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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해커(Arthur Hacker, 1858-1919) 는 런던 태생으로 18살에 로얄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공부한 뒤 파리로 유학을 떠나 드가의 절친이었던 레옹 보나(Leon Bonnat)의 화실에서 다시 1년간 공부를 했다.
귀국 후 풍속화와 역사화에 초점을 맞추고 작품을 제작한다. 1881년 로얄 아카데미 전시회에 프랑스 농촌의 모습을 모티브로 한 작품을 출품하게 되면서 대중적인 관심을 갖게 된다.
그는 1880년대 초반에는 외광파 기법을 따라 사실적인 묘사가 더해지면서 그의 작품들에 대해 미술 관련 잡지들로부터 호평이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1880년대 후반들어서는 프랑스 아카데미화파의 영향을 받게 되었고, 그 후에는 라파엘전파와 상징주의 화풍의 그림을 많이 그렸다.
그러나 말년에는 초상화와 꽃 그림이 배경이 된 풍경화를 주로 그렸다. 그의 작품 <갇혀버린 봄>은 흡사 요즘의 코로나19 사태에 사회적 격리를 하고 있는 우리들 모습 같아 애잔하다.
고별이라는 작품 속에서 아서는 무슨 생각을 한 것인가? 나와 너,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 나와 더불어 마음을 나눈 사람과의 석별, 슬픔 보다 더 큰 비애가 숨겨있다. 그는 누구인가? 내 안에 숨죽이고 있던 나, 나와 이별을 통해서 또 다른 세상을 떠나 가는 나! 검은 옷에 투영 된 뒤돌아선 빛나는 그이, 마치 가장 큰 고별, 죽음 속에 처한 나인 듯 서로 닮은 그이가 쓸쓸하다.
누구나 나와 나 속에 또다른 나와 헤어질 시간이 오리라! 그날을 생각케하는 아서의 고별, 이 그림을 통해서 생과 사를 생각해본다. 너는 죽어 있는가. 죽음으로 가고 있는 중인가?
위험에 빠지다 In Jeopardy / oil on canvas / 1902
이런 큰 일입니다. 일본풍 양산이니까 당시에 흔한 물건은 아닐 것 같은데 그만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급한 마음에 물을 타고 흘러가는 우선을 쫓아 여인은 물가로 황급히 내려왔지만
치마를 움켜쥐고 바라보는 수 밖에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주위의 노란 꽃들이 흐드러졌고 고스란히 그 모습과 색을 담은 물은
여인의 타 들어가는 마음과는 상관없다는 듯이 조용히 흐르고 있습니다.
돌아 보면 사소한 것에 모든 것을 걸었던 적이 있습니다.
엉뚱한 자존심과 소소한 것에 대한 집착으로 더 큰 것을 잃어버리곤 했지요.
물론 그 것은 지금도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것들이어서 극도로 조심을 하고 있지만
순간적으로 그 사실을 잊어 버리곤 합니다.
그나저나 이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모자 쓴 아저씨, 좀 너무 하군요.
깊지 않은 물이면 뛰어 들어서 아가씨를 위해 양산 좀 건져 올리시죠!
해커는 런던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판화가였는데 스포츠 장면이나 동물들이 주제였다고 합니다.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한 자료는 찾지 못했지만 열 여덟 살에 로열 아카데미에 입학한 것을 보면 일찍 그림에 관심이
있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또 아버지의 직업을 고려해보면 어려서부터 그림에 대한 교육을 아버지로부터
받았을 수도 있었겠지요.
어부의 아내 Fisherman's Wife / 130.2cm x 174.6cm / oil on canvas / 1885
벽난로 앞에 누운 아이는 잠이 들었습니다.
바다로 간 남편을 기다리다가 먼저 먹은 밥그릇을 치울 생각도 못하고 있습니다.
