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재, 옛길을 걷다
이원근
◉ 2026.9.16
◉ 괴산 고사리-조령관-조곡관-교귀정-조령원터-왕건교-주흘관-문경 상초리 광성식당
문경새재, 옛길을 걷다
오랜만에 문경새재를 다시 찾았다. 한동안 40℃를 넘나들던 무더위가 물러가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해진 탓에 걸음도 한결 가벼웠다. 여름의 끝자락을 밀어내고 가을이 조금씩 조령산(1,026m)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문경새재는 하늘재가 험하기도 하거니와 불편하여 새로 닦은 고개라는 데서 붙은 이름이다. 새도 쉬어갈 만큼 험한 고개는 맞지만, 새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혹자는 하늘재와 이화령 사이의 고개라서 샛재였다고도 한다.
한글이 만들어지기 전 우리 땅의 이름은 한자의 음이나 뜻을 빌려 기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본래 우리말이었던 지명에 한자의 옷이 입혀지고, 세월이 흐르면서 그 한자의 뜻에 맞추어 이름의 유래까지 새롭게 해석된 경우가 적지 않다.
지명은 그렇게 사라진 우리말의 흔적을 품고 있는 화석이다. 오늘 우리가 지도에서 만나는 이름들 가운데에는 오래전 이 땅을 살았던 사람들이 부르던 말이 한자라는 겹겹의 껍질 속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새재를 걷다 보니 길 하나에도 우리말의 오래된 시간이 스며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문경새재는 예로부터 한양과 영남을 잇는 중요한 길이었다. 영남에서 한양으로 오르는 길에는 추풍령과 죽령도 있었지만,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은 문경새재가 가장 빠른 길이었다고 한다. 더욱이 ‘문경’이라는 이름이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는다는 뜻을 지니고 있어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들이 일부러 이 길을 택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추풍령은 이름부터 추풍낙엽처럼 떨어질 것 같고, 죽령은 대나무처럼 미끄러질 것 같아 꺼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실인지야 알 수 없지만, 과거를 앞둔 선비의 마음을 생각하면 그런 속설 하나쯤은 재미있다. 길에도 사람의 마음이 얹히면 이야기가 된다.
일행 가운데 연세가 지긋한 분들은 1관문에서 2관문까지 걷거나 전동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몇은 고사리에서 출발해 백두대간 상의 3관문을 넘어 옛 과거 길로 내려섰다. 나이가 들수록 걷는 일도 요령이 필요하다.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걷고 싶은 길은 걷는다. 그것이 오랫동안 산과 들을 찾아다닌 우리들의 방식이다.
조령관에서 조곡관으로 이어지는 길은 한결 한산했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자, 숲은 더 깊어 보였다.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은 여름과 달랐고, 젖은 흙과 풀잎에서 올라오는 숲 냄새가 가슴 깊이 들어왔다. 계절은 소리 없이 바뀌고 있었지만, 몸은 먼저 그것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옛길 길섶에는 이름난 사람들의 시를 새긴 시비가 여럿 서 있었다. 그중에서도 소세양의 시비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넘기 힘든 고개인 새재를 이렇게 읊었다.
돌길 따라 구름 위로 올라가니/
굽이굽이 삼십 리나 이어졌네/
사람들은 높은 나무 끝으로 지나고/
말은 푸른 병풍 속으로 간다.
오래전 이 길을 넘었던 선비에게도 새재는 만만한 길이 아니었을 것이다. 오늘 우리는 좋은 신발을 신고 천천히 걸으면 되지만, 그들에게는 과거를 향한 간절한 마음과 함께 이 험한 길을 넘어야 했다. 같은 길을 걷지만, 시대가 다르면 길의 무게도 달라진다.
영남대로 옛 과거 길을 따라 걷다가 동화원휴게소에서 막걸리 한잔으로 목을 축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오늘은 시간을 아끼기로 했다. 온전히 구석구석 살피면서 걷는다면 4시간 소요의 길을 2시간 50분에 맞추기 위해서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다.
조곡관을 지나자 ‘산불됴심’이라 쓰인 한글 표석이 눈에 들어온다. 오래된 한글 표석 하나가 오히려 이 길의 역사를 가까이 끌어당긴다.
조곡관에서 주흘관까지 이어지는 약 3km의 길은 참 좋았다. 잘 다듬어진 흙길이 계곡을 따라 부드럽게 이어지고, 곁에서는 맑은 물이 쉼 없이 흘렀다. 가끔 전동차가 지나갈 때면 옛길의 고요함이 잠시 끊기기도 했지만, 다시 걸음을 늦추면 금세 숲의 소리가 돌아왔다.
