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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하천은 특별한 하천이다.
전국의 수많은 산과 하천들 중 나라를 지켜낸 산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해본다.
이곳 낙동강을 지척에 둔 경상북도 칠곡군의 산들은 아주 특별한 산들이 많다
백두대간의 준령들도 지켜내지 못한 나라의 국운(國運)을 낙동강을 인접해있는 다부동의 작은 산들은 온몸으로 피를 토하며
나라를 지켜낸 산들이다. 유학산,봉두암산,수암산,328고지,백운산 황학산,오계산,가산...
다부동 유학산과 남쪽의 백운산 동쪽,오계산,가산 북쪽에서 흘러온 한천은 8월 한여름 뙤약볕에 국군이 마시던 물이며
적과 아군 피아간 2만 7천이 사라져 가 시체 썩은 물이 한천으로 고스란히 흘러들었던 곳이다.
낙동강 최고의 전투지역인 다부동 전투
이른 아침 지하철 3호선 타고 칠곡 경대병원 역에 내려 택시로 다부동 대구 예술 대학교 입구까지 이동한다.
산정으로 오르는 임도길 따라 편하게 오르면 황학산과 백운산 갈림길이 나타난다.
신록이 물들어 가는 자작나무 임도길
백운산 오름길에 본 국군 전사자 유해발굴 지역
낙엽을 덮고 있지만 가던 길 멈추고 잠시 묵념하고 백운으로 오른다
백운산 정상
두건님과 일행분들이 다녀가신 듯
이곳에서 왔던 길로 잠시 되돌아가서 물길 찾아..
지나간 경로와 하천길 139개
누적거리 9,130km
평지 같은 계곡길에는 온통 너덜이 이어지며
키 작은 잡목 숲에도 봄이 찾아와 마른 가지마다 부드럽게 휘어져 앞을 막는다.
지맥길 인근에서 물을 찾아 맛보고
하류로 내려간다
1M는 될 것 같은 낙엽을 긁어내고 보니 맑은 물이 흘러가는 게 보이고
본격적인 골이 형성되지만 물은 다시 땅속으로 스며들었는지 보이지 않고
다부동의 유학산은 운해에 쌓여있고
임도길이 지나는 곳 경사진 계곡 아래로 내려와
물은 몇몇 곳에서 흘러와 모이니 제법 많이 흐른다.
암반과 낙엽이 쌓여있고
대구 예술 대학교 제3 예술관 건물 뒤로 나오니
여학생 몇몇이 벌써 공부하러 나와있어 이야기 몇 마디 나눈다.
학교 정문으로 빠져나와
바로 앞은 공원묘지가 있는 실봉산이며 멀리 보이는 산은 가산
가산에는 조선 영조 때 쌓은 가산성(城)이 있으며 100명 정도 올라갈 수 있는 넓은 가산바위가 있다
한국전쟁 당시 대구를 방어하기 위해서 국군 1사단 11 연대가 저곳을 방어했으며 b29 비행기로 포탄 40톤 투하한 가산산성
전투가 벌어졌던 곳인데 북한군은 가산을 뚫다가 실패한 후 영천으로 발길을 돌렸다
다부동 전투 1950년 8월 초
8월 10일이 넘으면서 다부동 교전은 더욱 격렬하게 진행되어 하루 평균 700명의 국군이 다치거나 전사한다.
한 달 이상을 그렇게 싸웠고 대한민군 최후의 방어선이란 수식어가 붙은 곳
잠시 기념관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다부동 인근 능선을 지키던 초병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른 아침에 주먹밥 하나와 수통에 미지근한 흙탕물 한통과 부족한 실탄을 장전한체 한 곳만 응시하며
오늘 살아 돌아갈 수 있을지 내일 살아 돌아 갈수 있을지...
아니면 고향산천에 두고 온 부모님은 살아 계시는지 걱정하며 하염없이 눈물로 앞을 응시하며 지킨곳
유학산
저곳에서 마지막 담배를 돌려 피우며 적들을 기다렸겠죠.
곁에는 먼저 전사한 전우의 시체가 한여름 고온에 얼마나 악취가 심했을지, 아니면 시체를 방패 삼아 싸우고 또 싸웠을지
처참하고 지옥 같은 저곳 지옥보다 더 큰 희생이 있었을 것 같다.