돌아와야 할 시간이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는 일이 한 두 번이겠습니까 만은 여전히 이 시간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선창가에라도 나가면 가슴 끝에 거대한 추가 달려 있는 것 같은 이 마음이 조금은 덜 할 것 같은데
잠자는 아이를 깨울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팔에 얼굴을 기댄 그녀의 얼굴은 간절함으로 물들었습니다. 삶은 이렇게 늘 애끓음의 연속인 걸까요?
로열 아카데미에서 4년간의 공부를 끝내고 1880년, 해커는 파리로 건너갑니다.
졸업을 하기 전에 이미 로열 아카데미 전시회에 작품을 걸었던 그는 당시 국제적으로 초상화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던
레옹 보나의 화실에 입학 1년간 공부를 계속합니다. 레옹 보나는 드가와 평생 친구였지요.
초상화를 그리고자 했던 해커에게 보나는 이상적인 선생님이었습니다.
어려운 일 A Difficulty / 90cm x 126cm / oil on canvas / 1888
손녀의 구멍 난 양말을 꿰매려고 바늘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을 어쩌죠 – 바늘 귀가 보이질 않습니다.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바늘 귀에 실을 넣어 보려고 하지만 자꾸 빗나갑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할머니 얼굴에는 점점 더 주름살이 깊게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손에는 힘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기다리다가 지친 손녀는 의자 위로 올라와 할머니를 향해 몸을 기울였습니다.
그렇다고 어린 손녀에게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니 정말 어려운 상황입니다.
요즘 두 개의 안경을 가지고 다닙니다. 먼 곳을 볼 때 쓰는 것과 돋보기 입니다.
돋보기 쓰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했지만 가끔은, 정말 가끔은 돋보기 신세를 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연히 받아 들여야 할 일이지만 제게도 어려운 일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혹시 바늘 귀에 실을 잘 넣으시는지요?
귀국 후 그는 풍속화와 역사화에 초점을 두고 작품을 제작합니다. 1881년 로열 아카데미 전시회에 프랑스 농촌의
모습을 주제로 한 작품을 출품하는데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됩니다. 이후 외광파 기법과 사실적인 묘사가 더 해진
그의 작품들에 대해 미술 관련 잡지들로부터는 호평을 받습니다.
기사 퍼시벌에 대한 유혹 The Temptation of Sir Percival / 132.1cm x 157.5cm / oil on canvas / c.1894
퍼시벌 기사는 아다왕의 원탁에 나오는 기사 중 한 명입니다. 성배를 찾는 임무를 맡았는데 그에 대한 악마의 유혹이
두 번 있었습니다. 네이버 백과에 실린 내용을 정리해 보면 대략 이렇습니다.
악마의 1차 유혹을 물리친 그는 아침에 자신이 바닷가 황무지에 누워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 때 배 한 척이 다가오고
그 안에는 절세 미녀가 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원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못된 사람들에게 가진 것
모두를 빼앗겼다고 말하면서 힘이 되어 줄 것을 요청합니다. 흔쾌히 그녀의 요구를 승락한 퍼시빌을 그녀는 천막으로
이끌고 달콤한 말로 그를 유혹합니다. 그녀의 꾐에 완전히 넘어간 퍼시빌은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그 때 칼자루에 붉은 십자가가 매달린 그의 칼이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그 광경을 본 퍼시빌이 무심코 성호를 긋는 순간
천막의 형체가 사라지더니 한 줄기 연기가 되어 하늘로 날아 올랐고 여인은 무시무시한 비명을 지르며 배를 타고 멀리
사라져 갔습니다.
생각해 보면 예쁜 여인의 유혹 앞에 견딜 수 있는 남자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해커는 여행을 많이 한 화가였습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고 북아프리카의 알제리와 모로코가 그의
빈번한 여행지가 되었습니다. 이런 여행들을 통해 얻은 경험과 감상이 그의 작품에 반영되었죠.