아름드리 소나무와 계곡이 어우러진 길을 따라가다 교귀정에 이르렀다. 신임 경상감사와 전임 경상감사가 업무를 인수인계하던 곳이다. 나무와 정자, 물과 바위가 한데 어울린 모습이 오래된 길과 잘 어울렸다.
조금 더 걸어 옛 무인 주점이 있던 자리라는 무주암에 들러 잠시라도 주인이 되어보고도 싶었으나 이곳도 그냥 지나치고 영화 세트장까지 외면한다면 주어진 시간 2시간 50분을 지킬 수 있을 것 같다.
마당은 넓고 담벼락이 커다란 바위로 조성된 조령원터에 닿았다. 고려와 조선시대 관리들이 이 길을 오가며 묵어가던 숙박시설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빈터만 남았지만, 한때는 이곳에도 길손의 말소리와 말발굽 소리가 있었을 것이다.
왕건교를 건너면 우리나라에서도 손꼽히는 규모의 영화 세트장이 나온다. 여기도 시간을 아끼려고 그냥 지나쳤다. 여행을 오래 하다 보면 모든 것을 다 보려 하지 않게 된다. 여건에 따라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걷고 싶은 만큼 걷는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오히려 마음은 느긋해진다.
주흘관을 빠져나오면서 잠시 백두대간 조령산 능선을 바라보았다. 직접 그 능선을 넘을 때는 숨이 차고 발밑의 돌만 보였는데, 멀찍이 떨어져 바라보니 산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사람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 가까이 있을 때는 힘겨웠던 일이 세월을 두고 돌아보면 한 장면의 풍경이 되어 있다.
문경새재는 참 정갈한 길이었다. 흙길은 부드럽고 계곡물은 맑았으며, 오래된 관문과 정자와 바위가 길의 역사를 말없이 지키고 있었다. 전동차가 가끔 눈에 거슬리기는 했지만, 그것마저 오늘의 새재를 이루는 풍경이라고 생각하면 크게 마음 쓰이지 않았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서도 자꾸 길을 나선다. 산이 좋아서이기도 하고, 걷는 일이 좋아서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쩌면 그보다 더 큰 까닭은 우리가 살아온 땅을 눈으로 보고 발로 느끼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전국의 명산과 강과 옛길을 찾아다니며 한 걸음씩 내딛다 보면 국토가 조금씩 가까워진다. 지도에서 보던 산과 강이 발끝에 닿고, 이름으로만 알던 고개가 기억으로 남는다.
젊은 날에는 목적지를 향해 서둘러 걸었지만, 이제는 길 자체가 여행이다. 조금 천천히 걷고, 자주 돌아보고,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걸음을 멈춘다. 나무 한 그루, 물소리 하나에도 마음을 내어준다.
오늘도 우리는 옛 선비들이 넘던 새재를 천천히 걸었다.
세월은 많이 달라졌지만 길은 여전히 사람을 걷게 한다.
아마 우리가 전국의 길을 찾아다니는 까닭도 그 때문일 것이다.
걷는 동안만큼은 이 땅이 조금 더 내 것이 되고, 나 또한 이 땅의 한 부분이 되는 것 같아서.
무주암 ▲ 옛이야기에 따르면 바위 아래에는 술과 간단한 안주를 마련해 둔 무인 주점이 있었다. 길손들은 목을 축인 뒤 마신 만큼의 주대를 함에 넣고 떠났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단순한 휴식처를 넘어, 낯선 길을 오가던 사람들의 배려와 새재골의 인심을 보여주고 있다.
鳥嶺 ▲ 蘇世讓
石徑躡雲高
縈紆三十里
人行喬木杪
馬入翠屛裏
첫댓글 ㅡ 임구상
이원근회원님의 문경새재,옛길을 걷다 를 읽으면서 새삼 새재의 역사적 흔적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깊이 느끼게 되네요.
그 깊은 통찰과 수려한 문장에 찬사를 보냅니다. 감사합니다.
ㅡㅡ너무 길어서 읽기 불편했을 겁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ㅡ 홍춘자
멋진 수필 감명깊게 잘 읽었습니다. 마음을 담아 여유로운 생각을 하게 하는
명문입니다.
ㅡㅡ따뜻한 말씀 감사합니다. 글을 쓰며 가졌던 마음까지 헤아려 주시니 더욱 고맙습니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함께 공감해 주셔서 행복합니다.
ㅡ송준각
오랫만에 초임시절 자전거로 드나들던 추억속의 길이라 새삼스러웠고, 예임회원님들의 오랜세월 흔적과 전동차(?) 유혹땜에 함께 걷지 못해 무척 아쉬웠는데...
