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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하나님께 묻는 다윗/삼하 2:1-11
1.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가로되 내가 유다 한 성으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라 다윗이 가로되 어디로 가리이까 가라사대 헤브론으로 갈찌니라
2. 다윗이 그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 되었던 아비가일을 데리고 그리로 올라갈 때에
3. 또 자기와 함께한 종자들과 그들의 권속들을 다 데리고 올라가서 헤브론 각 성에 거하게 하니라
4. 유다 사람들이 와서 거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족속의 왕을 삼았더라 혹이 다윗에게 고하여 가로되 사울을 장사한 사람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니이다 하매
5. 다윗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가로되 너희가 너희 주 사울에게 이처럼 은혜를 베풀어 장사하였으니 여호와께 복을 받을찌어다
6. 너희가 이 일을 하였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은혜와 진리로 너희에게 베푸시기를 원하고 나도 이 선한 일을 너희에게 갚으리니
7. 이제 너희는 손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할찌어다 너희 주 사울이 죽었고 또 유다 족속이 내게 기름을 부어 저희의 왕을 삼았음이니라
8. 사울의 군장 넬의 아들 아브넬이 이미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데리고 마하나임으로 건너가서
9. 길르앗과 아술과 이스르엘과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온 이스라엘의 왕을 삼았더라
10.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비로소 이스라엘 왕이 될 때에 나이 사십세며 두해 동안 위에 있으니라 유다 족속은 다윗을 따르니
11.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 족속의 왕이 된 날 수는 일곱해 여섯달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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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함께 봉독할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가로되 내가 유다 한 성으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라 다윗이 가로되 어디로 가리이까 가라사대 헤브론으로 갈찌니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이 배경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길보아산에서 전사를 합니다. 사울왕이 전사하면서 그 아들, 유일한 왕위의 계승자라고 지목이 되었던 요나단이 함께 죽임을 당합니다. 전쟁에서 사울왕의 아들들은 죽임을 당하고 이제 이스라엘은 철저하게 패전을 했습니다. 그래서 다 도망을 쳤고, 드디어 이 패전 소식이 시글락성에 도망와 있는 다윗에게까지 전달이 됐습니다. 지난 번 사무엘하 1장에서는 그 패전 소식을 전달했던 아말렉 소년을 죽이는 장면과 그리고 그 사울왕과 요나단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상고한 바가 있으며, 또한 다윗이 부른 슬픈 노래에 대해서 말씀을 상고한 바가 있습니다.
이 일이 있고 난 다음 오늘 본문에 보면, 다윗이 여호와께 내가 유다성으로 올라가리이까 하고 묻는 장면이 나오고, 거기에 하나님께서 가라고 응답을 해 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다윗이 다시 묻습니다. 그러면 내가 유다 성읍 가운데 어느 성으로 올라가리이까? 그때 하나님께서 헤브론 성으로 올라가라고 응답을 해 주십니다.
오늘 우리는 이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사무엘상을 통해서 다윗이 지나온 역경의 모습들을 되새겨 보게 됩니다.
사실 다윗은 어린 소년 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그 시절에 이스라엘의 차기 왕으로 하나님의 지명을 받아 선지자 사무엘을 통해서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그러나 왕으로 부름을 받고 난 다음에 다윗은 바로 왕위에 오르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블레셋과의 전쟁터에 갔었고, 거기서 골리앗이 하나님을 모욕하는 소리를 듣고 참지 못해서 골리앗을 향해서 쫓아 나가서 돌팔매로 골리앗을 죽이고 난 다음에, 이름 없는 목동이 한 순간에 이스라엘의 구국의 영웅으로 바뀌어 버리지요. 그리고 구국의 영웅이 된 다음 사울왕의 사위가 됩니다. 그 다음에는 사울왕의 군대장관이 됩니다. 국방부 장관이 되지요.
그러나 그 출세를 통해서 다윗이 백성들의 인기를 얻고 그 인기로 인해서 장인인 사울왕의 미움을 받고 그 후로부터는 도망다니는 도망자가 됩니다.
