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빵에 구멍이 두 개인 이유
어제는 거의 하루 종일 집에서 대청소를 하다시피 하였었다. 아마도 몇 년간을 벼르고 벼르던 일이었었다. 사람이라는 것이 묘하다. 다른 일은 열심히 하면서도 막상 자신에게서 가장 가까운 곳은 돌보지 않는 버릇이 있다. 직장이나 바깥에서는 남보다 앞서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집에만 들면 손가락 까닥 하기 싫어했다.
그래서 밖에서는 남들을 대함에 있어 호랑이 같은데 집에 오면 순한 양 정도가 아니라 아내에게 꼭 잡혀사는 공처가가 대부분이라고 하였었다. 그것이 가정평화를 위해서라면 따로 할말이 없긴하다.
나도 평소 집안 청소는 요일을 정해놓고 거의 규칙적으로 하는 편이지만 매번 하는 범위가 정해져 있다. 그래서 그곳을 제외하곤 쉽게 손이 잘 가질 않았었다. 그래서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곳은 좀처럼 청소를 하기가 어려웠었다. 그래서 어젠 작정하고 그 일을 해치웠던 것이었다.
아침밥을 먹고 쉬고 있으려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예보를 미처 보지도 못하였지만 비가 온다는 사실은 마음에 두지 못하였기 때문에 다소 당황했다. 도서관에 반납할 책을 들고 길을 나서니 예술제 행사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다녀오는 길에 강변을 둘렀더니 아침부터 길가 노점상에서는 맛있는 음식들이 즐비하게 널려져 손님을 기다린다. 옥수수를 비롯한 튀김들과 꼬치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체면 불구하고 길바닥에 서서 이것저것 주섬주섬 먹고 싶지만 왠지 아직은 익숙하지 못한 것 같았다. 마음속으로 나 자신을 비웃었다. '주제에 그래가지고 무슨 세상을 달관한 듯한 모양새를 낸다기는...'
나는 요즘 비상식량인 건빵을 자주 먹는 편이다. 유사시를 대비하자는 것은 아니고, 누워서 책을 읽을 때도 그렇고, 텔레비전을 볼 때도 그랬다. 무슨 햄버거나 파리바게트의 빵도 아니고 퍼석거리는 건빵을 먹느냐? 고 말할지 모른다.
그런데 그게 입에 당기는 것을 어떡하랴? 군대생활을 한 사람이면 건빵을 쳐다보기도 싫다거나, 아니면 나처럼 옛날생각으로 건빵을 먹어 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간식이라고 전혀 없었던 군대생활에선 그 건빵은 우리들의 마음속에 위안을 주었었다. 군대 내에서는 유일하게 달콤한 것인 별사탕 꺼내먹는 재미를 포함해서...
하여간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입에 대면 야금야금 먹어대기 시작했고, 한 봉지에 얼마 들지 않은 건빵은 봉지가 금새 동이 나고 만다.
이상하게 요즘은 남들이 생각하는 비싼 음식이나 맛있는 것은 별로 생각이 적고, 그냥 산야에 자라나는, 소위 웰빙 음식들에 입에 맞는 것은 어쩌면 좋은 현상인 것 같다. 고기도 쇠고기나 돼지고기보다는 닭고기가 구미가 당긴다. 그래서 술 생각이 날 때면 통닭집을 가기를 원한다.
어저께도 예술제 기간이라 외지에서 들어 온 장사꾼들이 세 마리에 만원에 파는 통닭을 사들고 들어와 캔 맥 하나를 따서 구색을 맞추었었다. 애 엄마가 알면 또 그런 걸 사먹는다고 눈살을 찌푸릴 게 뻔하여도 그걸 어디 나만 사먹는 것도 아니고...하여간 알면 시끄러우니까 안볼 때 먹어 치워버리면 그만이다. 나도 생각은 있다. 그게 온전하게 위생적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나라 경제현실에 관한 책을 읽었다. 요즘의 책들은 거의가 비관적인 내용이 많은 편이다. 나도 예전엔 경제에 관한 부분에 관심이 많아 책을 읽을 때는 그 방면에 눈여겨 보았었으나 지금은 별로 생각하기가 싫어졌다. 그 유명한 석학들의 경제이론이 어디 우리들의 고달픈 현실에서 위안을 줄 수 있었던가?
선진국들이라고 어렵지 아니 할리가 없지만 후진국들은 더 그렇다. 혹자의 이론에 의하면 후진국들은 경제구조 자체가 문제가 있어 그 상황을 벗어 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위정자들의 의식도 입으로는 무지 립서비스를 해대지만 서민들의 입장에 있지 않는 것 같다. 결론들은 부자동네에 사는 자신들이 처한 입장에서 생각하는...끼리 끼리 산다는 것이다.
