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예수님은 상을 베푸실까?
(시편 23:1-6)
저는 여러분과 함께 ‘왜 예수님은 상을 베푸실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주에 남양주에서 3년정도 후면 은퇴하는 목사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목사님께서 복음을 전하는 것외는 소망이 없다고 열린모임과 양육반을 강의하면서 행복한 목회를 한다고 간증하셨습니다. 남들은 은퇴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냥 살다가 은퇴하지요.라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목사님은 하나님앞에 그냥갈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는 복음의 절대적 능력과 제자삼는 비전에 사로잡혀 목회를 하고 있는데 참 행복하다고 고백합니다.
제천에 있는 시골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는 젊은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마을에 그 교회 하나이고 어린이들이 전체 53명인데 그교회에 46명이 나온다고 합니다. 교회어린이들이 축구를 하면서 어린이가 전도가 되어 갔다고 합니다. 그 교회는 어린이들의 놀이터이고 공부방이기고 게임방이기도 합니다. 그곳에 학교 교장선생님은 무슨 행사가 있으면 교회 목사님께서 꼭 물어서 교회행사가 겹쳐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물어 온다고 합니다.
요즘 교회 부흥이 안된다고 말들을 하지만 교회가 잘되고 있는 교회도 있는 것입니다.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고 긍정적인 면도 볼수 있는 믿음의 눈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은 하나님은 나의 목자이시고 내게 부족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우리에게 부족하지 않을까요? 왜 예수님은 선한 목자일까요? 왜 예수님을 꼭 믿어야 할까요?
첫째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찌라도 함께하시는 예수님이 있습니다.
생명에는 기쁨과 활기와 희망과 꿈과 행복이 따르지만 사망에는 슬픔과 무기력과 절망과 좌절과 불행과 고독이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사망 아래서 살고 있기 때문에 오늘 세상에는 슬픔이 꽉 들어차고 무기력, 절망, 좌절, 불행, 고독이 횡횡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도서 2장 22절로 23절에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으로 소득이 무엇이랴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 뿐이라 그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망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속에 넓은 들판을 걷고 평탄한 평지만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음침한 골짜기를 지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음침한 골짜기를 마귀의 습격이 있는곳, 으시시한 공포의 곳, 버림받은 곳, 피할곳이 없는 곳, 벗어날 힘도 방책도 없는 이와같은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때가 많습니다.
몇 년전에 고대생이 자기 아버지 어머니를 죽인 사건이 일어나 온 나라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것도 시체를 너무나 잔인하게 토막을 내어 죽였습니다. 아버지는 완벽주의자 군인 출신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영부인을 꿈꾸던 꿈많은 여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신학교 공부를 하였습니다. 주변에서 너무나 믿음이 좋고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여인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완벽 주의자라 늘 아내를 들볶았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일류로 만들려고 늘 잔소리였습니다. 상처가 늘 전가되는 집안이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아들을 완벽하게 길러 보려고 늘 상처를 주었습니다. 살인범이 된 아들의 일기에서 이런 구절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시계보는 법을 배맞으면서 배웠다. 유치원 때...
운동화 끈 못 맨다고 매를 맞았다.....초등학교 때
대변 검사하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밤 늦게 쫒겨 날 뻔 하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밥을 늦게 먹는 다고 아버지가 젖가락을 던져서 유리창에 금이 갔다....초등하교 4학년 때....
전화 받은 것을 잘 전달 못 하였다고 구타를 당하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과천 고등학교에 못 들어 갈 것같다면서 혼이 났다. 중학교 때......
키가 작아 큰 사람이 되지 못 할 것 같다면서 혼이 났다. 고등학교 때....
나는 현재까지 모욕만 당하고 살고 있다”
그는 어머니를 토막 내고 그 시체 앞에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엄마!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힘들었나요?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만 들었더라면...그 한 마디만 했으면...”
미안하다. 미안합니다.
상처를 부정적으로 처리하는 사람에게는 악신이 임합니다. 부모를 토막살인하는 것은 악신이 아니고는 도저히 불가능입니다.
그러므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난다는 것은 어마어마하고 고통스러운 경험입니다. 그러나 주를 의지하는 사람은 이와같은 것들을 지나면서도 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할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는 희망을 잃어 버리고 큰 상처를 입고 제기불능이 된다고 생각하므로 극도의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처해 있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이를 이길수 있는 것은 사망보다 더 크시고 위대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두려움보다 더 위대하신 이를 우리가 확실히 알고 그를 모시고 있으면 두려움이 사방에서 오더라도 두려움보다 크신 이분앞에 두려움은 한길로 왔다가 일곱길로 도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1서 4장 4절에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크고 작은 이가 부딪히면 큰이가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보다 더 크고 위대하기 때문에 이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긴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동행하고 계신 것입니다. 빛이 어두움을 이기듯 예수님은 사망조차도 다 물리치고 이기신 것입니다.
