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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무당산에 나타난 혈수천마(血手天魔) 별의 흔적이 점점 사라지고 새벽 안개는 점차 짙어져 갔다. 끝없이 퍼져 있는 하얀 안개는 무당산을 온통 뒤덮고 있었다. 높다랗게 솟아 있는 산 벼랑은 안개 속에서 우중충하고 거대하게 우뚝 솟아 있었다. 조용한 들판에는 닭이 홰를 치는 소리만 이따금 들려올 뿐,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온 누리는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싸늘한 산바람이 살그머니 풀끝을 밟고 지나갔으나 어젯밤에 맺혔던 이슬방울들을 떨어뜨리진 못했다. 산바람마저도 달콤한 잠에 빠진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별안간 무겁고 우울한 종소리가 짙은 안개 속에 울려 퍼지고 산바람을 따라 멀리까지 퍼져 가면서 이른 아침의 정적을 산산이 깨뜨려 놓았다. 곧이어 꽝! 꽝! 꽝! 하는 커다란 종소리가 몇 번이나 무당산 위에서 들려 왔다. 잇달아 이어지는 아침 종소리는 여느 때는 기껏해야 열 번을 넘지 않았으나 오늘 아침에는 줄곧 스무 번이나 울려 퍼졌는데 여전히 멈출 줄을 모르고 있었다. 산자락에 살고 있던 마을 사람들은 모두 놀라 깨어 일어나 약속이나 한 듯이 밖으로 달려나갔다. 희뿌연 안개 속에서 온 마을의 주민들은 고개를 쳐들고 안개 속에 아련히 도사리고 있는 무당산을 바라보며 산 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하게 여겼다. 잇달아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 느리고 침울했다. 마을 사람들은 벌떼처럼 마을 밖으로 몰려 나가 산으로 오르는 입구로 모여들었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모두 온 정신을 가다듬고 산 위에서 울려 퍼지고 있는 종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점차 그들의 얼굴에는 비통한 빛이 피어올랐다.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 마흔 아홉 번을 울려 퍼지고서야 가까스로 멎었고, 그 여운은 점점 엷어져 가는 안개를 따라 허공으로 사라져 갔다. 그러나 산 아래에 모인 마을 사람들은 그 누구도 그 자리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고개를 쳐들고 멍하니 산 위를 바라보는 한 늙은이가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현천(玄天) 노선장(老仙長)께서 이미 두루미를 타고 신선이 되어 이승을 떠나셨구나!] 이 한 마디의 말이 떨어지자 이 마을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숙였다. 몇 명의 아낙네들은 갑자기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대뜸 곡소리가 울려 퍼지고 모든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이제 다시는 그 자상하고 온화하며 허연 수염을 나부끼던 노 선장을 뵈올 수 없기 때문이었다. 상청궁(上淸宮)의 주지인 현천도장은 근방 백 리 안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몇 년 전 메뚜기 떼가 이 고장을 덮쳐서 근방 백 리 안의 곡식들이 모조리 완전히 망가졌을 때 현천도장이 나서서 만석이나 되는 백미를 내어놓지 않았다면 모두들 타향으로 떠나게 되었을 것이고 굶주림의 고통을 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욱이 산마을 사람들이 갈고 있는 것은 상청궁의 밭이었으니 그들이 입은 은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평소 병이 있거나 재난이 발생했을 적에 상청궁의 현천 노선장이 약을 써서 구해준 사실을 잊을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마흔 아홉 번의 만종 소리를 듣자 그만 통곡하게 된 것이었다. 처량하고 참담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마을 사람들은 모두 무릎을 꿇었다. 바로 이 때, 한 차례 급하게 들려 오는 말발굽 소리가 나직하게 흐느끼고 있는 울음소리를 뒤엎고 마치 천둥소리처럼 멀리서부터 가까워졌다. 