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계획은 애시당초 현실성이 결여 된 허황된 꿈과 같은 것이었다.
여기저기서 얻어 들은 정보로는
첫째 산에서 나무를 베어 뗏목을 만드는 것부터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모든 산은 입산 금지가 되어있어 심지어 산의 주인일지라도 자기 산의 나무를 베다가는 붙잡혀 갈 형편이었다.
그리고 몰래 나무를 벤다 한들 마르지 않은 나무로는 뗏목을 만들기 어렵고
그런걸 만들만한 큰 나무가 안동 주변 백리 안에는 없다는 것이었다
하회마을주변 솔숲과 큰 묘지를 제외하고는 민둥산이거나 그저 사람 키만한 다복솔과 관목이 고작이었으니까.
우리의 고민을 어이없는 표정으로 듣고 있던 은숙의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나섰다.
" 얘네 큰댁에 가면 재작년에 잘라 논 대나무가 창고에 가득 있는 데 그것이 될런가?"
창고에는 정말 종아리 굵기만한 대나무가 가득 쌓여 있었다.
죽순을 키우기 위해 조성한 대숲을 매년 솎아내서 모아 둔 것이란다.
은숙의 큰댁에서는 우리가 원하는 만큼의 대나무를 경운기에 실어 강변까지 가져다 주었다.
" 대나무가 이렇게 이상하게 생겼냐?" 소장이 대나무를 반기며 그러나 생긴 모양을 보고 신기해 했다.
"요렇게 작고 오동통한 대나무는 첨 본다, 거참."
사실 그랬다 당시만해도 대나무란 낚시대로 쓰일 정도로 가늘고 긴 것이었는데
오늘 가져온 대나무는 마디 하나가 손가락 길이만큼 촘촘한 게 길이도 짧고 뭉툭했다.
싣고 온 아저씨의 말이 죽순 채취용 대나무는 이렇게 개량된 종자란다.
그러고 보니 대의 굵기도 엄청났다.
굵고 큰 죽순을 채취하기 위함이리라.
우리는 영화에서처럼 하루 온종일 비지땀을 흘렸고
더울 때는 강에 뛰어들어 첨벙거리다가 다시 만들기를 몇 번 저녁 무렵에는
웬만큼 뗏목의 형태를 갖추어갔다
"여기 가운데를 좀 높여서 밥 짓는 곳을 만들지" 소장의 제안에
중간 쯤을 높게 층을 만들고
다시 햇빛을 가리는 비치파라솔을 그 위에 세웠다.
누군가 기다란 꼬챙이를 꽂아 하얀 깃발을 달았다.
" 아 !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 애닳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 안 그는"하고 소장이 소리치자
변이 맞 받았다
"노스텔지어의 손수건.. 이념의 푯대!"
'내일 새벽이면 출발!
대장정의 막이 오르다.'
그날 이른 저녁부터 자축의 향연이 벌어졌고
은숙의 친구 둘이 끼었다.
은숙이 우리를 위한 배려 였는지 아니면 그의 친구들을 위함인지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자기 혼자 남자 여섯 가운데 끼어있는게 거북해선지 모르지만.
"둘 다 동기들인데 얘는 교육대 그리고 여긴 경북대 영문학도 다들 인사 나누지."
모두 우르르 모여들었다
"부라보! 안동이 미인의 고장이란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오늘에야 그 소문이 헛소문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공주님들 제가 란셀롯의 기사올시다. 시종들과는 일일이 인사하지 않아도 됩니다. 미천한 것들이니까요."
"미천한 신분이 결국 공주의 짝이 되는 거 아시죠? 소장입니다."
"사실 저는 마법에 걸려 개구리로 변한 왕자입니다."
우리는 시끌벅적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권이 볼멘 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언제부터 안동이 미인의 고장이 됐냐 여기서 내 20년을 더 살았는데."
"길우가 가는 곳은 모조리 미인의 고장이지. 제 버릇 개주냐"
"교육대라고 하셨죠? 몇 학번 인가요?."
"2학년, 이번 학기만 지나면 졸업이예요." 조그만 하얀 얼굴에 커다란 검은테 안경 그리고 야무진 표정 이었다.
"졸업이라... 흠? 좋으신가요? 사회인이 되고 선생님이 되고 돈도 벌게 될테니.
