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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수행후기가 핵심을 벗어난 것 같다. 후기를 쓰는데 자꾸 매치가 안되었다. 이게 전부일까? 본래가 준 또다른 각성은 없을까? 있다면 무엇일까? 혼란스러웠다. 온힘을 다해 열성껏 돕던 자운선가 식구들 덕분에 이번 수행을 통해 얻은 게 너무 많아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수행후기에 달린 도반님들의 댓글을 읽다가 문득 알게 되었다. 찌질이 프로그램을 통해 본래가 나한테 준 미션은 오로지 나 한사람의 이익과 감정에만 충실해 주변을 헤아리지 못했던 내가 그 마음이 되어 느껴 보라는 강력한 메시지였음을.
어쩐지 수행 다녀와서 자꾸만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르며 깊은 참회가 일어났고 지난 이틀동안 아버지 생각을 할 때마다 오른손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심하게 떨렸다. 옆에 있던 여동생에게도 "언니가 너와 막내를 무릎 꿇게 해놓고 바닥에 돈을 뿌리면서 '이 거지새끼들아! 얼른 와서 주어가!'하고 무시하는 게 마음으로 보여서 무척 괴롭구나! 그동안 내가 너희들을 겉으로는 챙겨주는 척 했지만 속으로는 엄청 깔보고 우습게 대했더라. 언니가 잘못했다. 이번 수행을 다녀와서 왜 이렇게 내 눈앞에 내가 식구들을 대했던 모습이 적나라하게 펼쳐지는지 모르겠다."라고 했다. 온가족과 주변을 대했던 그 마음이 느껴지니 무척 괴롭다. 특히 아버지!
아버지! 내가 늘 <김해 김씨네 혈관에서 흐르는 냉정한 피>라며 둘중에 하나가 죽어야 이 악연이 끝난다고 여겼던 아버지!
북한에서 태어나 세살때 할아버지 등에 업혀 두만강을 건넜던 아버지는 고향이 너무 그리워 스무살때 할아버지 몰래 도로 북으로 갔다. 하지만 거기서 탄광에 배치하는 바람에 한주만에 뗏목을 얻어 타고 다시 중국으로 건너왔다. 아들이 실종되자 두만강에 나가 연며칠 눈물로 날을 지샌 할아버지를 위해 아버지는 마음 잡으려고 취직을 하고 예쁜 여자를 사귀었다. 하지만 몇년뒤 실연당하자 화김에 엄마에게 청혼했다. "혼인은 인생대사인만큼 심사숙고함이 어떠하오리! 애비를 보면 그 딸을 안다고 했거늘!"하고 할아버지가 극구 만류했으나 아버지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결혼을 밀어 붙였다. 그뒤 내가 태어났고 아버지는 무슨일에서인지 누명을 쓰고 시골로 쫓겨나는 바람에 나는 유년시절을 시골에서 보내게 되었다.
