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구 NC구로점 신생 평양냉면 ‘평양옥’
송파구 방이동 60년 넘은 노포 ‘황산냉면’
서대문구 대현동 이대앞 튀김 전문점 ‘삭’
가끔 그럴 때가 있다. 길을 가다가 허기가 몰려와서 아무 곳이나 큰 기대 없이 들어간 식당에서 취향에 맞는
‘입맛 저격’을 받았을 때, 또는 맛에 버금가는 손님맞이 서비스를 받았을 때의 감동 말이다.
우연히 스며든 식당에서 ‘로또’ 같은 맛이나 서비스로 횡재를 하면 감동이 배가 된다.
이달 중순경이었다. 한여름만 되면 도지는 평양냉면 순례병으로 근질거리는 몸을 진정시키기 위해 후배와 여의도
정인면옥에서 점심을 약속했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거리두기가 강화되는 바람에 2인 점심 약속이었지만 북적이는 곳이라 예방 차원에서 취소했다. 그런 몇 개의 약속을 줄줄이 작파하고 나니 입맛이 씁쓸했다.
오랜만에 목젖 뒤로 육향 가득한 냉면 육수를 넘기나 했던 기대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적이는 시내 노포를 피해 스며들 곳을 물색하던 중, 온라인에서 NC구로점 6층 식당가에 ‘부벽루’라는 냉면집이 들어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후 방문을 망설이다가 며칠 후 북적임을 피해 오후 3시경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갔다. 가보니 부벽루는 온 데 간데없고 ‘평양옥’이란 옥호의 냉면집이 있었다.
알고 보니 부벽루란 상호가 대중적이지 않고 냉면 가게란 이미지와 매칭이 안 된다는 이유로 직관적인 평양옥으로 바꾼 것이다. 포털사이트 검색에서는 부벽루와 평양옥 NC백화점 신구로점으로 검색된다. 사실 부벽루란 이름은 냉면 상호로 한때 전성기를 구가한 적이 있다. 1920년대 무렵이다. 서울(당시는 경성)에 평양냉면 점포들이 장안 식객들 입맛을 한창 사로잡을 때다. 서울 부자들은 한때 인천에서 기차로 배달을 시켜서 먹을 정도였다.
1920년대 ‘경성’은 평양냉면 성지
▲ 아지노모토의 신문 광고. ‘야 맛이 이렇게 좋은 냉면은 생전 처음인 걸. 오라 아지노모토를 치는구먼’이란 문구로 냉면집 사장들을 유혹(?)했다.
서울에는 동양루, 부벽루, 백양루 등 냉면집이 1920년대 후반 서울 식당가를 호령했다. 부벽루란 이름은 평양 대동강변 청류벽 위에 있는 누정이다. 그래서 부벽루란 상호를 단 냉면집은 평양냉면을 판다는 의미다. 당시 서울 청계천 주변만 평양냉면집이 40여곳 영업했다고 한다. 지금에 비춰 봐도 엄청난 숫자다. 그만큼 슴슴한 평양냉면이 서울 사람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모양이다.
이 같은 사실은 신문 기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1936년 7월23일자 매일신보에 따르면 ‘평양냉면, 해주냉면 다음으로 서울냉면을 손꼽을 만큼 이제는 서울냉면이 냉면 축에서 뻐젓하게 한몫을 보게 되었습니다...(중략)...여름 한 철 더군다나 각 관청 회사의 점심시간이면은 냉면집 전화통에서는 불이 날 지경입니다’라고 적고 있다. 서울에서 평양냉면의 인기는 그만큼 메밀 면식을 좋아하는 인구가 받쳐줬다는 의미다.
물론 이때 서울서 평양냉면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이유는 ‘아지노모토’란 인공조미료 때문이다. 동치미와 고기육수가 필요한 평양냉면은 그만큼 원재료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그런데 1908년 일본에서 개발돼 1920년대 우리나라로 들어온 아지노모토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이들은 광고를 통해 육수를 따로 만들지 말고 자사 제품을 넣으라고 홍보했다. 심지어 평양에서는 직영 냉면집을 열어 운영하기도 했다. 육수용 고기와 아지노모토의 가격을 비교하면 완전 ‘악마의 유혹’이었지 싶다.
최고 가성비로 만나는 순면 평양냉면
▲ NC신구로점 6층에 있는 ‘평양옥’은 순면 평양냉면을 최고 가성비로 접할 수 있는 곳이다, 만두도 매장에서 직접 빚는다.
부벽루란 이름 때문에 서설이 길었다.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오후 3시 백화점 식당가는 조용하고 쾌적했다. 브레이크 타임이 보편화된 때라 손님이 아예 식당가엘 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NC신구로점 식당가 역시 몇몇 식당은 브레이크 타임으로 문을 잠시 닫았고, 평양옥처럼 일부는 문을 열었다.
첫 인상은 백화점이란 넓은 공간적 특징과 외벽을 최소화한 오픈된 매장이 주는 시원함이 좋았다. 2인용 작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뒤적였다. 한쪽에서는 점장과 종업원이 손만두를 빚고 있었다. 수육은 없고 대신 석갈비를 팔았다. 물냉면과 석갈비 합을 맞추려 했으나 석갈비는 2인분부터 판다고 해서 손만두로 대신했다. 수육은 곰탕·장터국밥·평양냉면 등에 고명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따로 팔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만두가 먼저 나왔다. 매장표 손만두다. 제법 큰 것이 다섯 개나 나온다. 속이 충실하다. 두부가 많이 들어 우물거리는 맛이 있다. 9000원이면 가성비가 나쁘지 않다. 다만 만두를 찍어 먹는 간장 양념은 익숙하지 않다. 약간 손볼 필요가 있다. 이어 평양냉면이 등장했다. 고명으로 배 슬라이스 한 조각, 무김치 두 조각, 업진살 수육 한 점, 삶은 계란 반 개가 면 위에 조신하게 놓여있다. 청색·홍색·황색 등 눈에 띄는 색 없이 무덤덤한 무채색 한 그릇이다.