"아니요."
"두려운가요?"
"두렵진 않아요. 좀 억울한 느낌이죠. 이제 스물한살, 만 열아홉 좀 지났는데 영락없이 사회인이 다 됐으니까요."
"학생이란 딱지가 지긋지긋하지 않나요? 철 들고부터 한번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학생이란 굴레가?"
그녀는 좀 쓰게 웃으며 강 건너편 불빛을 바라 보았다."
"벗어나고 싶지요 지금도 반쯤은 그렇고, 그래도 친구들 만나면 좀 억울하죠 후훗.
하긴 벌써 직장인이 된 친구들이 태반이지만... 결혼한 친구도 있는걸요."
"신민...숙씨 던가요? 아깐 시끄러워서."
"신. 민. 수... 남자 이름 같죠? 아니 남자이름이예요 민수란 여자 이름을 한번도 들어 본 적이 없으니."
"오! 민수씨 민수 .. 좋은데요 오래 기억할 것 같습니다 사실은 아까 알아 들었는데 내가 잘못 들었나 했지요."
"조심하세요. 소문난 바람둥이 올시다 틈을 보이면 안됩니다. 이 친구는 두 시간이면 어떤 여자도 유혹할 수 있습니다."
소장이 끼어들었다. 변도 막걸리 사발을 건네며 거들기 시작했다.
"소장의 말은 사실입니다. 제가 보증합니다."
"그래요? 호기심이 생기는군요 몇 시간 이라고 그랬죠? 두 시간? 테스트 해보고 싶어요."
하더니 까르르 웃었다.
웃는 입술 사이로 가지런한 치아가 하얗게 빛났다.
"테스트 하는 건 좋은데 대신 두 시간을 허락해 주어야 합니다. 그게 필요조건이죠."
저녁밥을 먹고 술이 두어 순배 돌아갔어도 여름 해는 길었다.
권이 기타를 치고 구가 노랠 부르기 시작했다
...너의 침묵에 메마른 나의 입술....
대장이 타박을 했다
"네놈은 노래만 부르면 너의 침묵이냐, 지겹다 지겨워 너의 침묵에 왜 네놈 입술이 메마르냐?"
"대장은 사랑을 못 해 봤으니 그걸 모르지 사랑하는 사람이 삐쳐서 입을 꽉 다물고 있으면 바싹바싹 마르는 게
입술 뿐이겠어? 가슴 속까지 타 들어가지."
모두 웃고 막걸리를 마셨고 노래를 불렀다.
... 태양은 묘지 위를 붉게 타오르고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를 서러운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무언가 알 수 없는 것이 가슴 저 밑에서부터 북바쳐 오름을 느꼈다.
여름밤은 조금씩 어두워 졌고 대나무 남은 조각을 모아 캠프파이어를 시작했다. 따닥 따닥 하며 불길은
빨간 혀를 날름거리며 피어 올랐다.
불가에 둥글게 모인 젊은 남녀들은 같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흥에 겨웠다.
누군가 병을 거꾸로 들고 소리쳤다.
"이게 다 떨어졌군 윤! 막걸리 없는데 어쩌냐? 다녀오지."
"내가 왜? 아무나 가면 되지."
"니가 간사 아니냐 돈을 니가 갖고 있으니 그렇지."
"내가 돈만 내 주면 되지 심부름까지 해야 하냐?"
"우린 모두 수영복 팬티 차림인데 너만 반바지 아니냐?"
"난 이게 수영복인데... 좋아 공짜는 안되고 대신 노래를 부르게 해 주면 다녀오지."
"좋다 노래 한 곡 하고 갖다 와라." 대장이 큰 인심이라도 쓰는듯 대답했다.
"한 곡? 그건 안돼 두 곡 시켜주면 갖다 온다 두 곡."
"까짓거 기분이다 두 곡 그래 두 곡 빨리 부르고 다녀와 대신 2절까지 부르면 안 된다."
해리 벨라폰테의 바나나 보트를 부르기 시작했다.
"데~오 데~~오 "하고 노래하면 모두들 "틸 아이 컴 엔 ~ 와나고 홈" 하고 후렴을 매겼다.
