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동성당이 경찰에 시설보호를 요청한 상태에서 인권활동가들은 국가보안법 철폐를 요구하며 성당 들머리에서 천막도 치지 못한 채 목숨 건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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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위협하는 군사독재의 갖은 핍박을 이겨내고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었던 김대중 대통령. 마침내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진전을 이루고,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그것도 노벨상 중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평화상'이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세계 유수의 언론매체들이 그를 '올해를 빛낸 인물'로 앞다투어 선정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권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인권상황을 얼마나 개선시켰을까.
여기 2000년 세밑 세 가지의 인권풍경이 있다.
장면 하나 : 명동성당 들머리 길바닥에 주저앉은 인권활동가들 - 노순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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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8일 오전 11시, 명동성당 앞 차디찬 바닥에 눌러앉은 사람들이 있다.
민가협과 인권운동사랑방, 국제민주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등 국내 대표적인 인권단체 활동가 16명. 이들은 명동성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통령이 약속했던 국가보안법 폐지와 국가인권위원회법 제정문제를 연내에 해결하라"며 "목숨을 건"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이들은 "임시국회가 폐회하는 2001년 1월 9일까지 쓰러지더라도 단식연좌농성을 계속 할 것"이라며 "국제적인 비난에 직면한 희대의 악법을 존속시키는 정치권은 반성하라"고 주장했다.
계획대로라면 이들은 12박 13일의 고행길을 걸어야 한다. 하지만 천막조차도 치지 못했다.
이번 농성은 한국통신 노조의 '쓰레기 방치' 사건이후 명동성당에서의 첫번째 농성. 명동성당측은 "더이상의 집회와 농성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며 단호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농성단 대표가 명동성당 관계자를 만나려 했지만, 이도 거절당했다. 명동성당측은 경찰에 시설보호를 요청해 놓은 상태. 더구나 금융노조 파업과 시기가 겹쳐 명동성당 진입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경찰병력이 한층 보강됐다.
"명동성당측과 마찰을 일으켜 가면서까지 천막을 치고 싶지는 않다"며 차가운 맨바닥에 쭈그려 앉은 이들.
땅거미가 깔리면서 동장군의 기세가 이들의 맨얼굴을 파고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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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둘 : 인권을 지키는 어머니들, 그들이 탑골공원에 모였다-2000년 마지막 목요집회 - 김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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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바람이 옷깃속으로 파고드는 한겨울. 우리는 한 해의 끄트머리, 종로 한복판에 선 어머니들을 만난다. '인권 대통령'이 이끄는 나라에서 '인권 회복'을 선언하며 팔을 걷어부친 어머니들.
2001년을 나흘 앞둔 2000년의 마지막 목요일, 탑골공원에서 열린 제360회 목요집회에 참석한 이들이다. 오늘 목요집회의 여느 때와는 달리 4개 단체가 공동으로 열었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과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전국 군폭력희생자 유가족협의회', '학교폭력 피해자 학부모모임'가 그 주인공.
연대 집회를 연 4개 단체는 모두 사회 각지에서 인권피해를 당한 자식을 둔 가족들이 만든 단체다. 오늘 집회는 어머니들이 주축이 돼 '인권을 지키는 어머니들의 연대' 라는 제목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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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집회를 상징하는 보라색 머릿수건을 두른 민가협 회원들 사이로, '근조 국방부'라 쓰인 전군협의 피켓이 보인다. 그 사이사이로 집단폭행으로 사망한 옥정중학교 서지혜 양의 영정을 든 서 양의 어머니와 성수여중 집단폭행을 고발한 피해학생의 어머니 조정실 씨가 서있다.
집회는 가장 많은 인권피해를 발생시킨 '국가보안법 철폐 퍼포먼스'로 시작됐다.
"지금으로부터 50년전, 국가보안법이라는 악마가 있었습니다..." 진주부설초등학교 학생의 나레이션을 바탕으로 검은옷을 입고 무기를 든 국가보안법과 '실효성'과 '독립성'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흰 옷을 입은 국가인권위원회와의 대결이 벌어진다. 퍼포먼스에서는 국가보안법 악마가 쓰러지고 국가인권위가 승리의 손을 치켜든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국가인권위'조차 설치되지 못할 정도로 궁색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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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나온 사람은 학교폭력을 고발하는 조정실 어머니의 연설.