우리가 이미 말씀을 통해서 잘 알다시피, 그가 도망다니는 생활이 1년 2년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도망다니는 세월은 자그마치 10년이 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동안 본 바와 같이 다윗은 도망다니다가 지치고 지쳐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블레셋으로 피신을 가기도 했고, 모압왕을 찾아가기도 했지요. 그러한 실패를 통해서, 피곤에 지쳐서 도망을 쳤던 그러한 일들을 통해서 다윗은 망신을 당했고 또 배신을 당했고 또 철저하게 실망을 했습니다.
해서 다윗은 다시 유다땅으로 돌아왔지요.
그러한 기나긴 세월을 끝에 이제 다윗에게는 그의 일생에 있어서 절호의 찬스라 할만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선임 왕이었던 사울왕이 드디어 죽었습니다. 전쟁터에서 죽었고 이스라엘은 블레셋에 패전하여 국운이 완전이 무너져 버리는 그와 같은 절망적 상태에 빠졌습니다. 이때에 이스라엘의 유일한 희망은 다윗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도 다윗은 항상 흠모의 대상이었습니다. 이렇게 왕이 죽고 나라가 어지러워지고 패전의 연속으로 인해서 모든 백성들의 민심이 흩어진 이때에 민심의 구심점으로 등장할 수 있는 인물은 이스라엘 지경에 다윗이라는 사람 밖에 없었던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다윗의 일생에 있어서는 이 순간이야말로 그가 드디어 왕이 될 수 있는 찬스였고,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찬스였고, 하나님의 응답이 이루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도망다니던 환란과 고난의 시간이 끝나고 드디어 하나님의 응답으로 축복의 시간에 들어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순간 다윗은 깃발을 내걸고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아 나를 따르라고고 말하지 않습니다. 비어 있는 왕의 보좌에 가서 앉지를 않습니다.
이 순간 그가 취하는 태도를 보면,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묻고 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유다 땅으로 돌아가라고 하셨는데, 이제 내가 유다 땅으로 돌아가도 되겠습니까?
여러분, 이 짧은 한 절의 말씀입니다만, 이 짧은 한 순간의 모습입니다만, 이 모습이야말로 눈물과 희생과 고난과 땀의 열매라는 사실을 저는 깊이 인식합니다.
이렇게, 다윗이 기가막힌 이 순간에 자기가 행동을 취하지 않고 하나님께 묻는 이 모습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의 도망다님과 기근과 고난이 가져다 준 결정체입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는 마음에 깊은 감동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다윗이 이제는 자기의 판단과 자기의 방법과 자기의 계획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먼저 묻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다윗이 되기까지는 수많은 실패와 수많은 착오가 있었습니다.
수많은 눈물의 결과였습니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사무엘상을 통해서 발견합니다. 다윗이 몇 번이나 반복해서 실패를 합니다. 도망다니다 지쳐서 블레셋으로 도망갔잖아요? 갔다는 어떻게 됩니까? 미친사람 흉내를 내고야 겨우 구사일생으로 도망쳐 나왔지요. 아마 도망쳐 나오면서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쳐 나왔을 걸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가 다시는 이러한 실수를 범하지 않겠다. 각오를 했을 겁니다. 그 다음에 보면 다윗이 또 기근의 연속, 환란의 연속, 어려움의 연속이 될 때에 마음에 낙심이 돼서 블레셋을 찾아가는 모습을 우리는 봤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이 말씀을 통해서 무엇을 발견했습니까?
하나님이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 약속은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 과정은 참 어려운 과정입니다.
훌륭한 운동선수가 되기 위해서는요, 면류관을 쓰기 위해서는요,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는요, 우승을 하기 위해서는요,
그 뒤에 수많은 눈물과 땀방울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영광의 순간이 있는 거예요.
그것이 없이 그 영광의 순간을 맞이한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오늘 다윗이 무릎을 꿇고 “하나님이여, 내가 유다 땅으로 올라가리이까?” 하고 묻는 이것은 하나의 단순한 질문이 아닙니다.
