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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제도는 중국 수(隋)나라에서 비롯하였고 당(唐)에서 정착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며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광종(光宗)때 토호 세력을 재편 수렴하여 왕권을 강화 할 목적으로 중국보다 300년 가량 늦게 실시되었다. 고려 초기의 시험과목은 製述業(제술업), 明經業(명경업), 雜業(잡업) 의 3과목 이 있었고, 그 중 제술업은 甲科(갑과), 乙科(을과), 丙科(병과) 로 나누어 실시되다가 同進事(동진사), 恩賜 (은사) 의 2개로 시행되었으며 1889년에 폐지되었다. 甲科(갑과)의 합격자 중 1등은 壯元(장원), 2등은 亞元(아원) 또는 榜眼(방안), 3등은 探花(탐화)라고 불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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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술과(製述科) 고려시대 과거(科擧)의 하나로 제술업(製述業) 또는 동당시(東堂試)라고도 한다. 시험 과목은 광종 9년(958) 처음 실시될 당시 시(詩)·부(賦)·송(頌)·시무책(時務策)이었으나 목종 7년(1004)에 경(經)이, 현종 10년(1019) 이후에는 논(論)이 추가되었다. 시험은 6과목을 모두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3장(場)에 걸쳐 보통 3·4과목이 출제되었다. 3장 가운데 가장 중요한 종장(終場)은 충렬왕 이후 공민왕 초기까지는 책문(策問) 중심으로, 공민왕 16년(1367) 이후는 경학 중심으로, 우왕 때에는 다시 시·부로, 공양왕 이후에는 다시 경학 중심으로 환원하였다. 경학은 1004년 《예경(禮經)》을 첩경(貼經)하였고, 예종 16년(1121)부터는 육경(六經;詩經·書經·周易·禮記·春秋·周禮)을 출제하였다. 이어 충목왕 즉위년(1344)부터 사서의(四書疑)를 출제하여 사서가 공식적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사서의는 안향(安珦)이 중심이 되어 출제하였는데 이는 국학교육의 강화를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제술과는 갑(甲)·을(乙) 2과가 있었는데, 갑과의 1등 합격자를 장원(壯元), 2등을 아원(亞元) 또는 방안(榜眼), 3등을 탐화(探花)라 하였다. 고급관리의 등용문인 제술과는 양반의 자제들만 응시할 수 있었으며 대체로 주·군·현의 차관인 부호장(副戶長) 이상의 자제를 기준으로 하였다.
2. 명경과(明經科) 1) 고려시대 과거시험의 한 분과이다. 유교 경전(經典)을 시험하던 것으로, 과거시험 중 가장 어려운 분과였다. 시험과목은 시(詩)·서(書)·역(易)·춘추(春秋)·예기(禮記) 등이며, 초시(初試)·회시(會試)·복시(覆試)의 3차에 걸친 시험을 보고 통과된 자에게는 합격을 허가하고 그 증거로 홍패(紅牌)를 주었다. 명경과도 다른 분과시험과 마찬가지로 등과전(登科田)을 주어 이를 장려하였다.
2) 조선시대 식년문과 초시(式年文科初試)의 한 분과. 생원과(生員科)라고도 한다. 식년문과 초시는 제술과(製述科)와 명경과의 2종류가 있었으며, 오경(五經) 중 《춘추의(春秋義)》를 제외한 사경(四經)과 사서(四書) 중 <의(疑)> 1편만을 시험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전국에서 700명, 후기에는 540명을 선발하였다.
