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감정들(3)-거룩한 사랑-
신명기 6:4~5,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찬송가 218장(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 안에는 지성의 활동도 있고 의지적인 결심도 포함되어 있지만 그 중에 신앙의 감정이라는 것도 신앙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행함 없는 믿음이 진정한 믿음이 아니듯이, 형식적이고 건조한 대화가 진정한 대화가 아니듯이, 참 신앙에는 반드시 신앙의 감정이 스며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 중에 오늘 우리가 살펴볼 내용은 거룩한 사랑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가 앞서 함께 읽은 본문 말씀인 신명기 6장 4~5절 말씀은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가르치실 때에 어떤 바리새인이 하나님의 모든 계명 중에 가장 중요한 계명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에 주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답변해주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은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태복음 22:37~40)
마치 농부가 많은 그릇이나 농기구를 헛간의 벽에 박아놓은 큰 대못에다가 이렇게 저렇게 줄줄이 걸어놓듯이, 성경에는 수많은 계명들이 기록되어 있지만 두 가지의 큰 계명의 대못에 다 매달리도록 정리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 큰 계명의 대못은 하나님에 대하여 온전한 사랑의 계명이요, 또 한 가지는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자기의 온 마음으로, 온전한 정신으로, 온 힘을 다 써서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큰 계명이요 또 한 가지는 사람이 자신을 뜨겁게 사랑하여 늘 위하듯이, 이웃과 친구와 모든 이들을 동일하게 사랑하라는 것이 두 번째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모든 감정의 근본으로서 여기서부터 모든 것이 흘러나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 상대방을 존중하고 즐거워하며 그와 한 마음이 되고 그가 기뻐하는 것을 행하게 합니다. 그가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며, 그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하게 됩니다. 사랑하게 되면 사랑하는 사람을 실망시킬까봐 늘 조심합니다. 사랑하는 대상을 위하여 일할 때 그 수고가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열심을 내게 됩니다. 또 그를 마음 아프게 하는 사람들을 보면 큰 슬픔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분노감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식어지고 사랑이 차갑게 가라앉으면 사랑의 샘에서 나오는 다른 감정들도 다 메말라집니다. 질투도, 열심도, 슬픔도, 연민도, 분노도 다 사라집니다. 그래서 사랑은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감정입니다.
신앙의 세계에서도 사랑은 다른 어떤 감정보다 더 중요한 감정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힐 때에 두려워서 그를 두고 도망치고 또 모른다고 부인하였던 제자들을 갈릴리 새벽 바다에서 또 다시 만나서 조반을 차려 먹이신 후에 제자들의 대표 격인 베드로에게 이렇게 질문하였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혹은 이것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고 하였습니다. 그 대답을 듣고 주님께서 다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내 어린 양을 먹이라”
고 사도의 사명을 재위임하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또 다시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동일한 대답과 예수님의 동일한 사도의 권위에 대한 재위임의 말씀이 반복되었는데, 또 다시 세 번째로 주님은 베드로에게 묻기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고 물으시고 베드로의 주님을 사랑한다는 대답을 들으시고 또 다시 사도의 권위를 재천명해주셨습니다. 이렇듯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을 세 번이나 반복하시고 베드로로부터 주님을 사랑한다는 대답을 듣고서 주님께서 세 번에 걸쳐 그에게 사도의 사명을 다시 선포하시는 이 장면에서 우리는 주님에 대한 사랑이 신앙의 가장 중요한 핵심 요소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신앙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주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나타나서 소아시아 지방의 모교회와 같은 에베소 교회에게 써 보내라는 메시지 내용을 보면 주님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는 신앙의 본질을 잃어버린 교회라고 말해줍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요한계시록 2:2~5)
여기서 보면 주님은 에베소 교회가 많은 신앙적 행위와 고난 중에 인내한 것과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하고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거짓 사도들을 드러낸 것과 부지런하게 일한 것들을 다 인정해주십니다. 그러나 한 가지 에베소 교회가 근본적인 점에서 크게 실패하였노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에 대한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돌이켜 그 처음 사랑, 첫 사랑의 순수한 주님에 대한 애정을 회복하지 않으면 주님은 에베소 교회에게 촛대를 옮기는 화를 내리시겠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이는 교회의 문을 닫아버리겠다는 무서운 말씀이요 하나님의 성령이 떠나시겠다는 경고인 것입니다. 그 만큼 하나님에 대한 사랑, 주님에 대한 사랑이 신앙의 근본적인 요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점을 기억하고 우리 주님에 대한 사랑, 우리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식지 않고 늘 뜨겁게 타오르도록 자신을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 마음속에 가장 간절히 바라는 존재가 주님이 아닌 다른 것들 예를 들면 세상 재물, 세상 쾌락, 세상 명예나 특정한 사람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을 설레게 하고 우리 마음을 뜨겁게 하는 존재가 주님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가장 열망하는 것이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뜨겁게 사랑한 사도였던 바울은 이렇게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성도들에게 주문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1 말씀에서 이르기를
“또 너희에게 명한 것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 개역 개정판 구절은 번역할 때 원문의 뜻을 제대로 살려서 번역하지 못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원문대로 해석하면 사도 바울은 이 본문에서 별개로 다음 세 가지를 성도들에게 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로 조용한 삶을 추구하라. 둘째로 자기 일에만 집중하라. 셋째로 땀 흘려서 일하라.”