마을 사람들은 그 말굽 소리에 놀라 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한 필의 붉은 말이 나는 듯이 안개 속을 뚫고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이 미처 말 위에 탄 기사의 모습을 똑바로 바라보기도 전에 그 붉은 말은 이미 육장도 되지 않는 곳에 이르러 있었다. 말을 탄 기사는 그제서야 안개 속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을 보고 입으로 엇! 소리를 내지르더니 대뜸 고삐를 끌어당겼으나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그 한 필의 준마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려고 했다. 그 순간 마을 사람들은 놀란 소리를 내질렀고, 미처 피할 사이가 없어 눈을 감고 죽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별안간 호통 소리가 울려 퍼지고 말은 탄 기사의 손이 번쩍하더니 아래로 도끼를 내려치듯 후려쳤다. 말이 놀라 울부짖는 소리와 더불어 그 기사의 몸뚱이가 훌쩍 날아올라 산으로 오르는 돌계단 위로 내려섰다. 곧이어 그 기사는 호통을 질렀다. [당신들은 어째서 이른 새벽에 산길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이오?] 마을 사람들은 두 손으로 머리를 얼싸안고 땅바닥에 엎드려 무쇠와 같 은 말발굽이 그들의 몸을 밟고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들 려오는 호통 소리에 고개를 쳐들고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 사람을 한 번 바라보는 순간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억!하는 소리 를 지르며 재빨리 머리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자 그들은 그들의 곁에 한 필의 말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한 필의 말은 머리가 박살나 허연 골수와 새빨간 선혈을 땅바닥에 내쏟은 채 죽어 있었다. 그들은 아우성을 치며 허둥지둥 땅바닥에서 기어 일어나 앞을 다투어 마을 쪽으로 달려갔다. [게 서시오!] 호통소리와더불어 맨 나중에 달려가던 한 늙은이가 어느 덧 뒷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노인은 온 몸을 부르르 떨며 후딱 돌아보았다. 그 사람의 두 눈에서는 예리한 광채가 줄기줄기 뻗쳐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깜 짝 놀란 그는 자기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떨리는 음성으로 빌었다. [호걸 나으리, 목숨을 살려 주십시오!] 그 기사는 그 소리를 듣고 실소했다. [하! 하! 하! 알고 보니 당신은 나를 강도로 여기는 모양이군요?] 그는 손을 놓고 자조하듯 말했다. [세상 사람들은 겉모습으로 사람을 평가하기를 좋아한단 말씀이야. 그러 니 당신이 나를 악인으로 여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이는 당신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오.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으니 말이오.] 갑자기 맑고 또렷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아버지! 무당산에 도달했나요?] 노인은 깜짝 놀라 소리나는 곳을 바라았다. 그 험상궂고 이상하게 생긴 대한이 왼손으로 받쳐 든 커다란 대광주리 안에서 한 사람이 머리를 내 밀고 있었다. 한 어린애의 머리가 삐죽이 광주리 밖으로 나와 있었는데 이 때 그 아이 는 검고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노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노인은 자기도 모르게 찬사를 던졌다. [정말 준수하고 귀엽게 생겼군.] 그 어린애는 정말 잘 생겼다. 검고 빛나는 눈동자, 우뚝 선 콧날, 새빨간 입술, 거기다가 비스듬히 뻗쳐 있는 검미(劍眉), 하고 옥으로 깎아 놓은 듯 맑고 흰 피부는 보는 사람에게 귀엽다는 감정과 예뻐해 주고 싶은 심 정이 절로 우러나게 했다. 그 어린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노인을 바 라보았다. [아버지, 이분은 누구죠? 