지키고 지키다 먼저 산화한 전우를 두고 돌아서 후퇴를 했을텐데
자기한 몸 진행하기도 벅찼을 능선길에 부상병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데리고 빠져나갔을까?
이곳 양쪽 방어선 모두가 아군과 적군이 찌르고 때리는 백병전을 벌인 곳이라
살아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은 서로가 하지 못했을 것 같다.
한번 전투를 치르고 나면 부대원 30~40%가 사라졌다고 하며
사라진 부대원을 다시 신병으로 보충하고 나면 소대원 얼굴도 모른 체 전투에 나선 소대장...
소대장들은 화랑 담배 껍질에 소대원 명단을 적어 간직하지만
야간전투를 마치고 아침이 되면 새로 보충된 신병의 80%가 사라졌다고 한다
피로 물든 소대장의 화랑 담배 껍질로 신병들의 이름이 확인 안되고 소대장이라도 전사하면
군번도 없이 사라져 간 무명용사로 처리된다.
그동안 6,25 격전지를 찾으며 수십 번도 더 올랐던 유학산은 내게 너무나 큰 산이다.
아래 글은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낙동강 최대의 격전지 다부동
30일간 12번 공방전으로 아군 1만명 사상
6,25전쟁 기간은 총 1129일간
그중 다부동에서만 55일간 혈전을 치렀죠
유학산 전투
낙동강을 지척에 둔 328고지 피아간 15번 고지의 주인이 바뀐 곳이며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첫 배경이 된곳
숲데미산(수암산)전투
가산산성 전투
신주막(지금의 천평 지역)
천평에서 신주막 지금의 국도 5호선이 지나가는 곳
국군과 북한군 전력비교
한국전쟁 당시 학도 의용대로 편성된 16-18세의 학도병들은 부산 육군 제2훈련소에서 3주간 군사 훈련
소총과 담요 군복을 지급받고 군번도 없이 전방에 배치
*1950년 6월 27일 한강 방어전투를 시작으로 총 27만명 참전 그중 약 2만 8천명이 직접 전투에 참전, 7천명 전사
그동안 정부는 학도병들을 국가 유공자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18세 미안 소년병 징집을 금지하는 국제법을 의식해서였다.
정부는 2002년 소년병이라는 이름으로 참전 유공자를 인정했다
군번 없는 학도 의용군
다부동 격전지 한 번쯤 들어 보셨을 텐데
오는 6월 호국보훈의 달에 꼭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6월 호국의 달에 한번 찾아올 것을 약속하며
백운산에서 흘러온 물과 유학산에서 흘러온 물이 만나는 곳을 지나며
진목정으로 들어와 본 황학산
5번 국도변에 천평동에 자리하는 다부동 전승비
6.25 당시 치열했던 최고의 격전지 중의 다부동 전투지역
5번 국도를 사이에 두고 유학산 792봉-송학리 능선
새술막-천평동-진목정-천평동에서 더욱더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어 많은 전사자가 생긴 곳이다
천평동을 사이에 두고 미군 존 마이켈리스 27 연대장이 이끄는 미군 병력과 전차 야포
북한 T-34 전차 40여대가 싸운 곳
볼링장 전투는 미군이 이곳에 붙인 이름이며
장소는 다부동 북쪽의 대구로 향하는 길고 좁은 천평동 계곡이다.
전차와 기관총에서 뿜어내는 소리가 양쪽산에 부딪혀 큰 울림이 볼링장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천평동에서 본 오계산
이곳 주위는 모두 다 국군 유해 발굴을 한 장소이기에 어디로 오르던 능선에는 모두다 국군 유해 발굴지역이다.
낙동강 전투 한국전쟁 최고의 격전지답게 거대한 전사의 무덤이라 할 수 있고
특히 볼링공 전투지역은 미군의 첨단 전차와 야포가 자리 잡고 있었다
낙동강가 숲데미산에서 유학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수암산에서 유학산으로 이어져 837 고지 그리고 792봉 진목정까지
이어지는 Y자 능선 15km 꼭 지켜야 할 능선이다.
안동에서 대구로 이어지는 5번 국도변 천평에서 유학산 오르는 송학리-유학산 우측의 792봉과
석우리 297봉에서 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볼링장 전투라 한다.