어렸을 때 나는 늘 아버지가 그리웠다. 30여 가구가 사는 자그만한 시골마을은 대낮에는 한없이 고요하고 평화로웠으나 밤에는 늘 지축을 울리는 탱크소리가 초가삼간을 뒤흔들었다. 쏘련과의 전쟁을 대비해 마을을 둘러싼 산에 굴을 뚫고 탄약과 기타 군수용품을 실어나르느라고 탱크와 군용트럭이 쉴새없이 드나들었다. 우리집 사랑채에는 일곱명의 중국 군인들이 들어와 있었는데 나는 말이 통하지 않는 그들이 두려운 나머지 늘 사냥 나간 아버지가 빨리 돌아왔으면 하고 집밖에 나가 기다렸다. 어쩌다가 동구밖에 어깨에 노루를 걸친 아버지가 나타나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거의 내 옆에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때 나는 누명을 벗은 아버지를 따라 도시로 올라왔다. 전학하자마자 학교에서 조직한 단체활동에 참가했는데 허허벌판에 마련된 공개처형장소로 가야만 했다. 해마다 이른 봄과 늦은 가을에 이벤트마냥 진행되는 공개처형은 모든 학교 학생들과 직장인들이 꼭 빠짐없이 참석해야만 하는 행사였다. 이미 여러차례 경험한 도시애들은 오늘하루 공부를 땡땡이 칠수 있어 너무 좋다고 재잘댔지만 나는 몹시 불안했다. 하필이면 정면으로 마주있다 보니 질질 끌려온 사람들이 총에 맞아 픽픽 쓰러지는 것을 두눈으로 똑똑히 볼 수 밖에 없었다. 소달구지를 끌고 온 가족들이 시체를 거적에 말아 싣고 가자 나는 그 현장에 가보았다. 풀숲에 동그란 뭔가 떨어져 있어 주었더니 탄알이 박히면서 떨어져 나간 사형수의 두피였다. 머리카락이 뾰족뾰족 돋은 두피가 너무 징그러워 온몸에 소름이 확 돋았다. 속이 울렁거리고 토할 것만 같았다. 나는 몇리 길을 미친듯이 뛰어 집으로 돌아왔다. 앞마당에서 마침 외출하려고 집문을 나서는 아버지를 보았다. "아부지!…" 내가 막 말을 걸려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버럭 화를 냈다. "이 사람질 못할 것아! 못된 송아지 뿔부터 난다고 얼굴에다 왜 연지를 벌겋게 처바르고 난리야?" "그게 아닌데요" "뭐가 아니아? 어서 씻어내지 못할까? 이 썩을 놈의 계집애야!" 아버지는 쯧쯧쯧 혀를 차며 한심하다는 듯이 나를 쏘아보고는 휙 나가버렸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그때부터 싹튼 것 같다.
엄마처럼 살기 싫었던 나에게는 부엌 공포증이 있었다. 부엌에 들어가 밥을 하면 엄마같은 여자가 될것만 같아 두려웠다. 그래서 마당을 쓸고 텃밭을 가꿀망정 절대 부엌에 들어가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눈에 가시처럼 여기며 나한테 빗자루를 확 집어 던졌다. "부모자식간에도 일이 사랑이라 했다. 게으른 너는 절대 사람질 못한다. 나가서 썩 뒤져라!" "나쁜새끼! 너도 감옥에나 가라!"나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아버지는 재산을 물려줄 아들이 없으니 돈을 모을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우리 집은 늘 찢어지게 가난했다.중학교를 졸업하자 아버지는 나에게 집에 돈이 없으니 학교에 다니지 말라고 하면서 나를 끌고 당신 회사에서 운영하는 식당에 취직시켰다. 여자들은 그저 얼굴이 반반할 때 빨리 좋은 남자 만나 시집가 친정이나 도우라고 했다. 열여섯살 된 나는 한겨울 식당에서 그릇을 가시느라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힘든건 따로 있었다. 출퇴근할 때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중학교 동창들과 마주치곤 했는데 너무 창피하고 자존심이 상했다. 나는 아버지를 죽어라고 원망하며 뼈빠지게 돈을 모아 스물한살 때 전문대학에 갔다. 아버지는 그런 내 선택을 빈정대며 단 한푼도 보태줄 수 없다고 했다. 졸업하던 마지막 해 그동안 모은 돈을 등록금과 생활비로 다 써서 빈털털이가 된 나는 아르바이트 하러 나가다가 눈길에 미끄러져 오른쪽 손목이 부러졌다. 아버지는 냉정하게 말했다. "쌤통이다. 누가 너보고 학교 가라고 했니?" 너무 서러워서 이런것들이 다 무슨 부모인가 싶었다. 나는 이를 갈았다.
내 아기가 태어나자 아버지는 아기 울음소리가 당신의 낮잠을 방해한다고 온갖 짜증을 다 부렸다. 밥이라도 얻어먹고 살아야 하겠기에 나는 찍소리도 못하고 눈치만 보며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면 늘 초긴장 상태에 있었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큰 도시로 취직하러 갈 때 돈이 한푼도 없었던 나는 엄마한테 꼭 성공해서 몇배 이상 갚을 테니 돈을 좀 얻어 달라고 했다. 엄마가 나에게 돈을 구해줬다는 것을 알게 된 아버지는 엄마에게 "그 사람질 못할 계집애가 못갚으면 어떡 하려고 빌려줘. 당신 실수했어!"라고 했다. 두사람이 한바탕 싸우는 소리를 엿들으며 나는 주먹을 으스러지게 쥐었다. 꼭 성공해서 너를 내앞에 무릎 꿇고 잘못했다고 빌게 만들꺼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극에 달했다.
