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나라-김현종 연재소설

[김영훈]

아버지의 나라

- 보안사령부 1

소설가 (2011.문학시대 등단)

문학박사. 한국문학시대 편집위원

사람 하나쯤 소리 소문 없이 죽일 수도 있다는 협박과 달리 나의 자해(自害)의 결과는 보안사의 악행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증거가 되기에 충분했고, 그 안에서 자행된 고문 행위가 외부에 알려질 경우 군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가능성이 많았던 모양이었다. 그들은 손발이 묶인 채로 눈알이 터져 혼절한 나를 군단 직할 102후송병원으로 응급 이송하여 터진 안구를 치료했다. 아니 제거했다. 그들이 어떻게든 시력을 살려보려는 노력을 했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었지만 실제의 눈과 거의 구별이 되지 않는 의안(義眼)을 어디선가 구해 와 비어 있는 눈 자리에 감쪽같이 박아 넣는 데는 성공했다. 눈이야 보이든 말든 겉 보기에 이상이 없으면 된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기왕에 시력을 잃은 것 이렇게라도 해서 남 보기 흉하지 않게 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는지, 나는 모른다. 거두절미하고, 이렇게 해서라도 최종적으로 병신이 되긴 했지만 나는 이를 자괴하기는커녕 죽지 않고 살아 나온 것만으로도 만족하기로 했다. 목숨을 눈알 하나와 바꾼 셈이니 잘 한 일이라고 퉁 치기로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눈만 다친 게 아니었다. 실명의 충격이 워낙 커서인지 다른 상처는 뒷전이었다. 넘어지면서 발목이 부러진 것이다. 묶인 채로 넘어져 복합 골절이 된 탓에 뼈가 붙는 데 3개월이 걸렸고, 그 기간 동안 나는 꼼짝없이 침대에 갇혀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병원에서의 갇힌 시간은 마냥 더디게 지나갔고, 이에 반비례하여 깊이를 잴 수 없는 서러움이 빠르게 밀려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커지기 시작하는 번민으로 인해 불면의 밤이 이어졌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좋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다른 곳과 달리 눈이라는 게 ‘눈만 뜨면’ 즉각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라 다치기 이전의 사유 방식이나 행동 양식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정상적인 사유 체계가 곧잘 왜곡되거나, 중간에서 뭉텅뭉텅 잘려 나가기도 했고, 극단이나 외곬수로 치닫는 경우도 있었다. 육체적인 외상도 심각했다. 한 쪽 눈만으로는 정확한 거리를 잴 수 없어 손놀림이 어색해졌고, 몸의 균형을 잡기도 어려워졌다. 똑바로 서 있기도 힘들었고, 반듯하게 걷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한 쪽 남은 눈의 시력도 덩달아 나빠지고 있었다.

그들은 보름 동안이나 나를 가둔 채 온갖 고문과 협박으로 범죄 사실을 입증해 내려 애썼지만, 동경사 김 일병과의 관계라는 것이 상황병이라면 누구나 통할 수 있는 정도의 일상적 내용이었고, 밤중에 후임병을 데리고 OP지역에 갔다는 것도 그것이 월북을 위한 의도적 행동이었다면 상황병으로서 직책이 직책인 만큼 부대의 작전계획이 담긴 비밀문서라든가, 하다 못해 총 한 자루, 지도 한 장이라도 챙겼을 텐데 아무 것도 없는 맨몸이었으며, 게다가 군화도 아닌 영내화를 신고 있었다는 점, 월북에 대한 이야기는 후임병에게 전혀 꺼내지 않았다는 점, 아버지가 북한에 살고 있다고는 하나 사전에 접촉한 사실을 증명할 만한 물증이 아무 것도 없다는 점 등은 나를 월북 기도자로 몰아가기엔 아무래도 무리였던 모양이었다. 그래도 그들은 막무가내로 나를 고문하여 자백을 받아내면 그것으로 월북 기도자의 사전 검거 실적을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단순히 신원부적격자인 나를 이렇게까지 엉망진창으로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보안사라는 부대가 군의 기밀을 유지하고 국가의 안보를 보장하려는 목적으로 설립한 부대가 아니라, 고문과 자백을 통해 없는 사실을 억지로 꿰맞추어 범죄자를 만들어 내는 탈법적 집단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병원에서 3 개월을 보낸 후 검정 색 선글라스를 끼고 의병 제대하게 된다. 이 나라의 군대는 앞길이 구만리 같은 청년의 눈알을 생으로 뽑아 병신을 만들고 나서야 풀어주었다. 이 나라의 군대는 제 나라 국민을 개처럼 패고, 물어뜯고, 짓밟고 나서야 내동댕이쳤다. 이 나라의 군대는 한 인간의 인격을 처참하게 무너뜨리고, 아무런 법적 절차도 없이 함부로 전횡하여 너덜너덜한 피떡으로 만들고 나서야 놓아주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행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그 어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제 나라 백성을 이렇게 함부로 유린하고, 때리고, 짓밟고, 목숨까지 빼앗으려 하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이유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장차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구명하는 일과, 가능하다면 이러한 부당한 현상을 회복시키는 일에 나의 남은 눈알 하나를 마저 깨뜨리기로 작정한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한 계절을 병원 침대에 누워 불면으로 밤을 지새우면서 보내게 된다.