다윗의 수많은 연단을 통해서 얻어진 결정체였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고 감동적인 모습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신앙의 훈련을 받을 때 얼마나 연단이 있습니까? 자, 응답이 안 오지요? 하나님 응답하신 게 참 더디게 역사되지요. 기다려도 기다려도 나를 찾아오는 것은 기근과 어려움이요, 꼬이는 일 뿐이지요. 그때마다 또 우리는 낙심해서 인간의 방법을 동원하지 않습니까? 내 방법대로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또 나서지는 않습니가? 그 결과가 망신이고 그 결과가 배신 아니었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또 다시 하나님께 돌아옵니다. 하나님, 이제 하나님 말씀대로 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또 오랫동안 응답이 오지 않고 계속해서 연단이 오면 실망해서 또 기도도 포기해 버리고 내 방법대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열심히 쫓아다니다 보면 또 실패를 맛보지 않습니까? 그러한 삶의 연속들을 통해서 얻어지는 게 뭡니까? 아, 이제는 내 방법대로 내 형편대로 내 생각대로 살아 보았자 결과는 실패요 망신이요 슬픔이요 괴로움 뿐이로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되지요.
그러고 나서야 다윗이 하나님 앞에 먼저 무릎을 꿇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실패를 맛보았습니까?
말씀대로 살고 싶지만 그대로 되지 않아서 마음이 아팠습니까?
그것 때문에 좌절은 하지 마십시오.
실패의 연속들을 통해서 우리 스스로가 체득을 합니다. 아, 이렇게 해서는 문제가 해결되는게 아니로구나.
그와 동시에 오늘 우리가 이 모습을 통해서 한 가지 기억할 게 있는데요.
오늘 다윗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때문에 하나님을 잃어 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성도들에게 있어서 고난의 기간 동안에는 하나님을 바라보기가 참 쉽습니다. 우리 생활이 어렵고 일이 꼬이고 괴로운 일이 닥치고 답답한 일이 닥칠 때, 그때는 차라리 하나님을 찾기가 쉬워요. 그렇죠? 뭐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될 때에야 마지막에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까? 주여, 나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주여, 나의 답답한 마음을 아시지요? 내가 어찌하리이까? 주여, 정말 하려고 마음 결심 굳게 했지만, 정말 교회 문 밖에만 나가서 사회로 들어가면 또 내가 엎어져 버리고 넘어져 버리고 또 은혜를 쏟아 버리고... 주여, 나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그때는 차라리 하나님을 찾기가 참 쉬운 것 같에요.
다윗이 광야생활 할 때 도망다닐 때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의지할 대상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 의지합니다.
그러나 진짜 위험한 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너희가 선 줄로 생각하거든 넘어질까 조심하라” 는 이 말씀처럼, 진짜 위험할 때는 언제냐? 바로 이렇게 하나님의 응답이 눈 앞에 실재적으로 드러나는 이 순간이야말로 위험할 때입니다. 다윗에게 있어서는 이제 연단의 기간은 끝난 겁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바로 사무엘하 2장에 나옵니다만, 그가 유다의 왕으로 즉위를 합니다. 이제 그가 왕이 되는 기회가 온 거예요. 그러나 이때가 정말로 실패하기 쉬운 때입니다.
오늘 많은 신앙인들이 언제 실패합니까?
실패했을 때 실패하는게 아니라, 성공했을 때 실패합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붙잡아 주옵소서. 축복해 주옵소서. 역사해 주옵소서. 하나님, 내 삶을 붙잡아 주시고. 내 직장을,내 가정을, 내 자녀를 붙잡아 주옵소서.
열심히 기도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을 하시기 시작하면 사람들의 자세가 틀려집니다.
저는 몇 일 전에 어떤 사모님의 고백을 들어 봤습니다. 그 사모님이 이런 고백을 해요. 목사님, 사람이 왜 이러지요? 글세, 목사님, 돈 좀 버니까 사람이 달라져요.