"....내 아이의 고통을 안고 묻히고 싶습니다. 잠도 이루지 못하고, 잠에 들더라도 '살려달라' 잠꼬대를 하며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이 아이의 고통을 누구에게 책임추궁해야 하는 겁니까. 그동안 아이들의 협박과 폭력에 두려움에 떠는 것도 모른 채 돈을 버는 것이 자식을 위하는 것인 줄 알고 사회생활을 해왔던 부모로서 딸아이한테 죄책감과 미안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들 피해가족은 1월중으로 <학교폭력 피해자가족 협의회>를 구성할 계획이며, 비슷한 학교폭력 공론화 장으로 홈페이지를 개설한 상태다.(홈페이지 주소 http://www.uri-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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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전군협 회장 이혜숙 씨는 "1년에 4백여명의 군인들이 군대내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있다"며 "타살이 자살로 위장되고, 사인조차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 현실에서 부모들이 직접 나설 수 밖에 없다"고 절규했다.
다음은 이들이 이날 집회에서 결의한 여섯가지의 주장이다.
첫째, 50년 동안 국민의 의식을 통제하며 국민대다수의 인권을 유린한 국가보안법을 즉각 폐지하고 양심수를 석방해야 한다.
둘째, 독립성, 실효성이 보장되는 국가인권위원회를 하루빨리 설치해야 한다.
셋째, 과거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발생한 의문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이루어져야 한다.
넷째, 군대내 의문의 죽음에 대한 진상이 규명되고 군 폭력이 근절되어야 한다.
다섯째, 학교폭력으로 피해를 입은 학생들에 대한 보호장치를 마련하고 학교폭력 근절을 위한 국가적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여섯째, 21세기, 인권이 실현되는 사회를 위해 우리는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장면 셋 : "우리가 진정 사람이라면...밝혀내야 한다" - 김미선 기자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그 죄상을 땅속에 묻어버린 지 5년, 10년, 20년이 흘러가고 있다. 우리가 진정 사람이라면 모든 진상을 밝혀내야 한다. 누가, 왜, 어떻게 죽였는지, 그 시신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또 어떻게 감추었는지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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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죽였는지, 왜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의문의 죽음'은 부모의 가슴 속에 묻힌다. 생전 그들의 모습이 불의 앞에 당당했다면 부모의 아픔은 더하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람들의 숫자는 상당수에 이른다.
2001년을 4일 앞둔 12월28일 오후1시. 종로 탑골공원에 의문사 가족들이 모였다.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이하 국민연대)의 의문사 공동진정과 완전해결을 위한 결의대회'.
이들의 손에는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진정접수할 48명의 의문사 명단과 진정서가 들려있었다. 11월23일 5건의 사건을 1차 접수시킨 뒤 이어진 두 번째 진정이다. 이번 2차 진정으로 접수할 사건은 △안기부, 중앙정보부 관련 3명 △경찰 대공과, 보안수사대 관련 15명 △ 군보안사, 기무사 관련 20명 △옥중의문사 5명 △의문의 행방불명 5명 등3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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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왜 접수장으로 직접 가지 않고 탑골공원에 머물렀을까?
"우리는 의문의 죽음들에 대해서 단순히 사인에 대한 의혹을 풀어달라고 청원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권력의 이름으로 인간의 생명을 유린한 학살자들을 찾아내고, 이들을 처벌함으로써 역사의 정의를 다시 세우는데 있다는점을 천명하는 일이다. 우리는 민주주의 열망과 인간에 대한 존엄, 그리고 인간답게 살고자 했던 정의의 역사를 다시 세우려는 것이다"
의문사 진상규명 작업이 '허울좋은 여론 호도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자는 이유다. 국민연대는 '의문사 진상규명 특별법'에 따라 이뤄지는 진상규명 작업이 조사기간과 수사권 등 여러면에서 한계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연대는 특히 이번 의문사 진상규명조사를 담당하고 있는 '대통령 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이하 진상규명위)'측에 △독립적이고 공정하게 의문사 진상규명에 임해야 한다 △국정원, 기무사, 보안수사대 등 폭압기관의 압력에 굴하지 말아야 한다 △특별법은 반드시 개정되어야 한다 등을 주장했다.
