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30일수요일
아침 8시 정각,수원시외버스 터미날을 벗어 난 버스는 우만동 간이 정거장을
잠깐 경유하고 곧바로 영동고속도로로 진입을 서두른다.
통근과 통학으로 번잡하기가 전쟁통의 피난열차를 떠올리게하는 서울교외의
흔한 풍경하고는 사뭇 대조를 이루는,비교적 한가한 차내 분위기,
초일류기업의 왁자하고 시끄러운 풍요로운 녹음 저 편에 점차 푸르름을 뒤로하고
가을 낙엽처럼 누렇게 침잠해가는 중소기업의 힘겨운 헐떡임이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
순간처럼 납덩이 적막이 나지막하게 고여있다.
단촐한 죽산 정거장에서 몇 안돼는 승객들을 갈아태운 버스는 두원공대 정문 앞에서도
역시 예닐곱명의 학생들을 내려 놓더니 서둘러 장호원을 향하여 박차를 가한다.
장호원 경내에 진입을 하면 우선 번화가 한복판을 남북으로 기다랗게 흐르는
널따란 개천을 만난다.한강의 여러 지천 중의 한 갈래 청미천, 경기도와 충청북도의 경계선을
이루고 옛적부터 하나의 생활터전인 주민들을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과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이라는 행정구역으로 강제로 갈라놓은 악역도 맡고있는 개천이라
할 수도 있고, 어찌보면 개천을 따라 중근동의 주민들이 물가를 향해서 옹기종기 생활의 터전을
부여잡은 측면이 양립한다 할 수도 있겠다.인간들의 군집생활을 오랫동안 유지시키고
안정시킬 수있는 것이 그보다 더 귀한 것이 또 있을까?
장호원의 간이 정거장에서 음성으로 향하는 노선버스로 말을 갈아탄다(9시35분).
오래 전 부터 이미 역사는 멈춘 듯한 음성버스터미날에서 들머리인 궁도장 주차장까지는
개인택시의 도움을 빌렸다.궁도장은 시 외곽의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십여분도 채 안되어 닿을 수 있다.궁도장 왼쪽의 산자락에 마련한 넓직한 주차장은 아직은
이른 시간인지 썰렁하게 텅 비어있고 궁도장에도 활시위를 당기는 사람은 없는데 웬 젊은 사내
한 사람만이 궁도장 건물앞에서 우리 일행을 힐끔거리며 어슬렁거린다(11시).
산길은 공덕비 2기가 나란히 세워져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훤히 뚫려있다.햇살은 눈이 부시도록
아낌없이 쏟아져 내리고 선선한 냉기가 묻어있는 숲 내음이 와락 콧끝을 건드린다.
길섶의 잡목을 정리해놓아 산길은 더욱 산뜻하고 단정하다.작년 이맘 때 떨어진 낙엽들인가,
그게 아니라면 지난 여름 호된 비바람에 중도탈락한 잎새들인가,비교적 가파른
오름길에 흩어져 뒹구는 낙엽들이 제법 싱싱(?)하다.들고 나는 인파들이 들끓었다면
찢어지고 부스러지고 난자을 당한 부관참시(?)의 엄혹한 몰골의 잔해로 외롭고 쓸쓸한
잔해를 남겼을 법한데,쪼그라들은 몰골이지만 아주까리 기름을 살짝 바른 듯 윤기가 감돈다.
말라 비틀어진 주름진 피부에 걸맞지 않은 사지는 왜 잔뜩 뒤틀고 이리 엎어지고
저리 뒹굴며 부산을 피우고 있는가,자칫 한 눈을 피우다가는 미끄러져 낙상이라는 안전사고가
불시에 들이 닥쳐올지 모를 일이다.
해가 떠오르는 쪽으로 기다랗고 상대적으로 높아보이는 산줄기가 파란 하늘과 맞서
힘차게 하늘금을 긋고있다.바빌론의 성벽을 염원하는가?
