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보선 전 대통령(尹潽善 (前大統領)
1897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하여 일본 유학후
중국임시 정부에서 활동을하다가 영국으로 유학을떠났습니다.
영국 에딘버러 대학교를 졸업하고 귀국 후
서울특별 시장, 상공부 장관에 취입되어 국정일을 하다가
1954년 민의원에 취임되어 민주당 최고위원을 지내다가
4.19 의거 후1962년 대한민국 제 2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5.16 혁명 후 하야 하여 민정당 대표을 하다가
1963년 5대 대통령에 입후보했다가(대통령 후보로는 민주공화당에
박정희, 허정,송요찬,오재영 등) 15 만표 차로 낙선되었습니다.
1967년 6대 대통령선거에서도 패하자 정계에서 은퇴하였습니다.
1973년 민청학련 사건, 1981년 YMCA 사건 등으로 옥고를 치루고
고생을 하다가 1990년 94세로 영면하였습니다.
1897년 8월 26일 충남 아산 ~ 1990년 7월 18일은 대한민국의
제4대 대통령 (1960년 ~ 1962년)입니다. 본관은 해평(海平).
호는 해위(海葦)입니다. 1962년 하야 후부터는 야당 지도자로 활동하였으며,
제5대 대통령 선거과 제6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도 하였다.
조선 말기 개화파 인사 윤치호의 종질입니다.
가족 관계
- 아버지: 윤치소(尹致昭, 1871년 8월 25일 ~ 1944년 2월 20일)
- 어머니: 이범숙 (李範淑, ? ~ 1969년 6월 18일)
- 아내: 공덕귀(孔德貴, 1911년 4월 21일 ~ 1997년 11월 24일)
- 첫째 아들: 윤상구(尹商求) 건축자재 사업가. 양은선의 남편.
- 둘째 아들: 윤동구(尹同求, 1952년 7월 12일 ~ ) 한국예술종합학교
- 미술원 조형예술과
- 첫째 딸: 윤완구(尹琓求, 1913년 12월 31일 ~ 2007년 3월 26일, 남흥우의 아내)
- 둘째 딸: 윤완희(尹完嬉)화가. 신준호의 아내.
해평윤씨(海平尹氏)에 대(對)하여
1. 시조 및 본관의 유래(始祖 本貫由來)
< 존칭 생략 하옵고>
해평 윤씨 (海平尹氏)의 시조(始祖)는 고려(高麗) 고종(高宗) 때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수사공(守司空)?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판공부사(判工部事) 등을 역임한 윤군정 (尹君正)이다.
군정(君正)의 아들 만비(萬庇)가 충렬왕(忠烈王) 때
(元)나라로부터 진국상장군(鎭國上將軍)?고려도원수(高麗都元帥)의 직위(職位)를 받았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해평 (海平)을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충혜왕(忠惠王) 때 좌정승(左政丞)을 지낸
석(碩)의 아들 지표(之彪)가 문하평리(門下評理)가 되어 원(元)나라에 다녀와
해평군(海平君)에 봉해졌으며, 아들 진(珍)이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로
해평군(海平君)에 봉군되어 가문을 빛냈다.
대호군(大護軍) 보(寶)의 아들 가관(可觀)은 우왕(禑王) 때 경상도부원수(慶尙道부元帥)로
함양(咸陽)에 침입한 왜구를 격퇴하여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에 올라,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를 지낸 창(彰)과 함께
현달하여 이름을 떨쳤다.
조선조(朝鮮朝)에 와서는 첨정(僉正)을 지낸 훤(萱)의 아들 은보(殷輔)가 학문으로
이름이 높았는데 성종(成宗) 때 문과에 급제하고 교검(校檢)으로 춘추관(春秋館)의
기사관(記事官)을 겸직,「성종실록(成宗實錄)」편찬에 참여하고 중종(中宗) 때
좌찬성(左贊成)?우의정(右議政) 등을 거쳐 1537년(성종 32) 영의정(領議政)에 올랐으며,
대사성(大司成) 은필(殷弼)과 함께 이름을 날렸다.
명종(明宗) 때 문과(文科)에 오른 두수(斗壽)는 1590년(선조 23) 종계변무(宗系辯誣)의
공(功)으로 광국이등공신(光國二等功臣)에 책록되어 대사헌(大司憲)?호조 판서(戶曹判書)
등을 지내고 영의정(領議政)에 올랐다.
특히 두수(斗壽)는 문장(文章)과 글씨에 뛰어나 문징명체(文徵明體)에 일가(一家)를
이루었으며, 슬하의 다섯 아들이 모두 급제하고 벼슬에 올라 좌찬성(左贊成)을 지낸
아우 근수(根壽)와 함께 명성을 날려 명문(名門)의 대(代)를 이었다.
