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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 가는 곳 스크랩 호서(湖西). 호남(湖南)의 기준 지점을 아시나요?
큰 바위 얼굴 추천 0 조회 40 10.08.24 18:0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의림지 풍경(1)

 

호서(湖西). 호남(湖南)의 기준 지점을 아시나요?

 

나는 충북 제천8경 중 제1경인 의림지(義林池)에 가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수 십년동안 혼자 궁금하게 여겨온 의구심을

해결하였기 때문에 그 기쁨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 였다. 우리나라 지명 가운데는 지형과 관계하여 생겨난 이름이 많다.

영동지방이라고 하면 대관령, 한계령, 진부령의 동쪽이라는 뜻이요, 영남지방이라고 하면 추풍령을 경계로 그 남쪽을 일컫는다.

 

그럼 호서(湖西)지역과 호남(湖南)지역의 기준점 은 어디일까?

나는 그 문제를 풀기 위하여 아무리 지도를 놓고 살펴 보아도 도무지 알길이 없었다.

수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 보아도 명확히 답변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글세요~............"였다. 

 

먼저 호서(湖西)지역의 기준점부터 일아 보도록 하자.

호서지역을 구분할만한 호수는 충주호 밖에 없는데

충주호는 근래에 들어와 대청댐을 막아 생긴 것이니 해당이 안된다. 

그럼 도대체 어떤 호수를 기준으로 호서지방이라 명명했단 말인가!

나는 이번에 의림지에 가서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을 발견하였다. 그러니 얼마나 감격스러웠겠는가! 

의림지에는 안내판과 안내비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의림지 풍경(2)

 

의림지(義林池)

 

국가명승 제20호

소재지: 제천시 모산동

 

이 호수는 제천의 명승지로 김제의 벽골재와 함께 삼한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전해오고 있다.

충청도를 호서라고 함은 이 호수의 서쪽지방이라는 의미이며, 제천의 옛이름인 내제(內堤)라는 옛이름도 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유래한다.

<세종실록>에는 의림제라고 하고, 길이가 530척, 관수면적이 400결이라 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의 우륵이 쌓았다고 하며, 또한 박의림이 쌓았다고 하나 알 수 없다.

 

세종 때에 정인지에 의해 두 차례 수축하였으며, 19172년 장마에 뚝이 무너져 이듬해 복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호반의 둘레는 1.8km, 만수량은 15만 평방미터, 저수량은 50만 입방미터, 수심 8~14m, 몽리면적 197만 평방미터이다.

 

호반에는 순조7년(1807)에 세운 영호정과, 19148년에 세운 경호루가 노송사이에 있어

운치를 더하고 있으며, 특산물로 해빙기에만 맛볼 수 있는 공어가 있다.

 

 

 

농경문화의 발상지

의 림 지

 

삼한시대에 심(心)자형으로 축조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저수지입니다.

옛날 임금님의 수라상에만 올렸다는 순채가 자생하였고, 겨울에만 잡히는 공어가 명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호수와 어울어진 노송이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각종수생식물이 서식하고 겨울철새가 도래하는 등 생태적 가치가 높아

충북의 자연환경 명소 100선 중 10걸로 지정된 곳입니다.

 

2000. 9. 28

 

충청북도지사. 제  천  시  장

 

 

                                         벽골재수리민속유물전시관

 

다음에는 호남(湖南)지역의 기준점은 어디인가 알아보자.

호남(湖南)지역의 기준점을 찾는 것은 호서(湖西)지역의 기준점을 찾기보다 더 어렵다.

충청도와 전라도 사이에는 호수라고는 전혀 없고 근래에 막은 댐조차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호남출신 명사들을 많이 만나 질문해 보았으나 그 역시 허사였다.

그러나 삼한시대에 축조한 의림지가 호서지역을 가르는 기준점이라면 호남지역의 기준점에 대한 해답은

의외로 쉽게 나올 수 있다. 그건 두 말할 나위 없이 전북 김제에 있는 벽골제(碧骨堤)가 분명하다. 

 

지금은 기술이 발달하여 댐공사를 포함하여 웬만한 토목공사는 소문도 없이  간단히 해낸다.

그러나 옛날에는 의림지와 벽골제같은 수리시설을 축조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는 전 국력을 쏟아 부어야 하는 대형공사니만큼 그로 인해 생긴 거대한 호수는 강이나 산맥처럼 자연스럽게

지역을 구별하는 기준점이 되고도 남음이 있었던 것이다.

 

                                                            벽골제축제를 위해 만든 쌍룡

 

지금은 비록 벽골재라는 대형 호수가 존재하지 않지만

벽골제가 호남지역의 기준점이 분명하다는 사실은 <벽골재수리민속유물전시관>을 돌아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김제시 홈페이지의 <벽골재수리민속유물전시관> 제4전시실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제3전시실/ 수전농경의 요람

 

벽골제는 지금으로부터 약 1700여년전 축조된 우리나라 최초이자 최대규모의 수리시설이다.

벽골제의 연혁과 규모, 축조과정과 함께 벽골제라는 대규모 수리시설의 축조가 가능했던 백제의 문화를 살펴보고,

벽골제 발굴조사의 현황을 자세하게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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