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곡 많은 한국 현대사는 영화 소재의 보고다. 하지만 우리는 정치적 억압에 오랫동안 길들여져 왔고 또 이해 당사자가 생존해 있기 때문에 민감한 정치적 사안들을 소재로 한 영화들을 만나기 힘들었다.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처럼 정치권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우회적 경로를 통해야 했고, 정치권의 치부를 건드린 [서울 무지개] 역시 우회적 접근방법으로 그 본질이 가려져야만 했다.
<1954년 제 1공화국 말기에서 1979년 3공화국 말기까지의 격변기를 청와대 이발사의 눈으로 살펴보는 [효자동 이발사]는, 한국 현대사에 대한 짧은 우화이다. 제 1공화국의 사사오입 개헌부터 3.15 부정선거, 4.19 혁명 그리고 5.16 쿠테타로 집권한 군부세력의 철권통치가 [실미도] 사건의 단초가 되었던 1.21사태, 월남전 파병 등을 거쳐 10.26으로 종말을 맞기까지 격랑의 한국 현대사가 빠짐없이 등장한다.
신인 임찬상 감독의 데뷔작 [효자동 이발사]의 미덕은, 사연 많고 굴곡 많은 정치적 격변기의 한국 현대사를 한 평범한 소시민 이발사의 시선으로 소화해냈다는 것이다. 비록 우화적 접근이기는 하지만, 독재 권력의 생성부터 암투를 거쳐 암울한 종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권력의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청와대 이발사 성한모(송강호 분)의 눈으로 무리 없이 보여주고 있다.
대통령 관저 청와대가 위치한 효자동의 평범한 이발사 성한모가 대통령 전용 이발사가 되면서, 관객들은 그의 시선으로 권력 내부를 엿보게 된다. 이런 기본적 서사구조의 틀 속에는, 거대 권력과 왜소한 개인의 충돌이라는 보편적 주제가 담겨져 있다. 국가발전을 위한다는 대의명분 아래 평범한 소시민들은 이유 없이 고문당하고 투옥 당한다. 자유와 인권이 유린되는 참상이 성한모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내러티브를 통해 자연스럽게 고발되고 있다.
특히 유신 치하의 살벌했던 시기를 설사병, 일명 마루구스 병을 통해 알레고리화해서 묘사하는 것은, 정공법으로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드러내지 않고 우화적 접근 방법을 택한 제작진으로서는 독특한 발상이었다. 북에서 내려온 무장공비가 설사를 하고, 그것이 전염되자 설사를 하는 사람들은 간첩들과 접선한 사람들이라며 조사를 받게 된다. 성한모는 자신의 어린 아들 성낙안이 설사를 하자 자진해서 경찰서로 데리고 가 조사를 받게 한다. 아무 죄가 없으므로 당연히 풀려날 것으로 생각했던 아이는, 그러나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 수사관으로부터 강도 높은 전기고문을 받고 하반신 몇 달 후 불구의 몸으로 다시 돌아온다.
전기고문의 강도를 높이지만 소년의 몸에 연결된 전선의 전구에서는 반짝반짝 아름다운 빛이 깜박거리고 아이는 비명을 지르는 대신 즐거운 미소를 짓는 장면은, 마치 에밀 쿠스트리차가 보스니아 내전을 우화적으로 접근한 [언더 그라운드]의 마술적 사실주의를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이런 우화적 접근방법은 현실의 구태의연함을 포괄적으로 뛰어넘으며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상황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전해준다.
송강호의 가장 큰 장점은 배역에 대한 깊은 몰입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움이다. 그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다른 인물에게 절대 시선을 돌릴 수 없다. 캐릭터가 발산하는 자장은 주변 배우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특히 문소리는 면도사 출신의 평범한 이발사 아내 역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보여주며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발사의 동네 친구들 쌀집 주인 최씨의 윤주상이나 만두가게 왕씨의 정규수, 연탄가게 주인 안씨의 오달수 등 연극무대에서 성장한 배우들의 화음도 좋다.
[효자동 이발사]의 또 하나의 매력은 지나간 시절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재현되어 있다는 것이다. 50년대에서 60년대를 거쳐 70년대 말까지의 풍경이, 전북 완산군에 세워진 효자동 오픈세트를 중심으로 치밀한 고증을 거쳐 관객들에게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효자동 부근에만 미시적으로 집착하고 있어서,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커다란 그림은 등장하지 않는다. 우화적 상상력을 너무나 조심스럽게 펼쳐나가기 때문에 활달함이 사라져버렸다.
분명히 우화의 한계는 있다. 우화는 에둘러 가는 것이다. 때로는 현실보다 더 깊은 현실을 폭넓게 껴안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날카로운 맛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효자동 이발사]는 군부독재 시절 권력 상층부의 깊숙한 이야기를 다루면서 청와대 내부의 경호실장과 중앙정보부장 사이의 권력암투라든가, 체제에 저항하는 반체제 인사를 불법 체포하고 고문하던 암울한 시절의 모습들이 등장하지만, 우화적 방법론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의 그것보다 훨씬 완곡하게 묘사되어 있다.
또 어느 부분은 역사적 사실에 근접해서 묘사해 들어가다가, 갑자기 어느 부분에서는 현실에서 발을 빼고 우화로 넘어가며 정면승부를 피해버린다. 이런 자세는, 거대 권력과 왜소한 개인의 충돌 과정에서 파생되는 억압적 세계를 힘 있게 고발하지 못하는 결정적 원인이 되고 있다. 성한모의 개인사를 통해 더 치열하게 정면승부가 이루어졌다면, 혹은 우화적 방법론을 극단적으로 밀어부쳤다면, 역사적 집단적 고통이 이름 없는 소시민의 삶을 통해 더 울림 있게 전달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다. [효자동 이발사]는 가까운 한국 현대사지만 영화라는 양식을 통해 제대로 조명된 적이 없는 소재를, 평범한 소시민 이발사의 시점으로 접근하고 있다. 발전과 성장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자유가 제한되고 인권이 무시되었던 고통과 억압의 시대를, 우화적 알레고리를 통해 드러내는 [효자동 이발사]. 우리 삶에 대한 성찰의 문을 열어주지만 그 문은 대문이 아니라, 샛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