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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규집 잔칫날 동기회 모임을 한다는 이야기는 작년 11월 쯤 들어 알고 있었다. 모임날이 가까워짐에 따라 설렜다. 1월 5일 토요일, 대구 지하철 신천역에서 진근이 차에 동승하여 경주로 향했다. 여기서 또 43년 만에 그리운 두 동기생을 만난다. 보고 싶었던 사람들. 희영, 그냥 동그랗게 깍은 머리로 다니던 소년을 반100살이 넘어 보게 되었다. 틀잡힌 중년신사가 내 앞에 서있었다. 선희. 기억 속에 있던 예쁜 소녀가 50대 중반을 넘겼지만 여전한 미모를 가진 여성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참 세월 많이 흘렀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40년이 지났는데도 안부 한 번 물어보지 않고 지내왔다. 우리 참 무심하다. 억울하다. 유철이, 선희, 희영, 내가 진근이 승용차를 타고 경부고속도로 대구-경주 구간을 좋은 기분으로 달렸다.
9시 55분, 결혼식장인 경주 현대호텔 다이너스티 홀에 도착했다. 1시간 5분 빨리 도착한 것이다. 이 기회에 영규 부모님을 한 번 뵙고 싶었다. (영규 부모님을 만나 뵙고 싶은 사연은 이 카페 2011년 7월 4일, <40년만의 만남, 감격 그리고 안타까움>이라는 글에 자세히 나와 있다.) 영규 부친을 대번에 알아보지 못했다. 40년 전 중학교 때 본 30대 후반의 아버지와 지금 80대가 되어가는 아버지를 연결시킬 수 없었다. 모친께서 당시 교장 선생이었던 내 아버지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셨다. 영규 여동생이 한 살 작은 나이에 국민학교에 입학한 사연. 내 아버지가 동생을 학교에 데리고 오라해서 데려 갔더니 아버지가 ‘키가 커고 똑똑해 보이니 입학해도 되겠다’하면서 입학시켜주더란다. 그 여동생도 중년여성이 되어 있었다. 영규 부모님과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신부 대기실에 가서 영규 따님에게 축하인사를 전했다. 지금 영규 따님 나이가 국민학교 때 우리 나이의 2배가 넘는 나이이다. 국민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나이가 서른이 안 되었는데 지금 우리 나이가 담임 선생님 나이의 2배에 가까워 지고 있다. 어찌 세월이 이다지도 흘렀더란 말인가. 안면있거나 아는 고향 사람들이 많았다.
결혼식을 보고 12시 45분 경주 율동 동창회 모임장소인 명숙이 집에 왔다. 기만이 차에 동승해 왔는데 늦게 출발한 우리가 먼저 도착했다. 먼저 출발한 성우 승용차가 집 가까이 좁은 농로에 바퀴 하나가 빠져 늦어졌다. 운전자는 차 안에 그냥 있고 말연이가 밖에 나가 한 쪽 다리를 들고 손으로 신호하고 태숙이는 겁이 나서 도망 튈 궁리를 했단다. 이 상황은 한참 이야기 거리가 되었다. 도착해서 좀 있다가 음식이 나왔다. 과메기, 돼지족발, 떡, 절인 나물. 엷은 분홍색 떡. 그 중 엷은 분홍색 떡이 맛있었다. 당근을 갈아 넣은 것이라 했다. 과메기는 좋아해 배부르도록 먹었다. 개인적으로 고기를 잘 안먹는데 잘 먹는 2가지가 돼지족발과 설렁탕이다. 돼지족발도 맛있었다. 또 좀 있으니까 호박죽이 나왔다. 일란이와 순자가 맛있게 끓이는 수고를 했다. (일란이는 작년에 오징어 내장탕을 만들어 주더니 올해는 내가 좋아하는 호박죽을 끓여 주었다. “일란아, 혹시 마음상하고 힘들어도 계속 동창회 모임에 나오너라. 너 없는 동창회 모임은 앙꼬 없는 찐빵 같은 것이다. 너가 안나오면 나도 동기회 모임에 안나온다.”) 이것도 맛있게 먹었다. 내일 집에 갈 때 사달라고 해야지 그렇게 생각했다.
