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국 사적지 (박물관 고분전시관) 주차장 : (☎; 054-834-0302)
주소: 경북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 377-2
*. 제오리 공룡발자국 화석 :
주소: 경북 의성군 금성면 제오리 산 111-3 111번지 외
*. 고운사 : (☎: 054- 833- 2324 )
주소: 경북 의성군 단촌면 고운사길 415 (지번: 단촌면 구계리 116)
*. 사촌 가로숲 :
주소 : 경북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 356
*. 사촌마을 :
주소 : 경북 의성군 점곡면 점곡길 28 (지번: 점곡면 사촌리 233 )
*.경북 의성군 문화 관광 경제과 : (☎ : 054- 830- 6356 )
주소: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군청길 31 (지번: 후죽리 509-2 )
*.조문국 박물관,고분군일원(09:20-11:20):최금희해설사(010-8642-7496) 사전 예약함
*.고운사,사촌마을 일원 (13:50- 17:00): 박금숙해설사(010-6525-8140) 사전 예약함
#.식당
*. 의성마늘한우프라자 ; 054- 832 - 4422 ....점심식사
의성군 의성읍 중앙길 55-3 (의성예식장옆) [지번: 의성읍 도서리 228 ]
*. 의성흑마늘삼계탕오리 : 054- 833 - 5255 , 010- 5511- 7055 ...저녁식사
의성군 의성읍 사곡로 47 [지번: 상리리 527-1]
#1. 김수환추기경 사랑과 나눔공원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공원’은 한국 가톨릭을 대표하는 인물이자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오신
김수환 추기경의 사랑과 나눔 정신을 실천하고 계승하고자 추기경님의 생가를 중심으로 공원을
조성하였습니다. 특히 공원내에 위치한 ‘김수환 추기경 기념관’의 전시공간은 추기경(님)의
삶의 여정을 옹기를 빚는 과정과 접목하여 담아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공원’은 남녀노소 누구나 사랑과 나눔의 마음을 일깨우며 생활 철학을
배울 수 있는 산 교육의 장이며 동시에 관람객에게 정신적 휴식처를 제공하는
군위군의 대표적인 힐링공간입니다.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많은 분들이 김수환추기경
사랑과 나눔공원을 찾아오셔서 물질과 명예, 권력보다 더 소중한 사랑과 용서,
나눔의 마음을 배울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김수환 추기경사랑과 나눔공원의 조감도입니다.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공원 조감도
① 김수환 추기경 생가 ⑤ 전시관
② 추모정원 ⑥ 중앙광장
③ 잔디광장 ⑦ 십자가의 길
④ 경당 ⑧ 평화의 숲
⑨ 주차장
김수환추기경 사랑과 나눔공원은 군위읍 용대리에 있다
김수환추기경(1922.5.8~2009.2.16)은 대구 남산동에서 옹기장수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할아버지 김보현은 1868 무진박해 때 순교했으며,아버지 김영석은 유복자로 태어나
옹기를 팔면서도 믿음이 강하였다 어머니는 어린 수환에게 버릇처럼 신부가 되라는 말을 했었는데
그는 잠시 방황한적도 있으나
1951년 서른 나이에 대구 계산동 주교좌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 사랑과 나눔공원은 2015.4.1 에 착공하여 2017.12.20 에 준공하였는데
공원에는 기념관, 경당, 생가, 십자가의 길, 평화의 숲, 추모정원, 중앙광장 등이 조성되어 있다.
큰길 공원 입구에 세워진 김수환추기경 상
"그동안 사랑 받아서 감사합니다. 서로 사랑 하십시오. 용서 하십시오"
김수환추기경 사랑과 나눔공원 입구
중앙광장
중앙광장을 올라서면
추모정원의 김수환 흉상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아낌없이 나눈 사랑
생가
#2. 조문국이란?