3. 잡과(雜科) 고려·조선 시대 기술관을 선발하던 과거의 하나이다. 고려시대에는 잡업(雜業)이라 하여, 명법업(明法業)·명산업(明算業)·명서업(明書業)·의업(醫業)·주금업·복업(卜業)·지리업(地理業)·하론업(何論業)·삼례업(三禮業)·삼전업(三傳業)·정요업(政要業) 등이 있었다. 잡업은 제술업(製述業)이나 명경업(明經業)에 비해서 격이 낮았다. 잡과 지망자를 위해 국자감(國子監)에는 율학(律學)·서학(書學)·산학(算學)의 교육과정을 두고, 사천대(司天臺)와 태사국(太史局)에서는 천문·지리·음양(陰陽)·술수(術數)를, 태의감(太醫監:典醫寺)에서는 의학을 교육하였다. 조선시대에서도 초기부터 문·무과와 함께 역과(譯科)·의과(醫科)·음양과(陰陽科)·율과(律科) 등의 잡과를 두어 기술관을 등용하였다. 역과는 한학(漢學)·몽학(蒙學)·왜학(倭學)·여진학(女眞學)으로 나누고, 음양과는 천문학·지리학·명과학(命課學)으로 나누었다. 잡과는 3년마다 시행하는 식년시(式年試)와 국가에 경사가 있을 때 부정기적으로 보던 증광시(增廣試)가 있었으며, 1차 시험인 초시(初試)와 2차 시험인 복시(覆試)의 2단계 시험을 거쳐 입격자를 가렸는데, 초시는 상식년(上式年) 가을에 관계 각사(各司)가 시행하고, 복시는 식년 봄에 초시 합격자를 모아 관계 각사와 예조(禮曹)가 합동으로 초시와 같은 고시과목으로 시험을 보고 합격자에게는 합격증서인 백패(白牌)를 주었다. 잡과 합격자 중 역과 1등은 종7품, 2등은 종8품, 3등은 종9품의 품계를 주고 다른 잡과 합격자의 1등은 종8품, 2등은 정9품, 3등은 종9품의 품계를 주되, 실직(實職)이 아닌 권지(權知:試補)로서 각사에 분속(分屬)시켰다가 자리가 나면 실직(實職)을 주었는데, 이들 기술관은 윤번으로 근무하는 체아직(遞兒職)이어서 역과의 경우 6개월마다 교체되었다.
4. 음서(蔭敍) 제도 고려·조선시대 부(父)나 조부(祖父)가 관직생활을 했거나 국가에 공훈을 세웠을 경우에 그 자손을 과거에 의하지 않고 특별히 서용하는 제도. 문음(文蔭)·남행(南行)·백골남행(白骨南行)·음사(蔭仕)·음직(蔭職)이라고도 한다. 고려 목종 즉위년(997)에 문무관 5품 이상관의 아들에게 음직을 주도록 하는 음서제가 최초로 생겨났으며, 문종 3년(1049)에는 전시(田柴)를 지급하는 공음전(功蔭田)의 제도가 마련되면서 고려의 문벌귀족사회를 형성하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조선시대 《경국대전》의 이전(吏典) <음자제(蔭子弟)>조에 의하면 음직제수의 범위를 공신이나 2품 이상관의 자(子)·손(孫)·서(壻)·제(弟)·질(姪), 실직(實職) 3품관의 자손으로 제한하여, 실력에 의한 선발 시험인 과거의 비중을 높였다. 음관은 원칙적으로 장자(長子)만이 받을 수 있었으나, 장자가 유고인 경우에는 장손이나 차자가 감등하여 음직을 받을 수 있었다. 음관을 제수받는 연령은 만 18세 이상으로 규정되어 있었으나 실제로는 15세를 전후하여 관직에 등용되었으며, 부와 조부의 정치적 배경에 따라 승진 속도에 차이를 보이기도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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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식년시(式年試) 조선시대의 과거시험. 3년마다 정기적으로 시행되었다. 《속대전》 이전에는 대비과(大比科)라 하던 것을 《속대전》 이후부터 자(子)·묘(卯)·오(午)·유(酉)가 드는 해를 식년으로 하여 과거를 시행함에 따라 식년시가 되었다. 식년시는 소과(小科)·문과(文科)·무과(武科)로 나눈다. 부정기적으로 보는 시험으로는 증광시(增廣試)·별시(別試)·알성시(謁聖試)가 있다. 소과의 경우는 생원·진사의 복시, 문과는 복시·전시, 무과는 복시·전시, 잡과는 역과(譯科)·의과(醫科)·음양과(陰陽科)·율과(律科)의 복시를 식년에 실시하였다. 초시를 거친 합격자는 예조에서 복시(覆試)를 거쳐 33명을 뽑고 전시(殿試)에서 성적순으로 갑과(甲科)에 3명, 을과에 7명, 병과에 23명을 급제시켰다. 무과는 28명, 잡과는 역과가 19명, 의과 1명, 율과 9명, 음양과 9명 등 총 38명을 뽑았다. 식년시가 처음 실시된 것은 고려 선종 1년(1084)이지만, 태조 2년(1393)에 가서야 비로소 제도적으로 정착되었다. 그러나 국가적 변고나 국상(國喪), 또는 특별한 사유가 있을 경우에는 식년시를 연기하거나 시행하지 않았다. 식년시는 그 해 1∼5월에 시행하는 것이 상례였으나 농번기와 겹치는 이유로 생원 또는 진사의 초시는 식년 전해 8월 15일 이후에, 문과·무과의 초시는 같은 해 9월 초순에 각각 실시하였다. 생원과 진사의 복시와 문과·무과의 복시는 식년의 2월과 3월에 각각 실시하였다. 식년 문과는 총 163회에 걸쳐 시행되었다.