어째서 이른 아침에 이곳에 서 있나요?] 그 험상궂은 대한은 입을 열었다. [검남(劍南), 이 아비도 이분이 어째서여기 서 있는 줄 모르겠구나. 나는 그렇지 않아도 그에게 물어 보려고 하던 참이다.] 노인은 험상궂은 사내를 바라보며 속으로 궁리했다. (천하에 어떻게 이런 이상한 일이 있을까? 이토록 추악하고 험상궂은 사 람에게 이토록 귀엽고 예쁜 아들이 태어나다니...) 사실 그 대한은 키가 팔 척이나 되었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잡초 더미 같았으며 구레나룻은 바늘 같았다. 왼쪽 얼굴에는 기다란 칼 흉터가 아래 턱까지 뻗쳐 있어 그 모습이 끔찍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 대한은 약간 고개를 숙여 보였다. [노인장, 실례하오. 불초는 고명원(顧明遠)이라고 하오. 중요한 일로 무당 으로 달려가야 하기 때문에 길을 오는 동안 말을 급히 몰았던 것인데, 뜻 밖에도 마을 사람들이 길을 막고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에 일시 말을 멈 추지 못해 놀람을 안겨 드렸으니 정말 죄송하게 되었소. 아무쪼록 너그럽 게 이해해 주시기 바라오.] 노인은 허리를 굽히고 대답했다. [따지고 보면 우리들의 잘못이지요. 이른 아침에 길을 막아 대협의 말을 잃게 한 결과가...]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검남이라는 그 어린애가 놀라 소리쳤다. [아버지!대홍(大紅)을 죽였나요?] 고명원은 이미 죽어버린 붉은 말을 바라보더니 겸연쩍은 얼굴로 말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적어도 십여 명이나 되는 무고한 목숨이 저 말의 발굽 아래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나는 부득이 말을 쳐 죽일 수밖에 없었구 나... 얘야, 나는 대홍이 우리들을 천산에서부터 싣고 무당까지 달려오는 동안 밤낮 줄달음을 치느라고 수고가 많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급히 무당으로 달려 올라가야 했고, 아침 안개는 너무 짙어서...] 그 어린애는 대광주리 안에서 그 말을 듣고 눈물을 떨구며 참지 못하고 나직히 흐느꼈다. 고명원은 소맷자락으로 가볍게 어린애의 얼굴을 닦아주며 무거운 어조 로 입을 열었다. [검남, 울지 말아라. 너는 다섯 달 전, 현천도장께서 너에게 일러주신 말 씀을 기억하고 있느냐?] 고검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하고 있지요. 천산설련(天山雪蓮)만 찾아내면 거기에 무당파의 구전 속명금단(九轉續命金丹)을 배합해서 저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말씀하셨 죠.] [그렇다!] 고명원은 측은하다는 듯이 아들의 뺨을 어루만지며 설명을 했다. [너의 병이 낳으면 이 아비는대홍(大紅)보다 더 훌륭한 말을 구해서 네 가 탈 수 있도록 해주겠다. 그 때 너는 걸음을 걸을 수 있게 될 터이니 너는 말을 타고 대막(大漠)을 질주하게 될 것이다. 남아. 그 얼마나 멋지 겠느냐?] 고검남은 얼굴에 웃음을 띄웠다. [아버지, 저는 당장이라도 걸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아버지가 매일같이 업고 다니시는 수고도 안 하셔도 되잖아요. 저는 속으로 아버지 에게 미안해요.] 고명원은 웃었다. [하! 하! 하! 기특한 녀석, 다행히 무당산에 이미 도달했고 설련과 주과 (朱菓)도 찾지 않았느냐.자, 어서 산으로 올라가자.] 그 때 그 노인이 물었다. [대협, 아드님의 병을 현천도장께서 치료해주시기로 하셨나요?] 고명원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이 애는 막북(漠北)의 빙천설지(氷天雪地)에서 태어났는데, 그만 어려서 풍한(風寒)에 걸려 하반신의 혈맥(血脈)이 통하지 않아 지금 열네 살이 되었는데도 걸음마를 하지 못하고 있소. 불초가 두루 명의를 찾아다녔으나 치료할 수 없었는데 다행히 현천 노도장께서 내 자식놈을 위해 몸소 연단(煉丹)을 하시겠다고 하셨기에 장백산(長白山)에서 필요한 약물들을 마련해서 무당으로 달려오던 중이었소.] 노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협, 안타깝게도 이미 늦은 것 같소!] 고명원은 몸을 흠칫하며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늦었다고요?] 노인은 고개를 숙이며 침울히 말했다. [대협은 달려오는 도중에 무당산 위에서 들려 오는 종소리를 듣지 못했 소? 