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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홍의 아동문학통신 137/서평〛
신분제 사회 철폐를 향한 통렬한 일침
이마리의 청소년소설 <대장간 소녀와 수상한 추격자들>
김 문 홍
주제에 걸맞은 이중 화자와 강건체의 문장
이마리는 부산지역의 동화작가로 등단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장편동화와 소설의 창작으로 일관해 오고 있다. 『코나의 여름』, 『구다이 코돌이』, 『버니입 호주 원정대』, 『빨강양말 패셔니스타』, 그리고 올해에 발간한 청소년소설 『대장간 소녀와 수상한 추격자들』 등 이마리가 여태까지 발간한 작품들은 모두 장편으로 끊임없이 창작의 저력을 과시해 오고 있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호주라는 독특한 서사 공간으로 설정되어, 그 속에서 벌어지는 모험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그 중에서 『버니입 호주 원정대』는 제3회 한우리문학상 대상을 수상했으며, 『악동음악회』는 제5회 목포문학상을, 그리고 『바다로 간 아이들』은 제18회 가톨릭문예작품공모전에 당선되어 동화창작 능력을 객관적으로 널리 검증받은 바도 있다. 올해 발간한 『대장간 소녀와 수상한 추격자들』(행복한 너무, 196쪽)은 청소년소설로 조선후기 ‘신유사옥’을 소재로 한 일종의 모험 역사소설이다. 이 작품은 대장간애서 만들어진 명검 ‘궁’과 3인칭 관찰자 시점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신분제 철폐에 대한 작가의 통렬한 주제의식을 은유적으로 상징하고 있는 독특한 소설이다.
한 장면 속에 명검 화자 ‘궁’의 시각으로 서술한 화법과 3인칭 관찰자 시점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①
「난 달러. 니 놈들과는 근분(‘근본’이라는 전라도 방언)이 다른 칼이여.」
‘궁’은 온몸에 힘을 주고 버티고 서보았다. 그러나 컴컴한 창고 귀퉁이에서 웅얼거리는 말들이 툭툭 튀어나왔다. 시골놈 주제에 칼자루가 화냥년 몸매처럼 미끈하다느니, 날렵한 배때기가 사람 잡겠다느니, 시퍼런 칼날로 휘광을 번득대는 꼴이 수백 명 목 꽤나 따겠다는 등 끝이 없었다. - 이마리, 「프롤로그」, 11쪽.
②
더벅머리는 칼을 치켜든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걸 지켜보던 포졸이 소리쳤다.
“어서 목을 쳐라! 저자는 요사한 말과 글을 지어 대중을 미혹한 자다!”
‘긍’은 그 순간 마음을 바꾸어 울부짖었다. 칼의 임무가 무엇이더냐, 정의로운 것이 무엇이더냐.
「그려. 이건 바른 길이 아니다. 지금은 저분의 고통을 줄어드리는 게 의로운 거여. 정 대감님, 저를 지발 용서하셔요!」
“얼른 시행하라!”
관졸의 불호령에 온 피밭이 떨고 있었다. 더벅머리는 웃통을 벗어던진 채 사력을 다해 칼을 들어 올렸다. 이〜얏! 온 힘을 다해 내리쳤다. 그 순간 윙윙대던 함성도 기도 소리도 강물 소리도 뚝 끊겼다. 마치 영원할 것 같은 정적이었다. 정 대감의 머리도 더 이상 올라오지 않았다. - 이마리, 『피밭에서』, 위의 책, 78-79쪽.
위 인용문 ①은 이 작품의 ‘프롤로그’에 나오는 한 장면으로, 남원 춘향 대장간의 대장장이 상쇠 아제가 오랜 신고 끝에 만들어낸 명검 ‘궁’이 잠에서 깨어나, 벽에 걸려 있는 다른 칼들의 시샘을 받는 대목이다. 지금 대장간 안에는 사람의 기척이라고는 없이 칼과 농기구들만 있을 뿐이다. 이 장면에서 작가는 명검 ‘궁’을 화자로 하여 장면을 전개시키고 있다. 여타 칼들은 궁을 향해 날렵한 몸매 때문에 사람을 잡겠다느니 하며 빈정거린다. 이 대목은 나중에 궁이 망나니 휘광의 손에 쥐어져 피밭에서 죄인을 처형하는 도구로 쓰이게 되는 것에 대한 하나의 복선으로 작용하고 있다.