조문국(召文國)은 고대 의성지역에 있었던 초기국가 형태(읍락국가)의 나라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을 살펴보면 벌휴왕2년(185)에 사로국(신라)이 조문국을 공격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 공격으로 조문국이 멸망하였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서기 185년까지
조문국은 존재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의성금성산고분군(도 기념물 제128호)이 위치해 있는 금성면 일대가 조문국이 있었던 터전임이
틀림없다. 이 일대의 고분은 1960년대부터 발굴이 이루어져 수많은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조우형 금동관, 금동관모, 은제관장식, 환두대도, 금동귀걸이, 의성양식 토기 등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 되었다. 이들 유물들은 대부분 5~6세기에 만들어진 유물들로 조문국의 후예들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화려하고 독창적인 문화를 만들었던 조문국의 옛 터전인 의성금성산고분군과
출토된 유물이 전시 되어 있는 의성조문국 박물관을 찾아오셔서 조문국의 찬란했던 문화를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1).의성조문국박물관
*.의성조문국박물관
의성 지역은 고대 국가인 조문국(召文國)이 존재한 지역으로, 박물관이 조성된 인근에 분포하는
260여 기의 고분에서 다양한 관련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초전1길 83
054-830-6909, 69
기본정보
의성 지역은 고대 국가인 조문국(召文國)이 존재한 지역으로, 박물관이 조성된 인근에 분포하는 260여 기의
고분에서 다양한 관련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이러한 조문국 및 의성 지역의 역사와 유물들을 체계적으로 조사, 수집, 전시, 보존하기 위하여 의성군에서
박물관을 설립하여 2012년 10월에 준공하였으며, 2013년 4월 25일에 개관하였다.
의성 조문국 박물관은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이다. 상설 전시장, 기획 전시실, 어린이 체험실, 강당 , 수장고,
기계실, 야외 전시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장품은 1,500여 점을 보유하고 있으며, 주로 고분에서 출토된 고대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2).의성금성산고분군
*.의성금성산고분군
약 2000여년 전 금성면 대리리, 학미리, 탑리리 일대에 존재 했던
고대국가 조문국의 도읍지로 21대 왕 369년 동안 존재했던 역사 유적지로 200여기의 고분군과 경덕왕릉,
고분전시관 등의 관광자원이 있다.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 378-1
054-830-6909
기본정보
약 2000여년 전 금성면 대리리, 학미리, 탑리리 일대에 존재 했던 고대국가 조문국의 도읍지로
21대 왕 369년 동안 존재했던 역사 유적지로 200여기의 고분군과 경덕왕릉, 고분전시관 등의
관광자원이 있다.
1호 고분, 조문국의 경덕왕릉이 자리잡고 있으며 경덕왕릉 앞에는 봉분 모양의 '고분 전시관'이 자리한다.
내부에는 2009년 발굴한 대리리 2호분의 내부 모습이 재현되어 있고, 유구와 출토 유물, 순장문화를 통해
당시의 매장 풍습을 엿볼 수 있다.
5월에는 작약꽃이 만발하여 고분군과의 조화를 이루고 있어 셀프 웨딩족 등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고 있다.
3).의성 경덕왕릉
* 삼한시대 부족국가 조문국의 왕릉, 경덕왕릉
의성읍에서 남쪽으로 4㎞ 못 미쳐 금성면 대리리에 위치하고 있는 고분군 중에 조문국 경덕왕릉이라고
추정되는 무덤이 있다. 조문국은 삼한시대의 부족국가였던 나라로 현재의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일대를
도읍지로 하여 존속하다가 185년(신라 벌휴왕 2년)에 신라에 병합되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조문국이 실재했었다는 기록은 <삼국사기>에 짧게 언급되어 있을 뿐 문헌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옛 조문국 경덕왕릉은 그 형식이 전통적인 고분으로서 봉 아래 화강석 비석과 상석이 있다.
능의 둘레가 74m, 높이가 8m이며 능의 정면에는 가로 42㎝, 세로 22㎝, 높이 1.6m의 비석이 서있다.
1725년(영조 원년) 현령 이우신이 경덕왕릉을 증축하고 하마비 등을 세웠다고 하는데 그때부터 왕릉제사를
지내오다가 일제강점기에 중단되었고, 그후 경덕왕릉보존회가 구성되어 다시 제사를 지내고 있다.