언젠가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조국인 아프리카로 돌아간 작가의 글에서도 선진국들의 원조마저도 부패한 정권에 의하여 찬탈 당한다고 하였었다.
어느 영화의 대사중에 '부패한 집단은 온전한 부패를 위하여 그들 가운데서 부패하지 아니한 사람을 내치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한다.'고 하였다. 어느 집단이나 다 비슷할 것이다.
길가에서 떼를 쓰며 우는 아이들을 바라다보았다. 곱상하게 생긴 젊은 애 엄마는 무조건 말로서 애더러 빨리 울음을 그치고 일어나기를 명령했다. 그러나 떼쓰기에 익숙해진 아이가 그냥 순순히 일어날 리가 없다. 지나가는 할아버지가 껄껄 웃으시며 애 엄마더러 애를 달래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나라를 살펴볼 때 70년대는 정말 경제가 어려웠었고, 80년대 들어 조금씩 나아졌었다. 그래서 80년대 이후의 세대들은 혹독한 배고픔을 몰라 향후 어려움을 더 격어야 하는데 역경을 극복해 나가기엔 매우 힘이 들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갈수록 어려워 질 것으로 예측되는 경제현실에서 우리는 자신들이 선택한 것을 탓하고, 지금 와서 누굴 원망해본들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을 것이다. 나의 아버지 세대보다 내가, 나보다는 나의 자녀들이 나를 뛰어넘길 바라지만 전지전능한 어느 구세주가 이 어려운 상황을 해결해 주지 않는 한 어렵게 생겼다.
오후가 되어 애 엄마의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운영하는 예술제 행사장 음식점을 들렀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을 먹는다. 우리는 국밥과 홍합탕을 시켰고 소주한병을 추가했다.
이곳의음식들은 주로 소시민들이 즐겨찾는 메뉴들이다. 먼지나는 고수부지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을 먹어도 금새 병들거나 않아눕지 않는다. 그만큼 살아가는데에 대한 깡다구와 내성이 잠재해 있다는 의미이다.
음식을 먹고 있는데 옆좌석에 이지역을 처음 방문한다는 천안에서 온 중년부부가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래서 한편으론 서민들의 삶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뺏어 먹을세라 숨고 감추며 사는 사람들이 먹는 음식보다도 맛날 것이라는 마음과 함께...
우리 부모님들께서 어려운 시대를 잘 헤쳐나가라는 선견지명이 있으셔서 내게 아직은 험한 곳에서도 잘 견디고 거친 음식도 잘 소화해내게 만들어 주셨나보다. 그래도 내겐 역시 건빵만 한 게 없다. 누가 뭐래도 맛있게 잘 먹어야겠다.
건빵은 제품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주성분은 소맥분과 정백당, 우유, 전분, 생크림 물엿, 식염 들이 들어간다. 그리고 건빵의 모습은 등은 약간 굽고 양 중앙에 두 개의 구멍이 나있다. 그렇게 구멍을 내는 이유는 건빵 굽는 기계가 건빵을 구우면 내부가 가열되어 수증기가 생기는데 그 수증기 압력이 너무 높아지면 건빵이 터져 버리므로 건빵의 터짐을 막기 위해서 구멍을 뚫어 수증기를 빼내기 위함이란다.
그냥 재료 아끼려고 일부러 홈을 낸 것이 아니기에 손으로 집어 입안에 넣기 전에 그 사소한 과학이라는 현실에 고개를 갸웃거려본다. 한편으론 내게 있어서의 건빵에 구멍이 두개인 이유인즉, 하나는 '그 나이에 걸맞지 않게 천연덕스럽게 건빵이나 먹고있어?' 하는 것과 다른 한편으론, '먹고 사는데 남의 눈치 살필 것 뭐있어?' 하는 양비론적 마음을 갖고 그 작은 것이나마 두 구멍의 의미를 깊히 생각해 가며 감사한 마음으로 먹으라는 의미인지도 모를 일이다. 하여간 감사한 마음으로 먹어야겠다. 쭉∼
첫댓글 건빵 잘먹는거 까지 저랑 닮으셨네요~~ 저는 요즘도 심심찮게 챙겨 먹는 먹는 편인데,,담배 끊으면서 꽈자 사먹는 버릇이
생겼고,,너무 먹어되니 고육책으로 생각해 낸게 건빵 먹는건데,,싸기도 하거니와 많이 먹으면 질리니까 체중조절도 되고,,
건빵 먹는 사람 흔치 않은데,,ㅋㅋ 반갑습미데이~~
정말 못말려! ㅋㅋ 맞는 말씀이네요.
많이 먹을 것 같아도 몇개 먹으면 목이메입니다. 여전히 열심히 사시는 것에 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