좋은 직장에 취직해 좀 살만하자 내 복수는 곧 시작되었다. 밖에 나가 남들한테는 그렇게 비위를 맞추는 나였건만 가족한테는 잔인했다. 나는 아버지를 내가 사는 도시로 불러 들였다. "아부지, 아부지는 밥할 줄 모르는 여자는 사람질을 못한다고 했죠? 지금 어때요? 내가 사람질 못해 보여요? 그때 엄마가 나한테 돈을 구해줬다고 뭐라고 하셨죠? 아부지가 되어 가지고 어떻게 그럴수 있어요? 제가 아버지 때문에 얼마나 상처받고 서럽게 살았는지 아세요? 제 가슴에는 온통 한이 맺혀 있어요…" 나는 구구절절 아버지가 나한테 잘못했던 걸 언급하면서 나한테 사과하라고 강요했다. 내가 하도 난리를 치자 그동안 경제적으로 내 혜택을 본 아버지는 무릎만 꿇지 않았을 뿐이지 잘못했다고,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내가 모시던 어르신 내외가 아버지를 관저로 초대했다. 새 옷을 사입혀 모시고 갔건만 기품이 있고 깔끔하고 세련된 어르신에 비해 아버지는 촌티가 하염없이 줄줄 흘렀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어르신이 손을 내밀어 아버지에게 악수를 청했다. 하얗고 보들보들한 어르신 손과 아버지의 솥뚜껑같은 시커먼 손이 서로 맞잡는 순간 나는 너무 망신스럽고 창피해서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어버리고 싶었다. (차라리 고아였으면 좋겠다. 저런 누추한 부모가 없었으면 좋겠다. 거지같은 것들, 꼴도 보기 싫어.) 나는 아버지의 존재가 한없이 귀찮았다. 어르신같은 부모를 만났더라면 좋았을텐데!
젊었을 때 사냥으로 산을 너무 많이 누비고 다녀서 산이라면 질색이라는 아버지를 나는 기를 쓰고 백두산부터 한라산까지 끌고 다녔다. 저혈압인 아버지는 어지럼증이 심해 산에 들어 가셔서도 잘 걸으려 하지 않으셨다. 백두산에 갔을 때 호텔내에서 온천욕을 하면서 쉬고 싶다고 하는 아버지를 나는 들어간 돈이 얼만데 가만히 앉아 있냐고 눈을 부라리며 들들 볶아 하루종일 산속에서 헤매이게 했다. 아버지가 힘들어하는 것을 나는 즐겼다.
아버지가 50대초반부터 생활비를 대주며 일을 못하게 했다. 부모자식간에도 일이 사랑이라고 했던 건강하고 멀쩡한 아버지를 나는 한순간에 찌질이로 만들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내멋대로 했다. 백화점에 모시고 가서 옷을 사드릴 때도 아버지가 본인이 원하는 칼라를 고르면 나는 그 꼴을 못봤다. 기어코 아버지가 부담스러워 하는 칼라를 골라 주면서 입으라고 종용했다. 그때 아버지의 실망하는 표정을 나는 깨고소해하며 지배욕을 맛봤다.
서귀포에서 요트를 탔는데 어차피 푸른 물결이 출렁이는 바다 한가운데 있는데 바지가 젖으면 어떠리! 하지만 아버지의 바지가 물에 젖자 나는 왜 조심하지 않았느냐고 다른 관광객들 앞에서 아버지를 한바탕 꾸짖었다. 어떤 여자분이 나를 한심스럽다는 듯이 쳐다보자 나는 멍청한 아버지가 나를 불효녀 소리를 듣게 만들었다고 아버지를 원망했다. 그날 아버지는 하루종일 말씀이 없으셨다.