또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성역없는 조사범위와 실질적인 조사권을 보장할 것 △실효성있는 조사기간으로 연장할 것 △의문사사건에 대해 국가가 배상할 것 △학살자를 처벌할 것 등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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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연대가 오늘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 접수한 의문사 명단은 다음과 같다.
1. 안기부, 중앙정보부 관련 (총 3명)
▣ 이내창(28세) 89. 8. 15 - 중앙대 안성교정 총학생회장으로 활동 중 8.15민족해방일 기념식을 앞둔 8월 14일 오전에 학교로 찾아온 안기부 인천 분실 직원 도연주 등과 나간 뒤 남해안 절해고도 거문도 앞 바다에서 15일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 박창수(34세) 91. 5. 6 -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으로 대우조선의 파업관계로 긴급소집된 대기업 노조연대회의에 참석했다 구속된 뒤 서울구치소에서 안기부로부터 전노협 탈퇴를 강요받던 중 안양병원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 이철규(25세) 89. 5. 10 - 조선대생으로 조선대 교지인 '민주조선' 편집위원장으로 활동하다 국가보안법 위반자로 지명수배된 뒤 광주 청옥동 제4수원지에서 의문의 사체로 발견되었다.
2. 경찰(대공과, 보안수사대) 관련 (총 14명)
▣ 정법영 78. 7. 8 - 청주신학대생으로 청주도시산업선교회에서 신흥제분, 조광피혁 노동자들과 함께 목숨을 건 4개월간의 단식투쟁으로 경찰의 집중표적이 된 후 괴한들에 의해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 문영수(30세) 82. 8. 19 - 진아교통 노동자로 광주 서부서로 연행되어 경찰들의 폭행에 의해 사망한 뒤 행려병자로 위장되어 사체는 전남대 의대에서 해부 실습용으로 이용되었다.
▣ 김성수(19세) 86. 6. 21 - 서울대 학생으로 총학생회 연극부에서 활동하다 정체불명의 사람에게 전화를 받고 집을 나간 뒤 부산 송도 앞바다에서 시멘트 덩어리에 매달려 있는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 우종원(28세) 86. 10. 11 - 85년 서울대 운동권에서 핵심적인 위치에 있던 그는 민추위 관련으로 수배를 받아오다 경부선 철로변에서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 고정희(29세) 88. 5. 13 - 연세대생으로 민족통일애국청년단 중앙본부에서 대통령 선거운동을 하다 서초서 대공과에 연행 당해 정신병원에 강제 수용된 뒤 강남 성모병원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 문승필 92.11. 2 - 전남대 학생으로 미문화원 시위로 구속되었다 석방된 뒤 92년 대선을 앞두고 경찰로부터 협박을 받아오던 중 행방불명되었다가 보름 후에 광주 보훈병원 영안실에서 변사체로 발견됨
▣ 김준배 (27세) 97. 9. 15 - 한총련 투쟁국장으로 활동하던 중 97년 9월 15일 은신해있던 후배의 집에 보안수사대가 들이닥쳐 검거하던 과정 의문의 추락사로 운명하였다.
▣ 김상원 (33세) 86. 5. 26 - 영등포에서 불심검문에 항의하다 연행된 후 경찰들에게 집단구타를 당해 행려환자로 위장되 시립병원에서 투병하다 운명하였다.
▣ 오범근 88. 3. 10 - 프레스공으로 작업중 네 손가락이 잘려 수위로 근무하던 중 노동자들의 파업농성에 적극적으로 지지표명을 해오다 회사측에 불려간 뒤 의문의 음독된 상태로 병원에 옴겨졌으나 운명했다.