주인공 홍의 아버지이며 대장간 주인인 상쇠 아제는 궁이 의로운 칼로 쓰이기를 염원하며 만든 명검이다. 그런데 상쇠 아제와 궁의 바람과는 달리 지금은 그 피밭의 창고에 내팽개쳐진 신세가 되어 있다. 똑 같은 칼이라도 그것을 쥐는 사람의 품성이나 목표에 따라, 어느 때는 의롭게 쓰일 수도, 또는 불의의 도구로 쓰일 수 있음을 은유적으로 상징하고 있다.
인용문 ②는 신유사옥으로 서학에 연관된 죄인들이 피밭 처형장에서 처형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 대목이다. 죄인들 중의 정 대감은 바로 정약용의 바로위 형님인 정약종을 지칭하고 있다. 신유사옥으로 구금된 세 형제 중 첫째인 정약전은 흑산도로, 막내인 정약용은 강진으로 유배된다. 둘째인 정약종은 배교하지 않고 끝까지 서학에 대한 신념을 지키다 처형된다. 상쇠 아제가 만든 명검 궁은 바로 여기에서 망나니의 손에 들려 그 정 대감을 처형하는 불의의 도구로 사용되기에 이른다.
위 장면에서는 화자 둘이 번갈아 사용되는데, 하나는 궁의 시점이고 다른 하나는 3인칭 관찰자 시점이다. 작가는 이 장면에서 그 둘을 구분하기 위해, 궁의 대화는 ‘「 」’로 표기하고 관졸의 대화는 ‘“ ”’로 표기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작가가 사용하고 있는 문체 역시 독특하다. 이 작품의 서사는 궁을 둘러싼 쫓고 쫓김의 극적 서사가 주 모티브로 작용하고 있다. 남원 사또의 아들인 병서는 반동인물로 궁을 손아귀에 넣어 불의에 사용하려고 하고, 대장간 주인 상쇠 아제의 딸인 홍은 궁을 의로운 곳에 쓰려고 안간힘을 쓴다. 이 작품의 메인 플롯은 명검 궁을 사이에 두고, 병서와 궁의 쫓고 쫓김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조선후기 신유사옥의 전후이고, 공간적 배경은 남원 고을과 한양의 서학 죄인 처형장인 피밭, 그리고 남원과 한양을 오가는 길이 공간적 배경으로 되어 있다. 이 작품은 영화로 치면 일종의 ‘로드무비’ 형식으로, 길 위에서 벌어지는 서스펜스 구성을 취하고 있다. 그런 만큼 문체 역시 활달하고 힘이 있는 남성적 강건체로 일관되고 있으며, 서술의 구성은 판소리의 ‘아니리’ 같은 기능을 취하고 있다.
①
한벽루 아래로 전주천이 약 올리기라도 하듯 유유히 흐르고 있다. 아무리 봐도 누가 지나간 것 같지 않다. 하기야 강에 배 띄운다고 자국이 남으랴. 그 옆 바위틈을 지나 석송이 군락을 이룬 오솔길이 보인다. 그 길을 따라 푸른 소나무의 기개는 여전한데 아직 잎을 못 피운 갈참나무들이 앙상하다.병서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쫓고 쫓아 그리도 그리던 칼을 손에 넣는 순간 사라지고 말았다. 세상만사가 다 허망했다. 술을 조심하라던 아버지 말이 옳았다. 술을 마시며 노닥거리는 사이 누구에겐가 칼을 뺐겼다.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 이마리, 「추격자들」, 앞의 책, 131쪽.
