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회가 심상치 않다
[인터뷰]15개 전 지역교구 시국선언 도운 장동훈 신부
15개의 천주교 모든 지역교구에서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와 재발 방지,
국정원 개혁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이 나왔다.
참여한 사제만 2천124명으로
전체 사제(주교회의 온라인 주소록 기준 4천835명)의 43%에 달했다.
이 심상치 않은 흐름 속에서 '정중동'으로 움직이는 사제들이 있다.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총무인 장동훈 신부는 그중의 한 사람이다.
"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신부님들 회의에서 '심각한 사안이다, 이 문제를 좌시할 수 없다'는
의견이 모아졌고 자연스럽게 시국선언이란 방법이 나왔다"고 말했다.
주교회의는 천주교 안에서도 구속력 있는 권고를 내릴 수 있는 상급기관이다.
이 주교회의 산하 전국위원회 중 하나인 정의평화위원회는
'복음에 바탕을 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사회 현실 속에서
시대의 상황이 필요로 할 때에 정의와 평화를 구현한다'는 목표로 활동하는 곳이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이번 시국선언 과정에서 각 교구의 계획을 정리하고, 공유하는 중간다리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장 신부는
"(군종교구를 제외한) 15개 교구가 모두 시국선언을 했다는 의미도 있지만,
자발적으로 의미가 있다는 데에 더 무게를 둔다"고 강조했다.
보수성향인 대구·경북 역시 시국선언에 동참한 점을 언급하며
"그만큼 (사안이) 위중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구대교구의 경우에는, 1911년 출범이래 102년 만에 처음으로 발표하는 시국선언이었다.
"선거라는 민주주의 근간이 흔들렸고,
과거에 일어났을 법한 사건이 2013년에 일어났다"는 점이 그 첫 번째 이유였다.
"국정원의 선거 개입은
내 사상과 이념이 검증당하고 양심이 검열당하는 시대가 다시 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며
"국민들이 더 이상 뭘 믿겠는가,
(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
"교회는 시대를 앞서나간 적이 없는데
(현재 상황은) '정말 이러다간 선배들이 피땀 흘려 만든 민주주의가 물거품이 될 수 있겠다'는
위기감이 든 것이다, 사회가 이 의미를 느껴야 한다".
하지만 8월 28일 이석기 의원 등 10명에 대한 압수수색이 시작된 이후부터
'국정원 대선 개입'사건은
'이석기 내란음모 의혹' 이라는 회오리에 휘말린 모습이다.
"이념논쟁이 또 단골손님처럼 등장했다"
"(이석기 사태 등으로 정국의) 화제가 달라져도
'진짜 문제는 국정원 개혁'이다.
정국이 끝내 색깔론으로 흐려진다면,
전국단위 시국미사 같은 집단행동도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공안정국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천주교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
" 한국의 민주주의가 아직 건강한 편은 아니지만 허약하지도 않다고 본다"
"우리는 '피의 뿌리'를 갖고 있다, 다시 제자리로 되돌려 놓을 것"
"천주교 시국선언... 국정원 사태 심각·위중한 사안으로 본다는 뜻"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인데, 그 꽃이 유린당했다.
민주주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더 심각한 건, .
후진국에서나 일어날 법한 사건이 2013년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평화를 위해 있어야 할
공적 기관이 사적으로 이용되었다는 것이 충격이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회의록이 공개되고,
'내란음모죄'라는 무지막지한 단어가 등장하면서
국정원 사태 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실제로 가라앉고 있다.
'혹시 나는 빨갱이나 좌경으로 몰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일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그런 시대를 살고 있다.
건강한 민주사회 시민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잘못된 민주주의체제는 잘못됐다고 말하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권리며 의무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하면
'색깔론이 덧씌워질 것'이라고 여긴다.
우리 안에 있는 심리적 장애인 것이다.
"국정원 선거개입, '내 양심도 검열당할 수 있다' "
- 4대강 사업 등 다른 정치 현안보다
국정원 사태를 두고 더 강하게 한 목소리를 내는 이유가 무엇일까.
단지 '민주주의'란 원론적인 문제만 있을까.
4대강 사업은 찬반이 극명하게 갈라진다
우리가 갖고 있는 개발에 대한 어떤 환상 같은 것 때문으로 본다.
'정부가 잘 꾸민다는데 왜 이런 문제를 거론할까' 하는 생각들이 있을 수 있고,
실제로 잘 정비해놓고 보면
겉은 번지르르해 보이니까
사람들이 얼마만큼의 야합과 담합, 환경파괴가 있었는지 실감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개발 판타지'에 빠진 채
(4대강 사업 반대 의견에) 반대하고,
교회에서 (비판) 목소리를 내는 데에 불만을 표시할 수 있었지만...