어느 한 곳이라도 뚫리면 진목정 주변에 자리한 미군 야포 부대가 적에게 포위되는 상황이라
목숨이 10개라고 모두 걸어야 할 접적의 장소이며 1사단 사단장인 백선엽 장군이 직접 권총을 들고 후퇴하는 국군을 모아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하며 다시 유학산 682 고지로 올랐던 곳이다.
유학산 정면은 1사단 12 연대 병력이 전진
가산 방면 1사단 11연대 병력이 방어한 곳이다.
참고로 보시고
유해발굴지역
많은 전사자가 생긴 것으로 판단되는 곳 1M 간격으로 국군 유해를 찾은곳
희생자는 늘어나고 신병들은 계속 사라졌다.
분대장이 자신에게 배속된 분대원들의 얼굴도 모른 체 전투에 나섰으며
간략한 이름만 화랑담배 껍질에 쓰였다
분대장이 사망하고 나면 신병들의 죽음은 무명용사로 기록되어 어느 곳에도 쓰이지 않은 채 사라진다.
한천은 그렇게 흘렀지만
한여름 뙤약볕 아래 국군이 마시던 물이며
피아간 젊은 전사들의 피가 흘렀던 곳
지금은 그저 아래로 흐르며 모든 걸 씻어낸다.
맥없이 흘러오던 물은 어디로 사라지고
이곳은 좀 깨끗하려나 싶었더니
물속 풍경은 그야말로 비참하다.
하천변에 자리하는 복숭아나무와 노란 민들레
멀리 하늘이 낳았다는 천생산이 보이는군요
정상에는 성이 잘 보존되어 있는데 신라시대 때 박혁거세가 쌓은 성이라 한다
천생산 주위의 산성을 살펴본다면 금오산 정상 부근에 고려말 왜구의 침략이 빈번하자 쌓은 금오산성이 있고
성주 가야산 칠불봉 동남쪽 서성재 인근으로 삼국시대 때 쌓은 가야산성 그리고 팔공산 자락에 조선 후기에 쌓은 가산산성
멀리 본다면 경주시 건천읍 오봉산 자락에 삼국시대때 만든 부산 성이 있다
대부분 산 정상에 만들었는데 고생만 죽어라 하고 실제로 큰 도움이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한양 도성은 연인원 50만 명 동원해서 월급 한 푼 안 들이고 18km를 98일 만에 완성했는데
이곳 인근에도 산성을 만들고 쌓으면서 밥은 주고 일시켰는지 궁금해진다.
유학산이 날개를 펼치고
유학산 북쪽은 경사가 완만하여 북한군이 오르기 쉬웠는데
남쪽은 국군이 방어하던 곳으로는 경사가 심해서 국군이나 노무자들이 실탄과 주먹밥을 나르기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유학이 세상을 굽어보며 이제는 더 이상 전쟁은 하지 말라"고 하니
북한에 살이던 돈이던 조금 나눠주거나 퍼주는 일이 있더라도 두 번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깨끗해 보이지만 날씨가 따뜻해지면 물속에 가라앉은 부유물이 둥둥 떠 다닐 것 같고
하천의 물은 산허리를 돌아 아래로 흐르며 세상 더러움을 모두 안고 흐른다.
언제쯤 다시 깨끗해지려나...
피라미가 입큰 베스를 잡아먹는 날이 온다면 모를까
푸른 청태가 보이고
맑아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청태는 질소가 많으면 잘 자라죠
구미시 장천면을 지나면서
구미시 장천면
배는 고프지만...
멀리 구미시 옥계동 고층 아파트가 보이는 걸 보니
한천도 이제 끝으로 가는 것 같고
천생산 산줄기가 더 이상 뻗어 나가지 못하고 한천에 막혀있다.
산은 물을 만나면서 맥을 다하지만.
사람은 밑바닥 보이면 인생 종 치는거다.
마지막 최후의 카드 한 장은 남겨 놓아야 사는데 지장 없을듯
천생산 능선이 이어지고
저 멀리 팔공산이 보이고
물은 너무 더럽다
금오산과 옥계동 아파트
당장 눈앞의 아파트가 금오산 보다 더 높아 보이지만
내가 아는 것이 허상일 수 있다는 건 멀리 보는 지혜가 필요하기 때문이라...