그러나 나는 사실 생각만 그렇다 뿐 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한 어떤 구체적인 자료나 정보가 전혀 없었다. 심지어 나를 심문한 수사관이 누구인지조차 몰랐다. 보안사 건물에 구금되어 있었을 뿐 나를 심문하던 이가 보안부대원인지, 아니면 헌병이나 경찰, 또 아니면 내가 모르는 어떤 다른 정보기관원인지 몰랐다.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가해자가 누구인지 알아야 했다. 나를 가해한 쪽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피해자는 분명히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가해한 사람이 누구인지부터 알고자 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배후에서 나를 전횡하도록 조종하고 지시한 실체가 누구인지에 대해 알고자 했다. 입원해 있는 동안 나는 오로지 그 생각만 했다. 어떻게 하면 그의 인적사항을 알아낼 수 있을까? 이름조차 모르는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지? 그가 누구인지도 모른다면 나의 복수심은 헛된 칼날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숙고하고 숙고한 끝에 그 수사관의 인적사항만 알려준다면 나의 실명 원인에 대해 일체 함구할 것을 약속했고, 그것만 알려준다면 단순한 업무상 재해로 처리되어도 무방하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나는 군대 생활 도중에 생긴 장애인만큼 상이군인으로서 의당 받아야 할 일체의 보훈 혜택도 받지 않겠다고 했다.

보안사가 내 흥정에 응했다. 보안사는 나에게 장차 부상 원인 조사차 병실을 찾게 될 의무 장교에게 이렇게 말해 주기를 바랬다. 눈알이 터진 원인은 ‘나뭇가지에 찔려서 그리 된 것이다.’라고. 온 몸에 난 타박상과 발목이 부러진 원인은 ‘눈이 찔려 넘어지는 바람에 구르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상처다’라고. 나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 주겠다고 했다. 단, 한 가지 조건만 들어 주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처음에 그들은 내가 제시하는 조건이 무슨 대단한 것이라고 여겼는지 일체의 청취를 거부하다가, 내 요구 조건이란 게 단지 나를 심문한 수사관의 소속과 이름만 알려주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들은 ‘별 얼빠진 놈 다 보겠다’는 듯 조금도 망설임 없이 즉각 그의 소속과 계급, 이름을 알려 주었다.

‘육군 보안사령부 소속, 계급 중사, 성명 이 용래’

나는 그의 인적 사항을 듣고는 그만 맥없는 허탈감에 빠지게 된다. 일개 하사관에게 속절없이 당했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개새끼한테 물린 기분이었다. 그것도 똥개새끼한테. 별 대단치도 않은 정보가 담긴 메모지 한 장과 나의 소중한 모든 것을 송두리째 맞바꾸었다는 억울함마저 들었다. 이깟 걸 알자고 내가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모든 것을 양보했는지 스스로 한심할 정도였다. 장교도 아닌 일개 하사관에게 이처럼 처참하게 깨졌다는 것에 기가 찼다. 하사관이 이 정도라면 보안사령부라는 조직이 군대 내에서 저지르는 만행이 얼마나 심각한 지를 가히 짐작할 수 있게 해 주는 대목이기도 했다. 혐의만으로 범죄 사실을 귀납하려는 의도는 법률상의 권력을 오용하고 남용하는 자들의 공통적 속성이다. 나는 그런 부당한 권력에 걸려 그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 것이다. 나 같은 인간은 아무렇게나 막 대해도 된다는 공공연한 내부 강령이 있지 않은 다음에야 내게 이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그들이 제시한 모든 서류에 서명을 해 주었다. 서명을 하면서 나는 길고 긴 싸움이 시작되고 있다는 감회에 젖었다. 그들이 정말 나를 월북 기도자로 보았다면 그들은 내가 요구하는 조건을 들어주지 말았어야 했다. 더욱이 자기 조직원의 생사가 달린 문제라면 당연히 거부했어야 했다. 피해자가 요구하는 조건에 가해자가 합의한다는 것은 피해자에게 행한 부당한 가해 사실을 스스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들은 나의 요구 조건을 수용함으로써 자신의 범죄 사실을 시인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시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 했다. 나의 요구 조건이란 게 그들이 보기에 터무니없이 얼토당토않은 것이라 범죄 사실을 자인하는 뉘앙스로 읽혀지지 않아서일까?