우리 집에 놀러온 아버지가 경비실 아저씨와 대화하는 것을 본 나는 인터폰으로 아버지를 집으로 불러 들여 무슨 얘기를 나누었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별 얘기를 안했다고 했다. 30분정도 함께 있으면서 정말 아무 얘기도 안했냐고 내가 다그치자 아버지는 "아, 그 양반이 나보고 어디서 왔냐고 물어서 내가 중국에서 왔다고 했다."라고 했다. 남편과 아들, 동생들과 제부, 조카들 앞에서 나는 굴레벗은 말마냥 길길이 뛰며 아버지한테 모진 말을 쏟아냈다. "아부지는 왜 그렇게 실실거리며 아무말이나 해요? 왜 시키지도 않는 노릇을 하고 그러세요? 여기 한국사람들이 중국사람들을 짱개라고 얼마나 싫어하는데 나팔 불고 다니세요? 보이스피싱과 오춘원 사건도 있고 또 중국사람들이 여기 와서 나쁜짓을 하도 많이 해서 중국사람이라면 아주 그냥 치를 떨어요. 경비실 아저씨와 얘기했으니 그 입이 싼 아저씨가 내일이면 아파트 단지에 소문을 쫙 퍼뜨릴텐데. 아버지는 가면 그만이지만 여기서 사는 저희는 어떡해요? 아부지는 정말 내 인생에 도움이 하나도 안돼요! 부모로서 자식한테 해준게 없으면 피해라도 주지 말아야 하는게 아닌가요? 내가 못살아! 정말…왜 그렇게 머리가 안돌아가요? 강원도나 경상도라고 하지 그랬어요." 아버지는 잔뜩 주눅들고 미안한 표정으로 "억양이 다른데 어떻게 거짓말을 하니? 너한테 피해를 줘서 미안하다."라고 하셨다. "그저 입다물고 조용히 있는게 도와주는 거니까 이제부터 가만히 계세요." 다음날부터 아버지는 아무리 답답해도 절대 밖에 나가지 않았고 저혈압을 핑계로 다시는 우리집에 오지 않았다.
남편은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장탄식했다. "문화의 차이라고 하기에는 당신 너무 못됬다. 정말 인간이 아닌것 같다. 어떻게 자기 부모한테 그럴수 있어? 나 당신같은 사람 처음 본다." "아버지가 잘못했잖아! 한국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뭐하러 그런 쓸데없는 얘기를 하고 돌아 다녀? 내 덕에 사는 주제들이 맨날 사고만 치고 돌아다니니 짜증나 죽겠어!" 나는 끝까지 내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그외에도 아버지한테 한 내 만행은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지난번에는 내가 자식한테 한 짓을 떠올리며 괴로워 미칠 지경이었는데 이번에는 나한테 당했을 때의 아버지 그 마음이 느껴지니 지난번보다 더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가슴에 젖은 햇솜뭉치를 틀어 막은 것처럼 답답하고 명치끝에 날카로운 비수가 몇십개 박혀 있는 것 같다. 그 마음이 내 마음이니 내가 지금 이렇게 아픈 것이라!
지리산에서 돌아와 또다시 시작된 불면의 밤들, 아버지를 냉정하다고 이를 갈며 미워하고 무능하다고 무시하고 짓밟으며 성 쌓고 남은 돌이라고 빨리 죽어 더이상 내 돈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던 나는 내가 한 짓을 떠올리며 마음이 서늘해났다. 괴로워하는 나에게 남편은 아버지에게 전화를 드려 잘못을 빌라고 했다. 울음을 멈추고 정신을 가다듬었으나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의 대성통곡은 또다시 시작되었다. 그동안 내가 한 짓을 주저리 주저리 나열하는 나에게 아버지는 웃으시면서 "다 지나간 일인데 새삼스럽게 뭘 그러니? 나는 벌써 다 잊었다. 그러니 너도 그만 잊어라! 너가 자식으로서 우리한테 못해준 게 뭐가 있니? 나와 네에미는 그래도 니 덕에 잘살았지 뭐! 됐다! 됐어. 그만해라!"라고 하셨다.