소나무로 둘러싸인 묘역은 ‘조문국경덕왕릉’이라고 쓰여진 비석과 문인석·장명등·상석으로 단장되어 있다.
* 경덕왕릉이 발견된 전설에 대하여
경덕왕릉이 발견된 배경에 대한 신기한 전설이 조선 숙종 때 <허미수 문집>에 실려있다.
현재의 능지는 약 500년 전에 오극겸의 외밭이었다. 외를 지키던 어느 날 밤 꿈에 금관을 쓰고
조복을 한 백발의 노인이 나타나서 “내가 신라시대 조문국의 경덕왕인데 너의 원두막이 나의 능위이니
속히 철거를 하라.”고 이르고는 외직이의 등에다 한줄의 글을 남기고 사라졌다.
이에 놀란 외밭 주인은 일어나 보니 꿈속에 노인이 써준 글이 그대로 자기 등에 씌어 있어
현령께 고하고 지방의 유지들과 의논하여 봉분을 만들고 매년 춘계향사를 올렸으며
지금도 제례행사는 계속되고 있다
4).문익점 면작기념비
* 붓통과 목화씨로 유명한 문익점 면작기념비
문익점과 문승로의 목화 재파를 기념하기 위해 1935년데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금성산 고분군 입구에 있으며, 기념비 뒤로는 자그마한 목화밭이 조성되어 있다.
조선 태종 때 의성 현령으로 재직했던 문익점의 손자 문승로가 의성 땅에 목화씨를 파종한 것을
기념하여 세웠다.
목화는 고려 공민왕 때 삼우당 문익점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금주성에서 목면종자를
필관에 넣어 귀국하였다.
그리고 조선 태종 시절 손자 문승로가 의성 현령으로 재임하면서 의성군의 지세가 금주성과 흡사하여
제오리에 목화를 재파하였다고 전해진다.
* 우리나라에 목화를 처음 가져온 삼우당 문익점
문익점은 고려 공민 왕 때 좌정언으로 서장관이 되어 이공수를 따라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붓대 속에 목화씨를 감추어 가져온 것으로 유명하다. 장인 정천익과 함께 재배에 성공하였다.
1360년(공민왕 9) 문과에 급제하여 김해부사록(金海府司錄)·순유박사(諄諭博士) 등을 지내고,
1375년(우왕 1) 다시 전의주부(典儀注簿)로 등용되었다. 1389년 좌사의대부(左司儀大夫)가 되었으며,
공양왕 때 이성계(李成桂) 일파에 의하여 추진된 전제개혁(田制改革)에 반대했다가
조준(趙浚)의 탄핵으로 밀려났다.
1440년(세종 22) 영의정이 추증되고 강성군(江城君)으로 추봉되었으며
*위치: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동부로 2545 (금성면)
#3. 제오리 공룡 발자국화석 [천연기념물 제373호]
의성제오리의공룡발자국 화석산지
의성 제오리 공룡 발자국 화석 산지는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제오 2길[제오리 111 외] 1,656㎡에
산포하고 있다. 중앙 고속 도로 의성 IC에서 의성 읍내를 벗어나면 ‘공룡 발자국’이라 쓰여진 안내판이 있고,
국도 28호선 의성에서 영천 방향으로 내려가다 10㎞ 지나면 사곡이라는 마을로 좌회전하는 안내판이 나온다.
경북 의성군 금성면 제오리 산111-3
기본정보
의성 제오리 공룡 발자국 화석 산지는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제오 2길[제오리 111 외] 1,656㎡에 산포하고 있다.
중앙 고속 도로 의성 IC에서 의성 읍내를 벗어나면 ‘공룡 발자국’이라 쓰여진 안내판이 있고,
국도 28호선 의성에서 영천 방향으로 내려가다 10㎞ 지나면 사곡이라는 마을로 좌회전하는 안내판이 나온다.
이후 약 2㎞ 정도 가면 공룡 발자국 화석지가 자리하고 있다.