▣ 문용섭 88. 6. 9 - 광무택시 노동자로 족벌체제로 운영되던 회사의 비리를 밝히기 위해 휴가를 요구하였으나 거부당하고 회사근처의 포장마차에서 회사간부와 깡패들과의 말다툼 끝에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 배중손 88. 11. 14 - 87년 8월 12일부터 16일까지의 회사측의 휴업조치이후 어용 노조의 민주화와 임금인상 투쟁에서 앞장서 싸워오던 중 회사측의 문책과 감시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 이재호(25세) 89.10. 29 - 인천 협신사 노동자로 회사측의 갖은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노동조합 재건과 관련하여 주안 노동사목에서 상담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둔기에 턱을 맞고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 김용갑 90. 3. 28 - 동우전문대 총학생회장으로 학원자주화 투쟁을 전개하던 중 의문의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학교측으로부터 공공연한 협박과 집단폭행을 당한 것으로 보아 교통사고로 위장한 타살로 추정된다.
▣ 이덕인(29세) 95. 11. 28 - 4급 장애인으로 아암도 바닷가에서 노점을 하던 중 인천시에서 경찰병력과 철거반원을 동원하여 강제철거하자 골리앗에 올라가 저항하다 실종된 뒤 아암도 바닷가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 박동학 (23세) 96. 5. 8 - 1996년 대구공전 동아리연합회 조직국장으로 학원자주화투쟁을 이끌다 5월 6일 온몸에 휘발유를 붓고 학생과장과의 면담을 요청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의문의 불이 붙어 8일 운명하였다.
3. 군(보안사, 기무사)관련 (총 20명)
▣ 임기윤(59세) 80. 7. 26 - 75년 결성된 '사회정의구현 부산 기독인회'의 회장을 지냈던 그는 국군 보안사령부 부산분실(속칭 삼일공사)에 연행되어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 정성희(21세) 82. 7. 23 - 연세대 학생으로 학교에서 있었던 시위 과정에서 연행되어 강제징집된 뒤 철책초소 야간 근무 중 총기에 의해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 허원근(23세) 83. 4. 2 - 부산수산대생으로 군 복무 중 유류고 뒤에서 세 발의 총을 맞고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다음 날이 첫 휴가였으며 한꺼번에 세발을 쏘아 자살을 할 수는 없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타살임이 확실하다.
▣ 이윤성(20세) 83. 5. 3 - 성균관대생으로 인문과학 연구회 회장직을 맡기도 한 그는 가두시위에서 연행된 뒤 강제징집되어 당시 군 강제징집자에 대한 보안대의 녹화사업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 한영현(22세) 83. 7. 2 - 한양대 학생으로 부천의 야학활동을 한 선배의 조사과정 중 그의 이름이 나와 조사를 받고 강제징집된 직후 보안대에 끌려가 조사를 받다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 최온순 83. 8. 14 - 동국대생으로 시위예비음모로 경찰에 연행되어 조사받은 뒤 강제징집되어 보안대의 녹화사업 과정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 한희철(23세) 83.12.11 - 군입대 후 시위주동자로 수배중인 친구에게 주민등록증을 발급 받게 하기 위해 동사무소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편지를 써 주었는데 이후 편지가 들통나고 보안대에 끌려가 조사를 받은 뒤 가슴에 총탄을 맞고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 김용권(24세) 87. 2. 20 - 서울대생으로 카튜사에 입대 후 보안부대로 호출된 뒤 프락치 행위를 강요받고 구타당한 뒤부터 정신불안에 시달려 병원치료를 받아오다 내부반 침대 난간에서 목을 맨 상태로 발견되었다.
▣ 노철승(23세) 87. 3. 1 - 광주상고를 졸업하고 수도방위사에 근무하다 머리에 총탄을 맞고 운명한 채 발견되었다. 당시 조대재학생이던 형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복역 중이었는데, 형과 주고받은 편지가 문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 이승삼(22세) 87. 3. 3 - 부산대생으로 36사단에 입대 후 자대배치 3일만에 중대장실에서 앉은 자세로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 박필호(22세) 87. 3. 19 - 부산대 의대생으로 자대배치 받은 지 일주일만에 화장실에서 목이 맨 시체로 발견되었다. .
