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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11215 누가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까 210801 주일
1. 지금 도쿄올림픽이 진행중에 있습니다.
올림픽하면 무엇보다도 메달과 기록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메달, 메달 중에서도 금메달이 더 귀합니다.
금메달은 세계 최고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선수중에 이 귀한 금메달을 세 개나 딴 선수가 있습니다.
광주여자대학에 재학중인 안산이란 여자 선수인데요,
(사진)
이 선수의 금메달이 기가 막힌 것은
준 결승전에서 미국 선수하고 겨뤘는데 동점이 난거예요.
그런데 규칙에 따라서 동점일 경우 화살을 딱 한발씩 쏘아서 점수가 좋은 사람이 이기게 되는데, 안산선수가 그 한 발을 더 잘 쏘아서 결승에 올라갑니다.
결승에서는 러시아 선수하고 금메달을 놓고 겨루게 되었는데, 역시 동점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다시 화살을 한발씩 쏴서 점수가 좋은 사람이 이기게 되었는데, 역시 그 마지막 한 발을 잘 쏴서 금메달을 딴 것입니다.
그야말로 피말리는 경기였습니다.
2. 그런데 이렇게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을 따기 까지 선수들은 얼마나 많은 훈련을 해야할까요?
가히 우리가 상상할수 없는 혹독한 훈련의 과정이 있었을 것입니다.
1)긴머리와 잘 생긴 미모로 널리 알려진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 안정환씨.
(사진)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미국과 이탈리아를 상대로 각각 한 골씩 성공하여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했습니다.
특히 16강 이탈리아전에서 연장 후반에 넣은 결승골이자 골든골은 대한민국을 아시아 소속 팀 중 1966년 FIFA 월드컵의 북한 이후 처음으로 8강으로 이끌었으며, 이 골 후의 골 세리모니로 '반지의 제왕'이란 별명을 얻으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2)최근에 안정환씨가 텔레비전에 나와 이야기하기를 “훈련후 씻으려고 옷을 벗으니 자기도 모르게 언제 배변을 했는지, 바지에 변이 묻어 있더라, 훈련이 너무 힘들다 보니 오감이 마비되어 냄새도 안나더라”고 했습니다.
오죽하면 지옥훈련이라는 말이 있을까요?
이 지옥같은 훈련을 잘 참고 견뎌 내면 2002년 한국 축구 4강 신화처럼, 이번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선수들처럼 좋은 결실을 보게 됩니다.
3)그런데 사실은 세상은 불공평하기 때문에, 그런 지옥같은 훈련을 견디어 낸다해도 반드시 좋은 결과를 맺는다고 말할수 없습니다.
그런 훈련을 거쳤다고 해서 그날 그 실력이 그대로 나오는 것도 아니고...그날의 컨디션이라고합니다.
심판이 완전하게 공정하게 심판을 본다는 보장도 없고...많은 경기들이 심판의 편파판정으로 승부가 갈리는 경우도 종종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면 스포츠선수들의 훈련과 우리의 신앙훈련이 비슷한 면도 있고 그렇지 않은 면도 있습니다.
무엇이 비슷하고 무엇이 비슷하지 않을까요?
3. 오늘의 본 말씀을 봅시다.
야고보서 1:12-15
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
'시험'(페이라스모스)은 믿음의 연단을 위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예기치 못한 시련(trial)을 가리킵니다.
초대 교회 당시의 유대인 출신 성도들은 이방인의 경멸, 동족의 약탈, 살해 위협 등 갖가지 시련을 당했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 그리고 역사적으로 복음이 증거되는 곳에 따라서는 그야말로 목숨 내놓고 믿어야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은 이러한 시험이 당할 때 참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참다'(휘포메노)는 참을성 있게 매우 오랜 시간 동안 꾸준하게 끝까지 견디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왜 시험을 참는 자가 복이 있을까요?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 본절은 모든 시험을 이기고 승리한 자가 받을 궁극적인 축복에 대한 언급입니다.
여기서 '견디어 낸'에 해당하는 헬라어 '도키모스'의 의미는 '인정된', '연단된'이란 의미로 광석이 용광로에서 제련되어 순수한 금이 분리하여 나오는 것처럼 시험에서 승리하여 그 믿음의 정당성을 인정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욥은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23:10)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한편 '생명의 면류관'은 '썩지 않는 면류관'(고전 9'25), '의의 면류관'(딤후 4 : 8), '영광의 면류관'(벧전 5 : 4)과 같은 표현으로, 시험을 이기고 승리한 자에게 주어질 상급입니다.
