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 아침...
예전에는 국립현충원을 가든지 인근의 전적지를 찾던지 했을텐데 이제는 나도 많이
변했나 싶다. 아침부터 번개답사 참석을 하려고 서둘다보니 모임시간이 오후1시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우치고...ㅎㅎ
도봉산... 멀리 망월사
이왕 나온 김에 도봉산을 오르기로 하고 망월사역에서 내려서 심원사쪽 능선을 타고
오르다가 시간에 맞춰 도봉산 입구로 내려왔다. 6월의 산은 녹음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산 어디 한군데도 빈틈이 보이지 않을정도로 녹음이 우거져 있었다. 가을이나 겨울에
오면 군데군데 빈 공간도 보이는데 지금은 꽉 찬 보따리마냥 뭔가 한아름 안겨줄 것
같은 그런 산이다.
도봉산 어느 능선 봉우리...
입구에 내려와보니 낯익은 얼굴도 보이고 새로운 얼굴도 보인다. 아는 사람들은 다시
만나서 반가웁고 새로운 분들은 알게 되어 반갑다...
도봉산입구에서 회암사까지는 차로 갈 때는 별로 먼줄 몰랐는데 대중교통으로 이용
하다보니 정말 엄청 멀게 느껴졌다. 무려 1시간 이상을 달려 도착했다.
회암사지 입구
회암사지 입구에 도착하니 커다란 입석에 김삿갓의 고향이란 글이 보인다. 왠 김삿갓...?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이곳이 김삿갓 고향이고 영월에는 김삿갓 무덤이 있는 곳이라 한다.
요즘엔 기회만되면 문화재를 발굴해서 자기 고장의 것으로 만들려 하다보니 김삿갓하면
떠오르던 영월의 이미지가 이제는 양주도 하나 덧붙여할 모양이다... 김삿갓백일장도 곧
열릴 모양인데 관심있는 분들 참여하시길...
김삿갓 고향비...
문화재에 관심이 없었던 20여년 전에 회암사지에서 동료 이웃들과 야유회를 하며
하루를 즐겼는데 기억이 새삼스럽다. 그때 나는 행사를 주관하면서 어린아이들
보물찾기 놀이를 준비하며 오늘 찾아간 부도에도 갔었는데 왠 횡재인지 그곳에서
사진작가 여러분이 모델을 세워놓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것도 누드사진...ㅎㅎ
숨죽이고 멀찍이서 한참을 구경하다 아이들 소리에 화들짝 놀라 아이들을 데리고
내려왔던 기억이 난다...ㅋㅋ
회암사지... 멀리 보이는 부도
또한 그때도 이맘 때였나보다. 밤꽃이 엄청나게 피어있었는데 밤꽃 냄새가 이상
하다는 것을 그때 처음 느낀 것 같은데 밤나무 아래에서 여인네들이 얼마나 크게들
웃던지......
다시 찾은 회암사지에서 여인네들의 웃음소리가 시방(?)도 들리는듯 하다...ㅎㅎ
회암사지 발굴자료관
회암사지 입구에는 회암사지발굴자료관이 있는데 이곳에서 관람객들에게 비디오를
보여주고 안내를 하는 곳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날은 임시휴점상태라 막바로
회암사지로 향했다. 입구에서 바라보니 회암사지가 참으로 큰 절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회암사지 초입...저 돌의 용도는 무엇일까?
회암사지(檜巖寺址)는 고려 충숙왕 15년(1328) 원나라를 통해 들어온 인도의 승려
지공이 처음 지었다는 회암사가 있던 자리로 회암사가 지어지기 이전에도 이 곳에는
이미 절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조선 전기에 이색(李穡)이 지은『천보산회암사
수조기』에 의하면 고려 우왕 2년(1376) 지공의 제자 나옹이 “이곳에 절을 지으면
불법이 크게 번성한다”는 말을 믿고 절을 크게 짓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회암사지 입구에서 바라본 천보산....
조선 전기까지도 전국에서 가장 큰 절이었다고 하는데 태조 이성계는 나옹의 제자
이면서 자신의 스승인 무학대사를 이 절에 머무르게 하였고 왕위를 물려준 뒤에는
이곳에서 수도생활을 하기도 했으며 성종 때는 세조의 왕비 정희왕후의 명에 따라
절을 크게 넓히는데 13년이나 걸렸고 그 후 명종 때 문정왕후의 도움으로 전국 제일의
사찰이 되었다가 문정왕후가 죽은 뒤에 억불정책으로 인하여 절이 불태워졌다고 한다.
회암사지 당간지주...
맨 아랫쪽부터 계단식으로 절을 배치하였는데 윗쪽으로 갈수록 중요 시설이 배치되어
있다. 아랫쪽 왼쪽 입구에 당간지주가 보이는데 작으마한 기둥이 3개가 있다. 아마도
당간을 2개를 달기 위해 설치된 지주인 것 같은데 당간을 나란히 2개를 설치한 경우가
있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한 가람지에서 당간지주 2개가 서로 떨어진 경우는
미륵사지에도 있다고 하는데 이곳은 나란히 붙어 있어서 혹시나 하나는 다른 용도의
당간지주가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알 수 없으니 아는 분께 공을 넘기기로 한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회암사지....
회암사지 안으로는 출입을 할 수가 없어서 임시로 설치된 전망대에서 회암사지를
내려다 볼 수 밖에 없다. 그곳에서 회암사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데 이 큰 절을
짓는데 참으로 많은 돈이 들어갔을거란 생각을 저절로 갖게 된다. 그토록 많은 돌을
어디서 가져다가 건축을 했으며 이 큰 가람을 유지하는데는 또 얼마나 많은 재력이
들었을까?
회암사지 뒷쪽에서 바라본 전경...
멀찍이 회암사지 부도가 눈에 들어온다. 예전에 이곳에서 모델사진 찍던 모습을 몰래
쳐다보던 곳이다..ㅎㅎ 같이 간 일행중에 해박한 지식의 소유자가 있어 설명을 자세히
듣고보니 아는 만큼 보인다고 부도의 모습과 문양이 눈에 들어온다. 이 탑은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양식이라고 한다. 기단부에는 천마와 용이 번갈아 새겨져 있는데 천마의
모습도 한쪽은 오른쪽으로 한쪽은 왼쪽으로 새겨져 있었다. 지난날 도굴꾼들이 파헤쳐
놓은 것을 지역주민들이 짝을 맞춰 세웠다고 하는데 최근에 발굴복원했다고 한다.
누구의 부도인지는 알 수 없는데 어느 책에선가 보우의 부도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지만
시기적으로 맞지 않은 것 같다.
회암사지부도탑... 누구의 것인지는 모른다...
회암사를 생각하면 태조와 무학대사, 그리고 문정왕후와 보우대사가 떠오른다. 유학을
국교로 삼은 조선에서 불교는 탄압의 대상인데 기이하게도 너무 앞서가다가 문정왕후
사후에 유생들에 의해 잿더미로 변해버린 회암사지를 보노라니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자꾸만 뇌리를 스친다. 회암사는 한참 뒤인 순조 때에 폐사가 되었다하는데 보우대사
이후의 회암사는 사실상 유명무실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부도탑의 조각...
<계속>
모차르트 / 바이올린 소나타 B 플랫 장조 K 454 Jascha Heifetz
1악장 Largo : Allegro
첫댓글 野草님이 또 좋은 곳을 다녀오셨군요. 늘 부러움을 느낍니다. 다음 편을 기다리겠습니다.
작년에 회암사지에 가보았습니다. 복원사업이 한창이드군요. 답사기 잘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