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함께 사는 인연 그리고 공감
좋은 도반은 수행의 전부를 얻는 것과 같다
“일생을 살면서 좋은 벗이 셋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내게 진정한 벗이 셋이 아니라 하나라도 있는지... 사찰이 아닌 학교에서 평소 친분이 없는 사람이 호의를 베풀면 ‘어떤 특별한 부탁이 있어 다가오는 게 아닌가?’라는 의심을 먼저 하게 된다. 그만큼 순수함이 사라졌다는 뜻인데, 출가자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사람 사귀는 일이 쉽지 않고, 친구로 발전되는 일이 쉽지 않다. 사람 사는 세계는 어디나 똑같을 것이다.
‘우정’이라고 하면 <삼국지>의 유비와 관우, 장비가 떠오른다. 이 세 사람이 ‘태어날 때는 달리 태어났지만, 죽을 때는 함께 하자’며 복숭아밭에서 의형제를 맺었다고 새해서 도원결의라는 말이 생겨났다.
이들은 피를 나눈 형제 이상의 우정과 의리로 독자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인물이다.
또 우정 이상의 의리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사기>의 저술가인 사마천이다.
사마천은 사관이었던 아버지의 뜻을 이어 받아 통사를 저술해야할 숙명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사건이 하나 터졌다. 당시 명장이던 이릉이 흉노와의 전쟁에서 중과부적으로 항복하였다. 이 소식을 접한 한무제는 몹시 화를 내고, 대신들까지도 이릉을 비난하고 나섰다. 사마천은 친구였던 이릉의 어쩔 수 없는 실수를 변호하다가 한무제의 분노를 사게 되어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당시 사마천에게 주어진 형벌은 50만 전의 벌금, 벌금을 내지 못하면 사형을 당하든지 생식기를 자르는 궁형을 당할 처지였다.
사마천의 친구 임안은 벌금을 준비하기 위해 집안 대대로 살아온 집을 팔아 사마천으로 구하려 했으나 실패해 결국 사마천은 궁형을 당하게 되었다. 치욕스러운 일이었으나 <사기>를 저술하기 위해 한 선택이었다. 이후 사마천이 복직한 뒤, 반대로 친구 임안이 옥에 갇히는 신세에 처한다. 친구 임안이 사형에 처하게 되자, 사마천은 한무제에게 친구를 대신해 독약을 먹겠다고 청해 실제 독약을 먹었다. 그런데 이 일은 한무제가 사마천을 시험하고자 했던 것으로, 사마천이 마신 것은 사실 독이 아니었다!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자는 자신을 기쁘게 해주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한다”고 하더니
사마천. 이릉. 임안을 보면 끈끈한 우정과 의리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친구라는 존재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위안이 될 뿐만 아니라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수행하는 스님에게도 친구를 수행길에 있어 값진 보배이다.
그래서 불교경전에서는 좋은 벗과 소중한 인연에 대해 강조를 많이 한다. 훌륭한 벗은 그만큼 수행에 보탬이 되기 때문이다. <잡아함경>에 이런 내용이 있다.
제자 아난이 부처님께 물었다.
“부처님! 수행자에게 좋은 친구가 있으면 그 사람은 수행의 절반을 완성한 것이 아닐까요?“
부처님께서 고개를 저으시며 말씀하셨다. ”아난아! 그렇지 않다. 좋은 도반이 있다는 것, 좋은 인연들과 함께한다는 것은 수행의 전부를 완성한 것과 다름이 없느니라.“
불교에서는 친구라는 말보다 ‘길벗’이라고 하여 도반이라고 칭한다. 또한 승우라는 말이 있다. 서로 탁마하고 격려하는 친구를 말하는데, 누가 먼저라는 선배의 뜻이 아니라 둘이 함께 나란히 걷는다는 동행의 의미이다.
한편 절에서 맛있는 간식을 차담이라고 하는데, 차담시간에는 함께 인연 맺은 도반들과 차를 마시고 진리를 나누며 좋은 인연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뜻이 담겨 있다. 조선 초기 함허 스님은 “이 한 잔의 차를 옛날의 내 정을 표하는 것... 그대는 한번 맛보시오.”라고 하며 승려들과의 따스한 인연을 표현하기도 했다.
좋은 친구를 사귀는 일은 쉽지 않다. 이 말에는 인간은 적극적이기보다는 수동적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좋은 인연을 기다리거나 상대방의 베품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상대방에게 좋은 선지식이 되기 위해 노력하면 어떨까 싶다. 바로 이런 관점과 노력이 있을 때, 벗은 멀리 있지 않을 것이다. 그대 곁에 가까이 있을 것이다.
출처 ; 정운 스님 / 그대와 나, 참 좋은 인연입니다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