선배님의 역사어린 새재길의 수필담이 큰 위안이 되고 예임회의 산 역사로 오래도록 남을 것 같습니다. 자주 나와 주세요.
ㅡㅡ옛 추억이 깃든 길을 함께 걸은 우리도 행복했습니다. 좋은 말씀 오래 간직하고, 자주 함께 걸을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하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즐거운 걸음 이어가세요. 👍
ㅡ 이규섭
《산행 후기와 예임회 단상》
이원근 회원님
산행 후기로
예임회의 소중한 추억을 멋진 기록으로 남겨주시어 감사드립니다
글과 사진을 보니 함께 땀 흘리며 동행했던 순간의 감동이 다시금 선하게 떠오릅니다
발걸음을 맞춰 걷는 시간으로 인하여 우리 예임회의 정이 한층 더 깊어지는 것 같아 마음이 참 따뜻해집니다.
젊은 날에는 목적지를 향해 서들렀지만 이제는 길 자체가 목적이 된다는 말씀과
시대가 다르면 길의 무게도 달라진다는 말씀이 가슴에 깊숙히 와 닿습니다
아울러 옛 선비들의 고난의 길이 눈앞에 그려졌습니다
이원근 회원님의 필력에 경의를 표하면서,
힘들 때 건네주신 땅콩과 사탕, 그리고 시원한 물 한 모금, 서로를 향한 따뜻한 격려와 웃음소리가 예임회의 동맥이 되어 도도히 흐르니
소인은 오직 기쁠 따름입니다
ㅡㅡ총무님의 따뜻한 마음과 정성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글입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 애쓰다 보면 오히려 한 사람도 온전히 만족시키기 어려운 법이지요. 그러나 함께 걷고, 나누고, 웃는 마음만은 모두의 마음에 닿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늘 모두를 살피며 애써주시는 총무님 덕분에 예임회의 길이 더욱 따뜻하고 즐겁습니다.
ㅡ 권기호
화이팅! 예임회!
김연경 교장님 환영합니다!
9월3주 수요일 뵙겠습니다.
ㅡ 권수문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으로 이어지는
문경새재는 잘 정비된 흙길이 단연
국내 최고를 자랑하지요.
추풍령과 죽령에는 또 그런 얄궂은
사연이 전해지는줄을 몰랐습니다.
청운의 꿈을 안고 넘던 새재.....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숱한 사연을
간직하며 오늘도 내일도 우리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ㅡ 김진호
문경새재 등에 얽힌 이야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ㅡ 이승재
감사 합니다
행복이 넘치는
좋은 밤 되세요.
ㅡ 박두익.
저는 평소에 성의 부족으로 장문의 글은 읽지 않는 편인데,
위의 2025년 사실문학 수필부문 등단 작가님
이원근 회장님의 글은
정독했습니다.
괴연 관록이 두둑한 작가님의 경지이네요
대단히 감사합니다 꾸벅!
ㅡㅡ과찬의 말씀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부족한 글을 끝까지 정독해 주시고 따뜻한 격려까지 보내주시니 큰 힘이 됩니다.
앞으로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으면서도 마음에 오래 남는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좋은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꾸벅! 😊
ㅡ 정문희
문경세재
정말 좋은곳이지요
옛추억이 되었지만^^.
3관문에서 1관문까지
걸었던 추억이
그립습니다
좋은곳 다니시는 공곡님이야 말로
이 시대 영웅이십니다.
ㅡ 박재석
네 선생님.
선생님이 늘 건강하셔야지요.
오늘도 주인공을 쉽게 찾았어요.
선생님글을 보면 해박한 지식에 늘 감탄합니다.
산행이 더 깊이있는
ㅡ 여상인
♡ 인생 길 ♡
길은 사람들이 정말 자주 쓰는 흔한 말이다. 나는 이상하게 이 한 글자 단어가 오래 전부터 좋았다.
그 어감이 입에 착 감긴다.
긴 세월 참 친구처럼 다정하게 긴 여운을 준다.
‘에움길’ ㅡ이 뜻을 모르는 이도 많을 거 같다.
‘빙 둘러서 가는 멀고 굽은 길’ 이라는 뜻이다.
둘레를 빙 '둘러싸다’ 는
동사 ‘에우다’에서 나왔다.
지름길은 질러 가서
가까운 길이고, 에움길은 에둘러 가서 먼 길이다.
‘길’은 순수한 우리 말이다.
신라 때 鄕歌에도 나온다. 길을 칭하는 말들은 "거개가" 우리 말이다.
