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산조 페르시아 제국의 영토 지도의 모습. 두가지 버젼이다.
고대로부터 중세로 이어지는 기간에 중동과 오리엔트 지방을 다스린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은, 어찌보면 페르시아인들의 마지막 강대국일수도 있다.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이 무너진 이후에는
아랍인들의 이슬람 제국과 투르크인들의 제국를 거쳐서 현대에까지 이르기 때문이다.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사산왕조, Sassanid Empire)은
224년부터 651년까지 이란 지방을 중심으로 오리엔트 지방을 다스렸던 제국으로서,
사산(Sassan)이라는 이름은 이 제국의 국교인 조로아스터교의
아나히드 여신의 사제였던 "사산"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기원전에 존재하였던 페르시아인들의 초강대국 아케메네스 왕조와 구별되는 제국이다.
사산왕조는 224년에 중동제국의 패자이자,
로마제국 전성기의 거의 유일한 독립왕국이라고 할 수 있었던
파르티아왕국을 무너뜨리고 설립된 제국이다.
중동의 패자(覇者)답게 넓은 영토를 영향권 아래에 두고 있었고,
본격적으로 쇠락기에 접어든 로마제국의 잠재적인 적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당시 유럽과 아시아의 초강대국이었던 로마제국과 수많은 다툼을 벌였고
로마제국이 무너진 이후에는
로마제국의 후신인 동로마제국(비잔티움제국)과도 대립각을 세웠다.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이 역사의 한 페이지에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을 확실히 아로새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260년경 로마제국의 황제였던
발레리아누스를 전투에서 사로잡아 포로로 삼았기 때문인데,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의 표현에 따르면,
로마제국의 황제가 이교도의 제국에 포로로 잡힌 일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오늘날로 따지면 완전 특종감이었을 것이다.
한때 지중해와 오리엔트 세계를 호령하던 절대강자 로마제국의 황제가
적국에 사로잡히다니 로마 제국의 위상을 생각하면 지금도 놀랍기 그지 없다.
※ 발레리아누스 황제는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에 포로로 사로잡힌 뒤에
결국 로마 제국으로 귀환하지 못하고,
결국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에서 일생을 마감하였는데,
그때 그의 아들이자 로마 제국의 후임 황제였던 갈리에누스는 내전을 치르느라 바빠서 아버지 구출은 생각도 못했었다.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은 이후에 6세기까지 전성기를 지내고 큰 위세를 떨쳤으나,
결국 651년 마지막 왕이었던 야즈데게르드3세가
무함마드(예언자 마호메트)의 이슬람 제국에 패함으로써
붕괴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이로 인해서 아시리아 제국 -메디아 제국 -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 제국 -
알렉산드로스 제국 - 셀레우코스 왕조 - 파르티아 왕국 -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으로
이어지는 중동 오리엔트의 패자의 계보는 7세기부터 이슬람 세계로 재편된다.
이러한 것은 13세기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오리엔트의 새로운 패자로 등장할 때까지
이어지게 된다.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의 군주 계보도.
총 26명의 군주가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을 다스렸고,
2대 왕이었던 샤푸르 1세때 강력한 힘을 발휘하였다.
그리고, 531~579년에 재위하였던 호스로 1세가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의 부흥을 이끈 왕이었다.
마지막 군주는 632~651년까지 재위하였던 야즈데게르드 3세.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의 2대 왕인 샤푸르 1세가
로마제국 황제 발레리아누스를 사로잡은 장면을 새긴 부조.
오른쪽 부분에 말에 타고 있는 것이 샤푸르1세고, 서있는 사람이 발레리아누스 황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