공룡은 중생대의 쥐라기부터 백악기에 걸쳐 번성했던 길이 5∼25m의 거대한 파충류를 통틀어 말한다.
의성 제오리의 공룡발자국화석은 의성군 관내 지방도로 확장공사 중 산허리 부분의 흙을 깎아내면서 발견되었다.
화석은 중생대 백악기 때의 것으로 약 1억 1,500만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발목코끼리룡 등 3종류의 초식공룡발자국과 육식공룡인 한국큼룡발자국이 발견되었다.
이곳에서는 대·중·소형의 초식공룡과 육식공룡의 발자국이 동시에 발견되어 공룡의 서식지였음을 짐작게 한다.
의성 제오리의 공룡발자국화석은 발의 크기, 보폭, 걷는 방향 등을 알 수 있어 당시 공룡의 모습과 생활 등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학술적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373호]
#4. 고운사
저승의 염라대왕이 묻는다. “자네, 고운사(孤雲寺)는 다녀왔는가?”
세상을 떠나 하늘에 이르면 염라대왕이 그리 묻는다고 했다.
“고운사엔 다녀왔는가?” 해동제일의 지장도량이라 불리는 고운사 일주문에 발을 들여야
염라대왕의 물음에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의성의 동북 끝단 구계리에는 ‘구름을 타고 오른다’는 등운산이 있다. 산의 서쪽 사면을 타고 흘러내린 산자락은
반쯤 피어난 연꽃 형상이다. 그 꽃 속에서 물이 솟아 안망천으로 흐르는데 꽃이 핀 자리, 천(川)이 시작되는
자리에 681년 의상대사가 절을 짓고 고운사(高雲寺)라 했다.
*.고운사 가운루
신라 말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신라 최고의 지성이라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고운은 12세 때인 868년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6년 만에 과거에 합격했고,
여러 벼슬을 지내며 문장가로서 이름을 떨쳤다.
최치원은 42세 즈음 관직을 버리고 세상을 떠돌다 신선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고운사의 가운루와 우화루는 그가 유랑할 적에 지었다고 전해진다.
가운루의 원래 이름은 가허루(駕虛樓)였다. 이는 도교 사상이 담긴 이름이다.
최지원이 품었던 이상세계로의 간구 또한 깃들어 있다.
고운 최치원이 거처간 뒤,
그의 자(字)를 따 ‘높은 구름(高雲)’을 뜻하던 고운사는 비로소 ‘고독한 구름(孤雲)’ 고운사가 되었다.
*. 공민왕의 현판
현재 2개의 가운루 현판 중 누각 바깥 처마에 걸린 행초서 글씨는 공민왕의 친필로 알려져 있다.
공민왕은 내란을 겪으면서 노국공주가 세상을 뜨자 실의에 빠져 전국을 유람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고운사를 찾아 현판의 글씨를 남겼다.
구름에 몸을 싣고 세상사를 잊고 싶어 한 당시 공민왕의 심경이 담긴 어필이다.
노국공주를 잊지 못하는 공민왕의 애틋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 연수전(1)
고운사는 고려시대와 조선조에 걸쳐 여러 번 중창되었다.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가 승군의 전방기지로 삼았다.
특히 연수전(延壽殿)은 영조 20년(1774) 왕실의 계보를 적은 어첩을 봉안하기 위해 건립한 전각으로
1887년 다른 전각들과 함께 중수됐다. 1902년에는 고종의 무병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새로 지었다.
약사전 맞은편에 품위 있게 낡은 연수전이 보전되어 있다. 나침반의 바늘이 꼼짝하지 않을 정도로
기가 센 자리라 한다. 대문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태극 문양에 문득 저릿하다.
일제강점기 동안 고운사는 조선불교 31총본산의 하나였다.