▣ 박상구(21세) 87. 5. 11 - 군복무 중 평소 상관의 미움을 받다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 최우혁(22세) 87. 9. 8 - 서울대 학생으로 학생운동에 헌신하여 수차례의 구류를 살기도 했던 그는 군복무 중 사회과학서적을 읽다 보안대에 적발된 뒤 쓰레기 소각장에서 화염에 싸인 채 발견되어 운명하였다. .
▣ 정연관(22세) 87. 12. 4 - 군입대후 대통령선거 군부재자 투표날 운명. 군에서는 기합을 받다가 사망했다고 발표했지만 가족들은 "부재자투표에서 야당을 찍었다는 이유로 죽은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 우인수 88. 6. 24 - 성균관대생으로 군에 입대하여 포병연대에 근무 중 외박을 나왔다가 의문의 사고를 당하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운명하고 말았다.
▣ 박종근(26세) 88. 8. 1 - 동국대 경주분교 한의학과를 졸업하고 방위병으로 입대하여 근무 중 녹용이 든 보약을 상납할 것을 요구받고 이를 거부한 뒤 동사무소 창고에서 온몸에 불이 탄 채 발견되었다.
▣ 박성은(22세) 90. 5. 24 - 방위병으로 근무 중 부대 내에서 발생한 구타사건과 군부대 내의 비인간적이고 비민주적인 행태를 고발하는 문건을 작성한 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부대 내에서 조사를 받다가 행방불명된 후 거주지 근처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 남현진(22세) 91. 2. 3 - 한국외국어대생으로 학생회 간부로 활동 중 군 입대. 자대배치를 받은지 얼마되지 않아 부대 밖에서 목을 맨 상태로 발견됨. 상관이 "통일이 되면 우리의 적은 누구인가?" 라는 물음에 "미제국주의다"라는 대답을 한 뒤 의문의 죽음을 당함.
▣ 송종호(24세) 91. 2. 20 - 서울대생으로 학생회에서 활동하다 군에 입대한 뒤 포병부대에서 훈련 중 이동상황실 안에서 벽면 합판에 목이 매인 채 발견되었다.
▣ 김영환(27세) 91. 4. 27 - 고려대를 졸업하고 한겨레 사회연구소 연구원으로 한미군사관계, 평화, 군축문제, 남북관계, 통일문제 등을 연구하던 중 보안사의 추적을 받다 강경대 학생이 운명한 다음날 자취방에서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옥중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하신 분들(5분) >
▣ 최석기 1974. - 교도소에서 고문 중에 운명
▣ 박융서 1976. - 대전교도소에서 바늘찌르기 등의 고문으로 사망했다.
▣ 손윤규 1976. - 대구교도소에서 집단구타를 당한 후 단식투쟁을 하자 강제급식을 당하여 사망했다.
▣ 변형만 1980. 7. 11 - 장기수로 청주보안감호소에서 단식투쟁 중 강제급식으로 사망했다.
▣ 김용성 1980. 7. 11 - 장기수로 청주보안감호소에서 단식투쟁 중 강제급식으로 사망했다.
<의문의 행방불명 되신 분들 (전체 5명)>
▣ 김영근 76년 6월 1일 - 부익섬유 전무로 근무하며 유신헌법 반대 운동하던 중 행방불명
▣ 심오석 76. 11. 14 행방불명 - 경북대 의대 본과 1학년생으로 유신반대운동을 하던 중 동대구역에서 2명의 사람이 연행해간 후 행방불명
▣ 노진수 82. 4. 17 행방불명 - 서울대학교 법학과 1학년 재학 중 과대표 등을 역임하면서 학생운동을 하던 중 새벽 2시 30분경 서울대학교 앞에 위치한 한림원(독서실)에서 2명의 사람에게 연행된 후 행방불명
▣ 안치웅 88. 5. 26 행방불명 -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제학 중이던 1985년 구로동맹파업 과정에서 구속되기도 했던 안치웅은 행방불명되었다.
▣ 탁은주 91년 12월 10일 - 학생운동 중 행방불명
2000/12/28 오후 5:46:53
ⓒ 2000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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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
단식 농성에 들어간 사람 중 전가대협 중앙상임의장을 역임한 광가대연 93학번 정은성 베드로 형제님이 있습니다.
많은 기도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