그런데 길 이름에는 질러가거나 넓은 길보다 돌아가거나 좁고 험한 길에 붙은 이름이 훨씬 많다.
人生事 처럼 말이다.
집 뒤편의 뒤안길, 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뜻하는 고샅 길 꼬불꼬불한 논두렁 위로 난 '논틀길',
거칠고 잡풀이 무성한 '푸서릿길',
좁고 호젓한 '오솔길',
휘어진 '후밋길',
낮은 산비탈 기슭에 난 '자드락길'
돌이 많이 깔린 ''돌너덜길',
사람의 자취가 거의 없는 '자욱길',
강가나 바닷가 벼랑의 험한 '벼룻길'.
ㅡ 앞에서 계속
'숫눈길’을 아시나요?
눈이 소복이 내린 뒤 아직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그대의 첫 발자국을 기다리는 길이다.
‘길’이란 단어는 단어 자체만으로도 참 문학적이고
철학적이고 사유적이다.
‘도로나 거리가 주는 語感과는 완전 다르다.
‘길’은 단순히 사람들이
밟고 지나 다니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길이 없다” 거나 “내 갈 길을 가야겠다”라는 표현에서 보듯 길은 삶에서의 방법이거나 인생 그 자체이다.
영어 ‘way’도 ‘street’와 달리 같은 중의적 의미를 갖는다.
서양사람들도 길에서 인생을 연상하는구나 싶어 신기했다.
불교나 유교 道敎 등
동양 사상에서의 공통적 이념도 '道'"라고 부르는 길이다.
우리는 평생길 위에 산다.
누군가는 헤매고,
누군가는 잘못된 길로 가고,
누구는 한 길을 묵묵히 간다.
오르막 길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 길도 있고,
탄탄 대로가 있으면
막다른 골목도 있는
인생사 그대로의 길이다.
세상에 같은 길은 없다.
나만의 길만 있을 뿐이다.
ㅡ 앞에서 계속
프랭크 시내트라에게는
“Yes, it was my way”
(네 제 방식의 길)이였고
“I did it my way”
(나는 내방식대로 사는 길) 였다.
나이가 지긋한 이들은
그 유명한 흑백 영화
‘길’(La Strada,1954년)을 기억할 것이다.
야수 같은 차력사 잠파노(안소니 퀸)와
순진무구한 영혼을 가진 젤소미나 (줄리에타 마시나)
는 평생서커스 동반자로 길을 떠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자기가 버린 젤소미나의 죽음을 알고 잠파노는 짐승처럼 울부짖는다.
길이 끝나는 바닷가에서 이다. 애절하게 울려 퍼지는
니노 로타의 그 유명한 트럼펫 연주 테마 음악
영화와 제목과 너무나 잘 어울린다.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명시 ‘가지 않은 길’에서 이렇게 술회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덜 다닌 길을 택했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길은 목적지에 가기 위해서도 존재하지만
떠나기 위해서도 존재한다.
‘길을 간다’ 라는 말보다
‘길을 떠난다’ 는 말은 왠지
낭만적이거나 애잔하거나 결연하다.
ㅡ 앞에서 계속
결국 우리는 길 위에서 길을 물으며 살아가는 간다.
그게 입신양명의 길이거나,
고행의 길이거나,
득도의 길이거나,
산티아고 길이거나,
바이칼 호수의 자작나무 숲길이거나,
동네 둘레길이거나
우리네 인생이 곧 길이요,
우리의 발이 삶이다.
결국은 ‘마이 웨이’를 가는 거다.
오늘도 자신의 택한 길을
저벅저벅 싸목싸목
길을 걸어가야겠지요.
(옮겨온 글)
남은 황혼길에서
마 지막
황 혼을
사 랑 합시다
마.황.사. 화이팅!
ㅡ 김종철
옛날 과거시험 보면 합격자 보다 떨어진 분들이 더 많았을텐데요 ... 떨어지고 문경새재를 넘는 심정들은 또 어땠을지요 ㅎ
세월이 흘러 유람하듯 다니는 오늘날이 상상이나 되었을까요 ㅎ
좋은 곳을 다니시며 늘 건강하십시오.
ㅡㅡ그러게요. 과거시험에 낙방하고 문경새재를 넘던 선비들의 마음은 참 쓸쓸했을 것 같습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그 길을 유람하듯 걸으며 옛사람들의 마음까지 헤아려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따뜻한 말씀 감사드리고, 풍성하고 넉넉한 한가위 보내십시오.
늘 건강하시고 좋은 길, 좋은 인연 많이 만나시길 바랍니다.
즐거운 추석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