여행을 통해 사람의 인생이 바뀌는 경우를 떠 올려 보면 여행이 그의 작품에 중요한 영향을 준 요소였다는
평론가들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성(聖)이냐 속(俗)이냐 The Cloister or the World / 218cm x 170.5cm / oil on canvas / 1896
수녀는 빛나는 날개를 가진 흰 옷의 천사와 화려하고 요염한 모습의 여인 사이에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비록 수녀의 길로 들어섰지만 때때로 나타나는 또 다른 길에 대한 상념이 그녀를 흔들기 때문입니다.
어느 길이 그녀에게 더 어울리는 길인지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그녀의 손에 걸린 묵주, 저녁 햇살 아래 반짝이고 있습니다.
문득 어려서 본 오드리 헵번 주연의 ‘파계’라는 영화가 떠 오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파계를 통해서 그녀는
신께 더욱 가까이 다가 간 것 아닌가 싶습니다. 중요한 것은 옷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작품 활동이 성공을 거두면서 해커는 1894년, 서른 여섯의 나이에 아카데미 준회원으로 선발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졸업한 로열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기 시작합니다. 얼마 전 중학교 학생들 앞에서
‘그림에 대한 상상력’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비록 2시간이었지만 가슴 떨리는 순간이었죠.
졸업한 학교에서 후배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그 기분이 어떨까 싶었습니다.
1910년, 해커는 아카데미 정회원이 됩니다.
아침 산책 A Morning Walk / 43cm x 43cm / oil on canvas / 1902
아침 산책 길에 나선 여인, 표정이 이상합니다. 자세히 보니 눈을 감고 깊게 꽃 향기를 마시는 것 같습니다.
옷차림을 보니 부지런한 여인입니다. 초록과 노랑이 배경으로 서 있는 풍경이 신선합니다.
더구나 아침이 주는 맑은 이미지 때문에 그림 가득 생명력이 흐르고 있습니다.
작년, 아침 산책 길에 들꽃을 한아름 꺾어 들고 서 있던 아내의 모습이 떠 오릅니다.
잠자리에서 일어난 얼굴이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맑았고 수수한 들꽃이었지만 어느 꽃보다도 화려했습니다.
이제는 ‘날 것’이 편한 나이가 된 모양입니다.
해커는 ‘뉴린파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스텐호프 포브스(http://blog.naver.com/dkseon00/140067336474)와
로열 아카데미도 같은 시기에 다녔고 파리에서 보나의 화실에서도 같이 공부했습니다. 이때 포브스가 추구하던
사실주의 기법에 관심을 가졌는데 나중에 기존의 아카데미에 대항해서 신영국미술협회(New English Art Club)의
창립멤버가 됩니다. 그러나 해커의 화풍은 계속 변화합니다.
가을 Autumn / oil on canvas / 1907
여기 떠날 준비를 하는 여인이 있습니다.
사방에서 불어 오는 바람에 나뭇잎은 여인의 몸 주위를 나비처럼 날아 다니고 있고 치마는 부풀대로 부풀었습니다.
붉은 머리의 여인은 그 동안 벗고 있던 옷을 다시 입고 있습니다.
세상을 붉은 색과 갈색으로 물들였던 그녀는 이제 그 역할을 다했다는 듯한 얼굴입니다.
얼굴 한 쪽에는 아쉬움도 있고 또 자신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 대한 자아 도취도 보입니다.
그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내년에 또 뵙지요.
해커의 화풍은 1880년대 초반에는 와광파 기법을 따르다가 1880년 후반에는 프랑스의 아카데믹 화법으로
전환합니다. 그 후 라파엘전파의 기법과 상징주의 기법을 거치게 됩니다. 화풍을 바꾼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본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와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을 골랐기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개인의 기준이 확실했다는 표현이 더 근사할 수도 있겠습니다.
피카딜리 서커스의 비 오는 밤 A Wet Night at Piccadilly Circus / 71cm x 91.5cm / oil on canvas / 1910
어둠이 내리자 노란 불이 켜지기 시작했습니다.