2. 증광시(增廣試) 조선시대 즉위경(卽位慶)이나 30년 등극경(登極慶)과 같은 큰 경사가 있을 때 또는 작은 경사가 여러 개 겹쳤을 때 임시로 실시한 과거. 소과(小科)·문과(文科)·무과(武科)·잡과(雜科)가 있었다. 태종 1년(1401) 왕의 등극을 경축하기 위하여 처음으로 실시하였고, 그 뒤 선조 22년(1589) 종계변무경(宗系辨誣慶), 90년 종계변무 및 상존호경(上尊號慶), 1605년 공신책훈(功臣冊勳)·상존호경, 이듬해의 즉위 40년경(慶), 광해군 4년(1612) 창덕궁 낙성 및 세자가례경(世子嘉禮慶), 효종 3년(1652) 왕세자가례·입학·김자점토역(金自點討逆)을 축하하기 위한 합삼경(合三慶), 현종 3년(1662) 효종부묘(孝宗廟)·양대비존숭(兩大妃尊崇)·왕비 책례(冊禮)·원자(元子) 탄생을 축하하기 위한 합오경(合五慶) 등이 실시되었다. 식년시(式年試)와 마찬가지로 그 절차가 생원·진사의 초시(初試)·복시(覆試), 문과초시·문과복시·문과전시(殿試)의 5단계로 나누어지며, 시험과목도 같았다. 때로는 대증광(大增廣)이라 하여 문과합격자에 7명을 더하여 선발하였다.
3. 별시(別試) 조선시대에 정규 과거시험 외에 임시로 설행된 과거시험의 하나.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와 인재등용이 필요할 때에 실시되었다. 세조 2년(1456)에 처음으로 실시되었고, 문과와 무과만 열고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와 잡과(雜科)는 열지 않았다. 처음에는 일정한 시행규칙이 없었으나, 영조 때 《속대전》에 이르러 일정한 규정이 생겼다. ① 별시문과(別試文科)에는 초시(初試)·전시(殿試) 2단계 시험이 있고, 경향(京鄕)의 유생들을 서울에 모아 고시하였다. 초시에서는 종2품 이상 3명을 상시관(上試官), 정3품 이하 4명을 참시관(參試官), 양사(兩司) 각 1명을 감시관(監試官)으로 하여 300명 또는 600명을 뽑았다. 전시(殿試)에서는 의정(議政) 1명이 명관(命官), 종2품 이상 2명이 독권관(讀卷官), 정3품 이하 4명이 대독관(對讀官)이 되어 시행하였다. 시취 인원은 일정하지 않아 가장 많을 때가 30명, 적을 때는 3명이었다. ② 별시무과(別試武科)에도 초시·전시 2단계의 시험이 있었다. 초시는 처음 서울에서만 보였으나, 후기에는 각 도에서도 치렀다. 2품 이상 문관 1명, 무관 2명, 당하(堂下)의 문관 1명, 무관 2명이 시관(試官)이 되고 양사(兩司) 각 1명을 감시관으로 시행하였다. 11기(技) 중 2∼3기를 선정하여 고시하였으며, 비율·평균에 의하여 선발하였다. 전시의 시관은 의정 1명을 더하여 초시와 같이 시험을 보였으나, 정원을 두지 않고 입격하는 대로 뽑았다.
