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식품부 예산 20%가 쌀 산업에 투입될 판
쌀값 폭락에 농가 수익성 악화…거대농만 생존 가능
“정부 역할은 위기 시 제동…수급 문제 시장에서 풀어야”
2월 28일 충북 청주시 서원구의 정부양곡창고 장원산업에 800㎏ 쌀 포대 수백개가 쌓여 있다. /김민정 기자
더불어민주당의 주도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이 법이 실제로 시행돼 쌀 의무격리가 이뤄지면 2030년 쌀 산업에만 국가 재정이 3조5000억원 이상 투입된다는 추계가 나왔다.
28일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의뢰한 ‘시장격리의무화 효과 분석’ 자료에 따르면 오는 2030년 초과생산한 쌀을 격리하는데 1조3856억원, 공익직불금으로는 2조1007억원이 각각 소요되는 것으로 추산됐다. 쌀 산업에만 3조5000억원이 투입되는 것이다. 이는 2023년 기준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 1년 예산(17조원)의 20%에 달하는 금액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양곡법 개정안을 시행하면 농식품부가 추진하는 다른 사업을 중단해야 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여기 저기서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축산관련단체협의회는 “소·돼지 가격 하락, 사룟값 폭등, 수입축산물 관세제로화 등으로 축산분야 예산 확대가 절실한 상황인데 이번 법 개정이 강행되면 축산분야 예산 축소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의무매입을 하면 쌀 과잉생산 구조가 고착돼 쌀값이 계속 하락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쌀값 하락세는 농가의 마진율 감소로 이어진다.
농경연은 의무매입 시행 후 2030년 쌀 1가마(80kg)의 가격이 17만2700원대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15일 산지 쌀값 평균 가격은 1가마당 18만4000원이다. 쌀값이 이정도로 떨어지면 순수익률은 2.6%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농가가 쌀 생산으로 10억원의 수입을 내도 농가가 취하는 소득은 2600만원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그래픽=손민균
쌀로 10억원의 수입을 내려면 463t을 팔아야 한다. 463t의 쌀을 생산하려면 90ha(헥타르)의 논이 필요하다. 90ha는 27만평으로, 골프장 18홀의 평균 면적에 해당한다. 현재 농가 호당 평균 경지 면적은 1.50ha(농경연 농업전망 2023)에 그친다. 대부분의 농가가 쌀 농사 만으로 생계유지가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태연 단국대 환경자원경제학과 교수는 “쌀 생산비용이 오르는데, 쌀값은 계속 하락하면, 쌀 농사 기대수익과 생산 비용이 비슷해지는 지점이 올 수 있다”면서 “이럴 경우, 농가에선 수익성이 좋은 다른 작물로 재배를 전환해야 하는데, 양곡법 개정안은 이러한 전환을 못하게 막는 효과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작물 전환이나 품질 관리에 대한 관심이 없는 농가들은 결국 최저 수준에서 보상을 받으면서 쌀 농사를 짓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농민단체들도 의무매입이 몰고 올 과잉 생산과 쌀값 하락을 걱정하고 있다.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는 “쌀의 경우, 기계화율이 높아 상대적으로 재배가 쉬운 만큼 판로에 대한 부담이 해소되면 타 작물로 유인하는 것이 쉽지 않아 수급 조절 기능이 악화될 것”이라며 “쌀 가격 하락 뿐만 아니라 수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밀·콩 등 자급률 제고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식량안보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쌀값 하락을 예견하는 일부 농민단체들은 의무격리제에서 그칠 게 아니라 ‘직불금 상향’과 ‘최저단가제’ 등의 농가 소득 보전 방안까지 요구하는 상황이다. 쌀에 대한 재정 투자를 더 늘리라는 것이다. 최저단가제는 쌀 생산 비용에 적정 마진을 붙여 가격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수요·공급이 아닌 생산단가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한다. 현재 국내에서는 우유의 가격을 ‘최저단가제’ 형태로 정하고 있다. 이 같은 최저단가제는 과잉 생산과 물가 상승을 유발한다. 저출산으로 우유 소비는 감소하는데도 가격을 보장해주니 낙농가로선 생산을 줄일 이유가 없다. 결국 이러한 비용은 국민들에게 ‘비싼 우윳값’으로 돌아온다.
김종인 농경연 연구위원은 “수급과 가격은 시장에서 풀어야 하는데, 시장을 통하지 않고 정부나 다른 통로를 통해 해결하려는 것은 좋은 방안이 아니다. 정부 역할은 쌀 시장이 급격하게 무너질 때 제동을 거는 정도여야 한다”면서 “쌀 산업의 수익성과 농가의 소득 문제는 농업 구조조정의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