대체로 어떤 조직이 있을 때 그 조직이 온당하고 제대로 된 집단이라면 자기 구성원을 보호해 주는 최소한의 의리는 지켜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보안사라는 조직은 도마뱀 꼬리 자르듯 제 조직원의 신상 정보를 노출시켰다. 그 정도 정보라면 얼마든지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서, 당치도 않지만, 원래는 잘 알려주지 않는데 이번만은 특별히 아량을 베풀고 있다는 자만심까지 내비치면서 그들은 제 조직원을 발가벗겨 물가에 내놓았다. 절대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보안사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 용래 중사는 자기 조직에 해를 끼친 인물에 불과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사적인 복수심을 품고 해코지할 지도 모르는데 섣불리 자기 부대원의 인적 사항을 알려줄 리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를 나의 칼 끝에 세우는 일에 전혀 망설임이 없었다. ‘네가 한 짓이니 네가 책임져라’ 이런 식이었다. 요컨대 이 용래 중사는 옷에 묻은 먼지나 티끌처럼 툭툭 털어내 버리면 그만인 귀찮은 존재가 되고 만 셈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용래 중사가 나를 함부로 했던 것처럼 보안사는 이 중사를 함부로 내다버린 것이다. 이렇게 보니 보안사는 제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제 식구를 가차없이 버릴 수 있다는 수심(獸心)으로 위장된 집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보안사라면 한번 붙어 볼만하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자신의 조직원들을 보호해 주지 않는 조직이라면 그 결속력은 의외로 허술할 것이다. 이 중사는 사고 직후 문책을 받고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갔다고 했다. 자의반 타의반의 인사 조치였을 것이다. 이제 나의 목표가 확실해졌다. 길이 뻥 뚫렸다. 가야 할 길이 훤히 보였다. 가해자의 인적사항 확인을 통해 배후 세력의 실체를 알게 된 것이다. 그들이 그 답을 알려주었다. ‘보안사령부’였다.

사고 소식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아 문병 오는 사람이 없었는데 어느 날 한 양주가 면회를 왔다. 뜻밖이었다. 생각해 보니 나 같아도 입대 동기가 갑자기 사라졌다면 분명 그 행방을 찾아보았으리라. 훈련소부터 함께 고생했고, 같은 부대로 자대 배치 받은 동기라면 의문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 동기가 어느 날부터인가 보이지 않자 나의 행방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알 만한 사람들에게 수소문해 보았을 것이고, 종당에는 내가 보안부대에 끌려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테고, 거기서 부상을 당해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것을 알아냈을 것이다. 이런 문제는 아무리 감추고 숨긴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부대에서도 나의 행방을 숨기는 일은 나를 다치게 한 공범의 혐의를 스스로 자초하는 것이 될 테니 한 양주에게 나의 근황을 알려 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한 양주는 정기 휴가 나오는 길에 잠시 들렀다면서 들고 온 음료수 박스를 내려놓고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았다. 반갑기 짝이 없었으나 그가 벙커 작업병으로 고생할 때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 자격지심이 있어서 반가움 반 서먹함 반으로 그를 맞이했다. 그는 나를 보자 부상 정도가 예상보다 큰 것을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일부러 찾아온 동기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눈이 하나 없어도 그다지 불편하지 않다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상처의 아픔을 들춰내 보여 주고 싶지 않은 자괴감으로 인해 나도 모르게 침울해지고 말았다. 한 양주가 그런 내 심정을 슬쩍 비끼며 음료수 병 뚜껑을 따 내밀었고, 나는 그가 내민 병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손이 거리를 맞추지 못해 짧은 허공을 더듬었다. 한 양주가 제 손을 뻗어 내 손을 잡고는 병을 쥐여 주었다.

“오기 전에 대강 얘기는 들었다.”

“네가 면회 올 줄은 몰랐다 야.”

“그 자식들...... 그럴 줄 알았지.”

“무슨 뜻이야?”

“보안사에 끌려갔었다며?”

“그랬지.”

“그래서 겸사겸사 온 거야.”

‘겸사겸사 왔다는 게 무슨 뜻일까?’

의아해 하며 물었다.

“너도 보안사한테 무슨 일 당한 거야?”

“그게 아니구. 보안사에 대해서는 내가 좀 아는 바가 있어서......”

“그래? 잘 되었다. 나도 궁금한 게 많았는데.”

“그건 나중에 차차 얘기하기로 하구. 도대체 거긴 왜 잡혀간 거야?”

생각하기도 싫은 일들이 치밀어 올라왔지만 나를 만나러 일부러 와 준 한 양주에게라도 털어 놓으면 그나마 막힌 속이 풀릴 것 같았다.

“말 해 주지. 다 말해 주지. 말 못 할 게 뭐 있어?”

나는 한 양주에게 나의 집안의 내력이나 아버지가 월북한 사실, 보안사에서 고문당한 일, 눈을 다치게 된 경위 등을 늦장마에 다락논 물 넘치듯 소상히 말해 주었다. 그는 붕대에 감긴 내 눈과 깁스한 다리를 번갈아 만져 가며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특히 보안사에 대해 얘기할 때는 내가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을 지적하기도 하면서 한 마디씩 툭툭 던지는 말 속에 그가 보안사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특히 고문당한 얘기나 눈을 다치게 된 경위를 말할 때 그는 우리의 대화 내용이 옆 침대 사람에게 들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암시로 깁스한 다리에 손가락 노크를 두드려 신호를 보내기까지 했다. 그러나 나는 개의치 않고 속내를 털어냈다. 이야기를 끝내면서 “내 언젠가 보안사령부의 실체를 파헤쳐 그 만행을 온 천하에 알리고, 나를 이렇게 만든 놈에 대해서도 반드시 피로서 복수할 거야.”라며 앞으로의 계획까지도 말해 주었다. 굳이 이런 말까지 할 필요까지는 없었지만, 나는 이러한 언술행위를 통해 주술로 신탁을 거는 사제처럼 입 밖으로 속내를 드러냄으로써 내 결심이 중도에 흔들리지 않기를 바랬다.

