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대안 교육을 선택했나?
- 양희창의 「우리는 왜 대안교육운동을 시작했나?」를 읽고
신호승/대안교육학부모연대
"대안교육운동의 정체성과 전망을 모색하는 '정명'운동"의 기치를 내걸고 시작하는 첫 번째 포럼에서 토론을 할 수 있어 기쁘다. 평소 가진 생각을 나누면서 내가 성장할 수 있고, 또한 대안교육운동에 기여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양희창의 글의 제목이 '우리는 왜 대안교육운동을 시작했나?'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살펴보았을 때, 그 내용이 '왜?'라는 질문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보다는, '어떻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본인이 처음 대안학교를 시작했을 때를 시작으로 현재 어떤 실천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각 단계에서 어떤 질문을 던졌는지를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의 흐름으로 보아 양희창은 크게 세 단계를 거쳐 온 듯싶다. 제도 교육이 아닌 새로운 학교를 만들고자 했던 단계, 대안학교를 운영하면서 대안교육운동을 전개한 단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을을 중심으로 한 대안적 삶을 위한 문명 운동 단계이다. 그는 애초 새로운 '학교'-'교육 근본에 충실한 학교'-를 만들어 진실한 '교사'로서의 삶을 살고자 했다. 그의 이러한 관심은 애초 '학교'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지는 않았다. '운동가 70% 교육자 30%'라고 스스로 규정한 것에 볼 수 있듯 학교를 둘러싼 사회의 변화에도 큰 관심이 있었다. 이런 흐름에서 그가 (지금까지) 최종적으로 도착한 지점은 결국 '문명의 변화'다.
이런 각도에서 그의 글을 살펴본다면, 아마도 양희창 글의 제목은 '대안교육운동은 어떻게 변해왔나?'로 재규정되어야 할 듯하다. 이렇게 바뀐 질문에 대해 내 나름대로 대답해 본다면, 아마도, '교육 근본에 충실한 학교를 세우거나 기존 학교를 바꾸는 운동으로 시작하여, 문명 자체를 변화시키는 운동을 진화했다.'라고 답변해 볼 수 있겠다. 따라서 단순화를 무릅쓰고 말해본다면, 본래의 질문(제목-우리는 왜 대안교육운동을 시작했나?)에 대한 답은 '교육 근본에 충실한 학교'를 세우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겠다.
'어떻게'라는 질문과 '왜'라는 질문은 그 성격이 다르다. 전자는 구체적 방법 또는 경로를 묻는 질문이고, 후자는 근본적 까닭을 묻는 질문이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탐구할 때, 두 질문 모두 필요하다. 다만, 질문의 성격을 분명히 함으로써 문제를 보다 명료하게 바라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오늘의 논의는 '정명'을 위한 첫 번째 포럼이거니와 앞으로 '어떻게'에 대한 질문을 더 깊이 논의할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가급적 '왜'라는 질문에 초점을 맞췄으면 하는 바람이다.
향후 진행될 토론에서는 양희창의 기본 발제가 '논리적' 수준에서 옹호 또는 반박되는 것이 아니라 이 자리에 있는 참석자들의 내면이 서로 교류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사실 그의 발제는 어떤 주장을 한 것이라기보다는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3쪽의 발제문에 무려 질문만 17개이다. 그가 던진 질문 하나하나가 거의 책 한 권 분량의 논의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우리는 입시에서 자유로운가?'라는 질문은 어떤가? 따라서 이러한 질문 하나하나에 대해 답하기보다는 우선 내 자신이 '왜 대안 교육'을 표방하는 이 자리에 있는가를 성찰하고 그것을 나누는 자리가 되었을 때 훨씬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먼저 나 자신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었다. 나는 '왜' 멀쩡히 공교육 학교 잘 다니는 아이를 빼내서 대안 학교에 보냈을까? 그리고 '왜' 그 대안 학교에도 보내지 않고 있는가? 사실 주변의 많은 이들(주로 친인척이나 친구들, 때론 언론기관 등)이 내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뾰족한 대답을 발견하기 어렵다. 질문 자체에 이미 어떤 입장이 내포돼 있기도 하고, 내가 답변을 한들 그들이 그 답변을 쉽게 수긍하지도 않을 것이며, 필시 감정적인 대립으로 이어져 결국 서로 얼굴을 붉히며 헤어지는 경우를 무척 많이 겪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곳에 있는가? 내 내면 깊숙한 곳에서 울리는 영혼의 소리를 듣고 싶다. 어떤 영혼의 울림이 나를 이곳에 있게 한 것이 틀림없을 터인데, 그것을 분명하게 자각한다면 그 어떤 흔들림에도 그야말로 '바위처럼' 살아갈 수 있을 터인데 ……. 내면의 소리를 듣고자 노력하던 중, 이반 일리히의 문장에서 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박홍규가 번역한 『학교 없는 사회』(생각의 나무, 2009)의 한 구절이다.