②
어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두 손을 들어 사람들을 잠재우려는 듯 뒤로 발을 뗐다. 그 순간 어사의 도포자락이 칼집을 스쳤다. 칼집이 쿵 벗겨지며 바닥에 떨어졌다. 칼 손잡이에 인두로 찍힌 「남원도 ‘궁’」을 보며 사람들이 우우 함성을 질렀다. 여러 개의 홈이 파인 나무 손잡이 위로 푸른 섬광이 빛다발이 되어 날렵한 칼등 위로 유유히 퍼져갔다. 칼등은 날렵하면서도 강인하고, 화려하되 천박하지 않으며, 은은하면서도 서릿발 같은 검광을 발했다.어사가 칼을 향하여 합장하더니 이번에는 홍을 향해 섰다.
- 이마리, 「명판결」, 위의 책, 184쪽.
위 인용문 ①은 한양의 처형장 피밭 창고에서 망나니 휘광의 아들로부터 명검 궁을 입수한 병서가 칼을 잃어버린 뒤 허망해 하는 장면이다. 뒤따라 온 춘석과 홍에 의해서 그만 칼을 도둑맞은 것이다. 인용문 ②는 남원 고을에 출두한 암행어사가 칼을 병서에게 강탈당했다는 홍과, 칼을 돈 주고 샀다고 주장하는 사또 아들 병서의 억지 주장을 들으며, 그 진위를 가리기 위해 두 사람을 심문하는 장면이다.
이 작품의 서술과 묘사 문장은 힘 있는 강건체 문체로 일관되어 있다. 남성적인 강인함이 돋보인다. 그러면서도 풍경을 서술하고 인물의 행동과 상황을 관찰하는 작가의 시선은 아주 치밀하고 촘촘하게 일관되어 있다.
흡사 판소리의 아니리(사설)를 듣는 듯하다. 판소리는 창자의 소리와 아니리, 그리고 발림(몸짓)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리꾼(창자)은 어느 때는 아니리, 즉 사설로 장면의 상황이나 사태의 추이를 설명하고, 또 어느 때는 창(소리)으로 장면과 상황을 묘사하기도 한다. 위 인용문 ①에서의 고딕체 문장은 흡사 판소리의 사설을 닮아 있다. 첫 번째 문장은 어떤 상황에 대한 인물의 독백에 가까운 덧붙임이며, 두 번째 문장은 ‘군락을 이룬 오솔길’을 더 자세하고 감칠맛 나게 설명하는 문장이고, 세 번째 문장 역시 인물의 독백체에 가까운 감정의 덧붙임이다.
인용문 ②의 고딕체 문장은 판소리의 아니리처럼 일정한 템포와 리듬을 지니고 있어, 마치 판소리의 청중이 소리꾼의 아니리와 발림에 동참하여 서사에 참여하는 듯한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문장이 제법 길지만, 각 어절마다 음악적 리듬감이 부여되어 독자는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민초들의 열망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조선후기 순조 때의 신유사옥 전후이다. 명검 ‘궁’을 만든 남원 춘향골 대장간의 상쇠 아제는 일종의 중인으로 천민에 속한다. 홍의 아버지인 상쇠 아제는 자신이 만든 칼이 의롭게 쓰이기를 염원했다. 그런데 그 칼은 새로운 세상을 바라는 서학 관련자를 처형하는 도구로 쓰인다. 서학은 양반과 천민이 따로 없이 모두 평등한 세상, 그리고 군주와 백성이 따로 없는 평화로운 이상향을 꿈꾸는 것이 교리의 요지이다. 그런데 명검 ‘궁’은 천민인 망나니 휘광의 손에 들려져 서학을 신봉하는 정약종을 처형하는 의롭지; 못한 일에 쓰이고 만다.
이 작품 속에는 대장장이 상쇠 아제와 같은 중인 기술자, 백정 등의 천민이 등장한다. 피밭에서 서학을 믿는 자들을 처형하는 광경을 목격하는 백성들과 천민들은, 자신들과 양반을 차별하는 신분제을 철폐하고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서학 교인들이 처형당하는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애를 태운다.
