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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 기도
주님...
목마른 내 영혼이 주께로 나아갑니다.
이 종을 외면하지 마시고 주의 그 너른 품속에 안아 생명수 강가로 인도하옵소서.
말씀 외에 다른 것들로 채우려는 이 죄인을 용서하여 주시고 주의 보혈로 덮으소서.
그 안에서 갈함이 채워지며 배고픔이 해소되게 하옵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사오니 나를 죽이시고 오직 예수로만 부요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암 8:11-9:6
제목 : 말씀의 홍수 시대에 진정한 복음이 증거되어 야곱의 우물에서 벗어나기를.....
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12.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13.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14. 사마리아의 죄된 우상을 두고 맹세하여 이르기를 단아, 네 신들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라 하거나 브엘세바가 위하는 것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라 하는 사람은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9:1. 내가 보니 주께서 제단 곁에 서서 이르시되 기둥머리를 쳐서 문지방이 움직이게 하며 그것으로 부서져서 무리의 머리에 떨어지게 하라. 내가 그 남은 자를 칼로 죽이리니 그 중에서 한 사람도 도망하지 못하며 그 중에서 한 사람도 피하지 못하리라.
2. 그들이 파고 스올로 들어갈지라도 내 손이 거기에서 붙잡아 낼 것이요 하늘로 올라갈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붙잡아 내릴 것이며
3. 갈멜 산꼭대기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찾아낼 것이요 내 눈을 피하여 바다 밑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뱀을 명령하여 물게 할 것이요
4. 그 원수 앞에 사로잡혀 갈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칼을 명령하여 죽이게 할 것이라. 내가 그들에게 주목하여 화를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5. 주 만군의 여호와는 땅을 만져 녹게 하사 거기 거주하는 자가 애통하게 하시며 그 온 땅이 강의 넘침 같이 솟아오르며 애굽 강 같이 낮아지게 하시는 이요
6. 그의 궁전을 하늘에 세우시며 그 궁창의 기초를 땅에 두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이니 그 이름은 여호와시니라.
* 나의 묵상
심판 날에 임하는 진짜 재앙은 기근이다.
이 기근은 양식이 없는 기근도, 물이 없는 기근도 아니고 말씀이 없는 기근이다.
말씀이 없는 기근이란 기근 중의 기근, 최악의 기근을 말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모른다.
사람들이 말씀을 찾으려고 지중해에서 사해까지 헤매도 찾지 못하고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구하여도 얻지 못한다.
그 심판의 날에는 아름다운 여자와 젊은 남자가 다 목이 말라 쓰러지게 될 것이다.
사마리아의 우상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사람들, 단에 있는 신들의 살아있음을 두고 맹세하는 사람들, 브엘세바의 신을 두고 맹세하는 사람들은 다 쓰러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아모스가 보니까 주님께서 제단 곁에 서 계시면서 말씀하시기를, 기둥 꼭대기를 쳐서 문지방까지 흔들리게 하라고 하신다.
기둥들이 사람들의 머리에 떨어져 그들이 죽을 것이며 그것을 피한 자들은 주께서 칼로 죽이실 것이란다.
그래서 한 사람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
그들이 음부를 뚫고 내려간다할지라도 내가 거기서 끄집어 낼 것이요 하늘로 피한다 해도 거기서 끌어내릴 것이다.
갈멜 산꼭대기에 숨는다 해도 거기서 찾아낼 것이며 주의 눈을 피하여 바다 밑에 숨어도 거기에 있는 뱀을 명하여 물게 할 것이다.
그들의 원수에게 사로잡혀 가더라도 거기서 칼로 죽게 할 것이며 어디에 있든지 그들에게 주목하여 禍를 내리고 福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
너희들이 배척하는 하나님은 만군의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땅에 손을 대시면 땅이 흔들릴 터인데 과연 그 땅에 살 자가 있겠는가?
누구든지 통곡하게 될 것이다.
온 땅이 애굽의 나일 강처럼 솟아올랐다가 다시 낮아지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늘에 다락을 지으시며 그 기초를 땅에 세우실 것이다.
바닷물을 불러 땅 위에 쏟으시는 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기근은 삶 자체가 고역이다.
물이 없으니 목이 말라 견딜 수 없고, 농사지을 물이 없으니 식량을 수확할 수 없어 배고픔으로 인하여 또한 견딜 수 없는 것이 기근의 현실이다.
그런데 기근 중의 기근은 마실 물이 없어 갈함도 아니고 먹을 양식이 없어서 주리는 것이 아니라 주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인 것이다.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수가성 여인은 야곱 이후로 2천년이나 내려오는 야곱의 우물에서 날마다 물을 길어 마셨다.