한 양주는 내 이야기가 끝나자 슬그머니 어디론가 나갔다가 휠체어를 한 대 끌고 나타났다. 그가 눈짓으로 휠체어에 타라는 신호를 보냈다. 우리는 2층 베란다로 나갔다. 날씨가 쌀쌀해진 탓에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한 양주가 호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냈다. 나도 자연스레 손이 갔다. 오래간만에 피우는 담배라 핑 돈다. 병원 담장을 따라 늘어선 플라타너스 숲길 사이로 철 이른 외투를 여며 입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눈을 다친 이후 처음 나와 보는 바깥 풍경이었다. 낯선 곳에 와 있다는 느낌이 불어오는 바람에 툭툭 낙엽을 떨구고 있는 플라타너스의 마른 가지에도 묻어 있었다.

한 양주가 피우던 담배를 비벼 끄며 말했다.

“너 1.21 사태 알지? 김신조 부대가 청와대를 습격한 사건.”

나는 병원 아래 숲길로 향했던 시선을 옮겨 바깥 풍경보다도 더 뜬금없는 소리를 하고 있는 한 양주를 올려다 보았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나는 꽁초를 끌만한 곳을 찾지 못해 손톱으로 불씨를 탁탁 털어내며 대답했다.

“알다마다. 그 땐 곧 전쟁이 터진다고들 했으니까. 우리가 입대하기 한 삼 사 년 전이었던가?”

“그렇지. 너 그 사건으로 인해 가장 먼저 지휘관이 교체된 부대가 어딘 줄 알아?”

나는 꽁초를 휠체어 바퀴에 비벼 끄고는 그를 쳐다보았다. 그가 묻고 답했다.

“바로 보안사령부야.”

“무장공비 침투 정보를 사전에 알아내지 못한 책임을 물은 거겠지.”

나는 그 정도쯤이야 얼마든지 예상할 수 있는 결과라고 눙쳤다.

“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대통령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대가 바로 보안사령부라는 뜻이기도 하지.”

“그렇구나. 나는 전혀 몰랐다.”

“두고 봐. 보안사령부가 앞으로 이 나라를 크게 뒤흔들 때가 올 거야.”

“왜 그렇게 생각하지?”

“박 정희가 권력을 잡은 수단이 뭐였어?”

“군대의 힘이었지. 총과 칼의 힘.”

“그렇지. 무력이었지.”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무력으로 권력을 잡은 박 정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대가 바로 보안사령부인데 그 보안사령부가 앞으로 어떤 식으로든 무슨 큰 일을 벌이지 않겠어?”

나는 한 양주가 보안사령부에 대해 그렇게까지 소상히 알고 있을 줄 몰랐다. 그렇다면 앞으로 그를 통해 보안사령부의 실체에 보다 쉽사리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거라는 희망이 생겼다. 그러나 그는 그 말을 끝으로 면회시간이 다 되었다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고, 내가 탄 휠체어 주위를 일삼아 한 바퀴 돌고는 허리를 숙인 채 소리를 죽여 말했다.

“너 아까 내게 한 얘기 아무한테도 하지 마라.”

“무슨 얘기?”

“보안사령부를 파헤쳐서 그 진상을 낱낱이 알린다고 한 말.”

“왜지?”

한 양주가 의미있는 웃음을 지으며

“목숨은 하나잖아?”라고 말했다.

취조실에서 고문받던 일이 떠올라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말하면 누가 날 죽이기라도 한다는 거야?”

한 양주가 호주머니를 뒤져 담배 두 개비를 꺼내 한입에 물고 불을 붙여 건네며 말했다.

“복수를 하려면 길게 보란 뜻이야.”

그는 앞으로 시간을 두고 보안사령부에 대해 공부해 보라고 했고, 자세한 얘기는 제대 후 만나서 해도 늦지 않다며 그날은 그렇게 헤어졌다. 만감이 교차했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는 무언가 길이 보이는 것 같았는데 이제는 도로 까마득히 멀어져 간 느낌이었다.

나는 군대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집으로 돌아왔다. 물론 어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단박에 내 한 쪽 눈이 실명된 것을 알았지만 나는 훈련 중 사고로 그렇게 되었다하고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실명 원인을 얘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버지 없이 산 세월도 눈물 바다인데 나까지 근심을 더하면 어머니는 버텨내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나는 실명이 가져다 준 불편함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며 어머니를 달래는 수밖에 없었고, 다행스럽게도 어머니 역시 돌이킬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뒤돌아보지 않는다는 신념을 갖고 사시는 분이라 더 이상 길게 묻지는 않았다. 아니, 함구하기로 마음잡수신 것이 분명했다.