그중에서도 맏아들 방(昉)이 인조(仁祖) 때 영의정(領議政)에 올라
부자영상(父子領相)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둘째 흔(昕)은 예조 참판(禮曹參判)을 거쳐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올랐고, 셋째 휘(暉)가 우찬성(右贊成)과
공조 판서(工曹判書)를 지냈고, 넷째 훤(暄)은 병조 판서(兵曹判書),
막내인 우(旴)가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에 이르러 훌륭한 가문임을 널리 알렸다.
방(昉)의 아들 이지(履之)는 판돈령부사(判敦寧府事)를 역임하였고,
신지(新之)는 선조(宣祖)의 부마로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소모대장(召募大將)으로
공을 세웠으며, 또한 순지(順之)는 훤(暄)의 아들로 예조판서(禮曹判書)?
대제학(大提學)을 지냈으며, 그의 증손(曾孫)으로 이조판서(吏曹判書)를 역임한
유(游)와 이조 참판(吏曹參判) 및 대제학(大提學)을 겸임하고 이어
예조 판서(禮曹判書)에 오른 순(淳)이 당대의 명필(名筆)로 이름을 떨쳤다.
이조 판서(吏曹判書)를 역임한 급(汲)은 글씨가 뛰어나 윤상서체(尹尙書體)란
독특한 서체(書體)를 이루었으며, 정조(正祖) 때 여러 판서(判書)를 거쳐
우의정(右議政)에 이른 기동(耆東)은 가문(家門)을 한층 빛낸 인물이다.
명문(名文)과 명필(名筆)로 명성을 얻은 근수(根壽)는 성리학에 능하였고
「 사서토석 (四書吐釋)」?「 월정집 (月汀集)」등의 저서(著書)를 남겼으며
동부승지(同副承旨)?대사성(大司成) 등을 지내고 주청부사(奏請副使)로
명(明)나라에 가서 종계변무(宗系辯誣)를 하고 돌아와 대사헌(大司憲)?
형조 판서(刑曹判書)?양관 대제학(兩館大提學) 등에 올랐다.
이 황(李 滉)?조 식(曹 植) 등과 학문을 토론하였고,
성 혼(成渾)?이 이(李 珥)와도 친분을 두터이하며 학문의 깊이를 더하였다.
그 밖에 은보(殷輔)는 성종(成宗) 때 문과(文科)에 급제한 뒤 「 성종실록 (成宗實錄)」?
「 연산군일기 (燕山君日記)」?「 대전후속록 (大典後續錄)」 등의 편찬에 참여하였고,
승길(承吉)은 찬성(贊成)에 올라 해선군(海善君)에 봉해졌으며,
승훈(承勳)은 승길(承吉)의 아우로 이조판서(吏曹判書)를 거쳐 영의정(領議政)을
역임하여 덕망높은 가문을 유명하게 하였다.
근대 인물(人物)로는 택영(澤榮)의 딸인 윤비(尹妃)가 방(昉)의 후손이고,
구한말(舊韓末) 개화당(開化黨) 내각(內閣)에서 군부 대신(軍部大臣)을
지낸 웅렬(雄烈)과 그의 아들 치호(致昊) 등이 가문을 빛냈다.
