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여, 영지주의 신앙에서 벗어나라
최광희 목사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
이것은 1세기 헬라 사회에 만연했던 영지주의자들의 사상입니다. 이 거짓 주장은 초기 기독교에 영향을 미쳐 복음을 받은 사람 가운데 영지주의자 이단이 발생하는 어이없는 일이 있었습니다. 잘못된 영지주의 사상에 빠진 사람들은 결국 영이신 예수님께서 악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을 리가 없다면서 예수님의 성육신(Incarnation)을 부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자 사랑의 사도 요한조차 그런 사람들을 감싸기보다는 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자는 적그리스도(ἀντίχριστος)라고 정죄했습니다(요한이서 1:7).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만물을 만드셨을 때 그 하나하나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다(טוֹב)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흙으로 사람을 만드신 후에는 보시기에 심히(מְאֹד) 좋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여기서 좋다(טוֹב)는 말은 선하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만물을 선하게 만드시고 사람을 심히 선하게 만드셨는데 하나님이 만드신 물질을 악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착각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헬라 철학의 계보는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집니다. 소크라테스는 모든 것을 의심(질문)하는 것으로 유명했고 플라톤은 보이는 것들을 모두 부정하며 이데아의 세계가 진짜라고 주장했고 플라톤과는 반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보이는 것만이 전부라고 주장했습니다. 서양 철학의 중심 기둥이 된 이 셋은 또한 성경을 허무는 삼총사가 되었습니다. 하와를 찾아간 뱀처럼 소크라테스는 하나님이 섭리하는 세상을 모두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게 만들었고, 플라톤은 실재(實在)하는 물질을 부정하게 만들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부정하게 만들어 유물론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심은 악한 씨앗은 Karl Marx에서 거대한 열매를 맺었습니다.
보이는 것은 가짜이고 이데아의 세계만 진짜라는 플라톤 사상은 결국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는 영지주의 사상을 만들어내었는데 이런 사상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자 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정하는 자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면 갈릴리에서 걸어 다니시고 예루살렘에서 못 박힌 예수님은 무엇이란 말일까요? 이 질문에 영지주의자들은 그건 진짜가 아니라 그런 것처럼 보였을 뿐이라는 소위 가현설(假現說 Docetism)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신자들은 허깨비를 믿는 것이고 그 허깨비는 육신을 가진 인류를 구원할 수 없기에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적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가현설을 주장하는 영지주의자가 아무도 없고 오히려 아리스토텔레스나 마르크스의 제자처럼 물질주의자들이 판치는 이 시대에, 뜻밖에도 영지주의자처럼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복음 전도나 교회를 위한 섬김을 몸으로 하지 않고 다른 것으로 대신하려는 사람들 말입니다. 교회에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어떤 분은 마음으로 동참하고 어떤 분은 기도로 동참하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앉아서 기도한다고 전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동성애 독재법을 막아내는 거룩한 방파제도 몸으로 참여하지 않고 기도만 하겠다는 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영지주의자의 가현설 신앙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에 의하면 몸이 움직이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그래서 조직신학자 루이스 벌코프는 기도와 묵상은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교회는 이 일에만 기력을 소모해서는 안 되며 힘을 다하여 주님의 싸움에 참여하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은 사람을 영과 육으로 만드시고는 하나님을 위해 (몸으로) 행동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이 물질로 된 세상을 만드시고 사람에게 그것을 다스리라고 하실 때 세상이 잘 돌아가도록 기도만 하라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과 사도, 구약의 선지자를 포함하여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 가운데 아무도 행동 없이 기도만 한 사람은 없습니다.
신자에게 있어서 기도는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어떤 일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기도 후에 일어나 행동하기 위한 것입니다. 기도란 행동할 때 하나님이 은혜로 더 잘 감당하도록 도와달라는 것이기에 기도한 사람은 반드시 일어나 행동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일을 맡겨주셨는데 행동하지 않고 기도만 하는 것은 그 일을 도로 하나님께 맡기는 셈입니다. 신자가 기도는 하지 않고 내 힘만으로 예수님의 일을 하겠다고 덤비는 것이 문제이듯이, 행동하지 않고 기도만 하는 것도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영지주의 신앙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도의 자리에서 일어나 몸으로 헌신하고 행동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