그 우물은 수량과 풍부하고 성분도 좋았다.
(요 4: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크니이까?
야곱 시대로부터 무려 2천년이나 마셔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물이 마르지 않은 것을 보면 그 수량이 엄청나며, 또한 짐승들과 사람들이 다 마시는 것을 보니까 그 성분 역시 상당히 괜찮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야곱의 우물로는 그의 목마름을 해갈하지 못한다.
이것을 아신 주님께서는 그녀에게 일부러 찾아가신다.
이것을 신적 의지라고 하는데 이는 육신적으로는 한 번도 그녀를 본 적이 없고 알지도 못하지만 그녀가 갈하여 죽을 것 같은 사실을 아시고 일부러 그녀를 만나기 위하여 유대인들은 가기 꺼려하는 그 사마리아 길을 택해서 들어가신다.
그것도 매일 야곱의 우물을 찾는 여인을 아시는 주님께서 그 우물에 먼저 와서 여인을 기다리신다.
그리고 그녀가 오자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요청하신다.
그러자 여인은 당신은 유대인인데 어떻게 사마리아 사람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느냐고 한다.
그 이유는 유대인과 사마리아 사람들 사이에는 같은 그릇을 사용하지 않는 관습이 있기 때문이다.
그 때 주님께서 여인에게 네가 하나님의 선물과 너에게 물을 달라고 하는 내가 누구인줄 알았다면 네가 나에게 구하였을 것이며 또한 내가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
그러자 여인이 묻는다.
당신은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그 생수를 어디서 얻는단 말입니까?
우리는 우리 조상 야곱이 주신 이 우물에서 물을 얻어 사람과 짐승들이 다 먹는데 그러면 당신이 야곱보다 크다는 말인가요?
주님께서 여인에게 대답하기를 이 야곱의 우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 목마를 것이지만 내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주는 물은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물이기 때문이다.
여자가 즉시로 주님께 그 물을 달라고 하면서 다시는 목마르지도 않고 이 물을 길러 오지도 않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이런 대화를 나누는 여인이 가만 보니까 예수님이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주님에게 당신은 선지자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들의 대화가 예배로 진전되고 진짜 예배하는 자는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예배의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있는 그 자리가 바로 예배의 자리가 되어 주님이 주신 생수를 마셔야 하는 것이다.
이는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샘물이 없는 예배는 그 자리가 아무리 화려하고 솔로몬의 성전 같이 아름답다 할지라도 그것은 예배가 될 수 없다.
오늘날 예배가 화려하고 아름답게 디자인 된 예배가 얼마나 많이 있는가?
대형 교회들의 경우 예배를 전문적으로 디자인하는 예배담당 목사들이 있는 교회들이 많다.
그런데 이런 교회들의 특징이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여 오늘 예배에 은혜 받았다고 하는 느낌을 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그렇게 은혜를 받아도 여전히 목마른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 초대형 교회라고 할 수 있는 S교회나 O교회 등은 예배를 정말 잘 디자인하는 교회로 정평이 나있다.
찬양이면 찬양, 기도면 기도, 말씀이면 말씀, 게다가 교회 전체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프로그램은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다.
어느 곳 하나 부족한 곳이 없을 정도로 모든 체계와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완벽한 교회에서 대부분의 훈련을 마스터한 많은 중직자들이 그곳 외에 또 다른 곳을 찾아 기웃거리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한 마디로 그 교회에서 해보지 않은 것이 없지만, 여전히 갈한 목을 축여주지 못하고 주린 배를 채워주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그렇다고 설교가 부족한가?
아니다. 설교라면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받을 만한 내로라하는 설교임에 틀림없다.
그런데도 그들이 목이 말라 죽으려 하고 배가 고파 죽으려 하는 기근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아무리 예배가 화려하고 감성을 자극한다 해도 진정한 말씀 복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여전히 수가성 여인과 같이 수많은 야곱의 우물, 곧 프로그램에 길들여 있어서 그것이면 다 될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래서 겉으로는 표현하지 못하고 아무도 모르게 다른 그 무엇을 찾아 전전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알음알음으로 우리 선교회에서 주관하는 복음생명캠프에 와서 프로그램으로 하는 말씀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샘물로써의 진정한 복음을 듣고 그제서야 갈한 목을 흠뻑 축이고 진짜 기뻐하는 이들을 내 눈으로 직접 목격하기도 하였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목사로써 어떻게 하면 교회를 부흥시킬까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였다.