요한1서 5장 5절에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줄 믿으면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가 되시고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가 되시고 그 안에 있는 우리들은 사망의 세력조차 이길수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원수의 목전에서 진수성찬을 베푸시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여러분 원수가 멀리있지 않습니다. 원수가 집안 식구라고 예수님이 말했습니다. 사울은 그 사위 다윗과 싸웠습니다. 다윗의 원수는 바로 장인이 원수였습니다. 여러분 가인은 그 형제 아벨과 싸웠습니다. 바로 가인이 그 동생 아벨을 처죽였습니다. 스승과 제자간에 원수가 됩니다. 예수님은 스승이고 가룟유다는 제자인데 가룟유다가 스승을 죽는데 내놓았습니다. 민족과 민족, 나라와 나라 어느곳에나 원수는 있습니다. 원수가 없이 살려면 이땅을 떠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땅에 있는 이상 가장 가까운 내 혈족으로부터 시작해서 이웃, 친족, 친지간 원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마귀는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해서 어느 사람에게나 들어가서 우리를 죽이려고 역사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우리의 삶의 태도가 우리의 힘으로 원수와 싸우려고 하면 안됩니다.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산 것은 내가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께서 내 안에 사시면 나의 주인은 내가 아니요, 예수님이 나의 주인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거하는 집이요, 하나님은 주인으로써 내 몸에 계시기 때문에 주인인 하나님께서 나를 돌보아 주시고 나는 주인을 섬기는 종으로만 살면 주인이 모든 삶을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자기 집의 주인이 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집의 주인이 자기가 된다면 자기가 그집을 지키고 보호하고, 수선하고 돌봐야 되지 않습니까? 자기의 힘이 모자라면 자기 집을 지키거나 보호하거나 수선하거나 돌보지 못하잖아요. 그러나 우리의 성전 하나님의 집에 주인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이 주인이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을 섬기는 종이 된다면 우리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전지전능, 무소부지하신 능력으로 우리의 집을 보호하시고 지키시고 수선하시고 돌보아 주시니 집이 무너지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인되신 하나님께서는 원수가 다가오면 원수의 목전에서 진수성찬을 베풀어 주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다윗이 베푼 골리앗 상을 보십시오. 여러분 골리앗은 블레셋 군대의 장군이었습니다. 바로 블레셋 군대가 보는 앞에서 하나님은 다윗에게 능력을 주어서 골리앗의 목을 치고 진수성찬을 베풀었습니다.
사무엘상 17장 50절로 51절에 보면 블레셋 군대의 목전에서 골리앗 상을 베푸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 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 다윗이 달려가서 블레셋 사람을 밟고 그의 칼을 그 집에서 빼어내어 그 칼로 그를 죽이고 그 머리를 베니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용사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는지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블레셋 원수 군대들이 목전에서 다윗에게 골리앗 진수성찬을 차려 주었습니다. 골리앗을 다윗은 쳐서 이겼기 때문에 온 이스라엘에 알려지게 되고 만성천자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것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에게 베푸신 상을 보십시오. 느브갓네살 대왕의 목전에서 풀무불상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느브갓네살 천하에 대왕이요, 공중에 나는 새도 명령으로 떨어 뜨리는 위대한 왕, 그 왕을 대적해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우상에 절하지 않았습니까? 왕은 진노해서 일곱배나 뜨겁게한 풀무불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던져 넣었습니다만 하나님은 그 원수의 목전에서 진수정찬을 차려 주었습니다.
다니엘 3장 28절로 30절에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가로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그가 그 사자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 몸을 버려서 왕의 명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방언하는 자가 무릇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설만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으로 거름터를 삼을찌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하고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도에서 더욱 높이니라”
느브갓네살이 아주 감탄했습니다. 세사람이 풀무에 던졌는데 네사람이 불풀무에서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그 네 번째는 하나님의 아들과 같이 보였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뛰어 들어오신 것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풀무에서 나왔을 때 그는 묶어 놓은 밧줄만 타버렸지 머리카락 하나 타지 않고 옷하나 그슬리지 않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느브갓네살 대왕 목전에서 풀무불상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은 크고 비밀한 일을 나타내셔서 우리에게 원수의 목전에서 진수성찬을 차려 주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우리가 아는 것이야 우리가 해결할수 있지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역사로써 원수의 목전에서 진수성찬을 차려 주겠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33대 대통령이었던 트루먼은 은퇴후 어느날 트루먼 기금 도서관에 들렀습니다. 마침 동네 초등학교 학생들이 와있다가 노인 대통령을 발견하고 “야~”하고 모여 들어서 대통령 주위를 감쌌습니다. “대통령 할아버지는 우리들 나이에 인기가 있었죠? 학교에서 반장을 하셨겠죠?” 트루먼 대통령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정반대야, 나는 어려서부터 눈이 몹시 나빠 안경없이는 맹인과 같았단다. 재주도 없고 공부도 별로 잘하지 못하고 정말로 겁쟁이였단다.” 아이들은 뜻밖이라 놀라며 다시 물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대통령까지 되셨어요?” 그러자 트루먼씨는 차분한 음성으로 아이들을 둘러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내안에 계시는 하나님이 나와 항상 함께 계시고 나를 도와 주시고 내가 힘에 겨워서 아무것도 할수 없을때에도 나에게 힘을 주신다는 성경말씀을 평생으로 믿었단다. 그래서 나는 무엇이든지 다 할수있다고 믿었단다. 하나님이 내 등뒤에 계시니까.” 트루먼 대통령은 제2차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끄신 위대한 대통령이었지만 그는 말하기를 ”나약하고 겁이 많고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었지만 속에 계신 하나님이 도와주신다고 알고 긍정적인 믿음으로 고백했다“. 그는 대통령이 되고 미국을 구출할수 있었습니다.