두번째 곡에서는 기타를 넘겨받았고 코드를 몇개 확인했다.
a마이너. 감미로운 아르페지오 주법으로 손가락을 순서대로 퉁겼다.
... 와이 도즈 선 고온 샤이닝 ~
와이 도즈 더 시 러쉬 투 쇼어
돈 데이 노 이츠 엔 오브 더 워~ㄹ
코즈 유 돈 러브~미 애니 모어...
그 동안 시끌벅적하던 노래들과는 상반되는 조용한 노래였다.
워낙 유명한 노래여서 아는 구절이 나오면 모두들 나지막하게 따라불렀다.
"막걸리는 한병이면 되겠어?" 하자 여기저기서
"야! 한 되로 누구 코에 붙이냐? 세병."
"다섯병"
"아니다 한말." 대장이 중재에 나섰다.
"다섯병 됐다. 됫병으로 다섯병."
"좋다 다섯병을 사오겠다. 그런데 다섯병을 이 어두운 밤길에 혼자 들고 올 수 있다고 믿진 않겠지?
한사람이 날 따라가야겠다."
"그렇군 누가 갈래? 옷 제대로 입은놈 어디 없냐?"
"내가 지명하겠다."
"좋다 윤이 지명하면 누굴 지명하든 따라가야된다."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에게 손을 내 밀었다."자! 민수씨 일어 서실까요?"
"저, 저 음흉한 놈 무거워서 못들고 온다면서 여기 우락부락한 놈들 다 버려두고 데이트를 하겠다는 심뽀아니냐?"
"노래는 노래대로 다 하고 미녀와의 한밤 중의 데이트? 억울해서 어떻게 보냐?"
온갖 비난이 터져나왔다.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다. 천천히 갖다오마. 두어시간 걸릴 것이다.기다리지 말거라"
엉거주춤 일어서는 그녀의 손을 잡아 당겼다. 변이 심각하고 처량한 표정으로 당부했다.
"밝은데만 골라 다녀 오이소.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심정입니더.조심해야 될낍니더."
"너무 재미있는 친구들이네요 은숙이 한테서 재미있는 사람들이라고 얘길 듣긴 했지만..."
"별종들입니다. 사람은 다들 조금씩 별종들이죠.
따라나온게 귀찮거나 싫으신가요?"
"그렇게 물으면 ... 솔직하게 말해도 되나요? 사실은 바람도 쐬일겸 나서고 싶었어요.
그런데 좀 전에 불렀던 노래 라디오에서 몇번 들어본 노래인데 무슨 노래죠?"
"스키터 데이비스 의 <디 엔드 오브 더 월드>란 노래입니다.
세상이 끝나버린 뜻이지요 아주 심각하고 끔찍한 노래입니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가사를 얘기해 드릴께요.
와이 도즈 선 고온 샤이닝 이렇게 시작되죠
왜 태양은 그대로 빛날까요?
왜 파도는 해변으로 계속 밀려오는 걸까요?
당신이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게 되었기에
세상에 종말이 온 것을 그들은 모르는가요?
왜 새들은 계속 노래하고
왜 별들은 하늘에서 빛나고 있을까요?
내가 당신의 사랑을 잃었을 때
세상은 끝나버렸다는 것을 그들은 왜 모를까요?
대충 이런 내용이죠.
사랑을 잃었을 때 세상은 끝나버렸다는 ...
이런 가사도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나는 놀랐습니다.
왜 모든 것이 옛날과 꼭 같은지
나는 이해 할 수가 없네요
왜 내 심장은 계속 뛰는지
당신이 굿바이라고 말할 때
그때 세상의 끝이 왔다는 걸 알지 못하나요?"
"사랑의 끝이 곧 세상의 끝이라? 흠... 그럴 듯한 발상이군요 좀 신파적이긴 하지만...."
"사랑의 끝 뿐만 아니라 죽음도 그럴 것입니다.
내가 죽어도 이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노래하고 파도가 밀려오고
모든 살아있는 이들의 심장은 팔딱팔딱 뛰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의 우주가 무너졌는데도."
"그런데 노래를 참 잘 하시네요. 여자들은 노래 잘 부르는 남자를 좋아하는데... 인기가 많으시겠어요."
"인기? 그건 허상이죠. 알맹이없는 솜사탕 같은.... 금방 부풀어 올랐다가 이내 사그러지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