특별히 여기서 '생명'(조에)이라는 말은 현세의 삶을 가리키는 '비오스'와는 달리 성도들이 하나님 안에서 누리게 될 가장 높고 좋은 삶을 가리킵니다(Trench, Tha-yer).
따라서 '생명의 면류관'이란 성도들이 하나님나라에서 누릴 영광되고 영화로운 삶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단을 위해 주시는 시험은 유익한 시험으로 끝까지 참고 견디면 하늘나라에서 생명의 면류관을 받습니다.
그런데 13절의 말씀은 12절과는 다릅니다.
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성경 해석이 나오는데요.
우리 한글로는 모두 시험으로 번역되지만 성경 원어인 헬라어에 의하면 12절의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다에서 시험은 ‘페이라스모스’를 썼고, 마귀가 유혹하는 시험은 ‘페이라조’를 썼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에 나오는 시험이란 두가지로 해석할수 있는데
하나는 우리를 단련하여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이 있고, 우리를 유혹에 빠뜨려 망하게 하려는 마귀의 시험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12절에서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다 말씀에서 시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주시기 위해 하시는 시험으로 ‘페이라스모스’로 디딤돌이고, 13절에서 하나님은 아무도 시험하지 않는다는 말씀에서 시험은 ‘페이라조’로 마귀가 우리를 범죄하게 만들려고 시험하는 걸림돌입니다.
1)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바치라 하실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사라고 하신 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입니다.
창세기 22:1-2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순종하면 순종하는 자에게 큰 복이 되지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시험에 순종하여 믿음의 조상이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2)그러면 마귀가 하는 시험은 어디에서 볼수 있을까요?
욥의 시험에서 찾아 볼수 있습니다.
욥이 하나님의 칭찬을 듣는 것이 싫은 사탄은 욥을 무너지게 하려고 시험하는데, 재산을 다 빼앗고, 자식도 죽이고, 부인도 도망가게 하고, 몸에 피부병이 들게 하고...
3)자, 여기서 하나님의 시험과 마귀의 시험을 쉽게 알아보는 비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①하나님의 시험은 우리에게 더해 주시기 위해서 하시는 시험 ->독자이삭을 바쳐라=>순종하면 복=>실제로 이 시험에서 아브라함은 믿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②반대로 마귀의 시험은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못하게, 복을 못 받게 막는 방해자 노릇을 합니다.
그래서 욥으로 하여금 큰 불행을 만나면 하나님 저주하고 돌아서도록 그렇게 혹독한 시험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시험이냐, 마귀에게서 오는 시험이냐 분별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과 뜻으로 기준 삼으면 됩니다.
명시적인 말씀이 있으면 말씀에 순종하면 되고, 명시적인 말씀이 없으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면 됩니다.
그래서 13절 마귀로부터 오는 시험은 미끼가 있습니다.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시험(temptation)의 출처에 대한 언급이다.
시험의 출처가 하나님이 아니요 자기 자신이며,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밝힙니다
시험의 출처는 바로 우리의 욕심에 있습니다.
우리의 욕심에 불을 붙이는 것이 마귀입니다.
그래서 욕심이 불같이 일어나면 이것은 마귀의 시험이다 생각하면 틀림없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욕심을 부추겨서 선악과를 따먹게 하여 죄를 짓게 하고 모든 인류를 죄인으로 만든 것이 바로 마귀의 시험이었습니다.
그래서 욕심으로 하여금 죄를 낳게 하고 그 결과 인류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입니다.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욕심이 잉태한즉’
헬라어 '쉴라부사'는 '함께 붙잡다'를 의미하는 '쉴람바노'(의 제 2부정과거 능동태 분사로 여성의 임신을 나타내는 말이나 여기서는 개인의 의지가 죄된 본성과 합치되는 과정을 상징하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즉 죄된 인간의 본성이 사람의 마음을 죄악의 길로 인도하여 결국 그 길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러한 상태는 구체적인 사고와 행동이 밖으로 표출되는데 이것이 바로 '죄'(하마르티아)입니다.