사업에 실패해서 끼니거리가 없고, 교회 올 교통비가 없어 눈물 뿌리고 살 땐 그러질 않았는데... 그래서 진을 빼며 그 성도를 위해서 기도하고 눈물 뿌려 줬더니, 그가 그때는 무릎 꿇고 기도하더니,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고 사업이 커 가니까 무릎 꿇는 모습들이 사라져 가기 시작하고, 교회에서 섬기는 모습도 겸손한 모습이 점점 힘이 들어가는 모습으로 바뀌더군요.
왜, 사람이 저렇게 달라져야 됩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응답을 실천으로 옮기실 때 그 열매를 여러분의 손에 주실 때에 그때가 더욱더 긴장할 때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다윗은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그가 왕위에 오르게 되었지만, 그러나 그것 때문에 그가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물어 보고 하던 그 모습을 버려 버리지 않습니다. 이제는 드디어 됐나이다. 이제부터 내가 떨쳐 나가서 내가 얼마든지 일할 수 있나이다. 하는 그러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 내가 유다 땅으로 올라갈까요? 하고 묻고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이 사업의 축복과 직장에서의 승진의 축복 그리고 가정에서의 축복들을 주실 때에 여러분의 모습은 어떤지, 나의 모습은 어떤지를 돌아봐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사업을 축복해 주시면 그 사업때문에 하나님을 잃어 버리는 모습을 저는 종종 봅니다.
하나님이 축복으로 직장에서 승진을 시켜 주시면 그 승진되는 것 때문에 상사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고 그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 시작하고 그 사람들에게 충성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축복하기 전까지는 하나님께 충성을 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직장에서 승진을 하면 그 다음부터는 더 승진하기 위해서 충성의 대상이 바뀌어 버리는 모습을 저는 봅니다.
우리는 우리를 축복하시는 하나님, 약속을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오늘 많은 성도들이 어디서 신앙의 실패를 맛봅니까?
하나님이 건강 주시고, 재능 주시고, 능력 주셔서 사회에서 승리하고 또한 출세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 하나님께 더 감사하고 하나님 앞에서 충성된 삶을 살아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그 길에 시간을 빼앗기고, 그 길에 마음을 빼앗겨서, 그 다음부터는 그 일을 위해 살아 갑니다.
출세를 위해 살고, 더 능력 있는 일을 위해서 살고, 사업을 더 확장시키기 위해서 살더란 말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짧은 한 절이지만 이 말씀 가운데 나타나는 다윗의 모습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 되기를 바랍니다.
신앙이 어렸을 때에는 어쩔 수가 없어요. 우리 동혁이가 어딜 데리고 가면 내 말을 잘 안 들어요. 사람들 많은 데 가면 말을 잘 안 듣죠. 애들이 눈치가 빤하니까 말이죠. 그런데 내 말을 잘 들을 때가 있어요. 사람들 많은 데서도 내 말을 들을 때는 바로 이 녀석이 로봇트 사달라고 할 때입니다. 왜? 그래야만 그것을 사 주니깐. 그러나 그 녀석은 내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실은 무엇 때문이지요? 로봇트 때문이에요. 그것 때문에 말을 듣는 거에요.
신앙이 어린 성도들은 어쩔 수가 없어요. 축복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해요. 하나님 말씀을 잘 들어요. 너, 주일 지켜라. 예, 알았습니다. 마지못해 나오는 거에요. 눈치봐 가면서 너, 십일조 해야 축복하지. 예, 알았습니다. 아깝지만 내놔요. 왜? 돈 놓고 돈 먹기니깐. 요것 하면은 하나님이 더 주신다니깐. 이건 어린애들 신앙 아니겠어요?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될 것은, 그 단계에 있어서는 안 되는 거지요. 다윗은 지금 그 단계가 아닙니다.
지금 많은 훈련을 통해서 지금 상당히 성숙한 단계에 와 있어요. 그러나 성숙한 단계에서 위험한 것이 뭐냐? 바로 이 부분이에요.
진짜 하나님이 사랑을 해서 축복을 했을 때, 그 사랑의 대상을 놓쳐 버린다는 사실입니다.