동기회 모임 참석차 울릉도에서 나오는 철식이 마중을 나갔다. 5시 40분 경주 시외버스 터미널 옆 강변도로에서 철식이를 태우고 돌아왔다. 마중 나간 사람은 운전자 진근, 내, 명숙, 인숙. 철식이를 차에 태우고 내가 “동기회원 중 가장 인물이 좋은 사람 4사람을 투표로 결정해서 나왔다”고 농담삼아 이야기했다. 7시 35분 저녁식사. 풍성한 식탁. 시락국, 생선회가 주축인 지상 최고의 만찬. 이 또한 맛있게 먹었다. 호박죽하고 시락국은 내일 아침 집에 갈 때 사달라고 말할 생각이었다. 식탁이 풍성하지 않은들 어떠하리. 사랑하는 사람, 마음 맞는 사람과 하는 식사라면 라면인들 어떠하리. 보기 싫은 사람과 식사는 아무리 값비싼 식사인들 맛이 있겠는가. 애정표시의 극치는 같이 먹는 것이 아니던가. 좋은 사람들과 하는 함께하는 따뜻한 식사가 바로 ‘저녁이 있는 삶’의 풍경일 것이다.
7시 10분 동창회 총회를 시작했다. 총무 진근이 수고가 크다. 모임이 잘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 헌신적으로 나서야하는데 진근이가 그런 사람이다. 이 모임을 위해 회장 성우가 애 많이 썼고 자리를 제공하면서 온갖 뒷일을 도맡아 해준 명숙이가 고맙다. 동기회 모임이 넉넉하고 좋은 것은 이 사람들 덕분이다. 7시 30분 포항에 거주하는 친구들이 먼저 떠났다. 상기가 내일 베트남으로 출국하기 때문에 준비차 먼저 갔다. 차편이 없어 포항에 있는 복용, 태숙, 순자, 일란, 영숙이가 상기 승용차로 같이 간 것이다. 해지기 전 기만이가 먼저 부산으로 돌아갔다. 바쁜 일이 있는데도 해마다 동기회 모임에 참석해준 것 너무 고맙다.
총회가 끝나면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할 말이 많아 서로 먼저 이야기하려고 하고 그래서 말할 기회를 잘 잡지 못한다. 교양 있어야 할 어른들의 대화가 아니다. 일정한 주제 없이 이야기를 길게 할 수 있는 것은 가까운 친구나 애인 사이에 가능한 일이다. 주제가 정해지지 않는 이야기를 시간가는 줄 모르고 했다. 한 남자 동기생이 여자 동기생에게 “너 젖이 되게 커구나. 혹시 뽕 넣은 것 아니냐”고 하자 여자 동기생은 “야는 봐라야”하면서 좀 부끄러워 하지 않고 “원래 젖 하바가 넓다”(‘하바’는 ‘폭’, ‘넓이’에 해당하는 일본말이고 ‘원래’는 ‘뽕을 넣거나 성형을 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라는 뜻이다.)고 응수했다. 이야기 꽃을 피울 때 허리 아픈 동기생은 편하게 누워서 듣기도 하고. 어떤 남자 동기생이 여자 동기생의 어깨를 만져주자 그 여자 동기생은 “너 이거 성희롱에 해당된다. 당장 손 안치우나” 하지 않고 “어허, 시원하다”하면서 좋아라 하고. 그래도 흉이 되거나 실례가 되지 않는 분위기. 친척이나 가족도 아닌데 스스럼없는 관계가 된다. 밤늦게 경희가 자리를 떴다. 바쁜 희영이를 태우고. 마지막으로 재석이가 포항 죽장면 상옥리에 있는 집으로 갔다. (초등학교 이후로 가장 변하지 않는 사람이 재석이다. 작년 처음 만났을 때 대번에 알아봤으니까) 밤깊도록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철식이가 자기 부인과 관련된 이야기를 감칠 맛나게 해서 우리 모두가 웃으면서 재미있게 들었다. 이야기를 감칠 맛나게 실감나게 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요령이나 특징이 있다. 경주를 그저 경주라 하지 않고 ‘신라 1000년의 고도 경주’ 혹은 ‘역사와 문화의 도시 경주’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니면 10분 본 장면을 양념을 넣고 늘려서 40분 정도 이야기한다. 그날 철식이가 그랬다. 일란이가 있어서 진근이와 말 붙었으면 흥미진진하고 어금지금 했을텐데. 1시가 넘어 취침했는데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아마도 새벽 4,5시 까지 이야기가 진행되었을 것이다. 내가 1시경에 잠들었으니까 뒤를 잘 모른다. 잠자면서 서로에 대해 코를 심하게 골았다 둥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자신도 코를 골았고 아니 심하게 골았을 것이다. 자기가 자면서 자기 자신이 코를 안골았는지 어떻게 아는가. 자기 눈에 들보가 있는데도 못보고 다른 사람 눈의 티끌만 보이니. 코고는 것은 당연한데. 이것 마저 이야기 거리가 되었다.