*. 연수전(2)
#5. 사촌마을, 사촌가로숲
1).사촌마을(沙村마을)
사촌마을은 고려중기 출장입상(出將入相)의 훈신(勳臣) 충렬공(忠烈公) 김방경(金方慶)의 후예인
감목공(監牧公) 김자첨(金子瞻)이 안동(安東) 회곡(檜谷)에서 1392년 이곳으로 입향하여
중국의 사진촌(沙眞村)을 본 따 사촌(沙村)이라 하였으며
송은(松隱) 김광수(金光粹),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천사(川沙) 김종덕(金宗德) 등
많은 유현들이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점곡길 17
054-830-6355
기본정보
사촌마을은 고려중기 출장입상(出將入相)의 훈신(勳臣) 충렬공(忠烈公) 김방경(金方慶)의 후예인
감목공(監牧公) 김자첨(金子瞻)이 안동(安東) 회곡(檜谷)에서 1392년 이곳으로 입향하여
중국의 사진촌(沙眞村)을 본 따 사촌(沙村)이라 하였으며 송은(松隱) 김광수(金光粹),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천사(川沙) 김종덕(金宗德) 등 많은 유현들이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 후 1750년경 병촌(屛村) 유태춘(柳泰春)이 이곳에 이주하여 수백년 동안 안동김씨(安東金氏)
풍산유씨(豊山柳氏) 등이 세거한 반촌마을이며 임진왜란과 명성황후 시해 때 의병을 주도한 마을이기도 하다.
사촌마을은 풍수상의 명당으로 마을 뒷산으로는 문필봉이 버티고 있고, 왼쪽으로는 좌산이 있어 좌청룡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우측은 광활하여 우백호가 없었다 한다. 그래서 비어 있는 우측을 보하기 위하여
사촌의 서편 매봉산 기슭을 따라 길이 약 1,040m, 폭 40m의 방풍림을 조성하여 비보하였는데
이것이 의성 사촌리 가로숲이다.
마을 주변은 경관이 뛰어나고 전통마을인만큼 유적과 유물이 많이 남아 있다.
임진왜란 때 김치중(金致中) 의사의 전적지로 유명한 건마산성과 송은(松隱) 김광수(金光粹)의 강학처였던
영귀정(詠歸亭) 등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특히 의성 만취당(晩翠堂)은 1582년 퇴계(退溪)의 제자
만취당 김사원(金士元)이 지은 집으로 규모가 웅장하고 건축 양식이 특이하다.
또한 사촌마을은 주요 유적들과 마을사람들의 살림집들이 한데 붙어 있다.
그밖에 유적으로는 사촌리 후산 정사, 사촌리 향나무 등이 있다.
2).사촌가로숲
사촌가로숲
의성 사촌리 가로숲은 고려 말에 안동 김씨인 김자첨이 사촌으로 이주해 오면서 마을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방풍림을 조성하며 생겼다.
이주 후 '서쪽이 허하면 인물이 나지 않는다'는 풍수지리설과 샛바람을 막아 삶의 터전을 보하려는
선현들의 혜안이 있어 방풍림으로 여러 종류의 나무를 심었다.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점곡길 17
054-830-6549
기본정보
의성 사촌리 가로숲은 고려 말에 안동 김씨인 김자첨이 사촌으로 이주해 오면서 마을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방풍림을 조성하며 생겼다.
이주 후 '서쪽이 허하면 인물이 나지 않는다'는 풍수지리설과 샛바람을 막아 삶의 터전을 보하려는
선현들의 혜안이 있어 방풍림으로 여러 종류의 나무를 심었다.
이후 마을로 불어 들어오는 바람을 막아주고 농사에도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약 60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본래의 역할 외에도 아름다운 풍광을 통해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는 명승지가 되었다. 현재는 경상북도 내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풍치림이다.
이곳은 조선 선조 대에 영의정을 지낸 서애 유성룡과도 관련된 곳으로 전해오고 있기도 하다.
점곡면 사촌리 356번지 일대에 있으며, 1999년 4월 6일 천연기념물 제 405호로 지정되었다.
의성 사촌리 가로숲의 총 면적은 3만 7,164㎡ 정도이며, 길이는 1,050m에 이른다.
부근에 있는 점곡 초등학교 운동장 길에도 은행나무가 있어 아름다운 경치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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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기동기회 지난 행사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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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24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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