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우중 산행 에세이】
비 오는 날 숲속 정자에서 만난 여인
― 심수봉 노래를 곱게 부르는 인상 깊은 여인
윤승원 수필가
♬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언제나 말이 없던 그 사람
사랑의 괴로움을 몰래 감추고
떠난 사람 못 잊어서 울던 그 사람 ♪
오늘 날씨에 딱 어울리는 가사.
초복 날 아침 비가 내리는 가운데
도솔산 숲길을 혼자 걸으면서
마음을 비우고 있었다.
그런데 정자에 홀로 앉아
스마트폰으로 심수봉 노래를 들으면서
크게 따라 부르는 은발의 여인.
▲ 숲속 정자에서 노래하는 여인 - 비 오는 날 분위기에 딱 어울리는 노래(삽화=AI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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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여인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면서
놀라지 않게 사뿐사뿐 다가갔다.
하지만 여인은 나의 조심스러운
발걸음 소리를 상관하지 않는다.
부르던 노래를 멈추지 않는다.
목소리가 곱다.
심수봉 특유의 트롯풍 음성.
고운 음색이 아주 똑 닮았다.
아마추어 노래가 아니다.
비 오는 날 혼자 부르는 노래
숲속에서 혼자 부르는 노래
여인의 노랫소리는 나 혼자
듣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저 울창한 숲속 관객
소나무, 참나무, 느티나무
그리고 이름 모를 산새 친구들.
어디선가 산토끼도 듣고 있을까?
고라니도 듣고 있을지 몰라.
그런데 노래 1절이 끝났으면
손뼉을 쳐야지.
용기를 냈다.
손뼉을 치는데도 용기가 필요했다.
여인이 인사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숲길에서 조용히 명상하시는데
저의 노래가 혹여
방해가 되지는 않았는지요?
노래만 곱게 하는 게 아니다.
말씀도 예쁘게 한다.
노래 가사가 오늘 날씨와 아주
잘 어울린다고 했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사람이
저도 많습니다 라고 했다.
여인은 그러나 그리움의 대상은
말하지 않았다.
여인은 물병을 꺼냈다.
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또 한 곡을 불렀다.
‘당신은 누구시길래’
▲ 보통 노래 솜씨가 아니었다 - 고운 목소리로 심수봉 노래 3곡을 불렀다.(삽화=AI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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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곡을 부른다.
‘백만 송이 장미’
이번엔 흥이 나는 경쾌한 노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연속 3곡을 들었다.
아, 이런!
이렇게 귀한 노래를
혼자 들어도 되나?
노래 잘 들었다고,
감동했다고 인사하고
산에서 내려오는데
어디선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여보시게.
오늘 숲길 명상은
여인의 명곡 감상만으로 충분하오.
비 오는 날 산행의 진가를
맛보셨으니 축하하오.
하늘에서 들려오는 말씀이었다. ♧
2026.7.15.
비 내리는 날 아침 도솔산 숲에서
♧ ♧ ♧
▣ 문학평론가 감상평
이 작품은 ‘비 오는 숲길’이라는 자연 풍경, ‘한 여인의 노래’라는 우연한 만남, 그리고 ‘하늘의 한마디’라는 상상적 마무리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윤승원 수필가다운 산중 에세이입니다.
무엇보다 독자가 미소를 지으며 읽게 만드는 잔잔한 유머가 살아 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문학적 요소는 ‘소리의 수필’이라는 점입니다.
보통 우중 산행을 다룬 글은 빗소리, 바람 소리, 새소리를 중심으로 전개되기 마련인데, 이 작품에서는 심수봉의 노래가 숲의 새로운 배경음악이 됩니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이라는 첫 소절은 독자의 기억도 함께 불러내며, 글 속 여인만이 아니라 독자 자신의 추억까지 작품 속으로 초대합니다.
또 하나의 매력은 관객의 범위를 넓히는 상상력입니다.
“저 울창한 숲속 관객
소나무, 참나무, 느티나무
그리고 이름 모를 산새 친구들.”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산토끼도 듣고 있을까? 고라니도 듣고 있을지 몰라.”라고 이어지는 대목은 현실을 살짝 동화처럼 바꾸어 놓습니다.
숲 전체가 하나의 음악회가 되고, 나무와 동물들이 모두 청중이 되는 순간입니다.
윤승원 수필에서 자주 보이는 자연 의인화가 이번에도 따뜻하게 살아 있습니다.
유머도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특히, “그런데 노래 1절이 끝났으면 손뼉을 쳐야지.”라는 대목이 그렇습니다.