▶'죄가 장성한즉'( 헤 하마르티 아 아포텔 레스데이사)
죄된 행동이 인간의 마음과 의지를 완전히 장악하여 이 행동이 습관적이고 반복적으로 계속해서 행해짐을 의미한다.
이러한 죄의 결국은 '죽음'( 다나토스)입니다(롬 6 : 23).
->죄가 잉태하지 못하게 하고, 죄가 장성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4. 우리는 여기서 두가지 시험,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 마귀로부터 오는 시험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오늘 본문 말씀에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참는다는 것은 끝까지 견디어 낸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 말씀드린다면 ‘독자 이삭을 바치라’하셨을 때 거절하거나 뒤로 빠지지 않고 그 말씀대로 끝까지 순종했다는 말씀입니다.
처음에만 예하고, 물러나지 않고 그대로 순종하여 진행시켰다는 말씀입니다.
독자 이삭을 달라고 하셔도 화내거나 거절하지 않고 그대로 순종한 것을 말합니다.
2)그런데 마귀가 주는 시험도 참아 내야 합니다.
욥의 경우 재산을 다 빼앗기고, 자식들을 다 빼앗기고, 아내도 도망하고, 자신은 피부병이 들어 죽은 사람만도 못하게 되는 혹독한 시험을 만났지만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하나님을 떠나지도 않았습니다.
도리어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는 절대 긍정의 신앙고백으로 승리를 믿었습니다.
5. 오늘 본문 12절의 말씀,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이든지, 마귀의 유혹으로 오는 시험이든지 모든 시험은 끝까지 참으면 복이 됩니다.
모든 시험은 참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따라 행하면 전화위복의 기회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ex)1968년 9월 28일, 다른 아기들과 영 다르게 기형으로 한 여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두팔이 아예 없고, 두 다리 중 한쪽 다리가 전혀 구실을 할수 없는
의사는 부모님께 아이를 직접 돌볼 경우 20년의 세월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했으나 아이의 부모님은 아이를 직접 돌보기로 했습니다.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를 장애인이라고 특별대우를 하면서 키우지 않았으며, 모든 걸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수영이나 피아노 레슨 등 일반 아이들과 똑같은 양육법으로 키웠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발로 뜨개질을 해서 스웨터를 만들고, 요리를 하며, 발가락으로 립스틱을 열어 화장을 하고, 자동차 운전과 수영까지 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반인도 들어가기 어려운 음대에 들어가면서 부터는 가족에게서 독립해 혼자 생활하기까지, 자신이 장애인이라고 해서 불가능한 것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고, 장애를 탓하기 보다 적응하려고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녀에게 정상적으로 주어진 단 하나, 오른 쪽 다리는 그녀의 두 팔 역할을 충분히 해 냅니다. 어려서부터 배운 수영으로 세계 장애인 선수권대회 등에서 4개의 금메달을 땄으며, 88장애인 올림픽에도 출전했습니다.
스웨덴 출신 레나 마리아 이야기입니다.
선천적인 지독한 장애를 가졌으면서도 은혜로운 찬양으로 전 세계를 감동시킨 천상의 목소리, 그녀는 자신의 노래가 희망의 노래가 되고 사랑의 노래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레나 마리아의 찬양을 들어 보십시다.
(레나 마리아 찬양 영상)
여러분, 두 팔이 없고, 다리도 온전한 다리는 하나뿐인, 기형중에서도 기형으로 태어난 것은 엄청난 장애물이요 시험이 아닐수 없습니다.
왜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필 나일까?
왜 나는 두 팔이 없고, 다리도 한쪽은 쓸수 없게 태어났을까?
다리 한 쪽 가지고 어떻게 살란 말인가?
운명을 탓하고, 조물주를 원망하고 저주하며 어둠속에 있었다면 그것은 시험에 지는 것으로, 오늘의 레나 마리아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레나 마리아는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있는 것을 계발하고 발전시켜서 그 기형의 몸 가지고 운전, 수영, 음식 조리, 뜨개질...못하는 것이 없는 지극히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운명적인 불행을 참고 끝까지 노력을 다했을 때, 세계인의 귀감이 되고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결론
우리가 지금 코로나로 어렵다 어렵다 해도, 우리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시험이 닥치든지, 시험을 참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을 기억합시다
시험을 참는 자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을 기억합시다.
약속의 말씀을 부여잡고 끝까지 믿음으로 나아갈 때,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입니다.
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