젖은 길 위에 그 빛이 반사 되면서 저녁 무렵의 피카딜리 서커스는 몽환의 세계로 바뀌었습니다.
저녁 안개 속, 길 위를 오가는 마차와 모자를 쓴 사람들은 실루엣으로 떠있고 그들 사이로 축축한 깊은 가을의 시간이
조심스럽게 흐르고 있습니다.
비가 내리는 가을 저녁은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되살아 나는 시간입니다.
대개의 기억들은 쓸쓸하거나 통속적인 것들이어서 멀쩡하던 정신을 깊은 심연으로 밀어 넣곤 합니다.
그러나 나쁘지 않습니다. 어디선가 저처럼 그 기억을 곱씹고 있는 사람이 있을 테니까요.
학교 앞 술집에서 늦게까지 노래를 부르던 비 오는 가을 밤이 떠 오릅니다.
풍속화와 역사화, 종교적인 주제가 주를 이루었던 해커의 작품 주제가 20세기로 접어 들면서 변합니다.
런던의 거리 풍경이 추가 된 것이죠. 연작으로 제작된 그의 작품을 두고 평론가들은 런던의 본 모습을 그릴 준비가
덜 되어 있다고 했지만 너무 앞서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들이 평론가들 보다 늘 한 발 빠르거든요.
개밀 태우는 사람들 The couch burners / 109.9cm x 127.3cm / oil on canvas / 1910
추수가 끝난 벌판에서 먹지 못하는 밀인 개밀을 태우고 있습니다.
해는 서산으로 기울었고 집으로 가져가야 할 추수한 것은 수레로 하나 가득 인데 여인은 밭 정리를 마저 끝 낼 작정인
모양입니다. 우두커니 서 있는 남자와는 달리 여인은 시뻘건 불꽃이 널름거리는데도 쇠스랑으로 개밀 덩어리를 휘젓고
있습니다. 빨리 태우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만 그 동안 농사로 지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하늘로 올라가는 연기 속에 그 동안 흘렸던 땀과 눈물도 담겨 있겠지요.
아저씨, 그냥 서 있지 말고 아줌마하고 같이 좀 해요!
말년에 해커는 초상화에 집중합니다. 원래부터 뛰어난 초상화가였고 그로 인해 경제적인 부를 쌓았던 해커는
동료들과 미술 관련 사회 저명 인사들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합니다. 생애를 정리할 때쯤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그림에 담는 것도 좋겠다 싶습니다. 머리 속에 오래 남을 것이니까요.
갇혀버린 봄 Imprisoned Spring / oil on canvas / 1911
갇혀버린 봄? 제목이 심상치 않다 싶어서 소녀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 봤더니 이해가 됩니다.
창을 통해 들어 오는 햇빛은 창가에 세워 놓은 노란 꽃병을 거쳐 탁자 위에 또 하나의 그림을 만들었습니다.
빵 한 조각으로 식사를 하던 소녀는 벌떡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이렇게 좋은 날,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집 안에 머물러야 하는 자신의 모습에 금방이라도 울음이 쏟아질 것 같은
표정입니다. 어지럽게 널린 포크와 나이프가 소녀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갇혀버린 봄이라는 제목이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궁금합니다. 어떤 사유로 이 소녀는 나가지를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우리가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몸뿐일까요? 그렇게 보면 소녀나 저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일상에서 한 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 시대의 ‘많은 소녀’들이 떠 올랐습니다.
빅토리아 시대 화가 중 가장 다재 다능한 화가였다는 평가를 받았던 해커는 예순 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나이를 보면 좀 아쉽습니다. 그의 아내 릴리언도 화가였고 그녀 역시 로열 아카데미에서 작품 전시를 하곤 했습니다.
그래도 부부가 같은 길을 걸었으니 큰 아쉬움은 없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