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2) 백록(百綠): 향나무와 사슴을 그린 그림은 향나무 백(柏)과 사슴 록(鹿)의 음을 빌려서 온갖 벼슬을 받는 복록을 뜻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사슴 백마리를 그린 그림 또한 백록도(百綠圖)가 된다.
3) 모질( 牲): <예기>에서는 80,90세를 모( )라고 하는데, 그 중국음은 고양이 묘(描)자의 음과 같다. 중국에서 80세의 노인이라는 뜻의 질(牲)은 나비 접(蝶)자와 중국음이 같으므로 모질의 두 글자에 해당되는 동물인 고양이와 나비를 결합하여 나타낸다. 그러므로 80세나 혹은 90세를 살아서 장수한 것을 축하하는 의미로 고양이나 나비를 그렸다.
6) 연생귀자(連生貴子): 우리나라의 경우 원앙새는 부부간의 금슬을 상징하지만 중국에서는 금슬이 좋은 부부에게서 영리한 자식이 나온다고 보아 귀한 자식이라는 뜻이 있다. 원래 연꽃은 7월에 피며, 철새인 원앙새는 더운 여름에는 볼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함께 그려서 '귀한 자식을 연이어 잉태한다'는 뜻을 나타내고자 했다.
7) 해로(偕老): 바다새우는 등이 굽어서 바다의 늙은이(海老)라는 별칭이 있는데, 그러한 새우의 모습은 부부가 한평생 같이 지내며 함께 늙는 해로를 뜻하게 된다.
8) 금여만당(金餘滿堂): 금붕어는 중국어에서 금여와 서로 통하기 때문에 금붕어를 가득 그린 그림은 '금은보화가 집안에 가득한 부자가 되라'는 뜻이 된다.
4. 문인화, 사군자
직업적인 화가가 아닌 사대부 선비 계층의 사람들이 취미나 여기로 그린 그림이다. 화가의 내면세계나 사의를 표현하여 간결하면서도 격조 높은 문인풍의 그림을 가리키기도 한다. 즉 문인들은 그림 그리는 것을 직업으로 하지 않으므로 그리고자 하는 대상의 외형을 충실히 묘사하는 대신 자신의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생각을 자유롭게 펼치는 묵희(墨戱)의 대상으로 삼았다.
(1) 문인화
시인이나 사대부들이 취미삼아 그리던 그림으로, 화원이나 직업화가들이 짙은 채색과 꼼꼼한 필치로 외형을 묘사하여 그린 북종화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남종화라 부르기도 한다. 북종화와 남종화의 구분은 명나라 말기에 동기창과 막시룡이 당나라 때의 선종을 남북으로 구분하던 것을 따라서 회화를 화가의 출신 성분과 화풍에 의하여 구분 지은데서 생긴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남조화가로 분류된 사람들을 보면 화가의 출신성분이나 직업이 화풍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더욱이 명대 말기에 이르면 남종화는 구도, 필묵법, 준법, 수지법 등에서 정형화가 이루어져 이 때부터 남종화를 숭상하고 북종화를 업신여기는 풍조가 생겨나 문인화가뿐만 아니라 직업화가들에게까지 남종화가 널리 파급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조선 중기에 중국으로부터 남종화가 들어오기 시작하 는데 중국과는 달리 대체로 화가의 출신성분이나 신분 또는 학식에 관계없이 진보적인 문인화가들에 의해 먼저 받아들여졌다.
(2) 사군자
춘하추동에 해당되는 네가지 식물, 즉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그린 그림이다. 매화 이른 봄의 추위를 무릅쓰고 제일먼제 꽃피우며 난초는 은은한 향기를 멀리까지 퍼뜨리고, 국화는 늦은 가을에 첫 추위를 이겨내며, 대나무는 겨울에도 푸른 잎을 계속 유지한다는 각 식물 특유의 장점을 군자, 즉 학식을 갖춘 사람의 인품에 비유한 것이다. 사군자는 다른 소재에 비해 형태가 비교적 간단하여 서예의 기법을 이용하여 그릴 수 있으므로 서예와 동일시되기도 하였다. 즉 글씨가 그 사람의 인품을 반영한다는 원리의 연장으로 사군자도 화가의 인품을 반영한다고 믿어 문인화의 소재로 유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사대부들이 묵죽, 묵매를 그렸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 시대에 들어오면 사대부는 물론 화원들도 대나무 그림을 많이 그렸고, 또한 15,16세기부터는 백자의 표면에도 나타났다. 사군자화의 기법이 일반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조선후기에 <개자원화보>가 전해지면서부터이며, 특히 남종문인화의 본격적인 유행으로 널리 그려지게 되었다.