4. 알성시(謁聖試) 조선시대에 실시된 비정규 문과·무과 시험. 알성과(謁聖科)라고도 한다. 국왕이 문묘에 가서 제례를 올릴 때 성균관 유생에게 시험을 보여 성적이 우수한 몇 사람을 선발하는 것으로서, 태종 14년(1414)에 처음 실시하였다. 알성시는 문과·무과만 치렀다. 문과는 초시와 복시(覆試)는 없고 전시(殿試)만으로 급제자를 선발하였다. 알성시는 왕이 친히 참가한 친림과(親臨科)였다. 알성문과는 당일 합격자를 발표하였으므로 시관(試官)의 수도 많았다. 또 친림하므로 상피제(相避制)가 없어 시관의 아들이나 친척도 응시할 수 있었다. 국초(國初)에는 성균관 유생과 3품 이하의 조사(朝士)에게만 응시자격을 주어 성균관 유생들에게 학문 의욕을 고취하는 효과가 있었다. 뒤에 지방의 유생들에게도 응시자격을 주었다. 알성무과는 초시(初試)와 전시(殿試)로 나뉘어 있었는데, 과목은 목전(木箭)·철전(鐵箭)·유엽전(柳葉箭)·편전(片箭)·기추(騎芻)·과녁〔貫革〕·격구(擊毬)·기창(騎槍)·조총(鳥銃)·편추(鞭芻)·강서(講書) 등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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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高麗榜目(고려방목) : 고려시대의 과거 급제자를 연대별로 수록하였으며 고려사 선거지에 실린 예부시, 국자감시, 승보시의 실시 시기와 횟수 장원 그리고 급제자수를 토대로 문집과 금석문, 고문서를 종합하여 보충한 방대한 자료이다. 2. 同年錄(동년록) : 예부시의 1회 방의 급제자를 기록한 것 3. 榜目(방목) : 예부시의 급제자의 여러 회수를 모아놓은 기록 4. 知貢擧(지공거) : 시험 감독관으로서 고시관, 동지공거으로도 불림 5. 考藝試(고예시) : 예부시에 반영되는 齋生(재생)들의 국자감에서의 시험 6. 殿試(전시) : 임금이 예부시의 종장을 주관하는 시험 7. 選擧誌(선거지) : 합격자 명단을 기록한 것으로서 현재 동당시가 14회 승보시가 33회의 기록이 있음 8. 書籍포(서적포) : 고려 숙종때 국자감에 설치된 국립도서관 9. 少科(소과) : 진사와 생원을 뽑던 시험 사마시와 동일 10. 國朝榜目(국조방목) : 1392년( 태조1년) ~ 1894년 (고종 14년) 까지의 문과 급제자 명단. 11. 三貢(삼공) : 제술과의 1차 합격자로서 상공, 향공, 빈공을 칭함 12. 上貢(상공) : 중앙에서 합격한자 13. 鄕貢(향공) : 지방에서 합격한자 14. 賓貢(빈공) : 중국인 합격자 15. 監試(감시) : 會試(회시)라고도 하며 三貢이 국자감에서 시험을 본 후 합격한 자, 국자감에서 3년 이상 공부한자, 벼슬에 오른지 300일 이상되는 자들이 보는 시험을 칭함 16. 式年試(식년시) : 합격자가 많아서 성종 때 3년에 한번 실시한 과거를 칭함 17. 覆試(복시) : 簾前重試(염전중시)라고도 하며 監試 합격자들을 임금이 직접 소집해 보는 시험 18. 紅牌(홍패) : 簾前重試(염전중시)의 최종 시험에 합격한 자들에게 주는 붉은 종이에 쓴 합격증 19. 讀券官(독권관) : 簾前重試의 시험 사무를 관장하는 관리 20. 國子監試(국자감시) : 고려 덕종때 부터 시행된 國子監에서 진사를 뽑던 시험 21. 國子監의 7 齋(재) : 국자감에 둔 7개의 전공 강좌로서 麗澤齋(여택재), 侍聘齋(시빙재), 求仁齋(구인재), 講藝齋(강예재), 經德齋(경덕재), 服膺齋(복응재), 養正齋(양정재)를 말함.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