무엇에 눈이 어두워져서요?
그 선물에 눈이 어두워져서...우리 동혁이는, 제가 어디 지방으로 외출을 갔다가 돌아올 때, 대문을 열고 딱 들어오면 우리 동혁이는 쫓아 나와서 나는 쳐다보지도 않아요. 나하고 눈은 마주치지도 않고 내 손에 들려 있는 보따리로 눈이 가는 겁니다. 그 아이에게는 관심이 그것 밖에 없는 거에요. 그걸 받아 갖고는 감사합니다. 한마디 하고는 뛰어 들어가요. 사랑하는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오늘 우리는 이런 신앙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여러분들을 사랑하시되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여러분을 사랑하셨습니다.
사랑하시기에 여러분이 구하는 것보다 더 넘치도록 주시기를 오늘도 기뻐하고 있고, 또한 여러분들이 평강하며 풍성한 삶을 살기를 오늘도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은 여러분들에게 귀한 약속들을 줬고 귀한 은혜들을 베푸셨습니다. 사회에서 살아 가면서도 하나님 은혜 가운데 승리하는 삶들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사랑의 주체이신 하나님을 모르고, 그 분이 주시는 선물에 마음을 빼앗기고 시선을 빼앗기고 시간을 빼앗기고 산다면, 이것은 비극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오늘도 우리를 위하여 생명을 아낌 없이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 분이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주신 선물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습니까?
어디에다 마음을 두고 있습니까?
우리를 사랑해서 그 목숨까지 우리를 위해서 주신 주님을 향해서 우리의 마음이 가 있습니까?
아니면 그 분이 주시는 물질의 축복이나 건강의 축복이나 출세의 축복이나 승진의 축복이나,
또는 자녀의 축복 등 그 분이 덤으로 주시는 것들에만 마음이 가 있습니까?
우리가 동시에 기억해야 될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을 여러분들에게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 약속은 하나님께서 분명히 이루십니다.
여러분, 그 기간이 다윗은 13년이었습니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될 때까지는 13년이란 세월이 지났습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참 너무 조급해요. 이게 말세의 증상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셨다 그러면 그 다음 해에 그냥 다 돼야 되는 걸로 알아요. 그 다음 달에 다 돼야 되고, 그 다음 해에 다 돼야 되고... 1년 2년을 기다릴 줄 몰라요. 이거 뭐 3년만 그냥 지나가면, 이건 뭔가 이상한 걸로 생각해요.
아브라함은 25년만에 하나님이 주시겠다 약속한 아들을 얻었고요.
다윗은 13년만에 이스라엘 왕이 됐습니다.
요셉도 그가 소년 때 받았던 그 이상이 나이 30세가 됐을 때에야 이루어졌습니다. 하루 아침에 되는 게 아니에요. 그 긴 기간들을 잘 인내하십시요.
야고보서 1장에 뭐라 그랬습니까? “너희는 인내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라.” 그랬습니다. 인내함으로... 인내로 온전히 이루라 그랬어요.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다른 게 아닙니다. 그렇게 인내를 잘 하시면, 분명히 하나님 응답 하실 때가 되면 응답을 하십니다. 그때에 더욱더 깨어서 기도하십시오. 그때야말로 여러분들이 긴장을 해야 될 때입니다.
그 다음 둘째로, 우리가 이 본문을 통해서 함께 생각하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방법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방법을 봅시다.
다윗이 하나님께 묻지요. “내가 유다 한 성으로 올라가리이까?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올라가라.“ 그러십니다.
그 다음에 다윗이 또 묻습니다. “하나님, 그러면 내가 어느 성으로 가리이까?”
그런데 이게 참 중요한 대목이에요. 하나님께서 올라가라 그랬으면, 다윗이 더 이상 물을 필요가 없어요. 사실은 하나님이 다윗을 시험하는 모습입니다. 다윗이 어느 정도 훈련이 됐는가를 여기서 알 수 있어요. 유다 한 성으로 올라가리이까고 물었을 때 하나님께서 올라가라 그랬습니다. 응답 받았어요, 못받았어요? 받았지요. 그러면 더 이상 머무를 필요가 없는 거에요.