만종이 마흔 아홉 번 울려 퍼졌으니 현천 노선사는 이미 신선이 되 어 떠나셨소...] 고명원은 마치 벼락을 맞은 사람처럼 온 몸을 흠칫하며 그 자리에서 멍 청해지고 말았다. 그의 유일한 희망이 이 순간 산산조각나고말았으니 그 가 어찌 괴롭지 않겠는가? 별안간 그는 호통을 내지르더니 오른손을 번쩍 쳐들었다. 이 때 동쪽 하늘에 해가 막 솟아올라 온 누리를 비추고 있었다. 쳐들고 있는 손은 마치 피를 필해 놓은 것처럼 새빨갰다. 솟아오르는 햇살을 받 아 번쩍번쩍 끔찍하도록 짙은 핏빛을 쏘아 내고 있었다. 노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 입을 쩍 벌렸다. 그 순간 펑!하는 소리 가 크게 울려 퍼지고 곧이어 석벽에서 바스러진 돌들이 다투어 아래로 떨어졌다. 하나의 핏빛 수인(手印)이 도장 찍히듯 꽉 찍혀 있었는데 그 깊이가 세 치나 되었다. 노인은 놀라 소리를 질렀다. [아이쿠!] 그는 황망히 도망치기 시작했다. 사실 이와 같은 촌 늙은이는 말할 것도 없고, 무림 고수라고 해도 고명원이 남긴 세치 깊이의 혈수인(血手印)을 보았다면 깜짝 놀라고 말앗을 것이다. 고명원은 일장을 후려친 후에 발을 한 번 구르더니 한 맺힌 소리로 말 했다. [하늘이여. 당신은 이 고명원에게 너무나 잔인하구려!] 대광주리 안에 몸을 담고 있는 검남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아버지, 너무 실망 마세요. 우리들은 산 위로 올라가 보도록 해요. 어쩌 면 다른 도장께서 서거하셨는지도...] 고명원은 마음속에 한 가닥 서광이 비쳐드는 것을 느꼈다. [아무쪼록 이 종소리가 현천 노선사를 위해서 친 것이 아니기 바란다. 검 남, 우리는 산으로 올라가자!] 말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그는 몸을 빙글 돌렸다. 그는 비호처럼 산 위로 올라갔다. 산 벼랑을 돌아가자 돌계단으로 이루어진 길이 끝났다. 맞은편에 높이가 일장쯤 되는 커다란 바위가 길옆에 세워져 있었고 두 명의 젊은 도사가 나직히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들은 고명원이 나는 듯이 달려오는 것을 보자 길을 막아서며 한 손을 합장하듯 쳐들며 계수(稽首)를 했다. [무량수불, 시주께서는 걸음을 멈추십시오.] 고명원은 발길을 멈추며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불초는 고명원이라 하오. 볼일이 있어 반드시 상청궁으로 달려 올라가 장문인 현천도장을 만나 보아야...] 왼쪽의 젊은이가 고명원을 한 번 훑어보더니 놀란 음성으로 물었다. [시주께서 혈수천마(血手天魔)인가요?] 고명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불초는 멀리 천산에서 달려왔소. 현천장문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달 려온 것이니아무쪼록...] 그 젊은 두 도사는 안색이 변해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 다. [장문인께서는 어젯밤 자시에 서거하셨소. 현청(玄淸) 사숙은 사흘 안으 로 어떤 사람도 산위로 올려보내지 말라고 영유(令諭)를 내리셨소. 선배 님께서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혈수천마 고명원의 얼굴이 한차례 경련을 일으키더니 길게 한숨을 토해 내었다. [아, 하늘의 뜻이 그러할진대 더 말해 무엇하랴?] 그는 고개를 숙여 대광주리 안에 앉아 있는 어린애를 내려다보더니 다 시 고개를 쳐들었다. [노부가 멀리 천산에서부터 달려온 것은 현천도장을 만나 뵙기 위한 것 이네. 귀파의 장문인께서 돌아가셨다고는 하나, 노부는 이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네. 사숙께 말씀드려 불초가 장문인의 유용(遺容)이라도 한 번 뵙 게 해줄 수 없겠는가?] 그의 말은 무척 부드러웠다. 두 명의 도사는 얼굴에 의아한 빛을 떠올렸 다. 강호의 소문에 의하면 혈수천마는 심보가 악랄하고 손이 매우며 무수히 사람을 죽였고, 일신에 지니고 있는 마교(魔敎)의 공력(功力)은 온 세상을 통틀어 적수를 찾기 힘들 지경이라는 것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그는십오 년 전, 화산(華山)에서 일대검성(一代劍聖) 매화용(梅花容)에게 도전했을 때 일초를 패하여 얼굴에 흉터가 생긴 일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적수를 만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몇 년 동안 혈수천마는 강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그가 어 디에 은거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뜻밖에도 무당파의 해검암(解劍岩) 앞에 나타나 무당장문 현천도장과 서로 약속이 되어 있다고 호언하고 있으니, 어찌 그들이 놀라 지 않겠는가? 