남편은 "그것봐! 자식은 자기 한짓이 미안해도 부모는 그런 걸 안 따진다. 부모는 자식을 미워하지 않아!"라고 했다. 나는 머리를 끄덕이다 말고 맥없이 가로저었다. "그렇지도 않아. 자식한테 미친 짓을 엄청 많이 한 나같은 에미가 있잖아. 자식이 내 뜻대로 안되니 얼마나 미워했는데. 위로는 부모를, 아래로는 자식을, 세상천지에 나같이 나쁜 인간이 또 있을까! 정말 나는 사람도 아닌것 같아. 후유~"
뻔뻔스럽게 살아온 자신의 잘못을 알고 참회를 해도 공부를 놓으면 또다시 과거로 돌아갈께 뻔하다. 깨닫기 전의 모든 것은 다 가짜다. 관념이 남아 있는 한 내가 절대 달라지지 않음을 나는 안다. 이러니 자운선가에 가지 않을 수 없다. 수행중에 자신의 꼬락서니를 보는 게 너무 힘들어 다 때려치우고 싶은 굴뚝같은 마음이 들때도 있지만 그동안 내가 한 잔인한 짓을 떠올리면 깊은 참회가 올라와 이 공부를 끝까지 해야 함을 다시 한번 절실히 느끼게 된다. 내가 달라질 수 있는 건 오직 이 길 밖에 없다. 앞으로 수행이 힘들 때마다 내가 그동안 피해를 준 이들을 떠올리려 한다. 나한테 당한 그들의 고통이 훨씬 더 컸음을 항상 명심하자! 비뚤비뚤 한발한발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뜨거운 가슴으로 거듭날 날이 오겠지!!!
바야흐로 어버이날이다. 스승님 덕분에 비로소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부모님께 효도할 수 있게 되어 정말 다행이다!!!
사랑하는 두분 스승님!!!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큰절을 올립니다!!!
PS:
참회를 통해 그동안 지리산에 내려 갈때마다 늘 정열적으로 수행하는 도반님들과만 한기수였으면 하고 기대하고 바랐던 이기적인 마음이 산산조각나 버렸고 수행을 통해 지난 세월동안 외곡되었던 돈관념과 성차별관념에 대해 정확하게 알게 되어 청산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게 그저 감사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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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솔메이트님의 글을 통해 매번 느끼지만 살아오신 삶이 정말 한편의 드라마 같아요.. 솔메이트님의 더욱 깊어지는 참회를 통해 가짜의 모습을 벗어던지고 점점 제자리를 찾아가서 참행복의 주인공이 되실거라 믿어요. 오늘도 힘차게 화이팅!!!해요~^^
근데 저도 김해김씨에요~ㅎㅎ^^
저도 김해 김씨!! ㅎㅎㅎ
<또 하나의 견성프로그램>을 쓰면서 자꾸 아버지 생각이 났습니다. 본래가 단지 내 삶을 반추하기 위해서 이번 찌질이 프로그램을 마련했을까? 더 깊은 다른 무엇은 없을까? 찌질이를 통해 내가 과연 무엇을 더 깨쳐야 할까?하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제 우주마음님의 댓글을 읽으며 드디어 알아차렸습니다. 사랑하는 우주마음님, 감사합니다. 김해 김씨네 조상덕을 톡톡히 본 것 같습니다^^
솔메이트님 저는 아직 어리고 33이라... 그렇게 힘겨운 인생을 살아오지 안았습니다 하지만 솔메이트님의 마음은 공감이 갑니다 얼마나 많이 힘드셨어요 너무 대단하세요 전 가족이 싫어 결혼도 한사코 거부했습니다 가족을 늘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다죽고 없어지면 그때되면 좀 편해질텐데 결혼을 왜해 이랬죠 돈으로 아버지를 어머니를 쥐고 흔들며 인제부턴 니네가 내말 들어 밀대꾸도 하지마 이번엔 니네 차례야 내가 그랬지 언젠가 내 앞에 무릎꿇고 박박기게 만들어준다고 뭐 이랬었죠 돈으로 쥐고 흔들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사실을 인지했을때 무척이나 괴로웠습니다 아버님 살아계시다니 부러우면서도 너무 다행이란 생각도듭니다
아버지 살아생전 이사실을 알지못해 고통과 두려움속에 혼자 괴로워하다 가시게 한게 가슴에 한이라도 맺힌듯 사무치는데 그건 정말 분리가 잘 안되더라구요 솔메이트님의 사랑으로 아버님도 어머님도 많이 행복해하실겁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해 사랑하는 사랑해님, 님의 댓글을 읽으며 깜짝 놀랐습니다. 가족이 싫고 결혼을 왜 해! 니네들 내 말 들어! 말대꾸도 하지마! 이번엔 니네 차례야! 무릎 꿇고 박박기게 만들꺼야! 완벽한 공명에 한순간 내 몸이 싸~악 사라지고 의식이 사랑해님께 달라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랑해님, 스승님께서도 당신이 이 법을 만나고 나서 (부모님이 살아 계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을 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공부가 더 깊게 되자 부모님과 늘 함께 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고 하시더군요. 아마 사랑해님도 지금처럼 열공하면 곧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늘 따뜻하게 지켜봐 줘서 감사합니다.