국정원 사태는 ,
1980~90년대를 통과하며 '절차적 민주주의'가 안정됐다고 여겼는데….
그런데 (시민들이) 통치에 참여하긴커녕 공적기관이 사유화 된것이 충격적이다..
더 나아가 국정원이란 정보기관의 선거 개입은
'내 사상과 이념이 검증당하고 양심이 검열당하는 시대가 다시 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국민들이 더 이상 뭘 믿겠는가.
(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
누구나 '나 역시 이 정도로 상황이 계속 진행된다면
불법사찰의 희생양이 되거나
내 양심조차 검열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낄 수 있었다는 말이다.
지난 열흘 동안 모든 뉴스를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죄 혐의'가 주도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국정원 사태 시국선언도 많이 주춤해졌다.
사람들이 위축된 거다.
<조선일보>에서 검찰총장 혼외아들 문제까지 다뤘다.
이게, 정말 총체적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데…
모자이크를 맞춰보면 그림이 나온다.
단편적인 내용들을 쭉 채워놓고 보니
'정말 이러다간 선배들이 피땀 흘려 만든 민주주의가 물거품이 될 수 있겠다'는 위기감이 든다
NLL·이석기 때문에 초점이 흐려지면 안되고 국정원 개혁해야 한다
'초점이 흐려져선 안 된다.'
국정원 대선 개입 문제는 국정원 개혁 으로 가야 한다.
내란음모,
서해 북방한계선(NLL) 사안들이야말로
특별한 정권을 위해 일하는,
다른 말로 정치공작을 한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 증명했다.
NLL 대화록, 이게 너무 생뚱맞다. 갑자기 왜 그 문제가 나오는가?
그것으로도 안 되니까 내란음모까지….
이 사안들이 정부와 직접적 연관이 없다고 믿고 싶다.
국정원만 어떻게든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구성을 하든,
개혁을 하든,
정말로 국민에게 봉사하는 정보기관이 되어야 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갈등들,
밀양송전탑과 쌍용차 등 어느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다.
정부와 국정원이 제 역할을 했다면 그 갈등을 조절해야 하는데 무엇을 하고 있는가?
상하이차의 쌍용차 기술 유출은 곧 국가 기밀이 새나간 일이다.
국정원이 그때 뭐했냐는 것이다.
국민들은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는데 무엇을 하고 있었나?
어두컴컴한 방에서 댓글이나 달고 있었다. 너무 슬프지 않은가.
밀양 송전탑? 7년째 싸우고 있다.
정부는 '시간·경제적 이유로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데 안타깝다.
시간과 돈은 구하면 되지만 생명은 잃어버리면 끝이다.
노인들을 상대로 힘으로 밀어붙여서 끝낸다면, 그야말로 세금 낭비 아닌가?
보상을 받지 않겠다는데, 그럼 그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야지.
국정원이
그런 갈등을 조절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정보를 국가에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정말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뭐 했냐는 얘기다.
- 앞으로 상황을 어떻게 내다보는가.
지금 '내란음모죄'로 이념논쟁이 또 단골손님처럼 등장했지만,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든 깃발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
화제가 달라져도 '진짜 문제는 국정원 개혁' 이다.
건강한 시민사회가 있었다면 국정원 사태에 충분히 대응했을텐데...
시민사회가 허약해졌다.
현실 세계를 떠받치는 민주주의라는 고귀한 정신을 어느 날 도둑맞았다.
사회가 건강해지길 원한다.
자기만 옳고 건강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야 한다.
- 조금씩 '공안정국'으로 몰고가고 있는데...
깨어있는 시민들,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충분히 공안정국을 경험했고, 그로 인해 충분히 아팠다.
그런 일이 없으리라 믿는다. 믿고 싶다.
근데 어찌 보면
언론이 자꾸 색깔론으로 몰고 가면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공포'를 조성하는 것 같다.
'공안정국'이란 표현도 자꾸 쓰고.
물론 그건 국정원에서 '내란음모죄'라는 엄청난 과거 유물을 들고 나왔기 때문인데….
나는 믿는다.
어렵게 쟁취한 민주주의가 아직 건강한 편은 아니지만 허약하진 않다.
뿌리가 없는 게 아니다.
우리는 '피의 뿌리'를 갖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양심의 목소리를 내면서 다시 제자리로 되돌려 놓으리라...