나는 당분간 좀 쉬기로 했다. 바로 복학을 할 수도 있었지만 실명의 원인을 묻는 지인들의 질문에 대꾸할 일이 끔찍했다. 동기생이나 나를 아는 선, 후배들이 모두 졸업한 후에 복학하기로 마음먹었다. 대신 나는 제대할 때 결심했던 일이나 시작해 볼 요량으로 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했다. 오전에는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처럼 도서관으로 가서 보안사령부에 대한 자료를 갯바닥 훑듯이 뒤졌고, 오후에는 싸간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우고는 도서관 뒷산의 능선을 따라 이어진 둘레길을 도는 것으로 하루의 일과를 반복했다. 오후에는 도저히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한 쪽 눈만으로 책을 보아야 하는 까닭에 오후가 되면 안압이 높아지고 눈이 충혈돼 글씨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료 조사의 방향을 몇 갈래로 나누어 잡았다. 우선 보안사령부의 설립 연혁이나 기관의 명칭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고, 설립의 목적이나 임무, 기구와 조직도, 역대 사령관 명단, 주요 활동 내용 등을 논문의 1차 자료 수집하는 방식으로 모았다. 어느 정도 자료가 쌓이면 그것을 유형별로 나누어 파일철에 정리하였다. 현장 조사나 사건 당사자와의 면담 등은 1차 자료 조사가 마무리 된 후에 진행하기로 하였다. 물론 자료 조사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보안사령부에 관한 자료는 그 양이 적기도 하지만 일반인의 열람이 금지된 것이 많았다. 또한 복사가 허용되지 않은 관계로 일일이 필사하는 번거로움이 있었고, 심지어는 책 한 권을 통째로 필사하기도 했다. 사진 자료도 원본과 똑같이 그려서 한 장 한 장 철해 나갔다. 그러나 정작 자료 수집의 어려움은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는 수작업에 있지 않다는 점이 문제였다. 그것은 바로 해당 자료의 대부분이 자신들의 사업을 정당화하거나 자화자찬하는 내용들 투성이라 이를 과연 팩트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었다. 몇 번이나 이게 다 부질없는 짓이라는 자학에 빠져 포기하려고도 했지만, 억울하게 터져나간 실명된 눈을 떠올릴 때마다 복받쳐 오르는 증오심이 스러져가는 의지를 다잡게 했다. 1차 자료는 어차피 정보 수집 차원이니까 사실성이나 진실성 여부와 상관없이 되도록 많은 자료를 다양하게 수집하기로 했다. 힘겨운 나날을 그렇게 보냈다.

1 년쯤 지나자 다니던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모든 자료의 섭렵을 끝낼 수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원하던 만큼의 자료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제는 국회도서관이나 국립중앙도서관에 가 보아야겠다고 기지개를 켜던 즈음 한 양주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는 정해진 의무 복무 기간을 채우고 무사히 군대 생활을 마쳤다. 나는 편지를 받는 즉시 답장을 했고, 그는 지금 시골 집에 내려와 있는데 농사일 돕느라 바쁘니 나더러 자기 집으로 오면 어떻겠냐는 서신을 보내왔다. 나는 답장 대신 간단한 짐을 챙겨 한 달음에 그를 만나러 갔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예정에도 없는 3년을 보내게 된다.

그의 집은 경기도 이천의 한 시골 마을이었다. 부농은 아니었지만 수리답 농사를 제법 크게 지어 살림이 택택해 보였다. 예로부터 이천은 남한강 가에 위치하여 토질이 비옥하고 기후가 좋아 ‘경기미’라는 진상미(進上米)를 생산하던 곡창지대였다. 그래서인지 한 양주네 집뿐만 아니라 동네의 다른 집들도 마당이 널찍널찍하고 집도 번듯했으며, 고샅도 잘 다듬어져 있어 버스도 어렵잖게 지나다니고 있었다.

늦가을의 시골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정도였다. 처음엔 하루 이틀 묵었다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타작마당 구경나갔다가 우연히 볏단 지어 나르는 일을 돕게 된 것이 빌미가 되어 그대로 눌러 앉게 되었다. 그것은 아들이라곤 한 양주 하나밖에 없는 그의 부모님의 바람이기도 했고, 자기 대신 부모님 농사일을 거들며 자기가 졸업할 때까지만이라도 아들처럼 있어주면 어떻겠냐는 한 양주의 제안이기도 했다. 나 또한 늙은 어머니에게 얹혀 사는 것도 눈치가 보이는 터라 냉큼 그러마고 한 것이 내리 3년을 살게 된 것이다. 농사를 져 본 경험이 없어 서툴긴 했지만 나이가 젊은 탓에 힘 쓰는 일 하나만 추어도 시골에서는 상일꾼 대접을 받았다. 이후 나는 그렇게 한 양주의 아버지를 도와 농번기에는 농사일을 거들면서, 농한기에는 서울을 오가면서 보안사령부와 관련한 자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첫 서리가 내려 둔덕이 하얗게 덮일 쯤에서 가을걷이가 끝났다. 한 양주와 나는 안채에서 차려준 늦은 저녁을 먹고 느티나무 밑 평상에 나와 담배를 나눠 물었다. 이천에 내려온 지 여러 날이 지났지만 그 동안 서로가 바빠 좀처럼 한가한 시간을 내지 못했었다. 이 마을 한 가운데에는 수령이 좋이 300년은 됨직한 느티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데, 거기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이 나무와 친구가 되었다. 나무는 어찌나 실하게 잎을 피워 내는지 아무리 더운 여름 날에도 그 밑에 들어가 앉았으면 금새 등골이 시원해졌고, 바람을 사람 말소리로 다듬어 내는 재주라도 가졌는지 건듯 부는 바람에도 잎들은 여간 수다스러운 게 아니었다. 봄이면 연둣빛 신록을 나무 등걸 어디에 감추어 두었다 꺼내는지 윤나게 닦아 피워냈고, 가을이면 제 아래를 지나는 사람들 머리 위로 낙엽을 던져대며 장난을 걸어오기도 했다. 겨울에도 찬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 구실에, 포근한 눈꽃도 그득히 피워 내 어느 한 철 벗 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나는 느티나무 밑에 앉아 오늘쯤 한 양주의 입에서 그 동안 미루어 두었던 보안사령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대했다. 밤 벌레들이 외등 밑에 몰려와 왁자지껄 소란을 떨고 있었다. 제법 몸집이 큰 나방들은 달구어진 전등 알에 함부로 몸을 부딪치며 맴돌이를 했고, 잔잔한 하루살이 떼도 몰려와 뽀얗게 달무리를 지었다. 한가로운 저녁 한 때였다. 의안을 가리느라 썼던 색안경을 벗자 밤 바람이 눈에 시렸다. 그래도 시야는 가려진 장막을 걷어낸 것처럼 시원하게 트였다.