2. 해평윤씨 선조들의 인물
해평윤씨 선조들 중 큰 인물
성명 |
대 |
활동 시대 |
계급 |
활동 내용 |
역사적 사건 및 비고 |
윤신준 |
원조 |
1080년경 출생으로 짐작.고려16대예종,17대인종 |
문화시중,지금의 수상또는 국무총리 |
고려문신으로 문화시중을 지냄. 김부식과 국정에 참여 |
중국 금나라 세력확장, 이자겸의 난,묘청의 난 |
윤사공공 군정(君正) |
1대 |
1200년출생으로 추정.고려고종,원종 |
대장군,사공(정일품.읭의 최고 고문) |
몽고침략 시기에 장군으로 또는 문관으로 활동을 함 |
몽고 침략, 강화 천도.삼별초의 난
司空공은 정일품 |
윤제학공 윤방안 |
5대 |
고려 충숙왕 때 출생. 충정왕 .우왕 |
진현관 제학(정3품) 동지밀직사사(종2품) |
홍건적과신돈제거의 공을 세움.우왕시절 문화시중 이인임을 제거하려다 실패하여 참형을 당함 |
홍건적 란.신돈의 난 |
한성윤공 윤사영 |
6대 |
1360년대 출생. 고려 우왕, 공민왕,공양왕,조선태조 |
세자사.황해도 관찰사,사헌부 집의.호조참의.한성윤(종2품) |
25세에 급제. 고려말기 고려의 몰락과 조선시대 개막을 하는 시대의 왕권을 지키며 문관으로 활동 |
고려몰락,위화도 회군,왕자의난, 조선개국 |
윤택영 |
24대 |
1876년생1937년졸 |
해풍부원군 |
순정황후부친. 육군참모장,정일품 |
을사보호조약, 한일합방 |
순정황후 |
25대 |
조선고종,순종 |
동궁비.황후 |
광무10년에 동궁비로 책봉,다음 해에 순종임금이 등극하여 황후로 책봉. 1926년 순종이 후사없이 승하. 영친왕이 세자로 책봉되자 낙선제에서 한가로히 지내다 불교에 귀의.1966년 승하 |
한일합방, 대한제국, 묘지는 경기도 금곡 유능
윤덕영이 백부 임 |
윤덕영 |
24대 |
1873년생1940졸 |
경기관찰사,황해관찰사.철도원부총재.황후궁대부.영의정 |
21세 급제.순정황후 백부. 한일합방 때 시종원경(친임관대우)을 지냄 |
을사보호조약, 한일합방 |
윤숙영 |
24대 |
1874년생 |
황후궁대부.규장각제학 |
종2품.태극장훈장 |
을사보호조약,한일합방 |
윤치호 |
21대 |
고종,순종 |
한성판윤,독립신문사장.독립협회장.송도고 창립 |
일본,미국 유학 후 고국에 돌아 와만민공동회회장, 독립신문 사장등을 역임.연희전문 교장. |
을사보호조약, 애국가 작사. |
윤복영 |
24대 |
1868년 |
문신.백천군수.안악군수,통정대부.독립운동 |
군수역임.정삼품 당상관.중국망명,북로군고문,임정외교위원 활약. |
|
윤치영 |
21대 |
대한제국.일제시대.이승만대통령, 5.16혁명시대 |
대통령비서실장.국회의원.유엔총회 한국대표. |
1915년출생하여 일본,미국 유학, 독립운동연류 투옥,이승만대통령비서실장,내무부장관,공화당국회의원,공화당의장.서울시장.프랑스 대사.대한국민당 창당, 부통령 출마. |
8.15해방. 이승만대통령 시절, 5.16혁명. |
윤일선 |
22대 |
구한말,일제시대. 8.15 해방 |
의학박사,서울대총장,원자력병원장 |
일본유학 후 귀국하여 의사, 교수,서울대학교 총장 |
이승만대통령 시절, 5.16혁명. |
윤보선 |
22대 |
구한말1887년출생. 일제시대. 8.15 해방 |
대통령 |
영국유학.상해임정의원.서울시장,장관,국회의원, 1962년 대통령 |
|
윤극영 |
24대 |
1903년출생 |
아동문학가 |
일본유학하여 아동문학공부. 반달노래 작사작곡 |
|
윤기섭 |
25 |
1887출1959년졸 |
독립운동가 |
안창호와함께학우회조직.임정에서 활동광복후 임정요인과 귀국국회부의장, |
|
윤규섭 |
25 |
1920년생 |
독립운동가 |
일본 유학 중애지하조직에서 독립운동 대전형무소 옥고 치룸,독립유공자 |
한성윤공파 | |
윤태영 |
24대 |
철종1859생1932졸 |
종사품 호위군 |
조선시대 종4품에 속했던 무관직 호위군 으로 문무관의 보직이 없는 자 혹은 친공신(親功臣) 군영장관 등이 부호군직을 맡았다. |
윤홍섭의 부친 을사보호조약,한일합방 |
|
3. 해평윤씨 항렬표
4. 분파
- 문영공파 : 윤지현은 윤군정의 증손이다.
- 충간공파 : 윤지호은 윤군정의 증손이다.
- 오음공파 : 윤두수는 조선 선조 때 영의정으로 충간공파에서 갈라졌다.
- 월정공파 : 윤근수는 윤두수의 동생으로 대제학을 지내고 충간공파에서 갈라졌다.
- 치천공파 : 윤방은 윤두수의 아들이다.
- 장주공파 : 윤휘는 윤방의 동생이다.
- 백사공파 : 윤훤은 윤휘의 동생이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해평윤씨(海平尹氏)는
남한(南韓)에 총 5,489가구, 22,757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카페 게시글
忠孝禮,전통文化
[소개]
해평윤씨(海平尹氏)와 윤보선대통령
一川
추천 0
조회 156
10.08.20 18:54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