는 것입니다. 특히 첫 번째 요구한 바가 바로 조용한 삶을 열렬히 추구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들떠 있지 말고 차분하고 고요하게 하라는 것입ㅁ니다. 생활을 무질서하게 하지 말고 무엇인가에 쫓기듯 바쁘게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만나 소란스럽게 지내면서 사람들과 몰려다니면서 먹고 마시는 일에만 급급하지 말고, 신기한 새로운 일을 쫓아다니지 말고, 마치 건달처럼 일도 안하면서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도리어 차분하게 조용히 자기 일에 집중하여 자기 생활을 잘 정리하면서, 자기의 손으로 땀 흘려 일하면서 자기의 먹거리, 생활의 필요를 채우면서 내실 있는 신앙 생활을 다하라는 명령인 것입니다. 요약하면 조용하고 차분한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을 힘쓰라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질문한 결혼 문제에 대하여서도 사도는 동일한 취지로 답변해준 적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7:25 이하를 보면,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스러운 자가 된 내가 의견을 말하노니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네가 아내에게 매였느냐 놓이기를 구하지 말며 아내에게서 놓였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 그러나 장가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이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형제들아 내가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라 너희가 염려없기를 원하노라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하까 하되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마음이 갈라지며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느니라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당하게 하여 흐트러짐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고린도전서 7:25~35)
고 하였습니다. 결혼 문제나 이런 저런 세상 일을 함에 있어서 사도가 추천하는 한 가지 중요한 기준이 무엇이냐면 바로 흐트러짐이 없이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흐트러짐이 없이 주님을 섬기는 것은 소란과 염려와 이런 저런 마음이 나뉘어짐이 없이 주님을 단순하고 순수하고 달디 단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즉 주님을 첫 사랑의 마음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사도는 바로 그렇게 첫 사랑의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기 위해서 마음을 흐트러뜨리는 것들을 내려놓고 되도록 생활을 단순화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월이 갈수록 힘써야 하는 일은 바로 주님과 호젓이 있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명한 데살로니가전서 4:11 말씀을 NIV 영어 성경에서는 번역하기를,
“Make your ambition to lead a quiet life.”
“조용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당신의 야망으로 삼으라”
고 번역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우리의 가장 중요한 사랑의 대상이신 주님과 호젓한 사랑을 가꾸어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주님께 기도하는 것과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는 시간을 늘리십시오. 이를 위하여 우리의 마음의 시선을 빼앗아가는 것들을 정리하도록 하십시오. 분요하고 소란스럽고 마음을 세속적으로 들뜨게 만드는 것들, 그러한 인간관계들을 정리하도록 하십시오. 주님과 더 밀접하고 차분하고 은밀한 사귐을 위하여 시간을 할애하도록 노력합시다.
사랑에는 함께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황량한 시내 광야로 이끌어 들이신 것도 그런 까닭입니다. 비유하자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어 자기의 신부로 삼고자 광야로 이끌어들여서 신부 수업을 하고 거기서 첫 사랑의 신접 살림을 차리신 것입니다. 거기 광야에서 사십년 동안을 하나님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간을 온통 할애하시고 집중해주셨습니다. 이스라엘도 그 광야에서 오직 별과 바람과 모래 사막 속에서 아무 것도 다른 것들을 볼 새도 없어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하나님과 사랑을 가꿀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자기 신부 이스라엘과의 둘만의 신혼 생활을 아무런 방해받고 싶지 않으셔서 고적한 장소인 광야를 택하시어 사십 년을 그렇게 함께 하신 것입니다. 그 광야에서의 첫 사랑의 선명한 기억 때문에 하나님도, 이스라엘 백성들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숱한 시험과 유혹과 압박과 생활의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믿음을 지켜갈 수 있었고,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붙들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냅시다. 호젓하게 마음을 가라앉고 차분한 중에 주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우리의 마음을 담은 언어로, 혹은 영의 언어인 방언으로 차분히 기도하며 주님과 함께 거하십시오. 그렇게 차분하게 호젓하게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기를 평생에 야망으로 삼으십시오.
그리할 때에 점점 우리 안에 주님의 그 사랑이 차오를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이 부어질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다시 뜨거워지며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가 더 깊이 깨달아질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을 위하여 우리가 행할 바를 알고 자원하는 심령으로 행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동일한 주님의 신부 된 다른 성도들을 향하여 뜨거운 형제애가 우리 심령에 새로워질 것입니다. 또한 믿지 않는 세상의 사람들에 대한 긍휼도 솟아나서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그들을 기쁘게 섬기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거룩한 사랑이 세월이 갈수록 점점 우리 삶 속에서 깊어지고 성숙해지고 강해지고 풍성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