주봉 주변에는 통신시설이 어지러이 조망이 되는 곳,가섭산이다.
가섭산의 주능선과 방향을 함께하며 부용의 산등성이도 점차 고도를 높여 나간다.
삼거리 산길을 알리는 이정표가 세워져있는 송림쉼터,군데군데 검붉은 녹물이 흐른 흔적의
오래된 철제안내표시,좌측으로는 삼성목장을 가리키고 있다.
처음으로 오른 봉우리인 이 곳은 5만분의 1 지도에는 등구맥이산이라는 이름으로 그럴 듯하게
표시되어 있는데 봉우리에는 별 특징은 없고 그저 흔하게 볼 수 있는 평범한 봉우리에 크고작은
참나무 무리와 소나무 몇 그루만이 주인 행세를 하는 그저그런 멧덩이에 불과하다.
나무가지 사이로 파란하늘 저 멀리 거만스럽고 오만한 모습으로 부용의 정수리 부위가
까마득히 올려다 보인다.낡은 벤치가 이따금씩 길섶에서 지친 산행객을 기다린다.벤치도
거뭇하게 퇴색되고 부식이 상당히 진행이 되어있어 지친 발품을 덜어내기는 버거워 보인다.
무수막으로 하산하는 삼거리 갈림길 쉼터를 지난다. 시나브로 누런색과 붉은 빛을
더해가는 숲길이 발길을 가볍게 한다.
산길은 차츰 경사를 높여나간다.산길 주변으로는 크고작은 바위들도 산적처럼 험상궂은
모습으로 이곳 저곳에서 비쭉비쭉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낙엽이 수북하게 뒤덮혀 있는
산길,굵은 밧줄이 기다란 손을 벌쭉 내밀며 헐떡이는 손을 잡아 끈다.
곧이어 시야가 터지면서 사위 조망이 시원하게 펼쳐지는 바위 전망대가 기다린다.커다란 초록의
파라솔을 펼쳐 놓은 듯한 노송 한 그루가 수문장처럼 지키고 있는 곳,여지껏 오르고 내린
거대한 환형동물의 등줄기를 닮은 누르끼리한 산줄기가 꾸물거리며 산객의 발치를 좇는다.
한 아름이 넘는 소나무들이 울창한 산길이 연신 이어지고 누렇게 물 들어가는 참나무 숲길을
지나면 산길은 부용의 정수리를 내놓을 채비를 차근차근 소심스레 준비한다.
걸출한 노송들을 뒤로하는 부용의 멧덩이에는 정상을 알리는 빗돌이 서넛쯤 돼 보이고,
산불초소도 마련돼 있다.그 옆으로는 빛 바랜 등산안내도가 우뚝 세워져 있고 제 기능은
차츰 잃어가는 것 같은데 자세는 돈키호테를 닮아 용감해 모인다.
해발 644m 의 부용의 정상에서 산상의 겸손한 성찬의식을 치룬다.
청아형이 부시럭부시럭 청하한병을 내놓고 "카아!"소리를 토하며 홀짝인다.
대충 주위를 살펴보니 함께 대작하려는 동지가 보이지 않았으리라,
술은 춥고 괴로운 나그네가 근심을 털어내기 위해서든지(苦寒孤客),
죄를 짓고 갇혀지내는 사람이 그저 날이나 보내자고(囚禁罪人)할 때나 마시는 것이
마땅하다고 중국 명나라때의 사조제라는 사람이 말했다고는 하지만, 술은 계영배(戒盈杯)가
추구하는 진리를 따른다면 백약지장(百藥之長)의 위치에 흔들림이 없을 것이
계영배! 술을 많이마시지 못하도록 경계하기 위하여 특별히 만든 잔으로 잔옆에 구멍을 뚫어
술이 어느 한도에 차면 옆으로 새어 나가도록 되어있는 일종의 절주배(節酒杯)라 할 수 있다.
