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지우산
전주 지우산
윤규상(전북 무형문화재 제45호 우산장) 명인은 한평생 우산 만드는 기술자라는 것을 천직으로 알며 살고 있는 장인이다.
1941년 완주군 용진면 삼삼리에서 목수 윤덕용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그는 16세에 이웃 장재마을의 한 우산공장에 견습공으로 입사하면서 우산과 인연을 맺었다. 어린 나이에 대나무를 쪼개거나 다듬는 일은 매우 고단해 약한 윤규상의 두 손엔 대나무 가시에 찔린 핏살 흔적이 가시질 않았다. 그러나 윤규상은 2년여 만에 그만뒀다. 승급기간이라는 2년 동안 급료도 한 푼 받지 않고 열심히 일했음에도 주인이 약속을 지켜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근의 엄주학씨의 우산 공방으로 옮겨 앉았다. 윤규상에게 있어선 이곳이 우산장이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그는 25세 때 전주에서 독립했다. 당시 10여명의 기술자를 채용한 그의 공장에선 한 달에 보통 3,000여개의 우산이 생산되어 전국으로 팔려나갔다. 1960년대엔 전주시 우아동 장재마을을 비롯, 산성마을 등 전주엔 우산공장이 35개 처였으나 현재는 그의 공방 단 1개만 남았다.
지우산은 완성까지 80여 차례의 손길이 간다. 각 과정마다 정성을 다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각각의 재료들이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제자리에서 역할을 해줘야 우산이 펴진다.
전주 산성마을은 인근 남고사에서 전주부중으로 울려 퍼지는 저녁 종소리는 전원적 풍경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과 같은 아름다운 모습이라 하여 ‘남고모종(南固暮鐘)’으로 일컬어지며 ‘완산8경’의 하나로 꼽혔다.
또, 이 일대는 충경사, 동문지, 북장대, 억경대, 만경대, 남고진사적비, 남고사, 삼경사 등 문화유산이 기라성처럼 많다.
마을 입구엔 이택구화가의 작업실이 자리하고 있다. 이 자리는 전주 지우산 공장이 자리한 곳으로 3동의 건물이 있었던 곳으로, 바로 위로 올라가면 500평 남짓한 곳에 대나무가 남아있어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값싼 비닐우산의 보급과 천우산, 중국 수입산이 들어오면서 문을 닫게 됐다고 한다.
전주 지우산의 기원은 널리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300년 전 경기전 안에서 소립(小笠)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1939년엔 동서학동 남고산 길목 일대에서 죽재(竹材)가 170톤, 들기름 500관, 한지가 1,000괴가 소비됐다고 한다. 1괴는 전지 2,000장을 의미하며, 한지 1괴에 400개의 우산을 만들었다. 그렇게 보면 이곳에서 연간 40만개의 우산을 만들었다.
그 누구는 이곳의 대나무가 동학농민군들이 죽창으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말하기도 하며 어느 누구는 전주 부채를 만들 때 썼다고 말하기도 한다.
오방색의 한지에 햇빛이 비춰들면 꽃비가 내리는 것 같다. 비꽃처럼 아름다운 색이다. 그 전통의 미감을 만들어내는 지우산의 아름다움이 전주에서 오래토록 대물림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