우리 복음성가에 있지 않습니까? 나의 등뒤에서 나를 도우시는주, 평안히 길을 갈때는 보이지 않지만 지치고 곤하여 넘어질때는 다가와 손내미시네. 일어나 걸으라. 내가 새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으리 내가 너를 도우리 (아멘) 할렐루야~. 그 결과로 우리 하나님과 같이 있으면 잔이 넘칩니다. 잔이 넘친다는 것은 큰 기쁨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슬픔과 환난에 눈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 기쁨을 주십니다.
시편 68편 19절에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날마다 우리의 짐을 지어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시편 30편 5절에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찌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잔이 넘치게 해주시는 주님이신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의 미래에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게 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아무리 현실에 하나님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같이하여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안위해 주시고 또 원수의 목전에서 진수성찬 차려 주신다고 해도 미래에 죽고 난 다음에 아무것도 없어 진다면은 얼마나 좌절과 절망이 다가오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미래는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루, 이틀 거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집에서 살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육신의 장막집은 병들고 쇠약해지고 무너집니다. 우리의 몸이 얼마나 오래 간다고 생각합니까? 우리도 소년시절이 있었고 청년의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습니다. 장년의 활기찬 시절도 있지만은 쉬 백발이 되고 온몸엔 병들이 생겨납니다. 전문가의 말을 들으니까 사람은 35세부터 완전히 늙기 시작한답니다. 35세가 피크랍니다. 옛날에는 35세에 거의다 죽었답니다. 요사이는 음식이 좋고 약이 좋아서 몸에 염증이 생기고 고장이 생겨도 좋은 영양과 약을 통해서 35세를 극복하고 80세까지 살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80을 살고 90을 산다해도 사람이 한번나서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죽고 난 다음에는 심판이 있는 것입니다.
시편 90편 3절에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안돌아갈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다 돌아갑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어느 시골 초등학교에 선생님이 애들을 데리고 소풍을 갔다가 점심을 먹고 난 다음에 자유시간을 주었습니다. 지금은 여러 가지 놀이가 많지만 우리 어릴때는 놀이가 없어요. 애들이 그때는 땅에 줄을 그려놓고 땅따먹기를 합니다. 가위, 바위, 보하고 땅을 따먹고, 가위, 바위, 보하고 땅을 따먹고. 그렇게 하다가 네가 내 땅을 많이 차지했다. 아니다. 나는 억지로 땅을 차지하지 안했다고 패싸움이 벌어졌습니다. 패싸움이 벌어져서 엉켜가지고서 멱살을 잡고 머리를 박고 치고 박고 야단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호루라기를 ‘호르르르’ 불었습니다. 놀라서 처다보니까 “자~ 이제 한줄로 다서라~ 집으로 돌아가자” 털털 털고 줄을 서기 위해서 나오보니 뒤에 남은 것은 네땅도 내땅도 없고 모래땅만 남았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로 3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계시면 그것이 천국인 것입니다. 그곳에 삶의 의미와 가치와 영광과 평안과 기쁨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여호와의 집에 있을 것입니다.
여호와의 집은 예수님이 2천년이 걸려서 예비한 아름다운 천국이 우리의 집입니다. 그곳에는 주님이 황금종 울리면 우리 다 손 털털털 털고 눈물과 근심과 고통과 괴로움으로 얼룩진 땅을 뒤로 두고 아버지 집으로 가게 될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희망입니까?
이 세상이 아무리 험하고 내 비록 아무리 약해도 주께서 지팡이와 막대기를 가지시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나와 함께 계시고 해를 받지 않게 해주시고 원수의 무자비한 공격도 주께서 대신 싸우셔서 오히려 잔치상으로 만들어 기쁨이 넘치게 하시고 죽음이 오면 아버지 집으로 이끌어 주시니 어떤 절대절망이나 부정적인 세력도 이 막강하신 주님 앞에서는 빛앞의 어두움처럼 사라지고 영원한 긍정만이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어두움은 사라지고 빛만 있는 것입니다. 죽음은 사라지고 생명만 있는 것입니다. 고독은 사라지고 항상 주께서 목자로 계셔서 우리와 함께 계신 분만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부정은 없습니다. 죽으나 사나 예수님안에서 기쁨과 소망이 있을 따름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품에 품고 가시는 그길에 어떠한 부정적인 세력도 한길로 왔다가 일곱길로 도망치게 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