계절은 이미 겨울의 문지방을 넘어 섰는가,나무 그늘보다는 햇살 가득한 양지쪽
아늑한 곳을 두리번거리게 만든다.땀을 뻘뻘 흘리며 된비알을 오르내리다 어느 한 순간
숨을 고른 답시고 쉬는 시간이 길다보면 몸은 금세 으실으실대기 마련이다.
그리고 땀은 이미 흘렸으니 갈증은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하고 잠시 쉬는 사이 체온은 떨어져
있으니 육체는 따뜻함과 갈증을 호소한다. 이런 때일수록 제일 좋은 처방은 술 한 잔이 제격이다.
음주운전 못지않게 음주산행은 정말 안돼는 일이지만 말이다.
산을 찾는 무리들을 아마 두 종류로 분류한다면 지금 우리가 저지르는 행위는 등산이 맞겠지만
세속의 고뇌와 번잡 그리고 고통을 잠시라도 털어버리고 해결책을 모색 하려고 산에 드는
사람들은 아마 입산이라고 해야 맞지싶다.
그러므로 광의(廣義)로써는 입산행위도 등산의 개념에 포함이 된다.좁은 의미에서의 산행이
하드웨어라면 입산이라는 행위는 소프트웨어 범주에 속한다 하겠다.
등산도 생활스포츠화된지 이미 오래다. 육체의 건강을 추구하는데 등산을 매개로 하기 때문이다.
치사한 얘기지만 이것도 등산이라고 할 수밖에 없으리라.특별한 사전지식과 훈련이 요구되는
패턴에서 어느 누구나 초보적 지식이 없어도 행위에 참가할 수 있는 보편적인 스포츠로
자리매김이 되었다.물론 특수한 경우(암,빙벽)는 사전지식과 훈련이 필요하지만 말이다.
부용(芙容),연꽃의 얼굴이라고 했다.둥글 넓적한 초록이파리는 탁하고 지저분한 물가에
띄워놓고 함초롬이 천상의 신비한 꽃망울을 피어내는 그의 얼굴이라 이름지었으니
이름값을 터럭만큼이라도 방문객에게 내놓아야 이치에 맞는 법이다.
진작 내놓고 상대의 기색을 살폈을 터,염화미소를 기다렸는가,우둔함이 맑고 푸른 사위에
넋을 잃고 있으니...부용의 정수리를 뒤로하면 산길은 곧바로 가파른 내리막으로 변한다.
만추의 소슬한 산길처럼 뒹구는 낙엽들이 수북하다.기다리지도 원하지도 바라지도 않았지만
산길은 누구러져 편안한 산길을 곧바로 내놓는다.잽싸게 발걸음을 재촉하는 청아형,
된비알 가파른 오름길에서는 나이 든 거북이 겸손한 걸음새가 우화등선이라도 되려는가,
가을 산길을 거침없이 헤집고 달린다. 정상에서의 성찬의식이 이제야 비로소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한 모양이다. 해발500여m가 넘는 듯한 봉우리를 넘어선다.
조망이 되는 산줄기가 날머리가 가까이 왔음을 전해준다.웅웅거리며 마른공기를 가르는
분주한 자동차 엔진음이 소슬하게 불어오는 바람결에 묻어있다.
날머리에 닿기 전,최근에 완공된 신설 고속도로로 산줄기가 절개 되어 본래의 산길만
인식하고 있던 동료들과 함께 잠시 우왕좌왕 시행착오의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다행히 본래의
의도에서 조금의 어긋남이 없었음에 감사한다(날머리 도착 오후 2시30분).
콜택시로 무극버스터미날로 이동,터미날 근처 순대국집에서 버스출발시간까지 느긋하게
먹고 마시고...(수원으로 출발 버스시간 15시 30분)
첫댓글 산행하는 모습이 삼삼 하네요..
날머리에서 기절초풍!!
잼난 산길후 순대국이 피로를 덜어 주는군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