고무줄놀이하고 구슬치기하던 소년 소녀들이 어이하여 이 나이가 되어 버렸단 말인가. 귀밑 머리털이 희끗희끗해지고 허리 디스크도 있고 고혈압를 주의해야 하고. 그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삶이 즐겁기도 했을 것이고 고단하기도 했을 것이다. 살면서 기쁨과 영광도 있었을 것이고 슬픔과 좌절도 있었을 것이다. 작년에 세상을 버린 친구도 있고. 안타깝게도 자녀분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낸 친구도 있고. 말연이 만났을 때 오빠인 만중이형의 안부를 물었다. 공부 잘하고 잘 생긴 선배여서 학자나 영화배우라도 할 사람인데. 불행하게도 만중이형도 먼저 세상을 달리 했다고 했다. 태숙이는 늦게 공부를 시작해서 이제 대학에 진학할 자격과 능력을 갖추었다고 했다. (훌륭하다. 배움에는 때가 없으니). 복용이는 포항 흥해에 사업체를 가지고 열심히 일하고 있고. 상호는 울산에서 석유화학 관련 큰회사에서 없어서 안될 주역으로 근무하고 있고. 병마와 싸워 이기고 우뚝 선 유철이가 자랑스럽다. 훌륭한 부인과 착한 자녀분들이 고맙다. (모임에 오기 힘든 사람들도 유철이가 권유하면 꼭 온다. 작년에는 성남 사는 명희가 이번에는 청주 사는 선희가 왔다. 유철이가 공들였으니 안 오고 못배기지. 유철이한테 한 번 걸리면 꼼짝마라다. 내년에는 누구를 오게 할지 자못 궁금하다.)
나이 50이 넘어도 초등학교 동기회 모임을 하면 떠들썩하고 즐겁다. 걱정도 없고 마냥 흐뭇하다. 말 못하는 사람 없고 체면 차리는 사람 없다. 중구난방, 허심탄회, 자유자재, 무경계, 무파벌, 무예의, 무체면, 사통팔달, 직책무용의 세계. ‘안보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서양속담이 있는데 이 속담은 동창관계에서는 맥을 못춘다. 보통 자주 보지 않으면 할 이야기도 없고 마음에서도 사라지는 법인데 어찌된 일인지 40년이 지나서 만나도 마음에서 멀어지기는 커녕 오히려 반갑고 애틋한 마음이 생기니 말이다. 졸업 후 시간을 훌쩍 건너뛰어 만나도 긴 세월의 단절은 이내 없어지고 어제보고 오늘 다시 만나는 느낌. 가족이나 친척이 아닌데도 가족이나 친척 같은 친밀감, 유대감을 느끼는 집합체.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설명되지 않는 관계요 집합체다. 특히 우리 동기생들은 한 반을 6년 같이 했으니 누구집 숟가락이 몇 개고 그 집안 사정이 어떤지 훤하게 알게 된다. 그러니 가족처럼 거리낌없이 되는 것이지.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에게 한 반을 6년 같이했고, 동창회 모임을 한 밤 자면서 하고, 모여 한 가족처럼 편안한 분위기가 된다는 것을 이야기해주면 그 사람은 이런 것을 참 부러워한다.
