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희 시집 {그늘의 꿈을 깨우다} 출간
강은희 시인은 충남 당진에서 태어났고, 2022년 격월간 {서정문학}으로 등단했다. 2023년 공주문화관광재단의 신진문학인 및 충남문화예술지원사업에 선정된 바가 있으며, 한국문인협회 공주지부, 금강여성문학, 풀꽃시문학 회원이다. 강은희 시인의 {그늘의 꿈을 깨우다}는 첫 번째 시집 {눈물은 바다로 간다}에 이은 두 번째 시집이며, 그의 {그늘의 꿈을 깨우다}의 시세계는 한 마디로 ‘말의 꿈’의 세계라고 할 수가 있다. “훔쳐 오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말들이/ 봄날 민들레꽃처럼/ 여기저기에서” 피어나지 않으면 안 되고, “슬퍼도 아름다운/ 살아서 더 눈부신” “이 땅의 말들이 어둡지 않은 글자로/ 온전하게 살아”있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말]은 강은희 시인의 생명이고, 숨소리이며, 그는 이처럼 티없이 맑고 깨끗한 말로 예술품 자체가 된 삶을 산다.
손끝으로 세상을 읽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나/ 마음이 어두운 사람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환한 세상에서도 환하게 읽히지 않는 문장/ 슬픈 얼굴에서도 슬픈 눈빛을 읽지 못하는/ 깨어진 글자들의 상처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훔쳐 오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말들이/ 봄날 민들레꽃처럼/ 여기저기에서 살아났으면 좋겠다// 슬퍼도 아름다운/ 살아서 더 눈부신 // 이 땅의 말들이 어둡지 않은 글자로/ 온전하게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 ----[말] 전문
말은 우리 인간들의 생명이고, 우리는 말로서 숨을 쉬고 말로서 밥을 먹는다. 말로서 세상을 읽고, 말로서 소통을 하며, 말로서 아름다운 시와 문화유산을 남기고 죽는다. “환한 세상에서도 환하게 읽히지 않는 문장/ 슬픈 얼굴에서도 슬픈 눈빛을 읽지 못하는/ 깨어진 글자들의 상처를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자유와 평등과 사랑의 말들을 찾아내어 말의 생명을 되살려 놓지 않으면 안 된다. “훔쳐 오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말들이/ 봄날 민들레꽃처럼/ 여기저기에서” 피어나지 않으면 안 되고, “슬퍼도 아름다운/ 살아서 더 눈부신” “이 땅의 말들이 어둡지 않은 글자로/ 온전하게 살아”있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말]은 강은희 시인의 생명이고, 숨소리이며, 그녀는 이처럼 티없이 맑고 깨끗한 말로 예술품 자체가 된 삶을 산다. 인간은 유한하지만, 말은 영원하고, 그녀는 ‘말의 꿈’을 꾸며 살아간다.
추억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진짜로 가난하고 고통스러웠던 사람이 아니다. 진짜로 가난하고 밥 한 그릇과 죽 한 그릇도 먹기가 힘들었고, 상급학교의 진학은 커녕 온갖 천대와 멸시를 당하며 최하 천민의 삶을 살아야 했던 사람에게는 추억이 없다. 친구들이 교복을 입고 등, 하교를 하는 것, 벚꽃이 만발한 날 손에 손을 잡고 부모형제들과 친구들이 꽃놀이를 가는 것, 수학여행을 가거나 해외여행을 가는 것, 좋은 옷과 좋은 음식을 먹으며 대저택에서 사는 것을 ‘소년(소녀) 가장’처럼 바라보며 눈물과 콧물로 밥을 말아먹던 사람에게는 추억이 없고 재앙만이 있다.
야간학교 등굣길/ 버드나무 가지처럼 휘청이다가/ 종잇장처럼 얇아진 엄마가/ 냇물같이 흔들린다// 엄마 어디 아퍼?/ 어지러워서// 다시 그 길로 돌아오기까지/ 하루는 젖은 얼굴로 길게 어두워졌고/ 엄마의 얼굴이 낮달같이 하얗게 떠 보였다// 가끔 엄마는 토마토 꼭지 냄새가/ 농약 냄새랑 닮았다는 말을 하곤 했는데/ 그때 엄마가 일 나갔다 맡은 농약 냄새 때문에/ 어지러웠다는 걸 알았다// 설탕 솔솔 뿌려 젓가락으로 꿰어 먹던/ 어린 날의 기억만 좋았을 뿐/ 가세 기울고 온전한 남루의 기억으로/ 토마토는 명치 끝부터 먼저 글썽여지는/ 엄마의 흔적이었다// 텃밭에서 빨갛게 익어가는 토마토를 딸 때마다/ 하루살이 같던 그 시절/ 시간이 벌어다 주던 종이봉투 속 쌀알처럼/ 단단하게 부여잡았던/ 가난한 목숨들을 생각하게 한다 ----[토마토 단상] 전문
강은희 시인의 [토마토 단상]은 추억이 아닌 재앙 자체의 시간이며, 가난이 한 가정을 어떻게 파괴하고 일그러 트렸던가를 생각해 보게 한다. 우선“야간학교 등굣길에/ 버드나무 가지처럼 휘청이다가/ 종잇장처럼 얇아진 엄마가/ 냇물같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준다.“엄마 어디 아퍼?/ 어지러워서”,“다시 그 길로 돌아오기까지/ 하루는 젖은 얼굴로 길게 어두워졌고/ 엄마의 얼굴이 낮달같이 하얗게 떠 보였다.”엄마는 가난한 이웃을 내몸처럼 생각하던 엄마였고, 엄마가 가게를 할 때에는 가난한 사람들과 걸인들이 줄을 지어섰고, 엄마는 결코 그 어렵고 불쌍한 사람들을 외면한 적이 없었다. 그 결과,“소문처럼 집은 기울고 문간에는 창백한 바람이 서 있게”되었다. 