①
“허, 요것 봐라. 주둥이가 살아 있다 이거지? 이래서 천한 놈들에게는 글을 가르쳐선 안 된다고 하는 거야. 하극상이 생긴다니까. 이렇게 위아래 없이 딛고 올라서니 나라꼴이 어찌 되겠나.”
“아무렴. 우리네 천민 한 명에 양반 백 명을 준대도 절대 안 바꿔. 앉아서 놀고먹으며 글만 읽으면 뭐혀? 나라를 지키고 가난한 민초를 멕여 살리는 게 누군디? 양반네들 입으로 들어가는 괴기는 누가 잡아주는디? 백정이 잡아주는 괴기는 배 두드리고 먹으면서 평상 핏물에 손 담그는 백정을 무시하는 니 놈들!”
병서의 앞 이마 실핏줄이 실룩거렸다.
“허! 이런 상놈을 봤나? 보자 보자 하니 기관이로구먼.”
“네가 가진 권세가 모다 니 아부지 덕 아니여?”
“이 건방진 놈, 마지막 명령이다. 업혀!”
-이마리, 「탄로나다」, 앞의 책, 138-139쪽.
②
“칼만 찾으면 나도 꼭 심을 보태고 싶어. 인자 여자들 심도 필요한 시상이 되었응게.”
춘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순교자 명단에도 여자가 얼마나 많은지 놀랍다고 했다. 정 대감 댁에 머무르는 동안 진주 천민모임에 참여하러 한양에서 진주까지 가는 사람들을 더러 만났다. 천민들이 일어서야 할 때라며 모이기만 하면 입을 모았다. 며칠 일을 못 해 굶어 죽더라도 가야 한다고 우기는 사람도 많았다.
“그려, 어쩌든 우덜이 강하게 뭉쳐서 양반들한테 심을 봐줘야 혀. 지리산 자락이라지만 경상도에 있응게 거그꺼정 가야 할 질이 까막혀네. 우짜끄나 몸조심혀.”
-이마리, 「귀향마차에 탔당게」, 위의 책, 153쪽.
위 인용문 ①은 남원 고을 사또의 아들인 병서가 ‘궁’을 훔친 자를 쫓다가, 그 범인이 홍과 춘석이라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춘석과 홍이 그에게서 수모를 당하는 장면이다. 춘석은 천민 백정의 아들로 홍과는 단짝 친구이다. 춘석네 가족은 서학을 설교하는 윤 대감의 권유로 한양 청약종의 집안에 들어가 시중을 들고 있었다. 홍은 춘석과 함께 병서의 마차에서 ‘궁’을 빼내 도망가다 병서에게 붙들린 것이다. 병서가 춘석에게 홍을 업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곧, 천민은 천민끼리 어우러져 살아야지 양반 신분과는 어울릴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모욕감을 느끼게 하는 상징적 은유이다.
홍은 병서에게 일침을 놓는다. 양반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곧 자신들과 같은 천민들이나, 백정들이 손에 피를 묻혀가며 잡은 고기를 양반들 자신들이 먹으면서 그 고마움을 잊고 천민을 차별하고 있다며 그 모순적 행동을 깨우치고 있다. 양반들은 천민들을 가르쳐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천민들이 글을 알고 학문을 깨우치게 되면 자신들의 견고한 세계가 무너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춘석의 아버지가 믿는 서학은 곧, 그런 신분 차별을 철폐하고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사는 이상적인 세상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인용문 ②는 서학 교리 공부로 인한 자아 각성으로 신분제를 철폐하고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천민들의 동요가 심상치 않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한양 정 대감 댁에서 머무르는 동안 춘석은 평등한 세상을 꿈꾸게 되었고, 신유사옥으로 처형당한 서학 관련자들 중에도 여성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진주에서 있을 천민 모임에도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다. 그의 단짝 친구인 홍 역시 칼만 찾으면 자신 역시 평등한 세상을 위해, 그 평등한 세상에 밑바탕이 되어 줄 여성의 권리 향상에 힘쓰겠다고 다짐한다.