이때 다윗이 유다의 여러 성 가운데 어디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제일 컸겠습니까?
이스라엘의 정치, 경제, 사회의 중심지가 어딥니까?
유다 예루살렘 아닙니까?
사실 어떤 면에서 보면 다윗이 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을는지 모르겠어요. 그리 올라가면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데 제일 빠른 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 순간 일단 멈추고 묻습니다. “하나님, 어디로 올라가야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어디로 가라 그래요? “헤브론으로 가라.” 그러십니다.
헤브론으로 간 결과 7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다윗이 왕이 되긴 됐는데, 유다 한 지파의 왕 밖에 되질 못해요. 이스라엘 전체 왕은 안 되고... 11지파는 다윗을 따르지 않습니다. 7년 반 동안 또 조그마한 유다 지파의 왕으로 머물러 있어요.
참 이거 우리가 볼 때 말이죠 답답한 일이에요.
사실은 기름부음 받고 난 후 13년 동안 도망다니다가 이제 겨우 왕이 돼 가지고, 하나님이 왕으로 만들어 준다는 그 약속이 이루어졌는데, 그 왕이 되는 것조차도 7년 반 동안은 또 불완전한 왕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는 방법을 봐야 합니다.
그건 뭐냐?
점진적 인도하심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응답을 주시는데 무엇을 주시느냐 하면, 네가 왕이 되겠다. 그래요. 그런데 그 왕이 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언제 된다, 어떤 방법을 통해서 된다,어떤 모습의 왕이 된다는 응답이 있어요, 없어요? 그런 응답이 없습니다. 무조건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된다 그래요. 왕이 될 줄은 아는데, 그동안 13년 동안 도망을 다녀야 돼요. 왕이 되는 건 커녕 왕과는 거리가 먼, 왕궁과는 거리가 먼 변방으로 도망다니는 실패자가 됩니다. 13년이 지난 다음 왕이 되긴 되는데 또 불완전한 왕이 됩니다. 그후 7년 반이 지난 다음에야 이스라엘 전체왕이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발견할 게 하나 있어요. 저는 짧은 제 일생을 보더라도 이런 걸 참 많이 느낍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어머니께서 처음으로 저한테 들려 준 말씀이, 너는 큰아들이기 때문에 너를 낳자마자 8일만에 첫 자식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여서 너를 하나님께 바치기로 서원을 했다. 그러셔요.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그 말을 처음 들었어요. 그때까지 우리 어머니가 저한테 비밀로 하고 있었어요. 그때 제가 처음으로 주의 종이 되어야 할 사람이라는 걸 인지했습니다. 그때까지 제 꿈은 주의 종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제 꿈은 전혀 다른 데 있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제 꿈은 그것 하나로 계속돼 왔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저한테 메세지가 들려진 거죠. 너는 첫 자식이기 때문에 네가 난지 8일만에 하나님께 바치기로 서원했다. 저는 압니다. 우리 어머니가 그때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할 때, 처녀 때 그리고 시집와서 새댁 때 저희 어머님이 옆 집에 무당이 굿하면 담 너머 구경만 해도 무당이 굿을 못했어요. 그만큼 은혜가 있었어요.
그렇게 은혜가 충만할 때 서원했다면 그것이 우리 어머님의 마음이었겠어요? 성령의 감동이었겠어요?
성령의 감동입니다.
그것이 틀림없이 성령의 감동이라면, 그것은 누구의 뜻이에요? 우리 어머님의 뜻일까요? 하나님의 뜻일까요?
