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난아이처럼 영적이고 순수한 젖을 갈망하여라.
너희는 그 젖으로 자라나 구원을 얻으리라. 알렐루야”(1베드 2,2)
죽음에서 생명으로 우리의 곁으로 돌아오신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기억하는 부활 제 2 주일인 오늘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작된 하느님의 자비 주일이기도 합니다. 2000년 대희년을 맞이하던 그 해에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자신의 고국, 폴란드 출신의 파우스티나 수녀를 성인으로 선포하며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부활 제 2 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지내며 특별히 하느님의 자비를 기억하기를 권고하셨습니다. 외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느님의 크나큰 자비에 감사드리고자 하는 지향으로 시작된 하느님의 자비 주일인 오늘, 우리가 듣게 되는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 삶에 ‘참 평화’를 가져다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우선 오늘 복음의 말씀이 그러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돌아가시는 모습을 목격한 제자들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겁에 질려 골방에서 방문을 걸어 잠근 채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십니다. 잠긴 문을 열고 그들의 곁으로 다가오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건네시는 첫 마디.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21)
두려움으로 방문만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마저도 닫아걸고 골방에서 웅크리고 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잠긴 문을 열고, 또한 두려움과 공포로 굳게 닫혀버린 그들의 마음을 당신이 가져다주시는 하느님의 평화로 열어주십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던 제자들을 부활에 대한 확신으로 초대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에 두려움에 싸여 있던 제자들이 변화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나타나신 그 자리에 함께 있지 못했던 제자 하나가 있었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토마스입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예수님이 나타나셨을 때, 제자들과 함께 있지 않던 토마스는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하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황당하고도 기가 찬 말을 합니다.
“나는 그 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보고 또 그 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요한 20,25ㄴ)
오늘 복음이 전하는 이 토마스의 모습을 대할 때마다 드는 의문은 토마스는 다른 모든 제자들이 함께 모여 부활하신 예수님을 뵐 때, 그는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라는 점입니다. 토마스는 왜 다른 제자들과 함께 있지 않고 혼자 떨어져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그리고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환희와 기쁨에 넘쳐 부활의 놀라운 소식을 그에게 전해 줄 때, 왜 토마스는 마치 그들의 기쁨에는 동참하고 싶지 않은 사람인 것처럼 그들의 마음에 찬물을 끼얹듯이 이렇게 대답했던 것일까? 도대체 예수님의 부활의 순간에 토마스는 어떤 마음으로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성경의 인물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많은 학자들은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토마스를 일컬어 이성적 합리적 사고의 전형적 인물로 설명합니다. 자신이 직접 보고, 자신이 직접 체험하지 않은 것은 믿지도 않고 믿으려 하지도 않는 인간 이성의 절대적 신뢰를 갖고 있는 인물로서 토마스를 들어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런 토마스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 바로 토마스의 다음의 말입니다.
“나는 그 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보고 또 그 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요한 20,25ㄴ)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져 본 것만을 믿는 인물 토마스. 그런 그가 자신의 소신에 따라 이 말을 다른 제자들에게 건넸을 때, 토마스의 마음이 어떠했을지를 우리는 한번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토마스는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겁에 질린 겁쟁이들처럼 두려움에 떠는 다른 제자들의 모습이 못마땅했을 것입니다. 주님이라 믿었던 예수님이 돌아가신 것을 자신의 두 눈으로 분명히 보고 이제 더 이상 주님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확인한 토마스로서는 더 이상 두려움에 몸을 숨기고 있을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해야 할 새로운 일을 찾아 용기 있게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토마스는 겁쟁이처럼 숨어 있는 제자들과 함께 골방에 있지 않고 밖으로 나와 무언가를 새롭게 찾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제자들과 여인들이 놀라운 말들을 건넵니다. 그 분이 부활하셨다고.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그 말 자체도 믿을 수 없을뿐더러, 조금 전까지만 해도 겁쟁이처럼 숨어 있던 그들이 하는 말을 믿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제자들에게 이제 제발 정신 좀 차리라는 뜻으로 더 심하게 다음과 같이 말했던 것입니다.
“나는 그 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보고 또 그 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요한 20,25ㄴ)
그런 그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 마치 토마스가 한 말을 직접 듣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말 그대로를 반복하시며 그에게 믿음을 요청하십니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요한 20,27)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본 후에야 그 분이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이심을 깨달은 토마스는 ‘저의 주님, 저희 하느님!’이라는 외침으로 그 분을 향한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고, 그 고백을 들은 예수님은 토마스를 비롯한 모든 이들에게 보고서야 믿는 믿음이 아닌, 보지 않고서도 믿을 수 있는 믿음의 중요성을 다음의 말로 일깨워주십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서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
이처럼 오늘 복음이 전하는 부활하신 예수님은 보지 않고서도 믿을 수 있는 굳은 믿음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십니다. 그 믿음이 바로 우리 삶의 평화임을, 그리고 그 평화는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전해 주시는 평화임을 오늘 복음 말씀은 우리에게 전합니다.
이 같은 면에서 오늘 두 독서의 말씀들은 오늘 복음과 같은 맥락 안에서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는 굳은 믿음을 통한 구원의 희망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얻기 위해 우리에게 어떤 믿음의 자세가 필요한지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우선 오늘 제 1 독서의 사도행전의 말씀은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공동체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며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고 살았음을 이야기합니다. 자기 소유를 주장하지 않고 모두가 함께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삶,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을 위해 모든 것을 아끼지 않는 이 같은 이상적 공동체의 모습이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께 대한 믿음의 승리이며 이를 오늘 제 2 독서의 요한 1서의 말씀이 다음과 같이 제시해 줍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 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의 계명을 힘겹지 않습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의 승리입니다.”(1요한 5, 3-4)
사랑하는 송동 교우 여러분, 요한 사도의 이 말씀처럼 우리 모두는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승리를 통하여 하느님의 힘으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설령 세상의 일들이 우리를 두렵게 만들고, 우리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의심하고 원망하도록 우리를 내몰 때, 우리는 오늘 복음의 예수님이 토마스에게 요구했던 믿음, 바로 보지 않고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 분을 믿을 수 있는 굳은 믿음을 가지려 노력해야 합니다. 그 믿음이 오늘 제 2 독서의 요한 1서의 말씀처럼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케 하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지켜주고 보호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 21)
이 말씀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지금의 현실들로 두려워하고 보지 못하는 하느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얕은 믿음에 당신의 힘을 실어 주실 것입니다. 그 분은 바로 부활을 통해 우리의 모든 두려움과 마음의 어둠을 몰아내 주신 분, 오늘 복음의 제자들이 만난 부활하신 예수님이며 제자들이 그 분으로부터 받은 평화를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내려주시는 그 분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오늘 화답송의 시편의 말씀처럼 좋으신 하느님, 우리를 향한 자애를 영원토록 베풀어 주시는 하느님을 굳게 믿음으로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 여러분의 삶 안에서 그 분이 전해 주시는 하느님의 평화와 기쁨으로 언제나 행복하시기를, 그리하여 슬픔에 싸여 있는 이웃 형제들에게 하느님의 평화를 전하는 참 제자가 되시기를 언제나 기도하겠습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한 20,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