이마리의 이 작품은 일종의 여성 해방운동에 대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궁과 함께 작품의 주동인물로 서사의 추동력이 되는 ‘홍’이 여성인 것만 봐도 능히 짐작이 간다. 홍의 부모는 여성으로 살기 힘든 점을 감안하여 홍에게 남자 옷을 입혀 사내아이처럼 행세하게 한다. 그것은 곧 신분제 사회에서의 여성의 역할이 얼마나 힘들고 위험한 것인가를 반증하는 은유이기도 하다. 홍의 아버지인 상쇠 아제가 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명검 ‘궁’을 만들었듯이, 홍 역시 여성이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궁’을 찾기 위한 쫓고 쫓김의 추격전에 뛰어든 것이다.
칼의 유랑을 통한 신분제 철폐의 염원
이 작품을 통해 작가가 제시하고자 하는 현실인식은 여성의 힘과, 그 힘을 통한 신분제 사회의 철폐이다. 신분제 사회의 철폐를 통해 군주와 백성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건설하는 데에는 여성의 강인함 힘이 필요하다는 가능성을 열어 보이고 있다. 작가는 신분제 사회에서 지극히 위험한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힐링 캠프’를 극적인 서사로 마련해 놓고 있다. 이 책을 발간한 출판사의 캐치 프레이즈 역시 바로 ‘십대들의 힐링 캠프’이듯이, 작가 역시 조선 후기의 실학을 배경으로, 인간이 꿈꿀 수 있는 마지막 거처인 평등한 세상을 염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의 서두와 결미 부분을 유심히 살펴보면 작가의 이러한 현실인식을 충분히 엿볼 수 있을 것이다.
①
상쇠가 용광로에 구운 벌건 칼을 물에 넣었다. 치이익 하며 쇠 식는 소리가 나는 순간 쇠를 또 내려치기 시작했다.
“아부지, 그렇게 수도 없이 녹이고 두드려야 하는 거여요?”
“아무렴, 많이 접어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잡철이 떨어져 나가는 거여. 밀가루 반죽 주무르듯 부드러워질 때까지 온갖 정성을 다해 쇠를 다듬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좋은 칼이 태어나지 못하는 벱인게. 천 번 때리면 잡철이 천 번 떨어져 나가는 거여. 나쁜 맴을 털어버리듯이 말이여.”
“아! 많이 때릴수록 더 좋은 칼이 나오는 게비네요.”
“그라지, 나쁜 생각을 모다 내쫓으면 새사람이 되듯이.”
홍은 아버지 어깨 근육 위에 계곡 물줄기처럼 흐르는 땀을 가만히 닦았다.
“사람도 마찬가지여. 이렇게 하면 몸띵이와 맴이 단단해지는 거여. 긍게 숱한 과정을 거쳐야 칼맨키로(‘칼처럼’의 전라도 방언) 잘 깨지질 않지. 단단하게 자신을 담금질하면 아무도 엿보지 못혀.”
홍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마리, 「남원도 ‘궁’의 탄생, 앞의 책, 20-21쪽.
②
‘궁’은 순간 아찔했다. 생시처럼 목을 매단 여자와 남자아이가 꿈속에 나타나곤 했던 까닭을 이제야 알 것만 같았다. 모든 것을 알게 된 이 순간 꿈같은 춘향 대장간의 오후에 안주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칼의 근분이 뭔디. 칼이 칼 노릇을 혀야제. 억울하게 죽은 홍 누임의 엄니와 오래비의 원수를 갚기 위해 영산포구로 떠나야 혀. 거그서 나라를 지키는 진정한 칼이 되어야 헌다!」
홍은 ‘궁’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어사를 향해 칼을 내밀었다.