“시골이라 불편하지는 않냐?”

한 양주가 손가락에 끼웠던 담배 꽁초를 튕겨 내고는 등 뒤로 양팔을 펴 몸을 길게 늘이면서 물었다. 나는 평상에 드러누워 손으로 베개를 만들어 괴고는 위를 올려다 보았다. 하늘가에 남은 노을 빛이 마른 느티나무 잎사귀를 들추며 새어 들어왔다.

“불편한 게 다 뭐냐? 고향에 온 것처럼 아늑하고 좋기만 하다.”

“말은 그래도 도시보단 불편한 게 많을 거야.”

“여기에 댈 게 아니지.”

나는 한 양주 쪽으로 몸을 돌려 누우며 말했다.

그가 내게로 고개를 돌려 말했다.

“앞으로 어떡할 거야? 복학해야지?”

“하긴 해야지. 하지만 당장은 아냐.”

“나는 내년 신학기에 복학할 건데.”

“너야 당연히 그래야지. 나는 내 동기생들이 다 졸업한 다음에나 복학할 생각이다.”

“그래?”

그가 나를 돌아다보았다. 복학을 늦추는 이유를 묻고자 하는 눈치였지만 무슨 궁리를 하고 있는 듯 말을 사렸다. 내 심정을 읽었으리라.

“너, 바로 복학 안 할 거면 나 졸업할 때까지 여기 있으면 안 되겠냐?”

전혀 뜻밖의 이야기라 어리둥절해 물었다.

“나보고 여기서 살라고?”

“그래. 나 졸업할 때까지.”

며칠 다니러 오긴 했지만 눌러 살 생각은 못했던 터라 다음 생각을 이어내지 못했다.

“꼭 그래야 할 이유라도 있는 거야?”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니구. 네 동기들 다 졸업한 다음에나 복학한다니까 하는 말이야.”

“네 부모님이 좋아하실까?”

“그건 걱정 마. 네가 간다고 하면 더 서운해 하실 분들이니까.”

“그걸 네가 어떻게 아냐?”

“어떻게 아냐구?”

한 양주가 쿡 웃음을 짓고는 길게 드러누우며 말했다.

“너는 형제가 몇이냐?”

“뜬금없기는. 누이가 하나 있지.”

“그럼 나보다 낫군. 난 독자야.”

“그게 어디 네 탓이냐? 네 부모님 탓이지.”

“그게 아니니까 문제지.”

“무슨 소리야?”

나는 한 양주를 향해 몸을 일으키고 앉아 물었다.

한 양주도 나 쪽으로 몸을 돌려 누우며 말했다.

“원래는 나까지 4남매를 두셨다는데 6.25 때 위로 셋을 모조리 잃으셨단다. 맏이는 피난 가다가 포탄 파편에 잃고, 둘째와 셋째는 1.4후퇴 때 홍역으로 잃고. 그래서 졸지에 내가 독자가 된 거지.”

“부모님 둘 다 무던해 보이신다 했더니 그런 일이 있었구나. 자식은 가슴에다 묻어 계시네.”

우리는 평상에 나란히 누워 밤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어둠 속에서도 흘러가는 구름이 보였고, 들녘을 건너온 바람이 느티나무를 흔들자 떨어지는 낙엽들이 날개를 단 바람개비처럼 이리저리 흩날렸다.

한 양주가 내가 벗어 둔 선글라스를 장난삼아 썼다 벗으며 말했다.

“눈이 많이 불편하지?”

“꼭 그렇지도 않아.”

“운전도 못 한다고 하더라.”

“그건 그렇지. 거리감이 없으니까.”

“너무 맘 상해 하지 마라.”

“그러기로 했어. 어차피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니까.”

“억울한 것으로 치면 너 못지 않은 사람도 많아.”

“누가 또 군대에서 잘못됐냐?”