그래서 내 생각은 교회를 부흥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에 촉각을 세우고 그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교회를 부흥시키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렇게 교인들을 괴롭혔다.
교인들을 가만 놔두지 않고 이 프로그램, 저 프로그램에 참여시켜 그것을 하도록 하였다.
심지어는 중직자를 세우는데 이 프로그램을 수료하지 않으면 후보에 들어갈 수조차 없게 하였다.
오늘 한국교회에서 중직자를 세우는 기준을 보면 진짜 기근이 무엇인지 극명하게 볼 수 있다.
교회에서 담임목사가 도입한 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하는 것.
최소 몇 년 이상 자기 교회에 다녀야 하는 것.
십일조와 감사헌금은 제대로 하는가?
새벽기도는 얼마나 나오는가?
금요심야기도회는 잘 나오는가?
모든 공예배에 빠짐없이 잘 나오고 있는가?
전도는 얼마나 했는가?
성경은 1년에 몇 독 하는가?
특히 장로를 세울 때는 그의 경제적 능력을 봐서 물질적으로 교회에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많이 고려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물질적으로 부유한 자를 장로나 중직자로 세운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준을 살펴보면 대부분 야곱의 우물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바로 복음을 알기 전에 이런 행동을 했던 자이다.
복음을 모르기 때문에 이런 기준을 세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복음을 알고 난 후부터는 이런 기준을 다 없앴다.
인간적인 기준이 아니라 정말 주님이 원하시는 기준이 무엇인가를 고민했고 날마다 말씀 앞으로 나아가는지를 본다.
왜냐하면 나 역시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샘물인 복음을 몰랐을 때 그 갈함과 기근의 고통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복음을 알고난 후부터는 교회 안에 모든 프로그램을 정리했다.
그리고 이제는 오직 복음을 전하는 교회로 패러다임 시프트를 단행하였다.
교회의 부흥을 인간적인 개념으로 해석을 하면 이런저런 프로그램 곧 야곱의 우물들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인간적인 욕심이 아니라 생명에 관심을 두고 그들이 이 땅에서부터 영생을 누리는 것에 초점이 맞춰지면 프로그램이 아니라 복음에 꽂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기근은 양식이 없어 주리는 기근도 아니고 마실 물이 없어 갈한 기근도 아니며 오직 주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근이라고 하였다.
이는 설교 홍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교회들을 울리는 경종이 아닐 수 없다.
영원한 생명이 아니라 부흥이라는 미명하에 외적인 성장에 최대의 관심을 쏟아 부으면서 교인들을 닦달하는 것이다.
나는 나의 죄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이런 엄청난 죄를 지었던 자를 주님께서는 심판하시고 더 이상 이런 야곱의 우물을 전전하지 못하도록 막으신다.
성도의 숫자에 상관없이 한 사람 한 사람을 말씀 앞에 서도록 하는 것이 나의 사명이요 본분이다.
그래서 그들의 삶의 상황이 어떠할지라도 거기에 연연하지 않고 넉넉히 복음을 통하여 생명으로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습일 것이다.
생명(조에)가 아니면 사람들은 육신의 목숨(푸쉬케)를 위하여 살아가게 되어 있다.
이제 내가 섬기는 성도들을 비롯하여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통해서 아들의 생명을 얻어 그들의 정체성을 새롭게 함으로써 날마다 영생의 삶을 누리기를 바란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는 야곱의 우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숨이 막혀 죽었던 자입니다.
얼마나 야곱의 우물이 많은지 그것을 선택하는 것만 해도 머리가 다 빠질 지경이었습니다.
그런 나를 주님은 심판하셨고 이제는 야곱의 우물에서 건짐 받고 오직 복음을 통하여 생명으로 나아가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내가 받은 이 복음이 나를 살리고 바꾼 것처럼 이제는 이 복음을 전하여 사람들을 살리는 도구가 되게 하옵소서.
복음은 생명과 썩지 아니할 영생을 주는 가장 귀한 도구이기에 그저 복음에 머물러 있지 않게 하시고 날마다 그 영생을 누리는 자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찬송가 가사처럼 ‘내 영혼이 복음을 통하여 은총을 입어 중한 죄짐을 벗고 보니 비록 슬픔 많은 이 세상이지만 내가 있는 그 자리가 하나님의 나라가 됨’을 날마다 경험하게 하소서.
주위가 너무 고요한 주일 새벽입니다.
이 시간 주님과 함께 말씀으로 교제하게 하심이 주의 은혜이오니 내 안에 나도 알 수 없는 감격, 복음을 통하여 생명을 누리는 감격이 충만하게 하소서.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