“어사님, 이 ‘궁’을 친구분께 드릴랍니다. 그리고 칼값은 더 이상 말씀허시지 마셔라.”
어사는 홍 아버지에게 깊고 깊은 절을 했다.
-이마리, 칼이 칼 노릇을 혀야제」, 위의 책, 193쪽.
위 인용문 ①은 이 작품의 서두 부분이고, 인용문 ②는 결미 부분의 한 장면이다. 앞의 장면은 홍의 아버지인 상쇠 아제가 남원골 춘향 대장간에서 명검 ‘궁’을 만드는 과정이고, 뒤의 장면은 홍이 명검 ‘궁’을 어사에게 의로운 일에 써달라며 순순히 내놓는 장면이다. 궁이 처음 탄생하는 앞 장면에서 궁이 의로운 일에 쓰이기를 바라면서 세상 속으로 당당하게 나아가는 뒤의 장면으로 앞뒤가 자연스럽게 맥이 닿아 아귀가 딱 맞아 떨어지고 있다.
인용문 ①은 이 작품의 주제를 은유하고 작가의 현실인식을 상징하는 대목이다. 칼이 수천 번 담금질하는 과정을 통해야 칼에 붙은 잡철이 떨어져 나간다. 여기서의 ‘잡철’은 양반층의 횡포를 상징한다. 즉, 칼이 의로운 일에 쓰여야 하듯, 칼로 상징되는 민초는 올바른 세상을 꿈꾸기 위해 자신을 단련해야 평등한 세상의 꿈을 이룰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은유하고 있는 것이다. 민초들은 칼이 담금질 되듯 자신을 단련하며 배우고 익혀 거듭나야, 올바른 세상을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인용문 ②는 이 작품의 결미 부분으로 의로운 일에 쓰이기를 바라는 칼인 ‘궁’의 생각과, 그 칼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쓴 홍의 결심을 나타내는 대목이다. 어사의 친구로 왜군으로부터 영산포구를 지키는 장수에게 전달되어, 의롭고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데 힘을 보태라고 궁을 기증한다. 왜적을 물리쳐 나라가 안정되어야 평등한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위 인용문 ①과 ②에서 이 작품의 주제의식이 완결되고, 그것을 통해 나타내려는 작가의 현실인식이 비로소 한 곳으로 귀결되고 있는 것이다. 신분제 사회 철폐를 향한 통렬한 일침이 바로 작가의 현실인식인 것이다.
부산의 동화작가 이마리는 등단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단편동화보다는 장편동화 창작을 통해, 어린이들의 모험심을 자극하는 이색적인 소재로 작품을 빚어오고 있다. 그러한 시도는 한국 동화문학의 지형도를 확장하는데 큰 몫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번에는 조선후기를 배경으로 하는 200자 원고지 6백 매가 넘는 큰 스케일의 청소년소설 『대장간 소녀와 수상한 추격자들』을 상재하여 주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이 작품은 신분제 사회 철폐를 향한 주제의식과 작가의 통렬한 현실인식이 돋보이며, 구수한 남도 사투리를 구사하며 판소리의 아니리 같은 사설조의 강인한 문체로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무엇보다 평등한 세상을 꿈꾸고, 그것을 이룩하기 위해 여성의 힘이 더해져야 한다는 주제의식의 보편적 공감대가 크게 다가온다.
이 작품은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아쉬움을 보인다. 그것은 극적 서사의 전개와 진행이 평면적인 것이 다소의 흠으로 작용하고 있는 점과, 장면과 사건에 따라 문체가 다양한 변화를 보이지 못해 약간 지루함을 준다는 점이 옥의 티로 작용하고 있다. (2021. 5. 2)
첫댓글 <신분제 사회 철폐를 향한 통렬한 일침이 바로 작가의 현실인식>
조선후기 ‘신유사옥’을 소재로 한 일종의 모험 역사소설인 점이 돋보입니다.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 평으로 보아 잘쓴 청소년소설이네요.
이마리 작가님의 열정적인 몸짓에 박수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