5. 민화
일반 서민들이 애호하던 그림으로 생활공간을 장식한다거나 민속적인 관습으로 제작되었던 실용화를 가리킨다. 민화는 대개 본격적인 미술수업을 받지 않은 무명화가이거나 떠돌이 화가들이 그렸으며, 서민들의 일상생활 양식이라든지 관습 등에 바탕을 두고 발전했기 때문에 일회적인 창작이기보다는 반복적이고 형식화된 유형에 따라 계승되었다. 따라서 민화는 일반회화보다 묘사의 세련도나 품격이 뒤떨어지지만, 익살스럽고 소박한 형태와 대담한 구성, 현란한 색채로 특징지워지는 양식은 오히려 한국적인 미의식을 강하게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일상적인 생활과 밀착되어 세시풍속과 같은 행사용으로 제작하거나, 집안 곳곳의 문, 벽장, 병풍, 벽 등을 장식하거나, 또는 여러 가지 나쁜 귀신을 막는 주술적인 성격의 액막이 그림으로도 그려졌다. 따라서 민화는 그 내용이나 발상등에서 일반회화보다 한국적인 정서를 더 많이 반영한 그림이라 할 수 있다. 민화의 화제는 일반 서민들이 항상 꿈꾸던 아들딸 많이 낳고 높은 벼슬에 올라 호의호식하면서 장수하고자 하는 기복적인 내용을 반영하고 있다.
(1) 십장생도
늙지 않고 오래도록 장수하고자 하는 염원을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10가지의 자연물로 구성한 그림이다. 해, 달, 산, 물, 구름, 돌, 소나무, 거북, 사슴, 학,대나무, 불로초, 복숭아가 있다. 이와 같은 소재는 중국의 신선사상에 바탕을 두고 전개되어 왔지만 이를 조합하고 도식화한 것은 우리나라만의 독창적인 것이다. 십장생도는 주로 정월 초에 새해를 축하하고 복받기를 기원하던 세화나 회갑등에서 장수하기를 희망하여 그려졌던 그림이며, 일정한 형식과 도식적인 형태에 짙고 화려한 채색을 하여 장식적인 성격을 강조하였다.
(2) 효제문자도(孝悌文字圖)
삼강오륜을 비롯한 유교적인 윤리관을 나타내는 여덟 글자를 그림으로 풀어서 나타낸 것이다. 여덟글자는 효(孝), 제(悌), 충(忠), 신(信), 예(禮), 의(義), 염(廉), 치(恥)이며, 효제도는 크게 볼 때 문자도의 일종이다. 문자도는 글자와 그림이 결합되는 형식으로 구성되는데, 글자의 획 속에 각 글자에 해당되는 중국의 고사를 그림으로 그렸기 때문에 고사도의 일종이기도 하다. 각 글자 속에는 서너 가지의 유명한 일화가 복합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후대로 내려오면 글자의 획이 흐트러지고 일화의 내용보다는 상징할 수 있는 소재가 문양화되면서 전체적으로 장식적인 양상을 띤다.
(3) 책거리그림
책을 비롯하여 선비와 관련이 깊은 문방구와 각종 기물들을 조합하여 구성한 그림이다. 형식은 크게 탁자를 중심으로 배열되는 경우와 서안을 중심으로 배열되는 경우의 두 가지가 있다. 탁자를 중심으로 한 책거리 그림은 서야화법에 의한 입체법과 불완전하나마 투시도적인 원근법을 사용하고 있다. 서안 책거리 그림은 전통적인 역원근법으로 처리한 경우가 많다. 주로 사랑방이나 서재를 장식하는 병풍그림이 많다.
(4) 평생도
옛날 사람들이 가장 바람직한 생활이라고 생각했던 삶의 내용을 태어나고 자라서 벼슬하고 죽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려놓은 그림이다. 주로 여덟 폭 병풍으로 되어 있는 평생도의 주요 내용은 돌잔치, 글공부, 장원급제하여 어사화를 꽂고 사흘 동안 거리를 순회하는 유가놀이, 사모관대 차림으로 말을 타고 결혼하러 가는 신행길, 지방의 현감이 되어 부임하는 감사도임, 다스리는 마음을 관내순시하는 그림 및 환갑잔치를 하고 늙어서 왕의 예우를 받는 봉조하의 그림들이 주제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