솔메이트님 글에서 제 아버님 마음이 느껴지네요..6.25 이북에서 홀로 피난길에 남으로 내려와 외롭고 힘들었을 시간들 ㅠㅠ 의지 할곳도 없고 오직 혼자 힘으로 삶을 살아오신 아버님..아직 수행이 덜 되어 마음이 열리지 않아 모르는게 많지만 이 수행으로 20년전 돌아가신 아버님을 다시 찾겠습니다..감사합니다..
기댈데도, 의지할데도 없었던 아버님의 마음이 공명되어 알알해 납니다.
사랑하는 추장님, 5월말에 자운선가 에너지장에 들어가면 아버님을 곧 찾게 될겁니다.
세월이 흐르고 잊혀진 것 같아도 캐기 시작하니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나오더이다.
새벽 5시 어제 올라온 동영상을 들으려고 자운선가에 와서 님의 글만 읽었네요.
가슴이 콩닥콩닥 머리로는 모르지만 모든 것이 내 안에 있는 양.
자운선가 수행하러 가고 싶은데 못가는 날 위해 다시 후기 써 주신듯합니다.
간접경험! 물론 내가 가서 몸으로 직접 느끼고 온 것같지는 않겠지만 모든 것이 공명되며
내가 수행하고 온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 다른 내가 다른 곳에서 살고 있구나 하는 느낌.
솔메이트님! 저를 깨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_()_
아버지를 막 대했던 행동보다 나의 그런 행동으로 인해 다친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지니,
그토록 괴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간담이 서늘해지더군요. 참, 사람이 이래서 죄 짓고 못사나 봅니다.
사랑하는 연지님 수행에 도움이 되었다고 하니 다행이고 감사합니다. 연지님, 화이팅!!!
정말 드라마를 보는듯 합니다
저는 특히 엄마에 대한 불만과 사랑받지 못했다는 마음이 항상 있었어요
자운선가에서 많이 풀었고저 역시 더 공부해야겠죠
솔메이트님~
아주 장하십니다
마음공부 하면 할수록 자운선가의 수행원리가 세상에 둘도없는 보물이라고 느껴져요.
행운의 러브러브와 솔메이트! 대각까지 나란히 동행합시다! 사랑합니다!!!
제가 아버지에게 했던 행동과 말들이 얼마나 큰 상처로 아버지 마음에 남았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네요.