공연장이 아닌 숲속 정자에서 혼자 속으로 갈등하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이어지는 “손뼉을 치는데도 용기가 필요했다.”라는 한 줄은 윤승원 수필 특유의 생활 유머입니다.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사람을 웃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여인의 첫마디도 작품을 한층 품격 있게 만듭니다.
“숲길에서 조용히 명상하시는데 저의 노래가 혹여 방해되지는 않았는지요?”
이 한마디 덕분에 여인은 단순히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예의를 갖춘 인물로 살아납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노래만 곱게 하는 게 아니다. 말씀도 예쁘게 한다.”는 짧은 평이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마지막 부분은 윤승원 수필에서 자주 만나는 '상상의 음성' 기법입니다.
“오늘 숲길 명상은 여인의 명곡 감상만으로 충분하오.”
실제로 누군가 말했는지보다 중요한 것은 화자의 마음입니다.
행복한 하루를 보낸 뒤 자신의 기쁨을 하늘의 축하 인사처럼 들었다는 설정은 글 전체를 따뜻한 여운으로 마무리합니다.
독자도 함께 “오늘 산행 참 잘했다.”라는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문학적으로 보면 이 작품은 ‘우연한 만남이 선물이 되는 순간’을 담은 수필입니다. 화자는 특별한 사건을 만들지 않습니다.
그저 숲길에서 만난 한 여인의 노래를 정성껏 듣고, 감사의 박수를 보내고, 그 감동을 독자와 나눌 뿐입니다.
평범한 일상을 문학으로 바꾸는 윤승원 수필의 장점이 잘 드러난 작품입니다.
한 가지 특히 마음에 드는 점은 글 전체에 선의(善意)가 흐른다는 것입니다.
여인을 평가하거나 캐묻지 않고, 그저 노래를 귀하게 듣고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합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태도가 작품을 더욱 따뜻하게 만듭니다.
종합하면 이 작품은 비 오는 숲을 작은 음악회로 바꾸고, 이름 모를 한 여인을 하루의 주인공으로 세우며,
독자에게는 “인생의 아름다운 우연은 아직도 우리 곁에 있다.”라는 희망을 전하는 에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윤승원 수필 특유의 소박한 유머와 따뜻한 시선, 그리고 자연과 사람이 함께 어우러지는 서정성이 잘 살아 있는 작품입니다.
◆ 덧붙이는 말
이 작품을 읽으며 특히 좋았던 점은, 화려한 사건이 아니라 '한 번의 박수'를 문학으로 승화시켰다는 것입니다.
문학평론가의 시각에서 한 말씀 더 드린다면, 이 에세이는 윤승원 수필가의 작품 세계를 잘 보여주는 특징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평범한 일상을 특별한 하루로 만드는 힘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산에서 노래 잘하는 사람을 만났다.” 정도로 지나칠 일을, 작가는 한 편의 잔잔한 음악 에세이로 바꾸었습니다. 이것이 수필가의 관찰력입니다.
둘째, 사람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여인의 외모를 묘사하거나 신상을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오직 노랫소리와 예쁜 말씨, 그리고 예의 바른 태도만 기억합니다. 그래서 독자는 그 여인을 만나지 않았는데도 좋은 사람으로 느끼게 됩니다.
셋째, 윤승원 수필 특유의 '숲속 동화성'입니다.
소나무와 참나무, 산새, 산토끼, 고라니까지 모두 음악회의 청중으로 등장하는 장면은 현실과 상상을 자연스럽게 이어 줍니다. 이런 표현은 글에 동심과 서정을 불어넣습니다.
무엇보다 마지막의 하늘 음성은 저는 이렇게 해석하고 싶습니다.
“오늘 숲길 명상은 여인의 명곡 감상만으로 충분하오.”
이 말은 실제 하늘의 음성이라기보다, 자신의 마음속에서 울려 나온 감사의 목소리입니다.
자연이 주는 선물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행복의 독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독자는 미소를 지으며 작품을 덮게 됩니다.
문학적으로 이 작품의 핵심 주제는 ‘감사는 행복을 발견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비 오는 날 산행에서 예상치 못한 작은 음악회를 만나고, 그 감동을 오래 간직하는 마음이야말로 이 글의 가장 큰 아름다움입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우중 산행기가 아니라, “세상은 아직도 아름다운 우연과 선한 사람들이 있어 살 만하다.”는 믿음을 조용히 전하는 서정 수필로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 (雲峰, 윤승원 수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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