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al of Saint Bernard, Abbot and Doctor of the Church
베르나르도 성인은 1090년 프랑스 디종 근교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그는 시토 수도회에 입회하였고, 뒤에 클레르보 수도원의 아빠스(대수도원장)가 되었다. 베르나르도 아빠스는 몸소 모범을 보이며 수도자들을 덕행의 길로 이끌었다. 또한 그는 교회의 분열을 막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신학과 영성 생활에 관한 저서도 많이 남겼다. 1153년에 선종한 베르나르도 아빠스를 1174년 알렉산데르 3세 교황이 시성하였다. 1830년 비오 8세 교황은 성인을 ‘교회 학자’로 선포하였다.
제1독서 릇기 1,1.3-6.14ㄴ-16.22
<나오미는 모압 출신 룻과 함께 돌아와 베들레헴에 도착하였다.>
1 판관들이 다스리던 시대에, 나라에 기근이 든 일이 있었다.
그래서 유다 베들레헴에 살던 한 사람이 모압 지방에서
나그네살이를 하려고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과 함께 길을 떠났다.
Once in the time of the judges there was a famine in the land; so a man from Bethlehem of Judah departed with his wife and two sons to reside on the plateau of Mo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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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러다가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어서
나오미와 두 아들만 남게 되었다.
Elimelech, the husband of Naomi, died, and she was left with her two sons
4 이들은 모압 여자들을 아내로 맞아들였는데
한 여자의 이름은 오르파이고 다른 여자의 이름은 룻이었다.
그들은 거기에서 십 년쯤 살았다.
who married Moabite women, one named Orpah, the other Ruth. When they had lived there about ten years,
5 그러다가 두 사람도 죽었다.
그래서 나오미는 두 자식과 남편을 여읜 채 혼자 남게 되었다.
both Mahlon and Chilion died also, and the woman was left with neither her two sons nor her husband.
6 나오미는 며느리들과 함께 모압 지방을 떠나 돌아가기로 하였다.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돌보시어
그들에게 양식을 베푸셨다는 소식을 모압 지방에서 들었기 때문이다.
She then made ready to go back from the plateau of Moab because word reached her there that the LORD had visited his people and given them f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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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오르파는 시어머니에게 작별을 고하며 입 맞추었다.
그러나 룻은 시어머니에게 바싹 달라붙었다.
(Again they sobbed aloud and wept; and) Orpah kissed her mother-in-law good-bye, but Ruth stayed with her.
15 나오미가 말하였다.
“보아라, 네 동서는 제 겨레와 신들에게로 돌아갔다.
너도 네 동서를 따라 돌아가거라.”
"See now!" she said, "your sister-in-law has gone back to her people and her god. Go back after your sister-in-law!"
16 그러자 룻이 말하였다.
“어머님을 두고 돌아가라고 저를 다그치지 마십시오.
어머님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가고, 어머님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저의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
But Ruth said, "Do not ask me to abandon or forsake you! for wherever you go I will go, wherever you lodge I will lodge, your people shall be my people, and your God my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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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이렇게 하여 나오미는 모압 출신 며느리 룻과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왔다.
그들이 베들레헴에 도착한 것은 보리 수확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Thus it was that Naomi returned with the Moabite daughter-in-law, Ruth, who accompanied her back from the plateau of Moab. They arrived in Bethlehem at the beginning of the barley harvest.
복음 마태 22,34-40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그때에 34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When the Pharisees heard that he had silenced the Sadducees, they gathered together,
35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and one of them, a scholar of the law, tested him by asking,
36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Teacher, which commandment in the law is the greatest?"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He said to him, "You shall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mind.
38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This is the greatest and the first commandment.
39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The second is like it: You shall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40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The whole law and the prophets depend on these two commandments."
오늘의 묵상
한 율법 교사가 예수님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고 묻습니다. 율법은 모세가 하느님께 받은 십계명에서 시작됩니다.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의 울부짖음을 들으신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불러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으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탈출 3,12) 약속하시고, ‘함께 계시는 하느님께 충실하라.’고 율법을 내려 주십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율법 조항이 613개로 늘어나게 됩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점점 법의 준수 여부에 더 큰 의미를 둡니다. 기본 정신은 잊고 법의 준수에만 매달리게 된 것입니다. 그런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올가미를 씌우려고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고 질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라고 답하십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유다인들은 날마다 두 번씩 ‘쉐마 기도문’을 낭송하였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4-5). 그럼에도 이들은 왜 하느님을 잊었을까요?
이는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마태 22,40)는 말씀처럼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잊어버리고,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것만이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분에게서 받은 계명은 이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1요한 4,21).
(서철 바오로 신부)
오늘1독서 룻기에 나오는 나오미와 룻의 姑婦간의 사랑이 감동적입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일치의 모범입니다. 참으로 비워지고 비워져 텅 빈 충만의 사랑 가득한 가난한 여인들입니다. 나오미와 룻, 모두가 하느님 사랑의 빛나는 보석입니다. 마지막 부분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보아라, 네 동서는 제 겨레와 신들에게로 돌아갔다. 너도 네 동서를 따라 돌아가거라.”
“어머님을 두고 돌아가라고 저를 다그치지 마십시오. 어머님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가고. 어머님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저의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
‘어머님’ 대신에 ‘예수님’을 넣어도 그대로 통하는 우리의 고백이 될 수 있겠습니다. 룻의 하느님 사랑은 시어머니 나오미에 대한 사랑을 통해 환히 드러납니다. 완전히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하나된 경지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자랑스런 예수님의 족보에 편입된 이방인 여자 룻이요, 다윗도 예수님도 그 후손이 됩니다. 릇의 사랑은 예수님의 사랑의 이중 계명으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먼저 주님을 알고 그래서 사랑하고 주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을 깨닫고 그리하여 자신을 신뢰하며 사랑할 때 자연스럽게 이웃 사랑으로 나아갑니다.
주님은 '그래도 괜찮아, 아파하지 않아도 돼, 완벽하지 않아도 돼, 너는 용서 받았어! 내가 누구보다 너를 사랑한단다'. 고 말해 주시며 어린아이 대하듯이 우리 자신을 사랑해 주십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똑같이 대해 줄 수 있습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 자신에게 말해 주듯이 해 줄 수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아! 완벽하지 않아도 돼, 내가 너를 사랑해! ‘
하지만,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때는 이웃에게
’이것밖에 안 돼? 책임을 져, 너 왜 그러니? 당연한 것 아니야? 자신을 지키란 말이야‘ 라고 말이죠.
내가 내 자신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사랑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사랑이 차고 넘쳤을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남을 사랑해 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