아침 7시 쯤 일어났다. 인숙이가 동대구역에서 청주 오송역으로 갈 선희를 태우고 먼저 떠났다. 조금 있다 유철이가 떠났다.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은 정순, 성우, 진근, 상호, 말연, 철식, 나였다. 무침회, 시락국이 중심이 된 아침식사를 했다. 아침에 회장 성우와 총무 진근이가 악의 없이 티격태격하는 것을 재미있게 지켜봤다. 전날 총무 진근이가 동기회 재정이 괜찮아 후원금을 일체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는데 아침이 되자 ‘회장이 찬조금을 내놔라’고 했고 회장 성우는 ‘총무가 돈을 떼어 먹은 것 아니가’하면서. 보통 모임이나 단체에서 상상할 수 없는 애정싸움 같은 것. 11시 경주 율동 모임 장소를 떠났다. 시락국과 호박죽 사달라고 하는 이야기를 하려고 몇 번 망설이다 끝내 하지 못했다. 성우는 부산으로. 상호는 울산으로. 정순이도 울산으로. (정순이는 운전하면 되게 세게 밟는다고 하는데. 너무 세게 달리지 말고 천천히 다녀도 되는데.). 철식이와 내가 진근이 차를 타고 대구로 향했다.
전날 12시 45분 부터 그 다음날 11시 까지 동기회 모임을 한 셈이다. 22시간 15분. 긴 시간이었다. 명숙이 집에 폐 끼치는 것도 있고 해서 집행부에서는 내년부터 다른 방식으로 동기회 모임을 할 생각인 것 같다. 사실 나는 동기회 모임에서 한 밤 자고 오는 것이 좋다. 분위기도 좋고. 대화하니 즐겁고. 편하고 걱정 없고. 동기회 모임을 앞두고 설렘이 있고 동기회 모임 중에는 즐거움이 있고 동기회 모임 후에는 울림(여운)이 있다. 이 3가지 마음상태를 정리하면 그것은 한마디로 ‘감격’이다. 지금도 그날 잔칫집 같은 분위 속에서 보낸 시간이 생각나는데, 아직까지 그날 밤 무르익던 대화소리가 들리는 듯한데, 우리가 있었던 숙소 주위 경주 율동 벌판의 차가운 밤바람이 여태까지 느껴지는데, 우리는 2013 동기회 모임 22시간 15분을 그렇게 보냈던 것이다.
( 2013년 1월 9일 수요일 오전 9시 20분. 최지중 )
첫댓글 며칠 동안 나누어 잘 읽었구나..
결혼식과 겸하여 동기회개최하게되어 시간적으로 여유 있는 모임이었는데...
친구가 표현을 잘해주어 고맙네,
마땅히 표현할 여유가 없어 이제 답글올린다
오랜만에 참석한 친구에게 고맙고,
아쉬운 부분이 있더라도 양해를 구하고 싶구나.
따뜻한 말한마디,따스한 손 한번 잡아주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모두들 건강하고, 마음의 여유를 갖고 다음 동기회를 기대하며.
쓰다보면 길어져버린다. 읽어주고 댓글달아주어 고맙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총무가 수고가 너무 많으시다.
잊지 않고 있다. 고맙다. <따뜻한 말한마디, 따스한 손 한
번 잡아주는 우리..>라는 말에 100% 공감한다. 늘 건강하
기 바란다. 또 볼 날을 기대하며.
구구절절 잘읽었다. 암튼 모두들건강하고 또내년에는 보람있고 즐거운 동창모임이되도록 노력 해보자구나 . 조금 모자란부분이있드라도 넓은 아량으로 이해를바란다.
보잘 것 없는 글 읽어주고 댓글달아주어
고맙다. 회장이 너무 수고가 많으시다.
동기회모임은 늘 흥분되고 좋다. 늘 건
강하시고 좋은 날 많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