오늘 제가 목사 된 것만 봐도 알잖아요. 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그걸 벌써 알았어요. 교회에서 잔뼈가 굵어 가지고 하나님의 그 수를 알거든요. 내 인생의 계획은 그게 아니었고, 목표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부터 저는 그걸 굽히기 시작했어요. 사실 참 저는 굽히기가 싫었어요. 그러나 마지못해 굽혔습니다. 왜? 안 굽혀 봤자, 고집 피워 봤자, 나중에 두들겨 터지고 꺾이고 짓밟히고 돌아온다는 걸 저는 알아요. 그래서 아예 일찌감치 마음을 결정했어요. 그래서 제가 그때 아, 나는 목사가 되는 게 하나님 뜻이로구나. 하고 소명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제가 어떤 목사가 될지 잘 몰랐어요. 그러나 제가 그 다음부터 계속 기도생활하면서 기도했던 건 무엇이었는가? 하나님, 저는 이런 종이 되기를 원합니다. 제 마음에 소원을 줘요.
기도할 때마다 소원을 주는데, 어떤 소원이냐면, 세계적인 부흥사가 되게 해주십시오 하는 기도였어요. 주제에 겁도 없이 기도를 했어요. 저는... 사실 그랬거든요. 겁도 없이 한 기도에요. 세계는 커녕 유럽도 못 가는 주제에 세계적인 부흥사가 되게 해 달라고 한 10년은 제가 기도를 했다구요
. 그런데 군대 제대를 하고 나오니까 부흥사 커녕, 기도원엔 한 번도 못 가게 하는 교회에 가서 전도사 생활을 7년 동안 했어요. 저는 7년 동안 기도원엔 한 번도 못 가 봤어요. 목사님이 허락을 안 해서지요. 그 교회는 날마다 가르치는 교회에요. 그래서 제 생각이 바뀌었어요. 아, 하나님이 내가 목회할 때 가르치는 목회하라는 구나. 가르치는 달란트를 그때 주시더라구요. 그래서 아, 이젠 내가 목회를 하면 가르치는 목회를 해야 되겠구나 라고 생각을 고쳤지요.
그래서 제가 7년 있다가 교회를 개척했는데, 그때는 날마다 성경공부였었어요. 우리 교회가 부부 성경공부에다 화요일 낮에는 부인 성경공부 날마다 성경공부였죠. 사실 제가 처음 목회를 하면서 현재 강성교회의 모습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이 효성동 와서 목회할 것은 여기 오기 한 달 보름 전까지도 몰랐어요. 효성동이란 이름도 모르고 살았다구요. 한 달 보름 전만 해도 제게 분명히 개척해야 된다는 소명을 주셨어요. 그러나 목회를 하더라도 개척교회 목사 그걸 주셨다구요. 그 다음 단계에서 개척지를 결정하는데, 여기로 결정되리라고는 그때도 몰랐어요. 어딘가 개척을 해야 된다는 사명감 뿐이었지요. 이 자리로 결정되기 일 주일 전까지만 해도 몰랐지요. 결국 여기가 결정되고 저 상가에서 시작을 했지요.
그 상가에서 제가 목회를 하는 순간에도 제가 뭐라고 가르친 줄 아십니까?
많은 돈을 들여 갖고 무슨 교회 건축이 필요하냐?
그걸 갖고 선교나 하지.
아마 그때 초창기에 저희 교회에 출석했던 성도들은 제가 이렇게 가르쳤던 걸 기억할 거에요.
제가 성경공부하면서 그렇게 가르쳤어요. 몇 억씩 들여서 무슨 교회를 짓는가? 그건 낭비다. 그 돈 가지고 차라리 선교나 하지. 제가 그때 생각은 또 그랬어요.
그러나 상가에서 1년이 지나니까 생각이 바뀌어요. 기도하면서 기도가 빠뀌어요. 아! 이게 아니로구나.
왜? 애들 주일학교 교육이 안 돼요. 조그마한 홀 안에서 유치부에서 6학년까지 한 반에 한꺼번에 분반공부를 하니, 선생님들이 점점 톤이 높아 가요. 이쪽 선생님이 조금 크게 하죠. 작게 하면 잘 안들리니까. 그러면 그 옆에 있는 선생님은 더 크게 하죠. 이게 악순환이 되면 나중에는 선생님들이 막 악을 쓰고 있어요. 교육이 안 돼요.
