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답사 : 보령 <청소역>
-사라질 역을 찾아서-
1. 최근 한국의 철도는 상전벽해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 전국 곳곳으로 철길이 연결되고 노후된 설비를 개선하여 더 빠르고 편리한 신종의 기차가 투입되고 있다. 한국인들의 철도 특히 KTX 사랑은 예매 현장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대부분의 노선이 일찍 팔려나가도 특히 주말에는 표구하기 경쟁까지 벌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열광은 KTX의 빠른 속도, 정시운행이라는 효율적인 장점의 결과일 것이다. 반나절이면 전국 어느 곳에든 갈 수 있는 KTX의 매력에 모두가 빠져버린 것이다.
2. KTX 편리함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자신의 거주지역으로 KTX가 다니길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철도공사는 이러한 요구에 대한 반응이다. KTX가 다니기 위해서는 새로 철길을 만드는 것 이외에도 철길의 보강이 필요하다. 곡선구역은 직선으로 바꿔야 하고, 빠른 속도를 감내할 수 있는 하부시설을 갖춰야 하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지금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철도는 이제 한국을 관통하는 가장 확실한 메인 교통으로 변화 중이다.
3. 모든 변화에는 밝음과 어둠이 공존한다. 철도의 발전이라는 찬사 속에서 철도가 가졌던 낭만과 향수 그리고 여유의 미학은 실종되고 있다. 철도는 빠르게 움직이는 현대인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었지만 철도에서 사람들이 느꼈던 그리움이라는 정서는 빼앗가고 있다. 천천히 창문을 바라보면서 사색하고 음미하는 순간을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운영 효율성이라는 명분 속에서 오래된 작은 역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지방소멸이라는 말처럼 지방의 인구가 줄고 이용빈도가 축소되면서 작은 역들은 철도운영에 일종의 걸림돌로 작용한 것이다. 효율성 속에서 수많은 역들이 사라지고 있다. 기차를 타고 이동하다 보면 이제는 기차가 서지 않고 서서히 무너지고 있는 역들의 잔해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대부분 한적한 시골에 위치한 역들이다. 간이역에 내려 시골의 특별한 정서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이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3. 조만간 사라질 또 하나의 역을 방문했다. 보령의 <청소역>이다. 현재 천안에서 익산에 이르는 <장항선>은 복선화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다. 복선화가 되지 않은 구역을 2027년까지 복선화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작업이 끝나면 현재의 장항선에는 약간의 변화가 생긴다. 기존의 <광천역>은 장소를 옮기고 <청소역>은 사라지는 것이다. 장항선에 남아있던 유일한 간이역이 이제는 역사 속으로 소멸할 예정이다. 청소역 주변은 오래된 장소의 매력적인 풍미를 아직도 지니고 있는 장소이다. 그런 관계로 1980년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 <택시운전사>의 촬영장소로 청소면 거리가 활용되었다. 청소역 옆에 만들어진 <택시운전사> 촬영안내판은 이곳의 정취를 말해주는 상징적 모습이다.
4. <청소역>에서 내려 청소면 주변을 걸었다. 제법 많은 식당들이 있고 신축된 행복센터는 유독 다른 건물과는 이질적 느낌으로 서있었다. 청소역은 소박한 과거의 모습이 지닌 애틋함뿐 아니라 한국의 100대 명산에 포함되는 <오서산>으로 갈 수 있는 코스가 있다. 약 5km 정도의 거리로 결코 가깝지는 않지만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천천히 주변 논밭을 보면서 농촌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코스라 생각된다. 과거에는 차를 이용하여 오서산에서 청소역까지 이동한 적이 있었다. 편안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지닌 곳이다. 시간 관계상 오서산까지는 가지 못하고 논길을 걷다 청소면으로 복귀해 마을카페에 들어갔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었다. 언제든 다시 오고싶은 느낌을 지닌 장소였다. 하지만 이곳은 다시 오기 어려울 것이다. 기차역이 사라진 장소는 연결이 끊어진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차량운행도 할 수 없고 움직임도 느려지는 상황에서 기차가 없는 공간은 이제 배제된 공간이다. 열차 여행을 하는 이유 중 하나가 70이 넘어서도 여행할 수 있는 장소를 찾는 것도 있는데, 앞으로의 기차여행은 과거의 매력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 열차 여행에서 만날 수 있는 낭만적이고 애수의 느낌을 지닌 역들은 사라지고 남는 것은 황량한 터에 홀로 서있는 현대적 건물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 변화의 과정을 지켜본다. 모든 것은 편의와 발전이라는 욕망 속으로 녹아들고 있다. 10년이 지나서 찾고 싶은 역들은 얼마나 남아있을까? 가능성은 줄어들고 있지만 그럼에도 남아있는 가능성을 찾아 계속 떠도는 것이 남아있는 시간에 대한 예우일지 모른다.
5. <청소역>에 다시 올 수 있을까? 어쩌면 청소역이 문닫는 날이 발표되기 전, 한 번은 더 올 수 있지 않을까? 사라져가는 것들을 응시하며 현재의 나를 담담히 지켜간다. 그것은 고정되지 않고 움직이는 길이며 비록 내일 사라질지라도 포기할 수 없는 인간에 대한 의미탐색의 과정이다.
첫댓글 - ""모든 변화에는 밝음과 어둠이 공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