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을 사용하여 성경을 읽고 말씀을 들음
이제 우리는 성경을 읽는 것과 말씀을 듣는 데 있어서 어떻게 영의 느낌을 따라 행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보겠다. 성경을 읽는 것과 말씀을 듣는 것에는 두 가지의 길이 있다. 한 가지는 단지 생각만을 사용하는 것이고 한 가지는 영을 사용하는 것이다. 성경을 읽을 때 만일 생각만을 사용하고 영을 사용하지 않으면 성경의 말씀은 의문이 된다. 마치 몸에 생명이 없으면 시체가 되는 것과 같다. 물론 생각을 사용하는 것이 당신으로 하여금 교리와 교의를 알게 하는 것은 맞지만, 만일 성령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당신은 생명을 얻을 수 없다(요 5:39~40). 하나님 안에 성령이 있을 뿐 아니라 성경의 말씀 안에도 영이 있으머(6:63, 딤후 3:16참조) 당신과 내 안에도 동일하게 영이 있다. 어떤 사람 안에 영이 없으면 생명도 없으며 한 구절의 성경 말씀에 영이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오늘날의 문제는 성령에게 두 종류의 말씀이 있다는 것이다. 한 종류는 표면적이고 문자적인 말이고 한 종류는 영의 말씀이다. 당신이 과연 어떤 종류의 말씀을 만졌는가는 당신이 어떤 기관을 사용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당신은 영을 사용해야 성경 안에 있는 영을 만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마 형제와 사 형제는 서로 동료이지만 사무실에서는 공적인 일로만 접촉할 뿐 영적인 왕래나 교통이 없다 하자. 비록 두 사람이 다 그리스도인이지만 서로 알지 못했다. 어느 날 출납실에서 만나 서로 상대방에게 복음을 전하여 복음을 듣도록 교회로 인도하려고 했다. 이때 비로소 두 사람이 다 원래부터 그리스도인인 것을 알았으며 이때 두 사람은 한층 더 많은 접촉을 갖게 되었는데 곧 영 안에서의 접촉이다. 이후로 두 사람은 사무적인 접촉을 가질 뿐 아니라 더욱 영적인 접촉을 갖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 안에는 영이 있으며 성경 안의 말씀에도 영이 있다. 그러나 내가 영을 사용하지 않으면 겉 사람이 물질적인 성경을 접촉한 것일뿐 성경 안에 있는 영은 만지지 못한다. 성경은 선지자가 자기 고향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다고 말한다(마 13:57). 이것은 고향 사람들이 그의 배경을 알고 그의 속 사정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 결과 외모로만 사람을 알고 영을 따라 알지 못한다. 당신이 성경을 읽을 때 성경 안에 있는 교리와 가르침, 지식이 있는데 만일 당신이 외모로만 성경을 읽는다면 단지 교리와 가르침과 지식을 만질 뿐 조금도 성경 말씀 안에 있는 영을 만지지 못할 것이다.
또 한 가지 예를 들어 우리가 말하는 교통은 단지 형제들이 당신의 집으로 가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것만이 아니라 바로 당신의 영이 흘러나와 형제와 왕래하는 것이다. 와서 세 잔의 차를 마시고 약간의 다과를 들며 다섯 시간 동안 이야기를 했다고 해서 이것을 가리켜 교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 안에서 왕래가 있어야만 교통이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은 반드시 언제든지 예비되어 있어야 한다. 연약하고 배고플 때 밥을 먹을 필요가 있는 것처럼, 당신이 이렇게 성경을 읽을 준비를 해 두어야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생명을 공급받을 수 있다. 성경 중에 두 가지 말씀이 있는데, 하나는 흰 종이 위의 검은 글자의 말씀이고 또 다른 한 종류는 우리의 영에 생명과 능력을 주며 우리 속의 필요를 만족시킬 수 있는 말씀이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외적으로 성경의 교리를 만질 뿐 아니라 내적으로 영 안에서 공급을 얻어야 한다.
말씀을 들을 때에 동일하게 영을 사용해야 한다. 만일 당신이 어떤 사람이 말씀을 전하는 것을 들을 때 다만 그의 구변이 좋고 논리가 정연하고 조리가 분명하는 것만을 느꼈다면, 당신이 얻은 것은 지식과 교리에 불과하다. 당신이 말씀을 전하는 사람에게서 공급을 받고자 한다면 반드시 당신의 영으로 그의 말의 배후에 있는 영을 접촉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당신은 그의 말씀의 도움을 받을 뿐 아니라 그의 영의 공급을 받을 수 있다.
성경을 읽는 태도는 반드시 영이 생각보다 강해야 한다. 마치 작은 새가 무엇을 먹을 때에는 입을 머리보다 크게 벌리는 것과 같다. 물론 생각에 여러 개의 입이 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다른 입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영의 입이다. 이같이 했다면 집회를 마칠 때 나의 영은 힘을 얻었을 것이며 영 안에 만족과 공급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은 반드시 열려 있어야 한다. 만일 형제자매들의 영이 크게 열려 있다면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영을 사용하는지의 여부를 분변할 수 있을 것이다. 목소리가 크고 말을 잘하는 사람이 영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목소리가 좋고 구변에 조리가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영으로 반응하게 하고 영 안에 공급을 얻게 하는가의 문제이다. 사람의 생각은 속임을 당할 수 있지만 사람의 영은 속일 도리가 없다. 영이 있으면 영이 있는 것이고 영이 없으면 영이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말씀을 전할 때 머리가 있고 꼬리가 있지만 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말씀을 듣는 일에서 반드시 영을 사용하기를 배워야 한다.
-워치만 니-
첫댓글 하나님 안에 성령이 있을 뿐 아니라 성경의 말씀 안에도 영이 있으며(6:63, 딤후 3:16참조) 당신과 내 안에도 동일하게 영이 있다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