왜냐하면“챙길 게 없으면 등을 보이는 게 세상이었”고,“덜어줄 게 없으면 등을 보고 있어야 하는 게 세상이었기”([팔자는 볶는 것이다]) 때문이다. 반드시 그 때문에 가세가 기울어진 것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가게를 접고 토마토 농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추억은 중독성 농약이자 어지러움증이 되었고, 추억은 야간학교이자 그림자의 눈물이 되었다. 추억은 가난이자 쥐똥이 되었고, 추억은 대사건이자 재앙 자체가 되었다. 어린 딸 아이는 정상이 아닌 야간학교를 다녀야만 했고, 엄마는 농약에 중독되어 토마토를 볼 때마다 어지러움증을 호소하고 구토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가난은 꿈조차도 꿀 수 없게 하고, 인간을 비인간으로 만들며, 그 모든 사회적 천대와 멸시를 다 받게 만든다. 강은희 시인의 첫 시집 {그늘의 꿈을 깨우다} 표제 시에도 그녀의 추억과 기억은 온통 상처--재앙뿐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고칠 수 없는 기억을 베고/ 왼쪽 벽으로 돌아누우며/ 한낮 잠이 든 여자는// 빈 벽의 그늘에 눌려 꿈을 꾸고 있다// 그네를 타고 있었다/ 멀리까지 날아갔다가/ 다시 다리를 접으며 되돌아오는// 아무것도 없이 빈 채로 돌아오던 여자가// 문득 꿈을 더듬어 보고 있었다/ 어디쯤에서 멈춰 선 것인지/ 어디쯤에서 잃어버린 것인지// 내 꿈은 쥐똥이다를 복창하던 수련회/ 아이의 꿈은 쥐똥으로 뭉개지고/ 더 큰 섭리를 쥐어주던 말들이 살아나고 있었다// 기억에서 끌려 나온 아이의 꿈이 오래도록 흐느끼고 있었다/ 바람은 틈새를 스쳐 갔으며 여자의 나이가 부풀려지고 있었다// 밖에서 돌아온 남자가 조용히 여자의 꿈을 깨우고 있었다 ----[그늘의 꿈을 깨우다] 전문
강은희 시인의 [그늘의 꿈을 깨우다]의“고칠 수 없는 기억”은 상처이고 재앙이며, 어린 시절의 그녀를 그토록 억압하고 짓눌렀던 사건일 것이다. 아무튼“고칠 수 없는 기억을 베고/ 왼쪽 벽으로 돌아누우”면“한낮 잠이 든 여자는// 빈 벽의 그늘에 눌려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의 그녀는 꿈 많은 소녀였지만, 그러나 그녀의 가정형편 상, 그 꿈을 추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그네를 타고 있었다”는 것은 꿈을 꾸고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멀리까지 날아갔다가/ 다시 다리를 접으며”“아무것도 없이 빈 채로 돌아”왔다는 것은 그 어떤 꿈도 도로아미타불의 헛수고로 그쳤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이미 수십 년이 지난 어른이 되어서도“내 꿈은 쥐똥이다를 복창하던 수련회/ 아이의 꿈은 쥐똥으로 뭉개지고”,“더 큰 섭리를 쥐어주던”어린 시절의 말들이 살아났지만, 그러나“기억에서 끌려 나온 아이의 꿈이 오래도록 흐느끼고 있었던”것이다. 꿈을 잃으면 인간은 소심해지고 작아지며, 자기 자신의 존재의 이유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된다. 이룰 수 없는 꿈과 빈 벽의 그늘에 눌려 그 어떤 대책도 없이 오래도록 흐느끼고 있을 때,“밖에서 돌아온 남자가 조용히 여자의 꿈을 깨웠던”것이다. 시란 말들의 집이고, 이 말들의 집은 티없이 맑고 깨끗한 집이다. 모든 아름다움은 순수함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이며, 온몸으로, 온몸으로 시를 쓰는 사람만이 완성할 수가 있는 것이다. 말로서 숨을 쉬고, 말로서 밥을 먹으며, 말로서 꿈을 꾸는 사람은 진실한 사람이지만, 그러나 대부분의 시인은 인간의 사회에서는 버림을 받고 신들의 사회에서는 크나큰 은총을 받는다. 강은희 시인이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 추억과 상처와 재앙을 다 치유하고 진정한 시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밖에서 돌아온 그 남자 때문이었다고 할 수가 있다. 밖에서 돌아온 그 남자는 천사이자 구원자일 수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그“여자의 꿈”을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다. 가령, [내가 그를 읽은 이후]라는 시를 보면, 남자는 딱딱하게 익은 옥수수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여자는“난 여린 게 좋아”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러나 그 남자가 따온 열 개의 옥수수 중 여덟 개는 그 여자의 몫이었고, 그 남자의 몫은 겨우 두 개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늘 모자란 그의 몫을 보며 그 여자는 사랑을 배우고, 사랑은 배려이고 용서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강은희 시집 {그늘의 꿈을 깨우다}, 도서출판 지혜, 값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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