아! 이게 아니로구나. 교회가 장기적으로 보면 교육관이 필요하다. 장기적으로 보면, 이거 언제 비워 달라 그럴지 모르는데, 교회가 안정된 예배당이 필요하다. 그게 느껴 지더라구요.
기도하는 가운데, 이것이 내 욕심입니까?
하나님, 이게 목회자의 욕심입니까?
하나님의 뜻입니까? 하고 제가 3개월 동안 기도하고 고민했어요.
교회 건축을 놓고 기도할 때도 여러분 잘 아실 거에요. 3개월 동안 고민하면서, 하나님, 내가 목회하다 보니까 목사 욕심이 생겨 갖고 교회 짓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성령이 마음을 감동시키는 하나님의 뜻입니까? 이것 때문에 3개월 고민하던 끝에 교회를 건축하기로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그때는 이 모습을 생각도 못했습니다.
자, 여러분 보십시오. 제가 지금 무얼 말씀드리는 지를 아시겠지요?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데 있어서는요 분명히 응답을 주셔요. 너 목사 되어라. 아멘.
그러나 어떤 목사가 될 것이며, 어떻게 목회할 것인가, 그리고 목회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변화가 이루어 질 것인가는 전혀 감을 못 잡고 있었습니다. 저는 기도했어요. 하나님, 이 강성교회가 10주년 됐을 때 하나님이 강성교회를 세우신 목적 대로 복음 전파하는 선교센타를 지을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십시오. 그리고 먼저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일꾼들을 주옵소서. 하고 기도했어요. 10주년이 됐을 때 그 일이 우리 눈 앞에 가시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저는 분명히 말씀을 드렸어요. 이건 제 믿음이에요.
그러나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통해서 누구를 통해서 어떻게 이루어 질 건지는 저는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인도하심에 대해서 기억을 하십시오. 너무 조급하게 해서는 안 되구요. 우리 인간적인 계획을 너무 거기에다 가미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솔직히 말씀드려서 그 일이 저를 통해서 끝까지 이루어 질 일인지, 아니면 다른 목사를 통해서 이루어 질 일인지도 모릅니다.
다만 강성교회를 세우신 하나님께서 이 강성교회 초대 목사로 이철호를 보내시면서 이 비전을 제시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강성교회를 통해서 이 일을 이루시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나를 통해서 이루어 질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 질지는 모르겠어요.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현재 보는 것 뿐입니다. 하나님 인도하는 방법은 점진적입니다. 한 단계 나가 보면 그 다음 단계가 그때서야 보입니다. 여러분들, 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윈리에 대해서 우리가 기억하면서 동시에 한 가지 명심하여야 할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바로 인내가 필요하다는 사실과 그 일을 위해서 항상 기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여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잠언 3장 5-6절에 보면, “너의 지헤를 의지하지 말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고,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저가 너를 지도하시리라.”
그랬어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모든 일을 하나님께 물어라 그 말이에요.
다윗의 모습을 보십시오.
올라가리이까? 올라가라. 그러면 어느 성으로 가리이까? 어린애 같지 않아요? 그러나 그것이 은혜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다윗의 모습이 이렇게 이루어 지기까지는 수많은 실패와 고난의 기간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에게도 수난과 고난과 실패의 시간들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실패와 고난 때문에 낙심을 하지 마십시오.
좌절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아름답게 열매로 나타날 때가 분명히 주어 진다는 사실과, 그것이 아름답게 역사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동시에 하나님이 이렇게 축복하실 때, 그 축복 때문에 축복을 주시는 주체이신 하나님에게 시선을 더욱더 고정시키시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여러분들이 절대적으로 순종하시는 복된 삶이 이루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뜻은 점진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이렇게 점진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보는 것은 온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순간 순간 더욱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고, 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순간 순간마다 그 다음 순간을 위해서 또 기도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순간 순간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또한 점진적 계시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인도 방법을 깨달으면서, 오늘도 우리가 한 순간도 놓지지 않고 하나님께 범사를 맡기면서 살아 가는 복된 삶이 저와 여러분에게 함께 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한서노회(http://cafe.daum.net/harns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