참회하고 참회해서 뜨거운 가슴으로 아버지를 안아드리고 싶습니다. 솔메이트님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비화님, 그동안 아버지를 풀려고 여러번 시도했는데 제 행동에 정당화를 부여하면서 참회가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비화님과 함께 수행할 때도 그저 형식적인 참회를 했을 뿐입니다. 이번에 태아 에너지힐링을 하면서 아들을 바랐던 한 남자의 좌절감과 함께 평생동안 패배감과 무기력함으로 살았을 아버지의 삶이 너무 불쌍하고 가여워 엄청난 눈물을 쏟아냈는데 라사님께서 주의를 줄 정도로 분리가 안되었습니다. 사실 어제 아버지 칠순이었는데 타이밍 한번 절묘하게 본래는 제가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게 하여 불효를 면해줬습니다. 본래, 두분 스승님, 비화님을 비롯한 모두에게 뜨거운 감사를 드립니다! 비화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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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도마동생님 댓글이 저를 울립니다. 온통 원망과 미움으로 얼룩진 삶이 행복할리가 만무했죠. 중요한건 열심히 사는데 왜 행복하지 않아? 이유를 모른채 안달복달하며 악만 썼다는 것입니다. 자운선가 수행을 통해 미움과 원망, 그리고 한을 한꺼풀씩 벗겨내며 삶을 제자리로 돌리는 작업을 하는 지금, 예전보다 마니 안정되고 차분해진 저 자신을 느낍니다. 이제 제 옆에는 소중한 가족과 제 아픔과 괴로움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도마님을 비롯한 따뜻한 도반님들이 계시고 든든한 자운선가라는 빽이 있습니다. 도마님과 자운선가 에너지장에서 또 함께 할 그날을 꿈꿔봅니다. 사랑하는 도마님, 뜨거운 격려 감사합니다!♡♡♡
무능한아버지가 싫고 밉고 무섭고하는 맘이 너무커서 자운선가 갈때마다 아버지를 풀고왔지만 솔메이트님의 글을읽고보니 또 눈물이눈가에 고이면서 가슴이메이네요. 더풀어야한다고 본래가알려주네요.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계수나무천사님, 오랜만이에요~반갑습니다. 20대후반에 아버지를 강요해 사과를 받아내고 제마음이 다 풀린줄 알았어요. 그런데 잠재의식속에서는 끝없이 낳았으면 책임지고 보호하고 살뜰하게 보살펴줘야 하는게 아니냐?고 끝없이 원망하며 사랑받길 원했더라구요. 그게 뜻대로 안되니 또 미워하면서 무시하고 괴롭히고..나이 오십을 바라면서 반복되던 악성순환을 자운선가 수행을 통해 비로소 해결했네요.
계수나무 천사님, 우리 196기에 만나 함께 가열차게 풀어내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이뤄요. 196기가 3참인걸로 알고 있는데 풀어내려는 의지가 대단하십니다. 늘 사랑하고 함께 해줘서 고마워요!
글을 읽으면서 아버지가 괜찮다 다잊었다~하는 부분에서돌아가신 아빠가 생각나 많이 울었어요~
아빠를 사랑하면서도 술주정하고 가난한게 창피하고 그런
저에 모습에 화나고 싫고....결혼한지금까지도 가장가까운 사람인 남편,자식,엄마에게 느껴지는 거부감에 삶이 느껴졌습니다. 감사해요^^ 솔메이트님!!!!!
저도 김해김씨 ^^
아버지 사랑을 받고 싶었는데 그게 뜻대로 안되니 아주 마니 서운하고 미워했어요. 하지만 남들이 내 아버지를 욕하는 것은 싫고..그런 모순된 마음으로 오랜 세월을 갈등하며 살았죠. 삶이 행복할리가 만무했어요. 엄청 집착하면서도 저역시 남편, 자식, 부모, 형제들에게 거부감을 느꼈는데 수행을 통해 하나씩 깨쳐가며 비로소 행복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게 되었어요. 사랑하는 자유 행복님, 이 아침 님의 소중한 댓글을 읽으며 함께 공감해주는 님이 계심에 감사함이 새록새록 묻어납니다. 고맙습니다!
저도 사람들에 대한 거부감 불편감이 많았는데 수행을 통해 하나씩 깨쳐지면서 행복하게 사람들을 대할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솔메이트님 사랑합니다.
저도 닉네임이 예쁘신 다좋아님을 사랑합니다! 수행을 통해 나를 지배했던 관념들이 하나씩 깨지고 참이 드러날 때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소중한 댓글 감사합니다!
제모습 제환경을보는것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