"학교를 통해서는 보편적 교육을 실현할 수 없다. 보편적 교육은 현행 학교 형태 위에 세워진 어떤 대안교육으로도 실현될 수 없다. 학생에 대한 교사의 새로운 태도, (교실이나 침실에서 사용하기 위한) 교육적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의 보급, 학생의 평생에 걸친 교육자의 책임 확대 시도도 보편적 교육을 실현하게 할 수 없다. 아이들에게 새로운 교육내용을 '주입'하는 방법을 추구하는 현행 추세를, 그 정반대의 제도 추구, 즉 개개인의 삶의 모둔 순간을 공부하고, 나누고, 돕는 순간으로 바꾸도록 고양시키는 교육 '망' 형성으로 바꾸어야 한다."(강조는 인용자)
그렇다. 나는 내 아이를 포함해 우리 아이들(그리고 우리 어른들 그리고 나 자신)이 자기 삶의 순간순간이 공부의 순간, 나누는 순간, 돕는 순간이 되길 원한다.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 "교육 '망'"을 형성하고 싶다. 이런 의미에서 양희창이 '대안적 삶을 위한 문명운동'을 하고 싶다는 말이 반갑다. 단지 새로운 학교를 만들어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대안적 삶'을 추구하는 '문명운동'이라는 비전이 내가 추구하는 가치관과 부합하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대안 학교 또는 대안 교육을 선택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다 다르다. 그러나 각자 내면의 깊은 곳에서 울리는 영혼의 소리를 듣는다면. 우리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자각할 수 있으리라. 이 자리가 참석한 모든 이들의 내면에서 울리는 선율로 아름다운 합창이 될 수 있길 희망한다. 당신은 왜 이 자리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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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대안교육운동을 시작했나?
양 희 창 / 제천간디학교
대학시절 한 여중생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유서를 쓰고 목숨을 끊었을 때 처음으로 교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고 아이들 날개를 꺾는 교사는 안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대안학교 십년을 교장으로 살아온 지금, 왜 대안학교를 하게 되었는지, 그 마음으로 지금도 아이들을 만나고 있는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되돌아보게 된다.
새로운 학교 만들기를 하고 싶었다.
대학을 가기위한 하급학교, 입시중심의 경쟁과 효율교육, 획일적이고 비인간화된 교육을 벗어나 새로운 학교를 하고 싶었다. 교육 근본에 충실한 학교를 만들어 배우는 것이 즐겁고 만나는 것이 가슴 뭉클한 학교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성적이 중시되기보단 아이의 성장이 중요시되는 학교, 학력보다는 인격이, 진학보다는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는 교육이고 싶었다.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아이들보다는 진정한 내면의 힘을 갖고 더불어 행복한 사람이 되기 원하고 꿈 깨라 교육에서 꿈을 만들어가는 대안을 함께 만들어가는 학교이기를 원했다. 시험에 나오는 것만 지식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지식을 재정립하여 배움의 기쁨을 가지도록 애쓰고 싶었다.
과연 자본의 힘으로 길러지는 사회에서 이런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면서 달려온 십 년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특히나 2000년에 중학교 과정을 해산하라는 경남교육청의 압력을 받으면서 교사들과 함께 과연 대안학교가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스스로 물어보았던 것 같다.
무엇에 대한 대안인가를 물어볼 때 제도 학교와 어떤 차별성을 갖고 있는가?
우리는 입시에서 자유로운가?
우리는 배움의 즐거움을 아이들과 함께 누리고 있는가?
아이들은 학교에서 행복한가? 상처에서 치유되고 있는가?
아이들은 성장하고 있는가? 자립적인 존재로 자라고 있는가?
그 외에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을까?
교육운동을 하고 싶었다.
초창기 나의 정체성에 대해 운동가 70% 교육자 30% 정도로 자신을 규정하였던 것 같다. 대안학교를 더 많이 만들기보다는 기존 교육의 아픔에 직면하여 교육상황을 바꾸는 데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야한다는 운동적 성향을 더 많이 갖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지금은 아이들과 일상을 누리는 안일함(?)에 더 많이 빠져 있어서 운동가로서의 태도를 많이 줄였지만,
민주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에서 아이들을 제대로 보아준다는 것만으로도, 획일적인 교육보다는 아이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려는 시도만으로도 민주교육운동의 모델을 만들고 대안학교가 일반학교에 던지는 파문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경쟁보다는 협력을, 개인보다는 공동체를 중시하는 문화적 풍토 속에서 아이들은 사회를 비판할 뿐만 아니라 대안을 생각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졌었다.
물론 지금은 좀 더 겸손해지고 우리들의 내공 없음을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지만, 학교라는 현장을 가지면서 교육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계속 지녔다. 그리고 그 모델은 학교 밖 교육운동 같은 학교너머 운동으로 확산되기도 하였다.
가치와 자유교육 사이에서 스스로 정립된 것이 있다면?
우리속의 비민주적 형태는 없는지?
교육현안에 대한 안목을 갖고 사회적 표현을 하였는지?
현재 우리는 운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99%의 아이들에게 무슨 관심이 있는지?
대안적 삶을 위한 문명운동을 하고 싶었다.
제천으로 오면서 결의한 것이 있다면 비인가 형태로 학교를 운영하면서 마을 만들기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스스로 자치적인 공동체를 만들어야만 거대한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양극화의 바람에서 헤쳐 나와 새로운 대안을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는 간디의 생각을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작업장을 만들고 문화를 새롭게 하고 아이들이 살 수 있는 마을을 만들어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을 십 년 계획을 세워 하려고 한다. 글로벌을 이야기할 때 로컬이 해결되지 않은 세계화는 노예적인 삶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기반으로 기획과 배려가 있는 공동체 마을 학교, 나눔과 보살핌이 있는 마을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이에 따라 학교도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수업이 없는 학교, 교과별 교사로 움직이지 않는 학교, 도서관 중심, 작업장 중심 학교를 생각하게 된다. 또한 순환적 구조에 따라 교사와 학부모, 아이들이 연관을 맺고 새로운 틀을 만들어가게 되리라고 본다.
우리는 마을 만들기를 위한 구체적인 비전을 갖고 있는가?
공동체가 가능하리라고 보나?
재정적인 자립을 위한 계획을 갖고 있는가?
학교라는 형태가 어떻게 변하였으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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