“아니. 그런 건 아니구.”

한 양주가 말을 끊고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내 물었다. 원래 말수가 적은 그가 담배 한 대가 다 탈 동안 아무 말이 없더니 나를 돌아다보며 말했다.

“너 우리 동네가 아늑하고 좋다고 했지?”

“그래 보여.”

“겉 보기엔 그렇지. 하지만 알고 보면 사연이 많은 동네야.”

“무슨 일이 있었는데?”

“네가 보다시피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곡창지대야. 논농사에는 최적지지.”

“살기 좋은 곳이라는 얘기로 들려.”

“살기야 더할 나위 없이 좋지. 문제는 사람이야.”

“사람?”

“그래. 사람”

“이 작은 마을에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그게 그렇지가 않아. 마을 사람들끼리 서로를 죽고 죽이는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던 적이 있었으니까.”

“그게 언제적 얘긴데?”

“6.25 직후였다더군.”

나는 한 보림의 외가 쪽 이야기가 떠올랐다. 한 보림의 외가였던 서산 지역에 지주와 소작인들 간의 다툼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시골은 다 비슷한 상황이었나 보다. 나는 한 양주에게 인민군 점령 하에 시행된 토지개혁과 관련해 일어난 한 보림의 외가쪽 사건을 들려주었다. 한 양주는 내 얘기를 다 듣고 나더니 “그건 이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에 비하면 약과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덧붙여,

“너 CIC라고 알지? 그 동안 보안사령부 자료를 수집했으니까 잘 알겠네?”라고 물었다. 나는 속으로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보안사령부에 대한 얘기가 나오겠구나 가늠하면서 그 동안 공부했던 내용들을 상기하며 한 양주의 질문에 답했다.

“CIC는 ‘방첩대’의 영문 약자야. 지금의 보안사령부의 전신(前身)이지.”

“맞아. 방첩대. 명칭이 여러 번 바뀌었지 아마?”

“맞아. 여러 차례 바뀌었지. 처음 설립된 해는 1948년도, 그러니까 남한만의 단독 정부가 수립되던 해였어. 육군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국방경비대의 정보처 내에 ‘특별조사과(SIS)’라는 대공업무 전담기구가 만들어졌지. 제주도 4.3 사건이 일어난 직후라고 보면 돼. 당시 이남 지역은 남한만의 단독 선거를 반대하고 일제에 부역했던 친일 경찰을 타도하자는 주장이 차츰 무장 투쟁의 형태로 번지고 있던 때라 사회가 무척 혼란스러웠었지. 그래서 좌익 사람들을 조사하고 잡아들일 정보 기관이 필요했던 거야.”

“더 계속해 봐.”

한 양주가 더 이야기 듣기를 청했다. 나는 그 동안 보안사령부에 대해 공부하고 조사한 내용이 어느 정도인지를 그에게 알려주는 것이 앞으로 우리의 대화를 보다 밀도있게 진행시키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해 연말에 국가보안법이 공포되었고, 부대의 이름이 네가 방금 말한 ‘방첩대(CIC)’로 바뀌었어. 이후 이 방첩대가 몸집을 불리면서 이승만 정권의 행동대가 되어 군대 내의 남로당 조직원이나 좌익 계열 사람들, 소위 빨갱이들을 무차별적으로 잡아들이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게 되지. 그러다 1950년 6.25 전쟁이 나던 그해 10월에 이름이 ‘특무부대’로 바뀌었고.”

“그럼 보안사령부라는 이름은 언제부터 생겨난 건데?”

한 양주는 보안사령부의 명칭이 어떻게 바뀌었는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기왕 명칭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알고 있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1960년은 너도 알다시피 4.19가 일어난 해야. 자유당 정권이 막을 내리게 된 거지. 이 때 이승만의 친위 부대였던 특무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지만, 이 부대는 해체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이름만 예전의 ‘방첩부대’로 바뀌었다가 1968년 9월, 당시 부대장이던 김 재규 소장이 ‘보안사령부’라고 이름을 바꿔 오늘에 이른 거야. 김재규는 네가 전에 말했던 1.21 사태 직후 방첩부대장에 임명된 인물이었지. 박정희와 육사 2기 동기생이야. 우리가 군 복무할 당시가 바로 김 재규가 보안사령관을 하던 때였어.”

“그렇구나. 그 동안 이름이 참 많이도 바뀌었네. 그럼 지금의 보안사령관은 누구야?”

“강 창성 소장이라구 김 종필과 같은 육사 8기 출신이야.”

“끝발 좋은 군인들만 가는 자리로구만 그래.”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그럼, 너 김 창룡이라는 사람도 알겠네?”

한 양주가 자세를 바꾸어 앉으며 느닷없이 김 창용이라는 인물의 이름을 거론했다. 분위기가 묘하게 바뀌었다. 그런 느낌이 그의 진지해진 목소리에서 묻어났다. 지금까지는 내가 그 동안 얼마나 보안사령부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냈나를 은근히 떠보는 분위기였다고 한다면, 김 창용을 거론하면서부터는 이야기의 본론에 들어가자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는 감이 왔다. 내가 보안사령부에 대해 이만큼 아는 정도라면 자기가 들려줄 말을 이해할 수준이 되었다고 판단했는지 몰랐다. 나는 그가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가 김 창용일 거라는 짐작을 하면서 대답을 이어갔다. 김 창용을 모른다면 보안사령부의 역사를 안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자유당 정권 때 맹위를 떨치던 인물이었다.