왼쪽의 도사 송풍(松風)은 사제 송월(松月)을 한 번바라보더니 입을 열 었다. [선배님은 잠시 여기서 기다려 주실 수 없겠습니까? 빈도가 신호를 보내 사숙의 지시를 받아야 되겠습니다.] 고명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그는 천천히 그 해검암(解劍岩)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바위 앞으로 걸어 갔다. 송월은 몸을 돌려 바위 뒤쪽에서 대나무로 만들어진 조롱을 꺼내더니 안에 있는 비둘기를 꺼내 송풍에게 넘겼다. 두 사람은 총총히 한 장의 쪽 지를 써서 비둘기의 다리에 매단 후에 비둘기를 허공으로 던졌다. 날아가는 비둘기를 바라보며 고명원은 속으로생각했다. (무당산은 무림의 이대 정종문호(正宗門戶)로 손꼽히고 소림과 함께 위세 를 떨치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로구나. 저 젊은 도사들이 일을 처리함 에 있어서 조심스럽고 민활한 것을 보면 무당 문규의 엄함을 알 수 있겠 구나...) 그는 해검암이라는 바위 앞에 앉아 대광주리를 내려놓고 광주리 안의 아들에게 입을 열었다. [검남, 너는 천하에서 유명한 무당 해검암을 구경하겠느냐?] 고검남은 안에서 머리를 내밀고 새까만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고 그 일 장 남짓한 비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버지,이걸 왜 해검암이라고 하나요?] 고명원은 미소를 지었다. [무당산파의 시조인 장삼풍(張三風)은 일대종사(一代宗師)였다. 그 분이 지닌 무학은 세상을 통틀어 다시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그 분은 무당산에 무당파를 세워 무학을 선양했고 참된 도를 갈고 닦아 현문정종(玄門正宗) 의 주맥이 되었다. 그래서 후세의 무인들은 장삼풍 조사에게 존경심을 표 하기 위해서 무당산에다 해검암을 만들어 놓고 검을 들고 산 위로 오르 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다.] 고명원은 말을 하는 사이에 해검암 뒤에 있는 검을 볼 수있었다. 그 장 검들 가운데 한 자루가 매우 이상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검은 여 느 검보다도 훨씬 길었다. 여느 장검의 길이는 석자 여섯 치이고, 단검이라면 두자 여덟 치인데, 유독 그 한 자루의 검은 넉자 여덟 치의 길이를 가지고 있었다. 거기다가 검집이 좁고 검집에는 소나무 무늬로 가득차 있었다. 그는 속으로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다. (엇! 저것은 공동( ) 장문인 오도인(烏道人)이 가지고 다니는 전파지보 (傳派之寶) 어룡검(馭龍劍)이 아닌가? 오도인과 현천 노도장은 서로 앙숙 이며 일찍이 서로 내왕한 적이 없는데 어째서 오늘날은 무당으로 올랐 지...?] 그는 속으로 이와 같은 생각을 하다가 불쑥 물었다. [공동파 장문인 오도장이 언제 산 위에 올랐는가?] 이 너무나 느닷없이 던져진 질문에 송월도사는 생각해 보지도 않고 대 답했다. [오장문은 어젯밤에 도착했지요. 그는 아미장문(峨嵋掌門) 나엽대사(羅葉 大師)와 함께...] 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송풍이 무겁게 호통을 내질렀다. [사제, 자네...] 고명원은 송월이 송풍의 호통 소리에 안색이 변하고 하던 말을 즉시 삼 켜버리는 것을 보고 속으로 한 차례의 의혹을 느꼈다. 나엽대사 역시 현 천도장과 왕래가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무척 의아하게 생각했다. (혹시 오도인과 나엽대사가 연합하여 무당산에 꼬투리를 잡으러 온 것이 아닌지 모르겠구나. 그렇다면 이렇게 무당산이 조용할 리가 없을 테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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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봅니다.
잘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