고춧가루나 노른자 지단·대파·동치미 무청·실고추 등으로 포인트를 주는 수많은 냉면을 접하다가 잠시 멍했다. “아! 포인트가 없는 게 포인트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찬으로 나오는 열무 두세 줄기를 고명으로 함께 얹으면 어떨까 싶기도 했다. 다음번 방문 때에는 직접 데코를 해봐야겠다는 즐거운 상상도 해본다.
전반적으로 면 양은 적당했지만 육수는 좀 적었다. 뽀얀 순면, 기름진 육수, 소박한 고명 삼박자가 나쁘지 않다. 면발 한 젓갈 집어서 육수에 깊숙이 담갔다가 입안으로 말아 올리니 세상이 다 내 것 같다. 순면 평양냉면인데도 불구하고 상당한 가성비를 가졌다. 백화점에서 떼는 마진이 적지 않을 텐데도 순면을 1만원에 내놓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개인적 입맛으론 염도가 좀 있었지만 많이 짜단 느낌이 들 정도는 아니었다. 평양옥 본점은 역삼동에 있고 업력은 3년 정도로 일천하지만 소문 좀 나면 상당한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평냉계 ‘트리플A’라면 조만간 ‘메이저리그’ 승격이 기대되는 곳이다. 본점 김경규 오너셰프는 우래옥서 3년간 일한 경력이 있다고 한다.
1958년 문을 연 평양식 냉면집
▲ ‘황산냉명’은 평양식 물냉면과 밀면, 어복쟁반, 메밀전 등을 좋은 가격에 맛볼 수 있는 1958년 문을 연 노포다. [사진=필자 제공]
필자는 문화지평이란 단체를 통해 서울시의 다양한 공익사업을 수행한다. 이달 10일에는 서울시 건축문화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김중업과 김수근, 현대건축 1세대 궤적을 쫒아서’ 두 번째 프로그램을 올림픽공원에서 진행했다.
이곳에 있는 평화의문은 김중업의 후기 작품으로 서울에서 열린 제24회 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한 상징조형물로 세워졌다. 위정자의 입김에 김중업의 설계가 여러 번 바뀌면서 규모가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했다. ‘서울올림픽 상징조형물 현상설계’는 김중업으로서는 올림픽과 관련해 처음 참여한 프로젝트였다. 상징조형물과 주변 광장 설계도 대상이었다.
김중업은 공간적 결절점에 새로운 시대 진입을 의미하는 문의 존재, 이상을 향해 비상하고픈 인간의 의지를 상징, 굵은 곡선과 날카로운 예각을 대비시켜 대범하고도 영민한 민족성 표출 등 세 가지 의미를 담고자 했다. 김중업이 제출했던 초기 안은 높이 24m의 기념비였지만 정부는 기념성이 약하다는 이유로 다른 모델을 요구했다. 이후 김중업은 높이 90m에 달하는 안을 냈으나 이번엔 규모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결국 45m로 결정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답사는 올림픽공원 평화의문에서 시작해 몽촌토성, 한성백제박물관, 서울방이동고분군, 서울석촌동고분군, 을축년홍수기념비와 어사 이건창 영세불망비, 삼전도비까지 걸었다. 이번 답사는 점심식사를 하고 나서 저녁까지 돌아보는 ‘끝장 답사’였다. 이날 중간에 식사를 한 곳은 송파구 방이동 뒷골목에서 우연히 만난 1958년 문을 연 노포 ‘황산냉면’이었다.
불볕더위에 한참을 걷다가 만난 냉면집 간판은 마치 자석 같았다. 냉면과 밀면 7000원, 어복쟁반 대 4만5000원 등 가성비가 참 좋다. 진한 육향의 서울식 평양냉면이 아닌 시큼털털한 평양식 냉면이었다. 6000원짜리 메밀전은 선주후면을 격발하는 소구력 강한 메뉴다. 메밀보다는 전분 함량이 높아서 금호동 금남시장 골목 냉면의 기억이 소환됐다.
이대 앞 14년 차 수제 튀김 맛집
▲ ‘삭’은 다양한 튀김 맛을 경험할 수 있도록 양과 가격을 다운사이징했다.
하루는 신촌에서 식사를 하고 지인을 배웅하기 위해 이화여대 앞까지 걸었다. 지인이 자주 간다는 튀김집을 한번 들르자고 했다. 배는 부르지만 기름의 유혹은 역시 강력하다. 게다가 주문하면 튀겨주는 수제튀김 전문점이라고 하니 더욱 끌렸다.
‘삭’이란 상호는 바삭바삭, 파삭파삭의 삭에서 따왔다. 이대 앞에서 14년째 업력을 자랑하는 튀김 맛집이다. 1000원짜리부터 전반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게 특징이다. 양과 가격을 다운사이징한 가격정책의 지혜가 엿보인다. 튀김집인데 하이볼이 없어서 도입해 보라고 알려줬다. 하이볼은 손쉽게 만들 수 있고 기름진 튀김과 합이 좋은 주류다. 이곳에선 맥주와 같이 저도주를 판매한다.
유성호 스카이데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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