“물론 잘 알지. 우리나라 군대 정보기관의 물을 흐려 놓은 장본인인데 내가 왜 그걸 모르겠어? 그는 원래 일본군 헌병 오장 출신이었는데 해방 후 북한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용캐 도망쳐 월남을 했지. 그리고는 남한의 군대에 들어가 정보 계통의 장교가 되었고, 이후 이승만의 충견 노릇을 하면서 별까지 달게 되지. 특무부대장까지 승진한 인물이야. 이 자의 권력이 하늘을 찌를 정도로 높아졌어. 권력이 이승만 다음이었다고 보면 될 정도였으니까. 박정희도 6.25 전쟁 나기 전 남로당 숙군 작업 때 그한테 잡혀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가 살아났으니까. 권력에 눈이 멀어 앞 뒤 안 가리고 함부로 날뛰다가 결국 1956년에 허 태영이라는 특무대 후배에게 암살당하고 말았지만 말야.”

“그 동안 조사 많이 했구나.”

“그런데 그 사람은 왜?”

“그 김 창용과 제일 가깝게 지내던 인물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우리 마을 출신이야. 문 도식이라구.”

“처음 듣는 이름인데?”

“그럴 거야. 김 창용이 원래가 누구랑 같이 상의해서 무슨 일을 꾸미는 스타일이 아니라고 알려져 있지. 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냐. 김 창용의 뒤에 문 도식이 숨어 있었던 거지. 뒤에 숨어서 김 창용을 코치했다고 보면 돼. 헌병보조원 출신인 김 창용이가 무슨 재주로 한독당 당수인 김 구 선생을 암살하는 배후 역할을 할 수 있었겠고, 남로당 총책 이 강국의 애인인 김 수임을 처형할 수 있었겠어?”

“그래? 그건 전혀 모르는 얘긴데.”

“모를 수밖에. 이 문 도식이라는 자가 바로 이 승만이 감추어 둔 숨은 개였고, 김 창용은 겉으로 드러난 개였다고 할 수 있지.”

“그 사람이 이 마을 출신이라고?”

“그렇다니까. 우리 마을 들어오는 초입 왼쪽에 솟을대문집 있잖아. 바로 그 집이야.”

“그 사람이 지금 그 집에 살고 있단 말이야?”

“아니지. 김 창용이 암살당하자 문 도식도 홀연히 사라졌어. 김 창용이 죽던 바로 그 해인 1956년도에.”

“그 사람의 존재를 그럼 어떻게 안 거야 넌?”

“얘기 하자면 길어. 나도 아버지에게 들은 거라 자세히는 모르지만 대강 얘길 정리하면 이렇지.”

한 양주는 문 도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 양주가 어떻게 해서 보안사령부에 대해 잘 알게 되었는가 하는 이유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같은 마을에 사는 이웃이 바로 보안사령부의 요원이었기 때문이었다.

문 도식의 집안은 대대로 이 마을에서 쌀농사를 지으며 살았는데, 6.25 전쟁 때 그의 어머니가 인민군들에게 무참히 죽임을 당했다고 했다. 당시 문 도식은 김 창용과 함께 육군 방첩대에 근무하고 있었다 한다. 전쟁이 터지자 문 도식은 제 부모에게 자기 직업 때문에 험한 꼴을 당할지 모르니 피난을 가라고 채근했지만 연로한 할머니가 계셔 움직일 수가 없어서 남자들만 피난을 떠났다고 했다. 남은 여자들의 순진한 생각에 여자들이야 별일 있을까 싶어 인근 야산에 숨어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의 밀고로 할머니부터 손녀딸까지 여자들 3대가 모조리 변을 당했다고 한다. 수복 후 남자들이 돌아와 보니 집안이 그 지경이라 이 소식을 듣고 달려온 문 도식이 제 어머니를 밀고한 사람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때 문 도식과 함께 마을로 들어온 사람이 바로 김 창용이었다. 그는 문 도식보다 한 술 더 떠 이 마을뿐만 아니라 인근 마을까지 방첩대 요원을 풀어 인민군에 부역한 사람을 모조리 잡아 죽이기 시작했고, 그 때 죽은 사람 숫자가 200명을 넘었다 한다. 결국 김 창용에게 잡혀 죽은 이의 후손들이 문 도식 집안과 원수가 되었고, 이후 문 도식은 명절 때만 가끔씩 제 아버지가 사는 집에 왔다가곤 했을 뿐 이웃과의 왕래가 끊어졌으며, 그나마도 김 창용이 죽은 후론 단 한 번도 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상이 한 양주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의 전말이었다. 나는 한 양주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쩌면 문 도식이 아직까지 살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고, 문 도식의 아버지를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면 그의 행방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짐작을 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그에 대한 자세한 내막을 알아 볼 필요가 있음을 직감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그 마을에서 3년을 살게 된 것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