물속 풍경
입큰 베스 녀석들만 어디론가 헤엄치는 게 보이고
피라미는 베스 녀석들을 피해 피란이라도 간 건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낙동강가에 자리 잡은 필봉산
산은 낮아도 멀리서 보면 마치 붓이 끝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 듯한테 그 모양새가 제법 이쁘기까지 하다
낙동강을 지척에 둔 금오산을 닮아 가려나 아니면, 낙동강이 가로막지 않는다면 금방이라도 금오품에 안기려는 듯
양반집 어여쁜 아가씨 같은 모습
하천가에 추억 속에 자리 잡은 미루나무 몇 그루가 세월을 이겨내고 자리 잡고 있어
초등학교때 부르던 "미루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이 걸려있네
어쩌고 저쩌고 노래를 불러보는데...
편안해 보이는 풍경이다.
요즘은 하천가에 아름드리 미루나무 구경하기 힘들어
추억 속의 미루나무들이다.
지나온 하천
필봉은 구미에 살고 계시는 두건님께서 잘 아실듯하니
필봉산과 구미 구포 생활공원
필봉이 간 건너 금오을 사랑하고
근육질의 천생산이 필봉을 사랑했는데
필봉이 성형이라도 한 걸까 한쪽 얼굴이 어째 휑하다.
필봉산 줄기와 한천이 낙동강으로 가는 길목에서
한천이 근현대사 역사와 함께 흘러와서 낙동강 품에 안기는 곳
멀리 칠곡의 연암산이나 선석산 줄기가 왜관으로 향한다.
멀리 328 고지 능선이 길게 이어지는 장소를 보며
한천을 마무리한다.
첫댓글 몇년전 천유가팔홙초 진행했었는데
격전지를 많이 지나갔었네요
다시한번 더 잠시 기억을 해봅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무탈한 발걸음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대장님과 팔공산 비로봉을 함께 걷던 추억이 새록 새록 떠오르네요~ㅎㅎ
천유가팔환초 들머리에서
한천이 끝나네요^^
천유가팔은 대부분 격전지로 피아간에 많은 전사자가 생겼으며
그로인해 유해발굴을 많이 했던곳입니다.
모르고 가면 그저 그렇고 알고가면 엄숙한곳이죠
초여름의 문턱에서 지맥길 잘 이어 가시기 바라겠습니다.
한천 후기가 언제 올라오나 했더니 드디어 올라왔네요.
지금은 도시계획으로 울 고향집이 철거되어 없어졌지만
거의교 앞의 우리 논은 그대로 네요.
후기에서 우리땅을 보니 새롭습니다.
저 어릴적 멱감고 놀던 한천
그때는 정말 깨끗했는데
방장님 덕분에 옛추억을 더듬어 봅니다.
감사드립니다.
정성스런 후기글 잘봤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물은 이제 옛 물이 아니죠 인심도 그렇고
산은 그렇게 변하지 않지만 물은 쉽게 변하니 걱정이 됩니다.
석천환종주길에 산길은 답사를 마치셨으니 물길따라 한번 내려와 보시는것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두건님 고향 마을 잘 구경하고 왔어요 감사합니다.
이름도 생소한 한천 호국 영령들의 피와 땀과
혼이 서려있는 하천이네요 한천도 그림으로
보면 물이 깨끗할듯 싶은데 이곳도 그리
깨끗하지는 않은가 봅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전국의 물은 대부분 더럽구요
6대 광역시 앞을 흐르는 물 중에 울산의 태화강과 동천이 가장 깨끗함을 볼 수 있는데
울산시민들께서 관리를 잘해주신 덕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번주에 긴 걸음을 가야하는데 벌써 몸도 마음도 천근만근입니다.
날씨가 더워질수록 물도 점점 지저분해질텐데 걱정이군요 우리나라의 모든 물들이 깨끗해지는 그날까지 방장님의 수고로움이 더 필요할듯 합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전국의 물은 대부분 질소 함량이 많아서 이끼가 자라는데
어떤곳에는 물고기 한마리 보이지 않을 정도 입니다.
산을 배우고자 물을 시작했지만 너무 더럽네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천 년에 한번 운다는 유학이 전쟁때는 그렇게 피를 토하며 울었죠
맑아야 할 물은 더럽고 그 더러움이 흘러 대구 시민이 밥해서 먹는 물이 됩니다.
물론 부산시민도 마찬가지죠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